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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제주 귀농 보금자리엔 빈 의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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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제주 귀농 보금자리엔 빈 의자만…

[언론네트워크] 실종 권재근 씨 가족 안타까운 사연

귀농의 꿈을 안고 제주에서 인생2막을 펼치려 했던 세월호 실종자 권재근(52) 씨 가족이 마련한 제주시 모 읍 소재의 주인 잃은 보금자리에는 쓸쓸한 봄비만 내리고 있었다.
<제주의소리>가 18일 수소문 끝에 찾아간 권 씨의 집에는 아직 정리가 덜 된 짐들이 마당 곳곳에 놓여 있었고, 주인을 기다리는 자전거와 훌라후프, 빈 나무의자와 뜰에 지어진 오두막이 쓸쓸한 모습으로 권 씨 가족의 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당초 권 씨가 제주에 내려오려 했던 날이 사고 하루 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권 씨 가족이 귀농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했던 제주도의 이 집은 20년을 친형제처럼 지냈던 지인 민성기(64) 씨가 권 씨 가족의 귀농을 위해 마련해준 곳이다. 오랜 지인과 함께 여유롭고 행복한, 제주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전원 생활을 꿈꿨던 것.

민 씨는 이날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권 씨 가족이 불과 하루 차이로 일정을 미루면서 사고를 당했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당초 권 씨가 제주를 향하려던 날은 14일. 그러나 이전에 살던 전셋집 처리 문제로 하루 일정이 미뤄지면서 15일 저녁 세월호를 타게 된 것이다. 그의 아내와 딸과 아들, 1톤 트럭에 이삿짐을 가득 실은 상태였다.

권 씨는 15일 저녁 민 씨에게 전화를 걸어 출항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안개가 짙어 배가 과연 제대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민 씨는 “월요일날 내려오려다가 어떻게 일이 이리 되려고 화요일날 배를 타게 된 거냐”면서 안타까워 거듭 말을 잇지 못했다.

권 씨는 지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제주에서 감귤농사를 짓다가 베트남 출신인 부인 한윤지(29) 씨를 만나면서 서울 성북구로 거처를 옮겼다. 민 씨는 권 씨가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저축이 쉽지 않은 것을 보고 제주에서 좀 더 여유롭게 살 것을 권했다. 집을 마련하고 감귤밭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자 권씨는 제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미 앞서 몇 차례 제주를 넘나들며 짐도 일부 옮기고 전정작업도 했다. 남은 짐을 싣고 정말 새로운 출발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를 만났고, 18일 오후 딸 권◯◯(5) 어린이만 다른 승객들 손에 구조돼 실종된 아빠·엄마·오빠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날 오전 진도를 향한 민 씨는 지금까지 잠도 한 숨도 못 잤다고 했다. 다만 해운사와 정부의 사고처리에 대해서는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다 구조했다고 오보를 하고 실종자 집계도 못하고 도대체 이게 뭐냐”며 “온통 거짓말쟁이 투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어떻게 승객들에게는 꼼짝 말라고 해놓고 선장이 먼저 빠져나올 수 있냐”며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민 씨는 지난 며칠 간 권 씨에게 서울로 떠난 후 밀감시세가 많이 올랐다며 영농인의 삶을 추천했던 일, 근처에 유치원이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니 어서 (제주로) 오라고 권유했던 일 등 함께 꿈꿨던 행복한 여생에 대한 생각들이 자꾸 떠오른단다.

“(권 씨) 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울컥하고 (…) 가슴이 답답하다”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민 씨는 지금도 진도체육관에서 마지막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 권 씨가 지금이라도 "형님" 하면서 달려올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 세월호 침몰사고로 가족이 실종된 여섯살 권◯◯ 어린이의 사연이 온 국민을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아빠 권재근 씨가 가족들과 함께 귀농의 꿈을 안고 제주의 새보금자리로 향하던 중 일어난 침몰사고여서 더욱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18일 찾아간 제주시 모 읍 소재의 권씨 가족 집에는 주인 잃은 빈 의자가 쓸쓸히 내리는 봄비를 맞고 있었다. ⓒ제주의소리(문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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