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비폭력의 정당을 천명하고 있는 녹색당을 이야기하면서, ‘최전선(最前線)’이라는 전쟁의 은유를 쓰는 것이 달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간 <행복하려면 녹색>(이매진, 2014)과 책의 두 저자들(하승수, 서형원)의 서 있는 자리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 서평자의 상상력의 빈곤일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보면 이들이 내세우는 ‘반정당의 정당’만큼이나 응축된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녹색당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행스럽게도 두 저자와는 10여년 이상을 알고 지내 왔고, 또 함께 녹색당원으로 살고 있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이미 알만큼 안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았던 하승수와 서형원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어떨 때는 감탄을 하면서 어떨 때는 눈물을 찍어 내면서.
슈렉 하승수, 행복을 노래하다
참여연대 시절 한번 물면 놓지 않고 불합리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집요하게 파헤친다고 해서 ‘불독’이라 불렸던 하승수. 예기치 않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녹색당 창당의 주역이 되면서, 이제는 못생겼지만 착하고 현명한 녹색 괴물 ‘슈렉’으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장담컨대 누구라도 그를 보면 슈렉을 떠올릴 수 있다.). 슈렉은 사실 제주대에서 정년 보장을 앞둔 교수로 일을 했었지만, 그것을 훌쩍 버리고 다시 뭍으로 돌아왔다. ‘행복’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그의 행복론은―동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듯이―우리 사회의 음울한 배경음악이 된 절망을 고통스럽게 직시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의 행복론이 남다른 것은 그의 이야기가 투표권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시선은 정치적 행위자/대상 밖에 위치지워진 청소년, 이주민 그리고 동물들이 매일같이 직면한 절망과 불행을 향해 확장되어 있다. ‘힐링’이니 하는 미봉책을 들고 돌아온 것은 아니다. 행복을 만드는 두가지 길을 이야기한다. 행복하고 착하게 살려는 개인적 실천과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바꾸는 집합적인 실천. 녹색당을 하면서 육식과 결별한 것처럼, 그는 두가지 길을 함께 걷고 있고 다른 이들에게 함께 걷자고 권유하고 있다.
놀이터 서형원, 동네를 즐기다
훌륭한 가수이며 날렵한 농구선수이고 재치있는 동네 당구장 단골손님이자 주민들과 수다를 즐기기를 좋아하는 과천시 시의원인 서형원. 그는 오래전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막기 위해서 서해의 섬들을 몰래 넘나들며 주민들을 만나고 다녔던 환경운동연합의 용감하고 명석한 활동가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녹색정치를 싹틔우려 고전하다 사라져간 전설적인 ‘초록정치연대’의, 시대를 앞선 불운한 상근자였다. 그는 스스로 지역정치인이 되어 시의원으로 두 번 당선되었고 시의회 의장도 맡아 일했다. 그 사이에 창당된 녹색당에 참여하면서, 오랜 지역정치 활동으로 훈련된 정치적 자원을 보탰다. 이제 녹색당의 과천시장 후보로 나섰다.
출판기념회도 가졌다((2월 9일, 과천시민회관). 그러나 진면목은 남들 다하는 출판기념회에 있지는 않다. 그는 지난 1월 지역의 모든 가구를 찾아가 의정보고서를 직접 전달하느라, 밤마다 지쳐 나가 떨어졌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겠다는 지역정치인의 성실한 뚝심이다. 하지만 발걸음으로 구석구석을 돌면서 주민들과 동네를 꼼꼼히 읽어내는 탐구심이기도 하다.
그 발걸음은 선진국의 수도가 아니라, 녹색당이 집권한 영국과 독일의 소도시들로 이어진다. 과천의 놀이터로 가면 그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독일에서 숱하게 돌아다닌 것도 동네 놀이터다. 지역 주민들과 아이들이 참여해서 어떻게 만들고 바꿔 냈는지 관찰했다. 책에서 그 생생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눈높이를 낮추고 진득하게 참여를 촉진시키는 것, 그것이 지역 전체를 바꾼다고 그는 믿는다. ‘행복’하려면 ‘녹색’이라지만, ‘녹색’이라면 ‘지역’이고 ‘지역’이라면 ‘주민참여’라는 공식을 만들어낸 8년차 시의원 서형원이 과천에 있다. 그가 한국 녹색당의 최전선이다.
근데, 왜 굳이 녹색당인가. 탈성장을 외치지 않으니까
녹색당은 상식의 정당이지만, 상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내려는 정당이기도 하다. 그것이 굳이 왜 녹색당인가를 설명해준다. 하승수는 새로운 상식이 무엇인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망설임없이 “성장을 멈추자!”고 이야기하며, ‘탈성장(脫成長)’이 새로운 상식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많은 이들이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조용히 외면할 것이다. 또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그런 주장은 ‘자살골’이라며 짐짓 아끼는 말을 건넬 것이다. 아마 하승수는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분명한 논거를 제시하고 토론을 제안한다. 우선, 지금 당신이 행복하냐고 묻고, 또 그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더 큰 아파트와 더 비싼 자동차로 대답하려는 이들은 그저 묵묵히 바라볼 것이다. 목소리 높여 힐난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다만 눈빛이 흔들려, 혼자 먹는 밥과 밤낮이 바뀐 일자리, 가난한 노년의 불안감과 버려진 고양이에 불행함을 느낀다면, 그의 글은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다음. 모든 것이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며 벌어질 수많은 비극들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씩 나열한다. 비정규직일 수도 있고, 농민들일 수도 있으며, 아이들의 급식일 수도 있고, 또 생매장된 수많은 돼지와 닭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묻는다. 더 많은 경제성장이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었냐고. 경제성장은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계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는 탈성장을 위한 정치이며,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는 정치이며, 그래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정치이다.
현실 정치인 하승수, 안철수와 문재인을 비판하다
이 책은 현실 정치인 하승수가 쓴 책이다. 그는 녹색당의 공동운영위원장으로 당대의 다른 정치인들을 바라보고 비판하고 토론한다. 그의 권리이자 의무이고 책임이다. 이 책에서 하승수는 ‘새정치’를 외치는 안철수 의원을 직접 거론하지 않지만, 그의 ‘새정치’가 행복의 시선에서 볼 때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분명히 짚고 있다.
“‘새정치’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집단도 우리가 부딪히는 위기에는 침묵하고 있다. 원전, 기후변화, 송전탑, 고용 없는 성장, 저임금・장시간・비정규 노동, 농업 붕괴와 농촌의 침체 등은 그들의 핵심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경제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자기가 당선하고 자기 세력이 권력을 쥐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229쪽).
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시기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성장중독증을 떨쳐내지 못한 바를 에누리없이 비판했다. 사실 시민운동가 하승수와 청와대 민정수석 문재인은 부안 방폐장 싸움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악연이 있었고, 할 말도 많다. 이제 녹색당의 정치인이 된 그가 무엇이 좋은 정치인지를 두고 공개적으로 토론을 시작했다.
“지난 대선에서도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이던 문재인 현 국회의원은 2012년 6월 17일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4대 성장 전략’을 내세웠다.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중략) 성장주의가 특별한 게 아니다. 경제 성장률을 국가 정책의 우선 목표로 삼겠다는 사고가 바로 성장주의다. (중략) 결국 문재인 의원은 스스로 자신을 성장주의의 덫에 가둬버린 것이다. (중략)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결국 경제 성장률에 집착하다가 발목을 잡혔다. 그래서 토건 사업을 계속했고, 관료들에게 끌려 다녔으며, 재벌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는 심해졌고, 부동산 값을 잡는 데도 실패했다. 핵 발전소는 계속 늘어났고, 수명이 끝난 고리 1호기는 수명이 연장돼 지금까지 가동 중이다”(30-32쪽).
녹색당, 좌도 우도 아니고 앞으로 간다
당연히 그의 비판은 우파 집권 세력을 향해서도 겨누어져 있다. 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앞세웠던 “경제민주화”을 둘러싼 논쟁에도 비판적으로 참여했다(그의 글은 《경향신문》(2012년 8월 20일)에 실린 컬럼을 수정보완한 것이어서 좀더 생생하다). 그는 과연 “경제민주화”가 무엇이냐며 여야 간의 논쟁의 허구성을 짚었다. 이제는 그마저도 다 벗어 던지는 공약파기 정부 때문에 허탈해지기는 했지만, 진정한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하승수의 말은 여전히 중요하다.
“경제 민주화를 향한 관심이 높지만, 경제 민주화는 재벌들의 기업지배 구조를 일부 개선한다고 해서 달성되는 게 아니다. 원전과 토건 사업에 의존하고 농업을 희생시키는 경제 구조에서 탈피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경제 민주화를 할 수 있다”(141쪽).
녹색당은 여러 진보정당들과 그리 나쁜 사이는 아니다. 어떤 진보정당은 녹색당은 친구당이라고 친근감을 표시하며, 밀양을 비롯해서 현장 곳곳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승수는 탈성장주의와 관련해서는 타협은 없다. 진보정당들의 복지 담론의 진정성에 공감은 표시하지만, “기존의 복지국가가 경제 성장을 기반으로 해서 복지국가 추진의 재원을 마련하는 모델이었다면,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지금 그런 모델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 관해 검토해봐야 한다”(139쪽)고 문제제기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주의와 결별하기 주저하는 진보정당은 하승수가 보기에 허망한 꿈을 쫓는 것일 뿐이다.
80-90% 싱크율, 그래도 비판한다면
전형적인 주례사 서평이다. 그러나 요즘말로 싱크율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더 한 찬사도 늘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지만, 너무 오글거리면 부작용이 날 듯하여 단념한다. 오히려 양념 한 스푼으로 아쉬움과 비판을 가미한다. 하승수와 서형원의 책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권력인 시장과 자본 자체에 대해서 말을 아끼고 있어 아쉽다. 탈성장의 근본적인 전환에서 시장과 자본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별달리 관심이 두지 않는다. 전략적인 모호함일 수 있겠지만, 아마도 당내외부에서 가장 끈질기게 괴롭힐 적수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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