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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던 정형근, 돌연 "직불금 명단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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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버티던 정형근, 돌연 "직불금 명단 내겠다"

파행에도 꿈쩍 않더니…국정조사 급물살 탈지 주목

쌀 직불금 국정조사가 파행으로 치닫기 직전 건강보험공단 정형근 이사장이 비로소 고집을 꺾었다. 정 이사장은 26일 국회에 출석해 직불금 수령자 직업 및 소득이 분류된 105만 명의 명단을 감사원에 넘긴 후 감사원이 국회로 넘기는 방식으로 명단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한나라당 정해걸 의원이 "국회를 믿고 명단을 제출해달라"고 애걸하다시피하자 "감사원의 요청으로 사업장, 직업, 소득 등을 분류한 원자료를 감사원에 돌려주겠다"고 응락했다.

그는 "법의 해석상 주기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여야가 다 공동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말을 누차 했고 국민의 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태도 변화의 이유를 설명했다.

정 이사장이 제공할 명단은 지난해 감사원의 직불금 실태 감사 과정에서 건보공단이 받은 105만명의 직불금 수령자 명단. 건보공단은 이 명단을 기초로 사업장, 직업, 소득 등을 분류해 다시 감사원에 넘겨준 바 있다. 감사원은 곧 이 자료를 파기해 현재는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정 이사장은 "원 자료가 감사원 자료인 만큼 감사원에 자료를 돌려주는 것은 (개인정보보호 등과 관련해)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로 국정조사가 급물살을 타게 될지 주목된다. 민주당 최규성 의원은 이날 "건보공단 측에서 105만명 명단 분석에 6시간, 28만명 분석에는 2시간 밖에 안걸린다고 한 바 있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 퇴장해도 고집 안 꺾던 그가…

하지만 이날 정형근 이사장이 '돌변'한 것은 개운치 않은 면이 있다. 이날 오전 시작된 국조특위는 정형근 이사장이 '자료 제출 거부'를 확고히 밝히면서 10분만에 정회를 선언하기도 했다. 오후에 이어진 회의에서는 정 이사장의 변함없는 태도에 국조특위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전원 퇴장했지만 눈도 꿈뻑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성명을 내고 "정 이사장은 회의 시작 전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유인물을 배포해 국정감사를 파행으로 이끌고 피멍든 농심에 대못질을 했다"고 비난했다. 김종률 의원은 "정형근 이사장이 언제부터 사생활 보호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느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정 이사장은 "쌀 직불금 관련해서는 관련 부처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개인정보가 포함된 자료를 보호하고 함부로 외부에 안 내도록 (국회가) 야단치는 것이 오히려 옳지 않느냐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정 이사장은 또한 '쌀 직불금 자료 제출 관련 검토 의견'이라는 책자까지 준비해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과 '국정조사법'에 명시된 개인 사생활 보호 조항을 내세워 위원들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여야의원 '당황', '불만'

여야를 막론하고 정 이사장의 태도 변화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한나라당 강석호 의원은 "이게 바로 웃기는 이야기"라며 "야당이 나가버렸는데 애초부터 주지 여기 와서 선심 쓰듯 왜 이제야 주느냐"고 질책했다. 그는 "과거에 감사원에게 자료를 받아 소팅(자료 분류)하고 다 해놓고 (이제와서) 못준다고 해서 국조특위가 지연 됐는데 이에 대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은 "태산명동서일필(태산이 요동했으나 쥐 한 마리 잡는다)이라고 진작부터 이렇게 했으면 국회 국정조사가 원만히 진행됐을 것"이라며 "정 이사장의 판단 착오와 고집과 오만한 태도로 지금까지 국정조사가 이뤄지지 못한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달 감사원의 감사자료 협조 요청을 거부한 것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워 완강히 거부했는데 입장이 변경된 게 의아하다"며 "정 이사장이 입장을 바꾸는 그 사이에 공단 설치 목적이 변경됐나. 국회 자료제공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법률 적 근거 개정됐냐. 그사이에 헌법이 개정됐나"고 꼬집었다.

정 이사장은 "(개인정보보호 등)소신에는 변함 없다"고 말했다가 김 의원에게 "자연인 정형근의 소신이냐,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정형근의 소신이냐"고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정 이사장 개인의 고집이 아니었냐는 것. 이에 정 이사장은 "소신이라는 말은 잘못됐다. 건보공단의 입장이다"라고 답변을 정정했다.

불과 1시간 전까지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던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정형근 이사장은 명단 제출 지연으로 국정조사가 차질을 빚은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 원내대변인은 또 "민주당의 퇴장에도 불구하고 국정조사를 일방적으로 강행한 한나라당 송광호 위원장에게 유감"이라고 밝혔다.

안기부 국내담당 차장에 3선 의원의 경력을 가진 정 이사장이 여야 의원들을 쥐락펴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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