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회는 공익제보가 넘쳐나는 사회이기보다는 공익제보가 더는 필요 없는 사회이다.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입법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겪는 고통이 지나치게 가혹하고, 조직 역시 불명예와 갈등의 격화와 같은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공익제보가 없는 세상을 원한다 하더라도, 또한 공익제보자들이 겪는 고통이 여전히 혹독하다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공익제보가 날로 확대된다는 사실은 그것이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의미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사이 급격히 하락한 국가 부패지수는 고발의 필요가 있는 부정부패의 사안이 더욱 많아지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며, 그 현실을 참을 수 없는 각성된 개인의 분노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오랫동안 존재해온 부조리들이 봇물처럼 고발되고 있는데, 그것들을 개선하여야겠다는 각성 역시 더욱 발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로 4회 차를 맞이하고 있는 참여연대의 '의인상'(시상식은 12월 19일에 열린다)은 내부고발과 양심선언을 통해 부패나 권력남용을 공개한 공익제보자들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는데, 수상자들의 해당 사건들을 보면 그 해의 부정부패 문제의 사회적 초점을 너무나 잘 반영하고 있는듯하여 놀랍기도 하다. 초기 공익제보 사건들은 이문옥 감사관의 감사원 비리나 이지문 중위의 군대 내 부정선거에 관한 사건에서 보듯이 다분히 권력기관과 관련한, 그리고 정치적 성격의 문제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방법도 기자회견이나 제보와 같은 다소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그것이 당시에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시대에 있었고, 갈등의 쟁점이 민주주의를 확보하고 권력의 제 기능을 확보하는 문제에 천착하고 있음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흐름이 근래 들어 뚜렷한 변화를 보이는데 2011년 제2회 의인상에서 공익제보 디딤돌상을 수상한 영화 <도가니>와 2012년 개봉한 <부러진 화살>에서 보듯이 영화 같은 문화적 수단을 통하여 사실상의 내부고발을 하는 다양화되고 세련된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도가니>에서 볼 수 있듯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영역의 고유한 문제들이 과감히 고발되었다는 점이다. 조직은 월등한 위력과 수단으로 개인을 압도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무자비한 폭력성과 야만성을 포함하는 권력으로 극단화되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부고발은 그 야만의 어둠에 최초의 빛이 되어 구석진 그 곳을 비추고 비로소 어둠을 몰아내는 힘이 시작될 수 있게 하였다.
▲ 2013 참여연대 의인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권은희 전 수사과장 ⓒ연합뉴스 |
올해의 제보사건을 보면 이러한 추세는 더 강화되는 느낌을 주는데, 특수고등학교의 입시 비리, 어린이집 운영자의 보조금 횡령 등 교육현장의 문제, 그리고 남양유업 사건으로 이슈가 된 갑의 횡포 문제, 대기업 하청노동자 문제를 드러낸 삼성전자서비스 근로자 사건, 정부 산하기관의 부당하고 임의적인 업무추진비 사용, 대기업의 동반성장 자료조작 사건 등 매우 세부적이고 다양한 문제들이 대거 공익제보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제 우리 국민들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커져가고 구체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회의 민주성을 침해하는 문제에 대한 사건 역시 지속되는데, 제1회 의인상 수상자 김이태 씨에 의해 4대강 사업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던 사실상의 대운하 사업임이 폭로된 데 이어, 2013년 의인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권은희 전 수사과장은 지난 대선의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서 경찰청의 부당한 수사개입 압력을 폭로함으로써 아직 민주주의와 권력기관의 공정성 문제가 우리 사회의 핫이슈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올해의 중요한 또 하나의 사건은 일명 '스노든 사건'인데 미국 NSA(국가안보국)에서 근무했던 컴퓨터 기술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가 국가원수를 포함하여 전 세계 대부분 국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감시활동을 하여왔음을 폭로하였다. 감시는 언제나 억압과 통제를 위한 목적으로 악용되기 마련이며, 그의 폭로는 미국의 권력기관이 다른 나라의 개인까지 통제하고 억압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스노든의 폭로는 새로운 것이며, 글로벌한 영역에서 내부고발의 영역이 발생하고 있고 또 그것에 연대하고 지지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운 사건이다.
공익제보자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것은 그들의 희생을 대가로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함께, 그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어딘가 조직에 속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 모두가 건강할 수 없는 문제에 이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직은 개인에 가하는 억압의 형식을 통하여 그것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가치나 이익분배구조를 강요한다. 공익제보는 그러한 억압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에 개인의 정신적 가치지향과 자유의 제한에 대한 저항이며 정신적·사회적 건강요소를 쟁점으로 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정신적·사회적 예속과 굴종을 강요하는 조직문화가 군림하는 조건에서 개인의 정신적·사회적 건강은 온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조직이 집단의 힘을 동원하여 가하는 가해의 폭력성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상호 의존적인 존재이며 이것은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다. 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상호도움, 정서적 유대감, 정보의 공유를 통하여 유지되는 인간의 일상이 따돌림과 같은 의도적인 방법으로 일시에 제거되고, 적개심과 가해행위가 수시로 위협하는 조건에서 자신을 지켜내기란 지극히 어려워진다. 이런 가해수단은 인간의 생존조건을 지극히 피폐하게 하고 쉽게 죽음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가혹한 공격을 인도적 차원에서 누군가 나서서 제지하고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의인상은 이렇게 기성의 불합리하지만 현실의 권력으로 존재하는, 견고한 가치와 제도에 균열을 일으킨 나약하지만 영웅적인 개인에 대한 지지이다. 또한 그로서 새롭게 탄생하려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가진, 그리고 그 안의 건강을 염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몸짓이기도 하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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