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업이나 사무직 노동자도 예외는 아니다. 컴퓨터 작업을 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은 어깨, 목, 손목이 쑤시는 경견완장애 등에 시달린다. 종일 서서 일하는 서비스업 노동자들, 학교 급식실에서 수많은 부식재료를 썰고, 다듬고, 씻고를 반복하고 무거운 식재료와 대형 조리기를 다루는 조리사 노동자, 수하물을 들고 나르는 택배 노동자, 매일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 노동자, 환자를 들고 나르는 병원 노동자 등. 한국의 노동자들은 온몸이 쑤시고 아파 밤잠을 못 자는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되어 있다. 장시간 노동,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노동자들의 뼈마디가 그야말로 으스러지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사망 재해 등 사고성 재해에서 근골격계 질환이나 직무 스트레스, 정신질환 등으로 산업재해의 주요 지표가 변화한 지 오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직업병인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신청과 보상에 대한 접근성이 지나치게 낮다. 미국의 산업재해 중 근골격계 질환은 60만 명으로 약 34%를 차지한다. 발병률은 1000명당 3.7명이다. 영국은 1000명당 약 7.6명꼴이다. 그러나 한국은 전체 직업병 발생 노동자 중 65%에 해당하지만 산재보상은 약 6000명 내외로, 1000명당 0.6명이다. 미국의 60분의 1, 영국의 120분의 1이다. 한국의 노동 강도, 노동시간을 고려해본다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통계들이다. 2006년 원진 노동환경연구소에서 약 110개 사업장 조사한 보고에 따르면, 근골격계 질환의 평균 발생률은 1000명당 28.1명으로 미국의 7.6배에 달한다. 그해 산재보상 통계 대비 72배가 발생했다. 죽도록 일하다가 골병이 든 노동자를 아무런 보상 없이 내동댕이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한국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사회적으로 제기된 것은 1995년~1997년의 한국통신 전화 교환원의 경견완장애의 집단 발생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 이후 제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사회문제화되었고, 2003년 7월에는 근골격계 예방 관련 규정이 세계 최초로 도입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산재로 인정된 것은 1960년대로 산재보상은 수십 년 뒤졌지만, 예방 관련 규정 도입은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2013년 근골격계 산재인정은 계속 뒷걸음치고 있고, 근골격계 예방 법규는 현장에서 사문화되고 있다.
중소 규모의 전자회사에서 22년 6개월 동안 나사를 조이고 푸는 작업을 하던 여성 노동자가 있었다. 손목부위에 건초염이 발생하여 산재신청을 했다. 주치의도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 결과도 반복적 작업과 관련이 깊다고 의견을 냈지만 "상병(傷病)에 객관성이 없다"는 짤막한 이유로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자동차 공장에서 용접 그라인딩 작업을 14년 동안 한 남성 노동자가 있었다. 무릎관절증과 연골판 파열 진단을 받고 산재 신청을 했다. 그러나 산재불승인 판정을 받고 결국 소송에 들어가 진료기록 감정 촉탁을 거쳐 법원에 가서야 산재승인을 받았다. 근골격계 산재 승인율은 45%대로 산재 불승인 남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불승인 남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이다.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이 산재승인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하는 작업이 신체에 얼마나 부담을 주는 작업인지, 노동시간이나 강도는 어떠한지,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가 증명되어야 한다. 이를 '업무 관련성'이라고 한다. 현재의 공단 업무처리 규정에 의하면 근골격계 산재신청을 하면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현장 조사를 하고, 공단의 자문의가 업무 관련성 평가를 한다. 조사한 자료에 근거하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산재승인 여부를 심의 판정한다.
수십 년 동안 반복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신청을 하면 "나이 들어서 발생한 퇴행성"이라며 불승인을 한다. 그동안 산재신청에 대한 현장 재해조사가 20%대를 밑돌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묻지 마 불승인'이 남발된 것이다. 혹여 재해조사를 실시하는 20% 안에 해당되는 행운이 찾아와도 신체부담 작업을 평가하는 계량적이고 객관적인 기준도 없고, 근로복지공단 자문의도 절대다수가 현장의 작업을 알지 못하는 임상의로 구성되어 현장 재해조사와는 관계없이 업무 관련성 평가를 해왔다. 직업병 산재 여부를 심의하는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도 사전에 신청인의 자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산재신청 1건당 10분 내외의 심의를 해왔다.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 등을 심의할 때 노사 간의 자료를 사전에 제공하고, 1회당 3~4건을 심의하는 것과 너무도 대비되는 것이 산재신청 노동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이다. 또한 종전에는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업무 관련성 평가를 하고 판단하라는 것이 공단의 지침 정도로만 되어있어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 승인율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이러한 산재심사 승인 과정의 복합적인 문제에 가장 직접적인 폐해를 당하는 것은 중소 영세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노동조합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노동자들은 현장 촬영 사진이나 동영상을 제출하거나, 법률대리인을 선임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소 영세 노동자는 산재신청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조력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목수, 철근 등 건설일용노동자는 건설현장에서 중량물 운반과 반복적 작업을 수십 년 하지만, 단기 고용이 반복되어 이전 현장의 직업 경력을 증명하는 것이 어려워 번번이 불승인을 받는다. 이는 비정규 단기 고용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실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삼성의 백혈병, 직업성 암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산재 노동자들이 부당하고, 황당한 산재 심사를 받아왔는지 폭로되었다. 그리고 산재 노동자에게 자신의 질병과 업무 관련성을 증명하도록 하는 현행의 산재보상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거세졌다. 그때마다 노동부의 답변은 공단의 재해조사와 산재심사 승인 제도를 개선해서 노동자의 입증책임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업무상 질병의 65%를 차지하는 근골격계 질환의 '현장 재해조사 전면 실시와 객관적 기준 도입'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13년 국회예산정책처의 '건강보험 사업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77% 이상이 하나 이상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고, 평균 3.6개의 민간보험을 갖고 있어 가구당 보험료로 월 20만 원을 지출하고 있다. 이에 민간 의료보험 시장은 30조 원이 넘는다. 일하다 걸린 골병이 산재보상의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건강보험이나 민간 의료보험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산재통계는 산재보상을 받은 통계에 불과하다. 결국 근골격계 산재승인의 높은 문턱은 실질적인 산재발생을 반영하지 못하고, 미국이나 영국의 60분의 1, 120분의 1밖에 안 되는 발생률로 왜곡된다. 적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니, 근골격계 예방사업 법제도도 현장에서는 사문화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장시간 노동, 물량과 속도에만 혈안이 된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한국의 노동자들이 골병이 들어 죽어 나가고 있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9만 명인 현실에서 '퇴행성'이라는 이름하에 조사도 없이, 객관적 기준도 없이 무차별 산재불승인 낙인이 찍히는 이 절망과 고통과 한숨은 도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무엇보다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심사 승인에 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안으로의 전면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나 힘들면 쉬고, 아프면 쉬는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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