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된 입시 경쟁,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학교 폭력, 공교육을 대체하다시피 팽창해버린 사교육 등. 가르침과 배움은 사라지고 오로지 '등수 매기기'에만 골몰하는 교실 풍경은 이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식상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다들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누구나 알고 있는 현실 진단을 기계적으로 읊조리는 정책 당국자, 학자들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풍경, 그 맞은편에는 학교 폭력, 입시 부담, 혹은 어른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그밖의 어떤 이유로 자살을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떠나고 싶을 만큼 심각한 문제 앞에서, 어른들은 왜 '뻔한 이야기'만 반복하는 걸까요. 어쩌면 이런 간극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절망적인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진짜 필요한 미덕은 '솔직함'일 수 있겠다고 봅니다. 짧은 자기 경험으로 섣부르게 단정짓기보다 교육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주 하찮은 수준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시작하는 태도 말입니다. 또 근대적인 학교 모델이 이젠 어떤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 그리고 그 한계와 모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 역시 솔직히 인정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에 주목한 건 그 때문입니다. 지난 1999년 창간된 이 잡지의 시선은 '학교 너머'를 향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바뀌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만큼 우리는 학교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민들레>의 목소리가 교육에 관한 '뻔한 이야기'들에 갇혀 드러나지 않았던 '학교의 빈 곳'을 살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
1. 역사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일 년 내내 역사교육을 둘러싸고 사회가 시끄럽다. 봄과 여름에는 주로 학생들의 역사지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거셌다. 언론에서는 학생들이 3·1 운동을 "삼점일 운동"이라고 읽었다느니, 6·25전쟁이 일어난 해를 모른다 하면서 개탄했다. 그 와중에 고등학생의 69%가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알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잘못된 역사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북한의 침공'을 '북침'이라 이해한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 교학사 교과서. ⓒ교학사 |
논란이 있을 때마다 언론은 학교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11년에 이어 2013년 올해에도 '역사 교육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고등학교 3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반드시 한국사를 치러야 한다. 올해부터는 초중등 교사를 뽑는 교원임용고시에 응시하려면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에 합격해야 한다. 고등고시나 각종 공무원 임용시험에서도 '한국사'는 필수과목이다. 그러나 근현대사 인식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다. 정치권까지 나서서 어느 한 편을 응원함으로써 문제의 해결은커녕 편 가르기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런 논란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교육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것이다' 싶은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때그때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대증요법만이 눈에 띌 뿐이다. 정작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다. 그러기에 역사교육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그에 따른 대책도 이어지다가, 사회의 관심이 줄어들면 다시 원위치 되는 현상이 반복될 뿐이다.
2.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역사교육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역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왜 역사가 중요한지는 별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물론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이 중 어느 편에 비중을 두는가는 역사와 역사교육관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역사인식도 달라진다. 그렇지만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득력 있는 대답을 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자주 언급되는 역사교육의 몇 가지 목적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로, 교양교육의 관점에서 역사교육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역사를 아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서 '역사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해석하고 평가하는 등 역사탐구 전반을 포함한다. 그렇지만 이런 관점의 역사교육은 지식교육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교과서와 이를 기억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역사교육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KBS <도전 골든벨>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있는지가 역사를 잘 아는지,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6·25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다고 대답하는 학생이 많으면 역사교육이 잘된 것이고, 1951년에 일어났다고 답하는 학생이 많아지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상도 이를 반영한다.
역사교육, 특히 한국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한국 역사를 모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개한다.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한국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더해서 "역사를 알아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그러나 역사교육만 이런 이유 때문에 필요한 것일까? 같은 논리로 하면, 한국지리도 중요하며 한국의 사회관습이나 제도, 기후, 음식도 알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둘째로, 역사교육은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길러준다는 데 주목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한국사를 배우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이나 사회가 만든 문화유산을 후손에게 전달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앞서 살아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와 문화를 이어받는다. 이처럼 이어진 문화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체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관은 자민족 중심주의나 우월주의를 가져오고, 이는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보수 우익 학자들은 한국의 역사연구와 역사교육이 지나치게 민족중심적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이들은 한국사 교과서의 일제 시대에 대한 서술이 오직 '수탈과 저항'의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지적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일제 치하라고 해서 사람들이 오직 수탈과 그에 맞선 저항만을 생각하지는 않았고, 또 그것만이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요인도 아니었다. 근대가 가져온 문화적 변화나 일상생활 속의 고민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생활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들이 민족주의 대신 들고 나온 것은 국가주의였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인권이 무너지는 것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평가에는 이러한 국가주의 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이들이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자민족 중심주의나 우월주의 때문이 아니라,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껴안아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하는데 다름 아니다.
셋째로, 역사를 알아야 하는 목적으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은 '교훈'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을 하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다진다. 전근대 전통사회에서 역사교육의 목적은 여기에 있으며, 현대에도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인간이 갖는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역사는 교훈적이며, 역사교육은 가치교육의 성격을 띤다. 그렇지만 교훈을 추구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주된 가치는 아니다. 우리는 역사뿐 아니라 학교와 사회교육 전반에서 교훈을 얻는다. 더구나 인간이 가져야 할 공동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윤리와 도덕을 다루는 과목을 별도로 두고 있다. 교훈을 강조하다 보면 역사적 사실을 획일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고구려 고국천왕 당시 을파소의 제안으로 시행된 진대법은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이며, 신라의 효녀지은 설화에서는 '효'만을 찾게 된다. 이들 이야기에 나타난 당시 사회의 모습이나 민중의 생활상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연합뉴스 |
3. 역사교육의 가치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다루지만, 역사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인간의 행위이다. 과학적 현상에서는 원인이 같으면 언제나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원인과 결과는 과학이 추구하는 법칙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목적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즉, 역사에서 다루는 사실은 절대적이고 필연적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역사 공부에서 그 선택이 타당한지 평가하고, 이를 지지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진대법을 공부하면서 과연 그 정책이 당시 사람들과 사회에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 평가하고, 자신이 고국천왕 당시의 을파소라면, 빈민 구제를 위해 어떤 정책을 취했을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역사이다.
그런데 왜 이런 구름 잡는 것과 같은 추상적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지난날 역사가 사람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구분되지만, 같은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사회의 변화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또한 우리의 선택과 삶은 사회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의식은 우리가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하려는 의지를 길러준다. 그것이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우리가 변화하는 것이고,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길이다. 역사교육은 민주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을 기르며, 역사적 사실은 이런 교육을 위한 소재를 제공한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교육은 지식 교육에서 사고를 하게 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의 사고를 유도하는 교육은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생각하는 교육이다. 또한 사료나 기존의 역사책을 비판적으로 읽고, 자신의 관점과 해석으로 역사적 사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읽고, 자기 나름의 역사인식을 해야 한다. 6·25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다는 사실보다는, 전쟁이 당시 사회와 사람들, 그리고 이후 이 땅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하고 평가하는 것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역사교육이다. 역사는 인간을 변화시키며, 인간은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것이 역사교육의 가치이다.
* 위의 글은 <민들레> 89호 "교장 그리고 리더십"에 실린 글입니다. (☞ <민들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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