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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을 향해 가는 '용북(用北)'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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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을 향해 가는 '용북(用北)' 열차

[시민정치시평] 종북만큼 위험한 한국 우익의 북한 활용법

지금 박근혜 정권은 그들의 고질적인 '용북(用北)주의' 때문에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용북(用北)'이란, 말 그대로 어떤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용북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용북 세력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반북의 화신임을 자처하나 군대는 가지 않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한국의 우익 지배 집단은 최근까지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천안함 사건, 4대강 사업, 한진중공업 사태, 밀양 송전탑 건설 등과 관련한 정부 정책과 입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데 북한을 활용했다.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용북 우파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북한의 오랜 불만을 동원했다. 최근에는 간첩 체포라는 본연의 임무는 젖혀둔 채,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트위터에서 야당 후보를 종북으로 몰았던 국정원의 불법 댓글 공작에도 북한이라는 부적을 발부하고 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의 선거 개입 논란에도 용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용북주의는 마침내 국정원장의 남북정상회의록 공개, 채동욱 검찰 총장 찍어내기, 윤석열 국정원 수사팀장 해임 등 박근혜 정부의 폭주 기관차가 돼 내달리고 있다. 그런데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탓일까, 오히려 기차는 점점 더 심각한 정당성 위기라는 수렁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검찰의 국정원 수사로 스텝이 꼬이긴 했지만, '종북세력 척결'은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해체'에 버금가는 박근혜 정부 핵심 국정 과제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오래전부터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을 강조했고, 야당과 반대세력을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집단이라고 비판해왔다는 점에서 그런 추측은 가능하다. 또한, 최근 정치권, 우익 언론, 보수 종교계, 심지어 일베와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종북 세력' 담론이 매우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도 그러한 추측의 토대가 된다.

만일 용북 우파의 종북 담론이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에 대한 그들의 신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선거용 혹은 정치적 면피용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강한 역사적 책무성의 발로로 봐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들은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법치주의 그리고 한미동맹'으로 규정한다. 이는 그 자체로는 훌륭한 정의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 이러한 추상적 헌법적 원리를 거부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추상성의 내용을 채우는 데서 시작된다.

용북 우파는 흔히 보편적 복지, 대학서열 해체, 주택 공영제, 기간산업 국공유화, 실업자를 포함한 노동자에 대한 차별 금지 등의 주장을 대한민국의 뿌리를 흔드는 활동으로 간주한다.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북한체제를 따르는 요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이하게도 이러한 정책적 요구들이 어째서 자유민주주의 시장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되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은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이보다 더한 공공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발전한 시장경제 국가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정말 모르거나, 혹은 정반대로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면 무식하고 후자면 교활하다. 반면, 진보개혁 세력도 대한민국 정체성 문제를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한미동맹의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어쨌든 용북 우파의 이처럼 내용 없는 '자유민주주의' '시장체제'의 '대한민국 정체성'은 그 개념들에 비판적 문제의식을 지닌 많은 사람들을 종북이라고 겁박하는 차원에서만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한국 우익 지배집단의 용북 성향은 자신들에 대한 반대파 대다수가 한때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됐고 지금도 그러한 사고방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깊은 불신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 아무리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해도, 현실적 실행의 측면에서 그것은 민주주의 운동을 벗어난 적이 결코 없다.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이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운동이란 말인가. 머릿속으로는 존재했으나 현실에서는 실체로 나타난 적이 없는 사상이나 이념을 두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북 운운하는 것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용북은 종북만큼이나 위험하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그것은 국정원과 같은 국가기관이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서도 오히려 큰소리칠 수 있게 만들 정도로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그리고 그것은 국정원 사건에 대한 검찰의 진실 규명 작업을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방해할 정도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린다. 또한 용북은 언론에 정부 비판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을 검열하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검열하게 할 정도로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 나아가,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 활동을 광범위하게 위축시킬 정도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이 모든 경고에도 눈과 귀를 닫고 내달리는 용북 기관차를 기다려줄 종착역은 정당성 위기라는 깊은 수렁뿐이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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