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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의 정석중목사, 우포늪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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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창녕의 정석중목사, 우포늪과 사람들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우리가 가는 도중에 정석중목사의 전화가 빗발쳤다. 언제 도착 하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진홍의 귀농촌에 들리랴, '콩사랑'의 김성환사장 공장엘 들리랴 점심도 챙겨 먹으랴 이래저래 조금씩 늦어져 1시 예정을 훨씬 넘길 참이다. 아마도 우리 일행을 우포늪에다 안내하고 주위에 우리를 소개하는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 놓은 모양이다.

마중나온 정목사와 창령 공무원인 이정환씨는 우리가 2차 답사를 갔던 평창의 '감자꽃 스튜디오'에서 만난 일행이다. 그 날 '700고지 펜션'에 올라가 저녁참에 서로 말을 튼 다음 우리 일행이 '마을 답사' 운운하고 우리를 소개하자 우리를 꼭 자기네 마을로 초청하겠다고 나선 이가 바로 정석중목사다. 자기들도 마을에 폐교가 하나 생겨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을 세우기 위해 견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 일행에는 정목사와 창녕군의 공무원, 폐교된 학교가 있는 마을의 이장, 추진위원장 이렇게 4명이었다. 그 4명 중에 정목사가 유일하게 그 후에 우리들과 수시로 교신하면서 우리를 자기네 마을에 초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 예정보다 늦은 오후, 창녕의 교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에 앞서 서로 인사하고 소개하느라 바쁘다. 둘러앉아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이곳 사람들의 이 고장, 이 마을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오른쪽이 창녕군청공무원 이정환

겨우 3시 쯤 되어서야 정석중목사의 교회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그 날은 보름날에다 일요일이라 마을도 바쁘고 교회도 바쁜 날이다. 교회 안팎이 시끌벅적한데 그는 우리 일행을 그의 교회 2층으로 안내했다.
2층에는 정목사와 같이 환경운동을 하는 시민활동가 몇 분, 며칠 전 내가 연락해서 막 도착한 대구의 문예활동가인 정지창교수(영남대), 김창우교수(경북대)가 합석했고, 동네 어르신들은 저 위의 마을회관에 '마을회의'를 한다고 모여 계시다가(정석중목사가 우리 일행을 소개하려고) 급히 연락을 받고 이리로 몇 분이 오셔서 합석했다.
모여든 사람들이 너무 여러 갈래라 서로들 인사하기에 정신이 없다.
인사 후에 겨우 좌정하여 마을과 창녕에 대해 얘기를 좀 나누었다.
이 마을은 30여 호가 겨우 될까 말까한 마을이다. 교회가 있는 아랫마을이 10여 호 윗마을이 20여 호가 되 마을 회관 등 주민 편의 시설 들은 다 윗마을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랫마을에다 마을회관 겸 찜질방을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프로젝트로 정부 지원을 받아 짓고 있다고 한다.

▲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회의를 하러 마을회관에 모이셨다가 일행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와주셨다. 가운데 세 어르신이 이 아랫마을의 삼총사라고 한다. 정목사는 이 동네 어르신들이 보기 드물게 동네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응원해주신다고 자랑이다. 왼쪽이 주민교회 목사 정석중.

동네엔 아무래도 젊은 활동가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정목사가 하는 모양이다. 그는 이 마을에서 주민들 사이에 호흡을 맞추는 데는 자신이 좀 있는데 외부의 문화 예술가 같은 전문가들이나 귀농인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한 숨을 쉬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창녕의 공무원인 이정환의 제안으로 '감자꽃 스튜디오'를 방문 중에 우리를 만난 것이다.
정 목사와 이정환씨는 우리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프레시안에 연재되는 글도 빠짐없이 읽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큰일이다. 상당히 부담이 간다.
동네 어르신들은 외지에서 이 마을을 방문해 준 것 자체를 기뻐했다. 사람이 귀한 것이다.
동네 한 가운데 꽤 큰 저수지가 있었다. 마을이 야트막한 야산이 둘러치고 있어 아늑하고 포실해 보였다. 여기에 무슨 군 사령부가 들어오려고 한 것을 주민들의 힘으로 막은 적이 있다고 어느 어르신이 자랑삼아 얘기를 해 준다. 우리 일행이 저수지 뚝 위로 올라서 전방을 바라보니 저 건너편에 화왕산이 보였다. 바로 작년 보름에 화왕산 갈대 숲 태우기를 하다 여러 사람이 다친 바로 그 화왕산이고 딱 일 년 만에 우리가 여기서 그 산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산으로 이루어진 대광 농장 안에는 비밀기지처럼 가운데에 저수지 옆 작은 별장이 한 채 있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주변을 보니 온통 단감나무 산들로 둘러싸여있다. 농장의 규모가 굉장히 크고 아름답다.

공무원인 이정환씨의 재촉으로 우리들은 우포늪 견학을 나섰다. 우포늪으로 가기 전 정목사가 잡아 놓은 숙소를 먼저 올라갔다. 급한 소로를 따라 위태위태하게 오르내리길 여러번 하여 도착한 곳은 대규모 단감 농장인 '대광문화농장'의 별채였다. 작은 저수지가 몇 개가 앞에 펼쳐져 있고 뒤로는 단감나무들이 17만평의 야산에 펼쳐져 있는데 그야말로 별유천지였다.
여기 대광농장은 김영우사장과 그의 부인인 지정숙씨가 귀촌을 결심하고 2,3년 전에 들어 왔다고 하는데 지정숙씨가 정목사교회의 신도라 우리를 모시(?)기로 했다고 한다. 오늘 저녁은 여기 별장에서 우리를 환영하기 위하여 창녕의 여러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벌일 참이라고 한다.

▲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차를 타고 우포늪을 둘러보았다. 온갖 철새들이 날아와 물 위에서 끼리끼리 무리지어 노닐고 있다. 늪 주변에는 사람들의 작은 농가과 논밭들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자연의 풍경을 이룬다

일단 여기를 숙소로 정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우포늪을 봐야 했으므로 급히 차를 몰아 우포늪으로 향했다. 우포늪은 생각했던 것 보다 넓었다. 우포늪 주위에 조성된 트레킹엔 사람들이 많았다.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뚝 위에서 탐조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띠었다.
새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어떤 늪에는 온갖 철새 떼들이 다 모여 있었다. 철새들의 천국이다. 마치 철새들이 마을공화국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이 새들의 천국도 이 정권이 벌이는 4대강 사업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 우포늪생태학습관으로 이동하니 노용호 관장이 직접 나와서 일행을 맞아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우포늪 동네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우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가 일행을 데리고 학습관 전체를 한 바퀴 돌며 율동까지 섞어 열심히 설명을 해주어 모두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열심히 보고 들었다.

우리들은 정목사가 재촉하는 대로 '우포늪생태학습관'으로 들어갔다. 꽤 큰 건물에 생태학습관이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 노용호관장은 우리를 꽤 오랫동안 기다린 모양이다.
그는 우리 일행을 향하여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시작했다. 청산 유수였다. 가끔가다 물과 자연의 생태에 대해 몸을 흔들어가며 생생하게 설명해 우리 일행들을 웃기기도 했다. 너무 열심히 설명해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우포늪 동네에서 나고 자라 우포늪이 자기의 일부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의 전공이 관광경영학이라고 하니 우포늪을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 우포생태학습관에 들어가기 전에 창녕 출신 천규석선생이 와서 우리와 같이 둘러 봤다. 천선생은 녹생평론 등 저술활동 만이 아니고 실지로 창녕에서 농사를 계속하면서 우리의 삶이 작은 농사(소농)에 의존하지 않으면 모든 살림살이와 자연생태계가 끝장 날 것이라고 계속 주장을 해 오신 분이다.
천선생은 여기 우포늪이 관광지화 돼 있는 것조차 못마땅해 한다. 그러면서 환경운동가들이 '람사르대회'를 우포늪을 이용해먹었다고 못마땅해 한다.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다.
나는 '사해동포주의자'라 그런지 천 선생이 주장하면 그것도 맞는 것 같고 다른 환경운동가들이 주장하면 그것도 맞는 것 같다. 도시 나라는 사람은 주체성(?)이 좀 부족한가보다.
천선생은 서울에서 내가 전화를 해서 창녕에서 만나자고 하니까 요즘의 내 처지(한국문화예술위원장으로 다시 복귀한 사태)를 생각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어째든 정목사가 초대한 우리 일행에다 우포늪에서 만난 사람들, 정목사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 또 초대된 내가 초대한 천 선생을 비롯한 대구의 정교수, 김교수 또 '대광농장'의 사장부부, 등 등. 이쯤 되면 내가 여러 갈래의 사람들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했다.

▲ 일행도 많고 시간도 별로 없어서 조금은 정신없이 우포늪 탐방을 마쳤다. 우포늪생태관은 그 구성과 설비 등이 아주 재미있게 잘 만들어져 있어 창녕 사람들의 우포늪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우포늪생태관을 나오며 비로소 일행이 다 모여서 그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왼쪽부터 정석중, 문정호, 천규석, 노용호, 필자, 정지창, 김창우, 이정환, 박명학

우포늪에서의 일정을 경황없이 끝내고 우리들은 다 같이 다시 저녁 만찬이 기다리는 '대광문화농장'으로 향했다.
다시 비탈길을 오르고 내리고 하여 그 별장으로 들어갔다. 주로 젊은 축들이 돼지고기 바비큐를 준비하고 사장님 부부가 미리 장을 보아 온 반찬과 야채들이 착 착 준비 되어 저녁만찬이 시작되었다.

▲ 여러 사람이 모여앉아 즐거운 저녁만찬이 시작되었다. 대광농장 사장님 내외의 배려로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어서 밤 늦도록 왁자지껄한 자리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김창우 교수, 천규석 선생, 필자
처음부터 우리를 마중 나온 늪해설사이며 사진가인 노기돌씨와 생태 학습관에서 만난 서울대 농업생명과학 연구원 선임연구원인 강미희박사, 엘림영농법인 김일환사장님은 따로 도착하여 자리를 같이 했다.
내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내가 위원장으로 복귀한 것이 연일 신문 방송에 대서특필 된 것)이라고 정목사가 여기 저기 선전을 하는 바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모양이다.
하여튼 이렇게 여러 갈래의 사람들이 즐겁게 마신 일이 있었을까? 이번 창녕 답사는 마을에 대한 답사라기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얘기를 듣는 종합판 답사였다고나 할까.
단감농사에 대한 얘기도 듣고 토종닭 얘기도 듣고 창녕군 농업정책과 이정환한테는 앞으로의 마을 문화정책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그 사이 대구 사람들도 떠나고 천선생도 떠나고, 갈 사람들은 대충 가 버렸다.
여러 사람들과 술과 안주도 뒤 섞이는 바람에 내가 먼저 취해 버린 것 같다. 언제 잤는지 알 수도 없이 곯아 떨어졌다.

▲ 비가 흩뿌리는 고요한 아침, 대광 농장은 안개로 둘러싸여 고즈넉한 정취를 물씬 풍겼다. 나무들이 아스라이 끝없이 펼쳐진 농장 단지를 한 바퀴 돌며 상념에 잠겨본다.

아침에 일어나 술도 깰 겸 호수와 단감나무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단감나무 농장이 만칠천평 정도 된다고 하니 도저히 눈짐작으로는 끝 간 데를 알 수가 없었다. 작년에는 다 수확을 포기하고 4만평을 일반인들 체험프로그램으로 직접 따서 그냥 가져가게도 했다는 데 그래도 다 수확을 못하고 포기한 나무들이 많았다고 한다.

▲ 아침 식사 역시 농장의 김영우 사장 부부의 대접을 받았다. 부인 지정숙씨의 음식 솜씨가 대단히 훌륭하여 일행은 다시 한번 감탄이다. 부부는 농장을 맡게 된 우여곡절과 큰 농장을 운영하면서의 어려움 등을 조용히 풀어낸다. 그들은 무엇보다 사람이 그리워서 손님이 오면 반갑다고 한다.

아침을 또 뻑적지근하게 대접을 받았다. 물론 정목사는 다시 찾아와 우리와 아침을 같이 했다. 김영우사장 부부는 아침을 먹으면서 여기 농장에 오게 된 사연을 우리에게 들려줬다.

▲ 17만평 가까이 되는 농장 안에는 빈집이 27채 정도가 여기저기 있다고 한다. 층고가 높은 창고들도 더러 있어서, 사장 부부는 이곳을 일반인 체험장 등을 운영할까 생각중이라고 한다. 좋은 구상을 가진 기획자가 그들과 함께 일하면 무언가 만들어지기 좋은 곳이다. 그들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으나 잘 모르는 분야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라고 한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남양주에서 살다가 이곳을 어렵게 인수하고 이주했다고 한다. 김영우사장은 남양주에서는 다니던 큰 회사를 그만두고 가톨릭의 봉사활동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는 대구가 고향이라 여기가 그리 낯설지 않다고 하면서 금년부터는 작년의 단감농사를 만회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다만 단지가 너무 커 정부의 지원이 인색하다고 푸념한다.

▲ 이곳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단감으로 만든 곶감은 일반 곶감과는 또 다른 질감과 맛을 낸다. 달고 쫄깃한 맛이 아주 좋다.

아침 후에 그들은 우리를 '대광문화농장' 여기저기를 안내했다. 창고와 작업장, 인부들의 숙소가 그냥 빈 채로 방치 돼 있었다. 이것을 예술인들이 무언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사용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지방정부와 합작을 잘하면 가능 할 것도 같았다.
그들은 우리를 마지막으로 냉동 창고로 데려가 우리에게 단감 곶감(단감은 곶감을 만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한다)을 한 보따리씩 안겨 줬다.
만남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민폐와 관폐가 작심한 것 같다. 그래도 창녕의 모든 분들에게 '마을'에 대한 우리의 진정성이 좀 통한 것일까? 아무튼 이들 부부와 정목사, 그리고 이틀 동안 만난 창녕의 모든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 도착한 날 대광농장을 둘러보며 찍어둔 단체 사진. 교회 앞에 플랜카드까지 내걸고 환영을 해주어서 일행은 당황스럽고도 그 마음에 감사했다. 짧고도 긴 일정이었다. 왼쪽부터 정석중, 지정숙, 필자, 김창우, 정지창, 문정호, 김영실, 노기돌, 김송희, 김영우, 박명학, 이정환
(예술과마을네트워크 까페http://cafe.naver.com/ye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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