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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올스타전, 'LG 싹쓸이'만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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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올스타전, 'LG 싹쓸이'만 문제일까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스타가 없으니, '올스타'도 없다

16일 미국 뉴욕의 시티필드에서는 2013 메이저리그 올스타 게임이 열린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이 팬 투표를 통해 선발됐다.

선발 명단에는 올해 MVP 경쟁을 벌이는 미겔 카브레라와 크리스 데이비스를 비롯해 마이크 트라웃, 조이 보토, 트로이 툴로위츠키, 데이비드 라이트, 브라이스 하퍼 등 쟁쟁한 이름들이 가득하다. 하나같이 올스타 자격이 충분한, 최고의 실력과 명성을 겸비한 선수들이다. 아깝게 탈락한 선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뽑힌 선수들의 면면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투표 결과를 놓고 논란 같은 게 벌어질 여지는 거의 없다. 최후의 1인을 뽑는 팬투표에도 역대 최다 인원이 참가해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반면 사흘 뒤인 19일 포항야구장에서 열리는 2013 프로야구 올스타전 분위기는 대조적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열심히 홍보에 나서고는 있지만, 별들의 잔치에 걸맞은 뜨거운 열기나 팬들의 흥분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매년 나온 팬투표 '몰표' 논란은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작년까지 롯데의 이스턴리그 싹쓸이가 문제였다면, 올해는 웨스턴리그 라인업 전체가 LG 선수들로 채워지며 논란을 불렀다. 동군 대 서군이 아니라 동군 대 LG의 대결이라는 우스개도 나온다. 이스턴리그 지명타자로 선정된 롯데 김대우도 논란의 대상이다. 성적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간 선수가 1군 올스타로 뽑히는, 조금은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다. 선수 입장에서 영광이어야 할 올스타 발탁에 마음껏 좋아할 수가 없는, 씁쓸한 현실이다.

▲ 2013 프로야구 올스타전, 베스트 11에 LG가 싹쓸이했음을 알리는 KBO 홈페이지 화면.

이런 결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특정 구단 팬들의 '일그러진 팬심'을 비난한다. 진짜 올스타는 제쳐두고 자기가 응원하는 팀 선수에게만 몰표를 줬다는 비난이다. 과연 그럴까. 이는 마치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다고 당선자를 찍은 유권자들의 수준을 비난하는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올스타 투표에 남들보다 '열심히' 참여해서 자기가 원하는 선수에 투표하는 게 비난받을 일인가? 올스타 투표권은 1인당 1일 2표씩, 총 56표가 똑같이 주어졌다. LG팬이라고 투표권을 2장을 주고 다른 팀 팬에게는 1장씩만 준 게 아니다. 잘못을 돌리려면 투표에 참여한 팬이 아니라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만 진행된 올스타 투표 방식을 문제삼아야 한다. 다행히 KBO에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올스타 투표방식을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하니, 어떤 해결책을 찾아낼지 지켜볼 일이다.

사실 한국 올스타전의 권위와 인기가 미국보다 떨어지는 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메이저리그는 양대리그에서 30개 구단에 속한 800명 가까운 선수가 활약하는 무대다. 같은 리그에 속한 팀이 아니면 좀처럼 맞대결할 기회가 없다. 다른 구단 소속 스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다. 가령 뉴욕에 사는 팬이 LA 에인절스의 마이크 트라웃을 보려면 2~3년에 한번 찾아오는 뉴욕 경기 기회를 기다리거나, 비행기를 타고 미국내 정반대편에 있는 LA 홈구장까지 찾아가야 한다. 스타 한번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런 스타들이 한날 한시에 한 자리에 모여 경기를 치르니, 올스타전이 꿈의 제전으로 여겨지는 것도 당연하다.

반면 단일리그에 9개 구단으로 이뤄진 프로야구는 모든 팀이 연간 최소 9경기는 다른 구단의 홈 구장에서 치른다. 게다가 매일 TV에서 4경기 전 경기가 중계방송된다. 부산 팬도 두산 김현수나 SK 정근우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다. 애초에 다른 구단의 스타플레이어를 본다는 게 그리 희귀한 경험이 아니다.

여기에 올스타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도 차이가 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15:1의 경쟁률을 뚫고 팬들의 선택을 받아 올스타에 선정된 것을 야구 인생에서 매우 큰 영광으로 여긴다. 자부심과 자존심이 있는 만큼 경기에서도 최상의 플레이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번외경기답지 않게 경기 내용도 치열하다. 올스타전에서 승리한 리그에 월드시리즈 홈 어드밴티지를 주기 시작한 뒤로 더욱 불꽃튀는 승부가 펼쳐지는 중이다.

하지만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치열한 승부는 사라진지 오래다. 뿌리깊은 성적 지상주의 때문이다. 선수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몸을 사린다. 시즌 중이라면 질타를 받았을 무성의한 플레이가 '팬서비스'라는 명목으로 당연시된다. 몇해전 올스타전에서는 리그 최고 젊은 에이스간의 선발 맞대결이 큰 관심을 모았지만, 두 투수 다 실망스런 투구로 체면을 구겼다. 어떤 선수들은 아예 올스타에 뽑히고도 이런저런 부상을 핑계로 출전을 기피한다. 올스타전의 위상을 올스타들 스스로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특정 구단의 올스타 독식도 '일그러진 팬심'보다는 다른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한 야구팬은 이번 올스타 투표에 대해 묻자 "몇몇 포지션은 솔직히 누굴 뽑아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토로했다. "그동안 가능하면 응원팀에 관계없이 포지션별 '최고선수'를 뽑는다는 마음으로 투표를 했다. 실력은 물론이고 선수의 이미지나 사연 같은 것도 감안해서 소신껏 해왔다. 그런데 올해 같은 경우 눈에 확 띌 만한 성적이나 스타성을 보여준 선수가 딱히 보이지를 않았다. 후보자들이 전부 뛰어나서가 아니라 고만고만해서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결국엔 응원하는 팀 선수 위주로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스턴리그 1루수로 박병호, 유격수 강정호 외에는 모두 응원팀 선수를 뽑았다고 했다. "아마 다른 팬들도 상당수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실제 웨스턴리그와 이스턴리그의 투표 결과를 살펴보면 적잖은 차이가 보인다. 매년 올스타 라인업을 독식하던 롯데가 올해는 6명을 배출하는데 그쳤다. 그 외에는 오승환과 이승엽(삼성), 정근우와 최정(SK), 김현수(두산) 등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포지션 1위를 차지했다. 롯데팬이라고 무조건 롯데 선수에게만 투표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응원팀 선수 위주의 투표를 하지만, 확실한 슈퍼스타가 존재하는 포지션일 때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얘기다.

김대우가 뽑혀 논란이 된 지명타자 자리도 올해 같은 경우 '반드시 올스타에 보내야 한다' 싶은 후보는 보이지 않는게 사실이다. 매년 지명타자 부문 1위를 차지하던 홍성흔도 올해는 전현 소속팀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성적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만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채태인이나 김상현이 올스타에 갈만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히 팬 수가 많은 롯데팬들은 응원팀에서 낸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다.

반면 LG 단일팀이 된 웨스턴리그의 경우는 일단 5개 구단으로 이루어진 구성부터 문제였다. 상대적으로 비인기구단인 넥센, 한화와 신생팀인 NC가 포함되어 있다 보니 애초에 팬 수가 많은 LG쪽에 표가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올스타에 뽑힐 만큼 압도적인 성적이나 명성을 자랑하는 후보도 박병호, 강정호, 이호준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포수 부문에서 차일목, 허도환, 박노민, 김태군 중 현재윤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꼽을 만한 선수가 있을까? 안치홍-서건창-한상훈의 올해 성적이 손주인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어쩌면 LG 선수들에 쏟아진 몰표는, 팬들이 반드시 올스타에 보내고 싶을 만큼 압도적인 실력과 인기를 자랑하는 '스타'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현재 프로야구에는 리그를-지배하는-새로운-스타가-없다. 과거 이승엽처럼 연일 홈런신기록을 세우며 인기몰이를 하는 거포도, 박재홍과 이종범처럼 30홈런과 30도루를 동시에 해내는 호타준족도, 류현진처럼 압도적인 탈삼진 능력을 과시하는 에이스도 찾아보기 어렵다. 27세 이하 젊은 타자 중에 두자리수 홈런타자가 희귀하고, 젊은 투수 중에 1년 내내 꼬박꼬박 선발등판하며 5이닝 이상 버티는 투수가 드물다. 한두 경기, 일주일, 한달 동안 '반짝' 활약하는 선수는 있어도 리그 정상급 성적을 일년 내내, 더 나아가 3~4년 이상 꾸준하게 유지하는 선수는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한 지도자는 "1년 반짝 잘하는 선수는 스타라고 하면 안된다"고 했다. "좋은 활약을 3년 이상 계속 이어가야 비로소 스타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1년 잘한 선수가 이듬해에도, 다음해에도 계속 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에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견제가 들어오고, 선수 본인도 생각이 복잡해지고 부담이 커지면서 슬럼프에 빠지기 쉽다. 이런저런 유혹과 하던 대로 하려는 마음, 나태해지려는 경향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모두 극복해야 진정한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좀체 그런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리그를 이끌어가는 슈퍼스타의 부재. 응원팀 선수를 제쳐두고 올스타로 뽑을 만한, 올스타전에서 반드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스타가 없다는 것. 올스타 투표 논란이 드러낸 한국 프로야구의 뼈아픈 현실이다. 그나마 한 가닥 희망적인 부분은, NC의 간판스타 나성범이 60만표 이상 득표하며 이스턴리그 외야수 부문 5위를 차지했다는 점. 아쉽게 올스타 팬투표에는 탈락했지만, 신인에 신생팀 소속 선수로는 놀라운 선전이다. 그만큼 야구팬들도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목말라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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