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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

[20대, 녹색 정치를 말하다] 회색 프레임에서 녹색 프레임으로의 전환

지난해 3월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환경 문제가 더이상 일부 전문가들의 '듣기 좋은 꽃노래'가 아닌 시민들의 삶에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단지 방사능 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졌다는 것만이 아니다. 사고는 전력 낭비에는 길들여진 채, 원자력 발전이 일으킬 수 있는 '재앙'에는 무감각하고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식은 없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췄다. 이는 원자력 발전뿐 아니라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토건주의, 식품 안전 등 여타 환경 문제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사고는 절망과 동시에 희망을 지폈다. 이러한 자화상에 충격 받은 이들이 곳곳에서 교수 모임, 의사회, 법률가 모임 등 '반핵'을 내세운 모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탈핵, 탈성장, 탈토건'을 내세운 녹색당이 2월 창당을 준비 중이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준비위에 참여한 당원들의 이야기를 묶어 조만간 가제 '녹색당선언'이라는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그중 20대 청년들의 이야기 5편을 연재한다. <편집자>

프레임의 중요성

제가 녹색당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 제가 대학교 입학한 2007년 즈음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다가 유럽으로 1년 동안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 그때 녹색당의 청년부라 할 수 있는 'Young Greens'활동에 참가하곤 했습니다. Young Greens말고도 환경 관련된 동아리들이 몇 개 더 있었는데, 'People&Planet'이라는 영국에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생기발랄 발칙하면서도 조직적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던 동아리 활동도 했습니다. 이 동아리들은 많은 경우 함께 일하기도 했고, 복수 가입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저 같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또 따로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Young Greens, 그리고 그 모체가 되는 녹색당 전문의(독점은 아니지만) 활동 영역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녹색 사회로의 전환에는 여러 가지 활동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위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활동도 필요하고, 사람들이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돕는 워크샵, 기업들이 그 전환을 준수하고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활동도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발각되고 사람들의 건강과 생태계에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면 이 사태를 알리고 즉시 변화를 요구, 압박하는 시위활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아마 전통적으로 환경운동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들일 것입니다.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접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2007년 출간되었던 심리학 책 제목인데, 당시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고 기억합니다. 저도 사서 읽고는 프레임의 중요성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죠. 특히 장기이식 프로그램의 프레임 차이에 관한 대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장기이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장기이식 프로그램에 가입하게 하는 '가입하기' 정책과, 기본적으로 모두 장기이식 프로그램에 가입되어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만 수순을 밟고 탈퇴하게 하는 '탈퇴하기'정책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아시다시피 전자를 채택하고 있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후자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유럽 내에서만 비교해도 전자와 후자를 시행하는 국가들 간의 장기이식 서약비율이 60퍼센트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전자에 해당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장기이식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것도 아닙니다. 책에 따르면, 1993년 미국의 갤럽 설문조사에서는 85퍼센트가 장기이식에 동의했거든요. 사실 단순히… 귀찮잖아요!

귀찮음과 많은 생명의 살리는 일을 대조하면 귀찮음은 굉장히 하찮은 이유지만 현실에선 커다란 장애물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개인의 실천'은 정말로 숭고하고 본받아야 할 것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길은 아는 것(知)와 행하는 것(行)인 만큼, 그 간극을 좁혀주는 행하는 것(行)에 호의적인 프레임을 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열 수 없는 통유리 창을 만들어 놓고는 한여름에 절전하자고 아무리 소리쳐봐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실천의 여지는 굉장히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큰 프레임을 짜는 것이 '정책'이고 '정치'라고 할 때, '녹색 프레임'을 짜는 것, 그리고 이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개인의 실천들을 지원하고, 프레임과 미래의 요구, 현실 속의 간극 사이를 좁혀나가는 게 녹색당이 출현한 이유이고, 하나의 중요한 영역, 역할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금방 예를 든 건물을 에너지∙자원 효율적인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로 바꾸는 것과 같은 프레임의 변화죠.

영국에서 경험한 프레임의 변화

에딘버러 대학교 Young Greens 활동 중 기억에 남는 게 이러한 프레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일구어 냈던 경험들입니다. 한번은 Park Green Scheme이라는 '녹색 주차'안 입안의 의회에서 마지막 투표가 있었고, 녹색당 소속 의원님께서 지원 요청을 하셨습니다. 녹색 주차안에 대한 지지를 내일 회의 참석 의원들에게 표명해달라는 거였습니다. 정책 내용은 간단히 설명해서 시중심부 차량 보유자들을 대상으로 차량의 이산화배출량, 크기 등을 기준으로 5등급으로 나누고, 환경 부하가 큰 차량일수록 주차비를 더 부가하는 겁니다.

솔직히 유학생인 제가 편지를 보낸다고 크게 달라질까라고 생각하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이메일을 썼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녹색 주차안에 찬성하고 꼭 통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회의에서 꼭 이 안에 찬성표를 던져 주십시오.' 하는 요지의 메일이었습니다. 의원 여섯 명 정도에게 보냈던 것 같은데요. 우와. 모든 의원들한테 다 답장이 왔습니다! 아주 예의바르게,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또는 찬성표를 던졌고 통과되었음을 알려드리게 되어 기쁘다는 소식까지(물론 제 메일 하나 가지고 그렇게 변하신 건 아니겠지만요)…. 아예 기대도 안 하고 있다가 답장을 받고 바로 변화를 체험하게 되니, 참으로 감격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사실 영국에는 국회의원이나 지역의회 의원 등을 대상으로 항의∙성명편지를 쓰는 시민활동이 많습니다. 녹색 사회로의 전환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경제, 문화, 가치관, 사회 등등 그리고 그것들의 전제들도 하나하나 다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 프레임을 바꾸는 녹색 정치의 부상은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가 서 있는 한국도, '회색'프레임에서 '녹색'프레임으로의 전환을 주도할 '녹색당'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녹색당의 '가능성'과 '매력'에 더 푹 빠진 저는 기말 에세이를 한국에서의 녹색당 전망 등에 대해 쓰기도 하고, 휴학하고 한국에 있는 동안 초록당사람들 행사에도 참가했습니다. 2010년 봄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녹색당 회의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한국에서 녹색당 창당의 움직임이 시작되더니, 점점 더 그 가능성과 미래를 키워가는 것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신났는지 모릅니다. 지금이야말로 녹색당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저는 이 의미 있고 신나는 여행에 당연히 숟가락 얹길 마다하지 않습니다(곧 한발 한발 담글 예정입니다만). 다이나믹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빅뱅이 될 내년 2012년, 그 중심에 녹색당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녹색 프레임을 재구성하여 녹색사회로의 전환의 촉진제가 되길 기대합니다.

▲ ⓒAP=연합뉴스


일본에서 미리 경험하는 한국의 미래

저는 현재 일본에서 유학 중이니, 일본 이야기를 좀더 해보겠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하다보니 한국과 비슷한 문제들로 일본사회가 끙끙거리는 걸 많이 봅니다. 많은 문제들은 일본이 더 빨리 경험해서 노하우를 좀더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일 모두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들은 아직 한국에서 대두하진 않았지만, 곧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겠구나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당연히 미리 예비하는 게 현명한 일입니다. 문제는 일어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그중 대표적인 것이 '원자력 발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후쿠시마 사고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도 그 영향권에 들게 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좁은 땅덩어리의 우리나라에 오밀조밀 밀집해 있는 원자력은 '아직은' 무사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며, 앞으로도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도 경험하고 싶지도 않은 사건입니다. 3·11을 경험하고, 3·11후의 일본사회를 외국인 유학생으로서나마 관찰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가 생긴다면?" 하고 여러 번 가정을 해보곤 했습니다.

당시 저는 야간 버스를 타고 고베의 친구 집에 피난을 갔습니다. 도쿄에선 비행기 티켓을 구할 엄두도 안 나서 일단 고베로 몸을 피하고, 오사카에서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외국대사들도 오사카, 교토 쪽으로 지사를 당분간 옮기기도 했고, 항간에 도쿄전력 직원들은 입으론 괜찮다고 하면서 자식들은 오사카나 교토로 보냈다라는 이야기도 떠돌곤 했습니다. 실제로 3월의 방사능 양은 엄청났습니다. 요새 뉴스에서 계속 원래 예상치보다 몇 배였다, 아니다 더 많았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실제 방사능 양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우리는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했다가 막막해지기만 했습니다. 우리나라 끝으로 도망가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안전한 식료품을 원하는 사람들은 큐슈산, 서일본산 농수산물을 많이 삽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고가 나면 어디서 식품을 조달하게 되는 걸까요. 후쿠시마 지역 표시가 된 번호판을 단 차가 주유하러 갔다가 후쿠시마 차는 안 받는다며 차별당했다는 이야기, 같은 후쿠시마 현이라도 더 멀리 떨어진 지역사람으로부터 차별받았다는 이야기를 후쿠시마 사람들이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걸 듣기도 합니다. 저는 경남 사람입니다만, 원전이 밀집된 경남에서 이러한 사건이 터지면 이 이야기가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아니, 더 심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일본사회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스트레스를 굳이 우리나라에서 재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가능성이 극히 작다고 할지라도 사고 가능성 0퍼센트가 아닌 이상, 우리는 좀 더 자기문제화해서 일본의 원전사고를 바라보고 그 후의 사회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치열하게 토론해서 이 일방적인 원전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겠지요.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미 원전사고, 방사능 등에 대해 깔끔하게 잊은 듯 보입니다. 이상한 건 아닙니다. 거대 도시 도쿄에서도 이미 많이 잊히고 있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곧 수습이 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가던 방향대로 또 가버릴 지도 모릅니다. 그 길이 어디로 닿든지 간에.

아사히신문에서 며칠 전 '좌우 상관없는 원자력발전 반대'란 주제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우익애국단체에서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는데 그 분들의 인터뷰가 포함되어 있더군요. 원래 원전 반대와 같은 건 좌파 전유의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 3·11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바뀌셨다고 합니다. 조상들의 묘지도 방사능에 오염되고, 자손들 생각하니까 이게 좌우가 상관없는, 나라를 사랑하기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은 우리 녹색당의 내년,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상 원전이 망각의 숲에 빠지기 전에, 이 중요한 토론에 좌우상하 막론하고 이 땅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내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초대해, 뜨거운 2012년, 미래지향적인 결정을 내리는 2012년을 녹색당이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 외에도 녹색당을 통해서 제가 다루고 싶고, 힘을 보태고 싶은 분야는, 토건국가의 전환(제 졸업논문이기도 해요), 세대 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 문제,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만들기, 녹색이슈의 국제연대입니다. 오지랖이 태평양만합니다만, 여기서 글을 일단 매듭짓겠습니다. 그럼 봄날에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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