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여야 이사들이 수신료 인상 논의 절차에 합의했다. 이들은 수신료 인상안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당초 KBS 이사회는 야당 이사들이 요구하는 절차 합의에 응하지 않고 여당 이사들이 수신료 인상안을 일방적으로 상정하고 전문가, 사내 의견 청취를 강행하면서 파행을 겪어왔다. KBS 야당 이사들은 지난 22일 부산에서 별도의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수신료 인상 방안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KBS 이사회는 29일 여야 이사 11명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정기이사회를 열어 "수신료 인상 방안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며 "수신료 인상 방안에 대한 논의와 의결은 양측이 합의하여 처리한다"고 합의했다.
이들은 "KBS이사회는 수신료 인상안이 2010년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시한을 고려하여 심의, 의결한다"며 "양측은 KBS사측이 제시한 1안, 2안을 포함하며 수신료 인상 방안에 대해 충분히 논의한다"고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지난 23일 KBS 여당 측 이사들이 단독 상정한 두가지 인상안 ('수신료 6500원-광고 비중 0%', '수신료 4600원-광고 비중 19.6%')은 일단 폐기된다. 그러나 합의안에 "사측이 제시한 1,2 안을 포함하여"라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여당 이사들은 이 안에 비중을 실을 가능성이 높다.
KBS 이사회는 "이날 합의에 따라 오는 3일부터 이틀 동안 수원 인재개발원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어 집행부로부터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대체 토론을 벌이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또 이사회는 광주(10일), 대구(17일), 대전 (18일), 서울(24일) 에서 모두 4번의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패널은 양측에서 각각 3명을 추천하되 진행자는 양측이 협의해서 정하기로 했다.
"공감대·합의 없인 인상 어렵다…현실 인정한 것"
그간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을 두고 파행을 겪어온 것을 생각하면 이날 합의는 전격적이다. 동시에 수신료 인상 '속도전'을 밀어붙이던 KBS가 여론의 반발과 무관심이라는 현실의 벽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야당 측 이창현 이사는 "여당 측에서도 야당 이사들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수신료 인상을 이행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야당 국회의원도 반발하는 상황에서 여야 합의 없이는 국회 의결 등을 거치기 힘들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합의안은 "2010년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이라는 시한과 "양측이 합의하여 처리한다"는 합의 원칙이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 KBS 여야 이사들은 일단 '합의'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이사는 "연말까지 합의가 된다면 올해 회기 내 국회 통과가 가능할 것이고 안된다면 무산될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가장 최선의 방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여당 측 황근 이사도 "충돌 가능성을 두고 여야 이사간 명확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나 시한을 명확하게 못박은 것이 아닌 이상 최대한 '합의'를 향해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신료 인상 연내 국회 의결 시한 정한 것 납득하기 어려워"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는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5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디어행동은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기로 한 것은 정당하고 다행스러운 결정"이라면서도 "수신료 인상의 연내 국회 의결 시한을 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미디어행동은 "문제를 처음부터 논의하기로 한 마당에 시한을 정한 것은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다"면서 "수신료 인상의 조건과 전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가 여간 만만치 않는데 시한을 정해 놓으면 막바지에 이르러 또다시 분쟁과 혼란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9-12월 정기국회에 올리겠다는 것은 8월 안에 이사회 심의.의결을 하겠다는 말인데, 앞으로 한 달 만에 어떻게 설득력 있는 인상안을 합의할 수 있다는 건지 의문스럽다"며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의 근거와 전제의 충분한 동의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여야 이사들의 이번 합의 역시 기만이라는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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