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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막걸리에 소주 탄 폭탄주 '혼돈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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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막걸리에 소주 탄 폭탄주 '혼돈주' 마셨다

[화제의 책]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의 <막걸리, 넌 누구냐?>

막걸리가 싸구려 술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나 맥주에 비해 원가가 가장 비싼 술이다. 1000원 짜리 360ml 소주 한 명의 제조원가가 438원에 불과한데 반해 750ml 막걸리 한 통의 제조원가는 790원에 이른다. 1190원 짜리 500ml 맥주 한 병도 제조원가는 503원이다. 소주나 맥주는 제조원가보다 세금이 더 비싸지만, 막걸리는 주세가 5%에 불과하다. 고로 같은 가격의 술을 마실 때 막걸리를 마실 때 경제적 효용이 가장 높은 셈이다.

술 평론가인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은 막걸리가 '값싼 이미지'를 갖게 된 데 대해 "술을 담는 용기와 상표, 유통 관리에서 파생되는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막걸리는 1회용 페트병에 담겨 있고, 맥주는 병에 담겨 있으며, 막걸리는 영세한 제조장에서 만들고, 맥주는 대형 주류회사에서 만드는 것도 이미지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 교장은 "막걸리는 같은 가격의 소주나 맥주에 견주어 제조원가가 높은 고급술"이라며 "싸기 때문에 품질이 낮거나 저급하다는 얘기는 막걸리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누명이다. 누가 뭐래도 막걸리는 서민의 술 중에서 가장 알찬 술"이라고 평한다.

조선시대 폭탄주 '혼돈주'

▲ <막걸리, 넌 누구냐?> 허시명 지음. 예담 펴냄 ⓒ프레시안
<프레시안>의 인문학습원이 지난 해 가을 문을 연 '막걸리 학교'가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허시명 교장이 이번에 <막걸리, 넌 누구냐>(허시명 지음, 예담 펴냄)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여행작가인 허 교장은 술 평론가로 이미 이름이 높은 인물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숨겨진 명주를 찾아 다니며 이미 <허시명의 주당천리>, <비주, 숨겨진 우리술을 찾아서>, <풍경이 있는 우리술 기행> 등을 냈다.

이번에 낸 <막걸리, 넌 누구냐>는 최근 한반도에 몰아친 막걸리 열풍에 대한 조망을 담고 있다.

'막걸리와 탁주는 무엇이 다른가', '막걸리와 동동주의 차이는'과 같은 주장들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그러나 누구든지 한 번 궁금했음직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담고 있고, '그 많던 양조장은 어디로 갔을까', '탁주의 도수가 6도가 된 사연', '옛사람들은 막걸리를 뭐라고 불렀을까'와 같은 막걸리의 역사적 궤적도 관통하고 있다.

술 자리에 흔히 등장하는 '폭탄주.' 이 책을 보면 우리 조상들도 술을 섞어 마셨다. 18세기 박지원, 홍대용, 유득공과 함께 활동한 실학파인 정철조라는 문인은 소주가 한 병 생기면 막걸리를 받아와 섞은 뒤 '혼돈주'라 부르면서 즐겼다고 한다.

홍석우 전 중소기업청장이 '혼돈주' 애호가이다. 그의 제조법은 맥주잔에 막걸리를 절반쯤 붓고 양주잔에 소주를 절반쯤 부은 뒤 양주잔을 맥주잔에 빠뜨린 후 사이다를 붓는 것이다. 홍 전 청장은 "막걸리가 몸에 좋거니와 한 잔이라도 더 먹는 게 소기업들을 돕는 것"이라며 주변에 '혼돈주'를 전파했다고 한다.

'탁주의 도수가 6도가 된 사연'을 들여다보면 한국 산업화의 한 편린을 볼 수도 있다. 일제시대가 되면서 술 빚기를 국가에서 통제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에도 '주세'가 국가의 주 수입원이 되면서 생산 자격은 물론 알코올 도수까지 통제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쌀로 막걸리를 빚지 못하게까지 했다.

막걸리도 통제를 받아 1960~1970년대 도수가 6도를 유지했다. 막걸리 원주는 14~16도로 빚어지는데, 여기에 물을 섞어 도수 조절을 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82년 8도로 도수를 올렸다. 4도의 맥주에 밀리니 6도로 차별화 전략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막걸리 인기가 시들해졌다. 왜 였을까?

허 교장은 1982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현장의 사례를 들어 "공사장 인부들은 새참으로 탁주를 마셨는데, 2도가 높아지자 인부들이 탁주에 취해 일에 복귀하지 못하고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그래서 내려진 조처가 사업장에서는 탁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허 교장은 "다른 건설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고, 이후 노동의 벗이었던 탁주는 노동 현장에서 격리되어버렸다"며 "농경사회의 수평 이동하는 작업장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약간 높아도 괜찮지만, 산업사회의 수직 이동하는 작업장에서는 알코올 도수에 따른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읽었다.

알고 마시는 술의 재미

지금은 막걸리의 도수가 '3도 이상'으로 자율이 주어져 있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막걸리 중 '배혜정누룩도가의 부자'가 16도이고, '(주)화요의 낙낙생막걸리'가 15도 짜리 제품을 내놓고 있다. 도수가 높은 막걸리는 기존의 막걸리와 또 다른 맛과 풍미를 느끼게 해준다. 그만큼 막걸리는 다양해졌다.

허 교장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막걸리의 건강적 기능도 꼼꼼하게 설명했다. 과거 막걸리는 수입밀과 공업용 화학물을 첨가해 만들어 재료가 좋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유기농 쌀을 이용하는 등 질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뤘다. 비누, 식초 등 2차 가공 제품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허 교장은 또 포천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 진천 덕산양조장, 전주 막걸리 등 전국의 유명 막걸리들의 전통적 배경과 현황을 꼼꼼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말지막 장에는 직접 막거리를 빚는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고, 별책부록으로 막걸리에 어울리는 간단한 안주에 대한 레시피도 선물하고 있다. 사케와 사시미, 와인과 치즈, 소주에 삼겹살, 맥주에 오징어땅콩 등과 같이 술과 음식과의 궁합은 술이 술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원동력이다.

참고로 책의 간접체험만으로는 아쉬운 독자들은 막걸리 학교에서 허시명 교장의 강연과 함께 직접 막걸리 맛과 풍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느낄 수 있다. 양조장 견학도 포함돼 있다. 6월 3일부터 열리는 막걸리 학교 5기 수강행 모집은 19일 오전 10시부터 선착순 접수한다. 수강의 기회를 얻으려면 바짝 긴장해야 할 듯 하다. 1기 수강생 모집 마감이 이틀이 걸렸는데, 2기 때는 7분이 걸렸고 요즘은 5분 안에 마감한다고 한다. (☞ 수강 신청 안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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