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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힘이 된 탈춤
[탈춤과 나] 16. 연세대 탈춤반 74학번 정병훈의 탈춤
1. 이제 대학교수로서 정년을 한지 도 1년을 넘긴 사람이지만, 1970년대의 탈춤운동을 얘기하려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다. 그 시절의 이상과 좌절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일이 감당하기 어려운 심적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오면서 내게 지속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활동에서 탈춤을 빼놓을 수 없고, 또 아직도 탈춤운동
정병훈 경상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2021.08.26 07:38:32
유신 폭압을 넘어 5월의 문화예술로 행진하다
[탈춤과 나] ⑮ 김선출의 탈춤
내 나이 60 중반에 이르러 얼추 생각해 보니 내 인생사는 스무살 남짓 인 77년 겨울 전남대 2학년 겨울방학 때 탈춤을 배우고부터 결정된 것 같다. 대학시절 2번의 수배와 감옥, 제적이 이와 연관이 있고 지금까지의 직업과 미학적 관점이 또한 이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감옥에서 석방된 민청학련 선배들의 지도로 사회과학 언더 학습모임에 참
김선출 전남대 민속문화연구회 창립·초대 회장
2021.08.19 07:11:17
젊은 날의 패기와 좌절, 하지만 탈춤과 사람은 남는다
[탈춤과 나] ⑭ 김순진의 탈춤
탈춤과 나의 인연은 1972년에 시작되었다. 50여 년이 지났으니 대부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느 대목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 해 가을 김은혜(사회사업과 3학년)가 찾아와 “좋은 후배들이 탈춤동아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언니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 했던 순간이 눈에 그리듯 선명하다. 그녀는 ‘새 얼’이라는 동아리의 회장으로 서로 알고 있던 터였다. 19
김순진 전 한마당 교육문화 연구회 대표
2021.08.16 08:22:01
읽지 않은 흥부전 알 듯 탈춤을 알게 된다
[탈춤과 나] ⑬ 심상교의 탈춤
시간에 눈금 그은 적 없고, 정신에 색깔 입혀놓은 적 없지만 우리는 올해와 작년을 눈금자 보듯이 구분하고, 정신에 무슨 색깔이나 입혀 있듯 회색이니 파란색이니 빨간색이니 하며 색깔을 구분한다. 왜 그럴까? 이유야 많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외로움을 극복하고 세상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나누는 측면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탈춤이 이와 같다고 여
심상교 부산교대 국어과 교수
2021.08.12 07:13:55
'봉산탈춤과 나'라는 수레를 이끌고 싶다
[탈춤과 나] ⑫ 정혁조의 탈춤
글을 써보려고 모처럼 서안 앞에 앉아 초안을 잡는다. 붓 대신 플러스 펜을 들었다. 원고지를 대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글을 쓸 새가 없이 나는 바쁘다. 이메일 도착을 알리는 화면을 보라는 전자음이 들린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전화 드렸던 기나리라고 합니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닷컴’(www.pressian.com)에 ‘탈춤과 나’라는 제목으
정혁조 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 72학번
2021.08.09 06:48:26
유신 시대의 탈춤이, 하버드의 풍물패로
[탈춤과 나] ⑪ 강정례의 탈춤
고교시절 신문의 칼럼이나 취재기사를 통해 전통문화의 보존에 대해 막연한 안타까움을 가졌었다.대학 입학 후 여러 동아리 활동을 찾던중 연극반 활동을 통해 탈춤 연습이 시작됨을 알았고 그로 인해 탈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당시 재학했던 학교에선 가르쳐 줄 분이 안 계셔서 지금의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 문리대와 법대 사이에 있던 표준공업연구소 한켠에 있었던 창고에
강정례 이화여대 민속극연구회 72학번
2021.08.05 07:42:28
탈춤, 진짜를 찾아서
[탈춤과 나] ⑩ 심규호의 탈춤
그 날 나는 서울역 뒤편 일명 서부역에서 문산행 기차를 타고 짧은 여행을 하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온 지 겨우 2,3주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다. 퀴퀴하고 덜컹대는 기차가 제법 너른 평야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느 역사(驛舍)에 도착한 기차가 다시 출발하기 위해 기적을 크게 내지르고 있을 때 우연히 쳐다본 단청색 곱게 칠한 역사가 왠지 차갑게 느껴졌다. 그
심규호 제주문화포럼 이사장
2021.08.02 08:01:59
"탈패, 족보 따지면 임종석도 '손자뻘' 동아리 출신"
[탈춤과 나] ⑨ 한양대 78학번 박상대의 탈춤
나는 내가 보기에도 참 소시민적인 사람이다. 역사의 전면에 설 용기도 없거니와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그것이 마땅치 않을때에도 어떻게든 구실을 찾아내어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사변적인 유형의 사람이다. 내가 만약 탈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다시 말해서 그 동네(탈패 떨거지들) 분위기에 물들지 않았더라면 나는 꽤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좋게 말해서
박상대 한양대학교 78학번
2021.07.29 08:11:09
"써도 탈이요, 벗어도 탈이다"
[탈춤과 나] ⑧ 이인숙 교수의 탈춤
탈, 그리고 춤... 탈(面)을 쓰면 내가 없다 나를 벗어(脫) 탈(面)춤을 춘다. 탈(面)을 벗으면 내가 있다 가식을 벗어 탈(脫) 춤을 춘다. 써도 탈(面)이오 벗어도 탈(脫)이다 내가 춤을 추는지 탈이 춤을 추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세상 어느 춤에서 속없는 춤을 춘다. 탈춤을 춘다. 윗글은 무용 작품내용으로 해마다 다른 방법으
이인숙 청주대학교 영화과 교수
2021.07.26 06:50:45
탈춤, 세상과 나의 혁신
[탈춤과 나] ⑦ 김사열의 탈춤
이십 세기 전반에 이 땅에 유입된 서구 공연예술은 우리 전통연희의 근본을 뒤흔들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의 강요가 전통연행예술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모든 민족적인 것은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하여 청산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그러한 잘못된 인식은 해방 이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1970년대 초반
김사열 경북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2021.07.22 08:3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