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04월 19일 20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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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동물이 돼선 안 된다" 자존감으로 버틴 자가 살아남았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14]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42
나치 독일에 저항한 혐의로 붙잡혀 들어간 정치범이든, 유대인이라는 원죄로 갇힌 보통사람이든 일단 나치 수용소에 갇힌 이들은 절망하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견뎌냈을까. 그들은 언젠가 수용소에서 벗어나 나치의 전쟁범죄를 증언하는 날들이 언젠가는 오리라 믿었을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특히 1940년대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2025.04.19 12:20:26
"내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 나치 전쟁범죄의 증거"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13]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41
지난 글 끝에서 나치 독일은 수용소 독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들의 '피 묻은 금'을 스위스 은행과의 '더러운 거래'로 세탁해 전쟁자금으로 썼다고 짧게 짚었다. 죽은 유대인들의 입을 벌려 금니를 뽑아내는 끔찍한 모습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그런 야만적 과정을 거쳐 모은 금니, 또는 막 이송돼온 유대인들의 가방을 뒤져 모은 금 목걸이나 반지 등 귀금속은 베를린
2025.04.12 15:11:09
수용소 여성을 성노예로 만든 나치 친위대 '위안소'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12]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40
수용소와 인권은 서로 어긋나는 개념이다. 아우슈비츠 수감자가 친위대 경비대원에게 '인권'을 따진다면 돌아오는 것이 말이 아닌 주먹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현장 사살은 너무 흔하게 벌어졌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바에야 "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상황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인권은 땅바닥에 내팽겨지고 수감자가 한 인간으로서 지닌 목숨의 무게는 휴지
2025.04.05 20:58:43
수용소 적응 힘들었던 지식인들, 끝내 '무슬림' 좀비로 숨졌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11]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39
지난 주 글에서 오스트리아 유대인 장 아메리, 이탈리아 유대인 프리모 레비, 이 두 지식인이 나치의 전쟁범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음을 살펴봤다. 이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냈던 이른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고, 훗날 '자유로운 죽음'을 말하면서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죽음을 앞당겼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의미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을
2025.03.31 11:58:00
하루에 1만 명 죽이고 불태운 아우슈비츠, 그곳은 생지옥이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10]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38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올해로 80년을 맞았다. 적어도 5000만 명에서 7000만 명쯤이 숨진 그 큰 전쟁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우리 한국인들로선 일제 강점기 시절에 벌어졌던 징병과 강제노동, 성노예 '위안부' 학대가 남긴 깊은 상흔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731부대의 세균전 실험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견주어 유럽에서는 나치 독
2025.03.15 10:59:37
유대인 600만 사망설의 출발은 아이히만의 입이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09]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37
1933년 1월 말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오른 뒤 베를린 지하 벙커에서 자살하는 1945년 4월 말까지 12년은 '야만과 광기의 시대'였다. 나치의 폭주 기관차는 멈추었지만, 죽은 이들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논란으로 남았다. 500만~600만 유대인을 포함한 1200만 명이 나치 전쟁범죄의 희생양으로 추정될 뿐이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의 최대 희생집단
2025.03.08 17:23:14
독가스와 노예노동으로 100만 명 숨진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08]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36
"(히틀러) 총통께서는 유대인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라 하셨네. 그렇기에 우리를 포함한 모든 친위대(SS) 대원들은 그 명령을 받들어야 할 것일세. 동유럽에 현존하는 절멸용 수용소는 당장 예상되는 거대한 임무를 이행할 수가 없네. 그러므로 나는 이 임무를 아우슈비츠에 주고자 하네. 그곳이라면 유대인들을 수송하기 위한 교통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거니와, 지역적으로
2025.03.01 10:03:20
르완다 학살보다 빠른 나치 학살, "100일 동안 147만 명 죽였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07]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35
지난 주 바르샤바 게토 봉기를 다룬 글(연재 105, 106)을 본 독자 한 분이 이메일로 질문을 하나 보내주셨다. 짧게 줄이자면, '게토 유대인 가운데 도망쳐 살아남은 사람들은 없을까. 있다면 그 숫자는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이었다. 홀로코스트 연구자들도 탈주 생존자가 어느 정도였는지 제대로 알긴 어렵다고들 말한다.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의 최근작(
2025.02.22 16:27:13
"수용소행 이송열차에서 나는 지옥을 봤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06]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34
[기차에 올랐다. 좌석도 통로도 창문도 없는 가축 운반용 화물열차였다. 축사(畜舍)나 다름없는 화물칸 안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겼다. 찌릿한 암모니아 냄새가 콧구멍 깊은 곳까지 훅 들어왔다. 그나마 공기가 통하는 곳이라곤 지붕 슬레이트 틈새뿐이었다. 칸마다 60~80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소지품이 꽉꽉 들어찼다. 더 이상 움직일 공간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2025.02.15 08:00:59
게토의 굶주린 유대인들, 어미는 죽은 아들을 먹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05]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33
[바르샤바의 경우 모자를 쓰고 가죽 부츠를 신고 유대인 동포들에게 곤봉을 휘두른 민병대원들은 주로 교육을 받은 중산층 남자들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젊은 변호사와 대학 졸업생들도 있었다. 게토(ghetto)의 많은 사람들이 볼 때, 민병대는 유대인을 수색하고, 규제하고, 감시하라는 게슈타포(비밀경찰)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최악의 인간'들로 이뤄졌다](주디
2025.02.08 18: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