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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혈세로 도배된 반시장적 '관제 기업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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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혈세로 도배된 반시장적 '관제 기업도시'

[이정전 칼럼] 세종시 수정안의 암울한 미래

1월 27일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을 법제화하기 위한 관련 법률안 5건을 입법예고하였다. 이 법안들은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로 바꾸며, 최근 불거져 나온 세종시 관련 각종 특혜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후속 대책들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또 한 번 큰 요동을 치리라는 예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 1월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1주일 후 이에 대한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있었다. 학자들과 시민단체 인사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다수 참석하였다. 수정안을 찬성하는 측이 불참하는 바람에 사실상 토론회가 아니라 성토회가 되어버린 아쉬움은 있지만, 정부가 발표한 수정안의 문제점을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하여 가장 빈번히 제기된 문제점은 '졸속'이다.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원안은 7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전문가들의 연구, 그리고 17대 국회에서 14개월간 14차례의 회의와 500여 회의 공청회 및 토론회를 거쳐 여야 합의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것을 불과 2개월 만에 급조한 수정안으로 뒤집으려는 태도야말로 졸속 중의 졸속이라고 토론 참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였다.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이 국책연구기관(국토연구원, 한국개발원, 한국행정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수많은 전문가들이 수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세종시 원안을 아무리 국책연구기관이라고 하더라도 불과 두 달 만에 뒤집을 수 있는 연구 성과를 내놓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국책연구기관의 최종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부가 서둘러서 수정안을 발표하지 않았던가. 만일 국책연구기관의 최종 연구 결과가 수정안을 옹호하는 쪽으로 나온다면, 국책연구기관은 동일한 과제를 놓고 정권의 입김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꼴이니 그 권위가 땅에 떨어지게 된다.

9개 행정부처의 이전을 백지화한 것을 빼고는 세종시 수정안은 원안과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단지, 수정안은 원안의 골자(행정부처 이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약간 확장하고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려대와 KAIST의 일부가 이번 수정안을 계기로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사실은 원안에도 이 두 학교의 이전이 계획되어 있었으며 2008년에 이미 MOU가 체결되었다고 한다. 어떻든 수정안이 제시하는 세종시는 교육기관, 연구소, 기업 등이 어우러진 경제도시인데, 이런 성격의 도시는 우리나라 다른 곳에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수정안에 제시된 세종시는 또 다른 유형의 신도시일 뿐인데, 이를 위해서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혈세를 수십조 원이나 퍼부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더욱이나 최근 정부의 부채가 눈송이처럼 불어나고 있지 않은가.

경제도시나 신도시의 조성은 민간부문이 주도할 일이지 대통령과 총리가 앞장서고 여당의원들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뛸 일은 아니다. 다만, 다른 신도시의 경우처럼 정부는 뒤에서 행정적으로 지원만 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개 법안까지 만들어 가면서 혈세를 퍼부으려고 하고 있으니 이번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야말로 '반시장적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족하다. 그러지 않아도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는데, 또 하나의 신도시에 불과한 세종시 공방에 정치권이 온통 매달려 있으니 걱정스럽다.

세종시 건설의 문제는 엄연히 도시계획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종시 수정안은 '도시계획'의 '도'자도 모르는 문외한의 머리에서 나온 졸속안이 라는 비판도 나왔다. 사실, 이번 세종시 수정안을 주도하고 있는 정운찬 총리는 경제학자이지 도시계획가는 아니다. 그러니 세종시 수정안은 도시계획의 기본을 무시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진정 또 하나의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만들고 싶다면 지금의 세종시 자리가 아닌, 다른 곳을 물색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다수의 후보지역을 놓고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 지금의 세종시 터는 경제도시가 아니라 행정중심도시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판정 내렸기 때문이다. 만일 행정중심도시가 아니라 경제도시를 세울 요량이었다면 지금의 세종시 터가 아닌, 다른 곳이 적지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주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과학비즈니스벨트로 전국에서 가장 적합한 곳은 아산·천안이 1등이고, 이어서 대전·대덕, 대구, 울산, 부산 등이 꼽혔다고 한다. 세종시는 6위로 처졌다. 3위까지가 세종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렇다면, 설령 세종시에 교육과학경제도시를 건설한다고 해도 인근지역에 경쟁력을 뺏기게 된다. 떨어지는 경쟁력을 보완하자면 여러 개의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정부가 더 많은 국민의 돈을 넣어야 한다. 그러니 수정안이 제시하는 세종시는 정부의 막대한 부채로 만들어낸 "관제(官制)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지금 예정된 세종시 터는 행정중심 도시에 적합한 터이지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에 적합한 터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수정안의 의도에 더 적합한 다른 곳을 물색하자면 세종시 터를 찾았을 때처럼 많은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오랜 선정과정을 거쳐야 함이 상식이다.
▲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후 반대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뉴시스

세종시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정부가 늘어놓은 변명 중의 하나는 세종시 원안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세종시 원안을 따를 경우 자족용지의 부족으로 기껏해야 8.8만 명 정도의 고용밖에 창출되지 않으며 인구도 17만 명밖에 되지 않는 유령도시가 될 우려가 있다고 정부는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이야말로 정부가 원안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았음을 잘 반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원안을 보면, 분명히 2030년까지 고용인원은 25만 명, 전체 인구는 50만 명으로 잡혀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도 나와 있다는 것이다. 원안대로 계산하면, 자족용지가 전체의 11.4%에 이르며 따라서 한 사람당 자족용지가 16.4m2나 되니 우리나라의 다른 어떤 신도시보다 자족용지가 풍부하다고 한다.

오히려 수정안이 자랑하고 있는 경제적 효과에 대하여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다. 고용효과만 해도 그렇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삼성, 한화 등 대기업들이 총 4조5000억 원을 투자하여 2만2994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중소기업이 주된 고용창출원이라는 것은 이미 상식처럼 되어 있다. 한 경제전문가의 계산에 의하면, 제조업의 투자비 1억 원 당 일자리 창출효과는 0.164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기업이 4조5000억 원을 투자해본들 잘 해야 7000개의 일자리 밖에 창출하지 못한다. 정부의 계산이 졸속이었거나 아니면 의도적 부풀리기였든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더욱 더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들이 그런 거액을 앞으로 계속 투자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데다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 정권을 과연 대기업들이 믿어줄 것인가. 실제로 투자유치가 확정된 삼성의 경우 이명박 정권이 끝나는 2012년까지 총투자 예정액의 36%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그 이후로 미루고 있으며, 한화 역시 3.2%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미루고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듯이 과거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정치권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다. 그러다 보니 권력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기업이 생긴다는 말이 생겼다. 9개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자족도시가 형성될 수 있지만, 과연 권력이 없는 곳에 자족도시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세종시 수정안은 실패해도 걱정이지만, 성공해도 걱정이다. 성공할 경우, 세종시는 항간의 우려대로 다른 지역의 경제력을 빨아먹는 '불랙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세종시 원안이 의도하였던 지역 간 균형발전의 기조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세종시 수정안은 세종시 원안을 백지화하기 위해서 이명박 정부가 슬며시 꺼낸 정치적 흥정카드가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세종시 수정안을 제시함으로써 원안에 반대하는 세력을 표면화시키고 정치권을 극단적 대결구도로 몰아간 다음 9개 행정부처 이전의 백지화를 전제로 세종시 수정안을 철회하는 수순을 밟으려는 고도의 정치적 술책이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다 흐지부지되어 버린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오래 전부터 세종시 원안을 완강하게 반대하였다는 점, 세종시 수정안이 너무 황당한 졸속안이라는 점,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안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여권 실세도 잘 알고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정황에 비추어볼 때 이런 의혹이 전혀 황당무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얘기를 듣노라면 중국 고사가 생각난다. 우리가 잘 아는 조조, 유비, 손권의 3국 정립 얼마 후 중국은 다시 남북으로 갈렸는데 북쪽에는 북위(北魏)가 있었고 남쪽에 동진(東晋)이 있었다. 후에 수나라와 당나라를 세운 수문제와 당고조는 외사촌 사이이며 모두 북위 중신의 후예다. 북위의 효문제는 수도를 북쪽의 평성(지금 산서성의 대동)에서 남쪽의 낙양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신하들의 완강한 반대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꾀를 하나 생각해냈다. 어느 날 느닷없이 효문제는 남쪽을 정벌하겠다며 군사를 일으켰다. 중국을 통일하자는 대의명분에 신하들이 감히 크게 반대를 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군사와 대신들까지 남정(南征) 길에 나섰는데, 평성을 출발하여 낙양까지 내려오는 두어 달 동안 줄곧 비가 내려서 군사가 지치고 대신들도 모두 기진맥진했다고 한다. 낙양에 왔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신들이 일제히 전쟁 중지를 왕에게 읍소하기에 이르렀는데, 효문제는 짐짓 낙양천도 얘기를 꺼내고는 대신들에게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은 왼쪽에 서고 낙양천도에 찬성하는 대신은 오른 쪽에 서라고 명했다. 모두들 전쟁보다는 천도가 낫다고 생각하고 오른 쪽에 섰다고 한다. 그래서 효문제는 자기가 원하는 천도를 관철시켰다는 얘기다. 역사책을 보면, 이와 비슷한 술수를 쓴 왕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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