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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물은 아래로 흐르고 돈은 위로 흐른다

[이정전 칼럼] 세종시, '효율과 신뢰' 중 중요한 것은?

세종시 문제를 다루는 민관합동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이제 세종시 논쟁은 제2라운드로 옮겨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폭넓게 여론을 수렴해서 좋은 대안을 만든다고 겉으로는 공언하고 있지만, 위원회 발족 이후 재벌총수들과의 만남을 포함한 총리의 잰 행보로 보면 세종시 원안의 파기는 분명해 보인다. 세종시 원안은 9개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한 행정복합도시의 건설이었다. 참여정부 때에는 "행정복합도시"를 줄인 "행복도시"라는 애칭이 자주 이용되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 이 애칭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과연 국민과 약속한 원안대로 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 대신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기업도시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면밀히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왜 세종시 원안을 수정해야 하는지부터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종시 원안의 수정을 추진하는 측이 강력하게 내세우는 논리는 경제적·행정적 효율이다. 정부의 주요 부처가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으면 경제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막대한 낭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효율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우수한 단일민족임을 늘 자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우리 모두가 골고루 잘 살아보자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도, 대통령도, 여당 실세도 여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만들면 대한민국 국민이 골고루 행복하게 잘 살게 될까?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는 여권인사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들은 낭비를 제거해서 효율을 높이면 자동적으로 우리 국민들 모두가 더 행복해진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실세들은 효율에 대한 맹신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믿고 있을까? 경제학의 시각에서 그들의 생각을 풀이해보자. 효율이란 요컨대 적은 희생(시간과 돈)으로 더 많이 생산함을 의미한다. 더 많이 생산하면 더 많은 소득이 창출되면서 그 혜택이 부자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내려간다. 마치 물이 떨어지면 땅으로 스며들어가 번지듯이 소득도 부자들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면서 퍼진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낙수효과(trickling effect 혹은 trickle-down effect)라고 부른다. 요컨대 효율을 높이고 경제성장을 이루면 낙수효과를 통해서 온 국민이 골고루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시장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는 낙수효과를 굳게 믿으면서 효율과 성장을 복음처럼 전도한다. 여권의 많은 인사들이 이 신자유주의 복음을 맹신하고 있다.

그러나 낙수효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한낱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IMF경제위기 이래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그리고 이 덕분에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빈부격차는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경제성장의 결과로 창출된 소득이 아래로 흐르지 못하고 저 위 고소득계층에 고여 있기 때문이다. 낙수효과가 아주 미약하다.

▲ 화폐금융학자 출신인 정운찬 총리는 사실 '돈의 흐름'에 있어 누구보다 전문가다. 정 총리가 위원장을 맡아야할 것은 세종시가 아니라 위로만 향하는 돈의 흐름에 관한 위원회다. ⓒ연합
돈은 물과 다르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돈은 위로 흐른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경영학자들은 우리 사회에 승자독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한다. 승자독식이란 혼자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승자독식이 만연하면 돈이 퍼지지 않고 한 군데 몰리게 된다. 낙수효과가 점점 없어진다. IMF경제위기 이후 빈부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돈이 아래로 흐르지 못하게 가로 막는 여러 가지 장애가 우리 사회에 있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효율을 높이고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한들 이 장애가 존재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골고루 잘 살기는 틀렸다.

돈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 상황에서 효율만 높이고 생산만 많이 한다면 저 위에 고인 돈만 불어나고 결과적으로 부자들의 배만 불려준다. 그렇다면 경제적·행정적 효율을 위해서 세종시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외치기 전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효율을 높여야 하는지부터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를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돈이 아래로 흐르지 않는 이유를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더욱이 정운찬 총리는 돈의 흐름에 관한 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 중에서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돈이 왜 아래로 흐르지 않는지를 연구하는데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 정운찬 총리는 화폐금융의 전문가지 도시문제 전문가가 아니다. 따라서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을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연구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야 옳다.

물과 돈은 흐르는 방향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한 가지 같은 점도 있다. 물이나 돈이나 한 곳에 고이면 썩는다. 돈이 한 곳에 많이 고이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다. 비자금이니 떡값이니 하는 것들도 돈이 고여 있는 곳에서 나오는 법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부동산 투기도 돈이 아래로 흐르지 못하고 높은 곳에 고여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서, 매년 발생하는 수백 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가 소수의 상위계층 사람들에게 집중된 결과, 이들 각각이 수억 원 내지 수십억 원의 목돈을 쥐게 되었다고 해보자.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투기처럼 수익률이 높은 것이 없다. 그러니 큰 목돈을 쥔 사람들은 자연히 부동산시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대로 가령 무역수지 흑자가 대한민국 각 가구에 골고루 분산된다고 해보자. 각 가구가 만질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 그런 돈으로 무슨 부동산 투기를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를 줄이고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도 우리 사회에서 왜 돈이 상위계층에서 하위계층으로 흘러내려가지 않는지를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이전에는 더 이상 효율이니 성장이니 하는 것들을 떠들지 말자.

세종시를 기업·과학도시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 달성하는 효율은 반짝 효율이요 일시적 효율일 가능성이 높다. 일시적으로는 얻는 것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잃는 것이 많다면 그런 효율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참된 장기적 효율은 사람들 사이의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효율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정말 사려 깊고 솔직하기 때문에 온 국민이 대통령을 굳게 믿고 따른다고 해보자. 이럴 경우 대통령의 한 마디면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된다. 국회에서 법안처리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요 예산심의도 원만히 이루어질 것이다. 지도자와 국민이 한 마음으로 뭉쳐서 일을 척척 해나가는 것처럼 이 세상에 효율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나라는 너무 효율적이어서 무서운 나라가 된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가 그랬다.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에서 가장 부유했고 학문과 예술이 가장 번성하였다. 어지럽게 분열되어 있던 중국에서 제환공(제나라의 왕)이 한 마디 하면 다른 나라의 왕들도 군말 없이 믿고 따라 주었다. 수시로 모든 왕들을 불러다 놓고 회의를 주재했다. 그래서 제환공은 춘추전국시대에 중국 전체를 호령하는 패자가 되었다. 제환공을 중국의 패자로 만든 인물이 바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관중이다.

재상으로서 관중은 신의로 나라를 다스렸다. 관중이 얼마나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를 여기에 다시 소개한다. 제나라가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서 노나라 땅의 일부를 할양받는 조건으로 강화조약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회담장소에서 노나라 장군 한 사람이 갑자기 제환공에게 달려들어 목에 비수를 들이대며 노나라 땅을 포기할 것을 공식 선언하라고 협박하였다. 겁에 질린 제환공이 포기선언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 장수는 얼른 제 자리로 돌아가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었다. 뒤늦게 화가 난 제환공은 방금 전의 선언이 무효임을 주장하려 했으나 관중이 나서서 말렸다. 아무리 협박에 의한 것이라도 군주가 한 번 선언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간곡하게 간하였다. 제환공도 그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관중의 권고에 따랐다. 비록 잘 못된 약속이라고 하더라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제환공은 영특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유세 때에도 세종시 원안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노라고 공개석상에서 수없이 다짐하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세종시 원안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추진할 수 없다며 말을 바꾸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 어떻게 추진하느냐며 여권의 실세들도 가세하였다. 이들은 일시적 이익만 생각하고 장기적인 손해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이들은 대통령과 여권 실세들이 국민의 신뢰를 잃음으로써 장기적으로 야기되는 경제적·정치적 비효율의 폐해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기는, 이들은 자기 임기 동안만을 생각하기 바쁘니 장기적 손실을 생각해볼 틈도 없을 것이다.

제나라가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면 은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주나라는 신뢰를 잃음으로써 망했다. 주나라(서주) 마지막 왕인 유왕은 포사라는 여인을 익애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경국지색(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의 절세미인)이라는 말이 별로 없는데, 중국에는 나라가 망할 즈음이면 경국지색이 나타난다. 포사는 경국지색이었다. 미모 덕분에 황후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사는 절대 웃지를 않았다. 왕은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국경수비대의 병졸들이 실수로 잘못된 봉화대 신호를 올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봉화대의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수도에 큰 변고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한 수도방위군 장군들이 궁성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끌고 급히 달려 왔는데, 봉화대의 신호가 잘못 올라간 것이니 돌아가라고 왕이 말하자 장군들이 모두 황당해 하였다. 장군들이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고 포사가 깔깔대며 웃었다.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자 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 후로는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을 때마다 왕은 국경수비대에게 봉홧불을 피게 하였고, 속아서 달려온 수도방위군 장군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본 포사는 깔깔댔다. 그러나 정말 북쪽 오랑캐가 수도를 침범하였을 때는 장군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왕이 완전히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결국 주나라 왕은 오랑캐에게 잡혀죽고 이로 인해 주나라(서주)는 망했다.

사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는 방탕하고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다. 그는 사태를 잘 파악하였으며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 세우려고 혼신을 다하였던 군주였다. 그러나 그는 수시로 말을 바꾸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청나라 군사가 궁성 앞까지 쳐들어 왔을 때의 일이다. 황제는 북경 시민들에게 청나라에 대항해 싸우면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였다. 어찌 어찌 해서 결국 청나라 군사가 물러갔다. 하지만, 황제는 상을 내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북경시민들이 싸워주었기 때문에 청나라 군대가 물러났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여권 실세의 표현을 빌리면 '잘못된 약속'이었다는 것이다. 황제 자신은 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숭정제가 밤잠을 줄여가면서 열심히 일을 했어도 신뢰를 잃으면 장기적 효율을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명나라는 망했다.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고 지지하는 여권 실세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치가의 신뢰 따위는 헌신짝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너무 효율과 성장에만 집착하고 있는 탓이리라. 우리의 정치가들이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신뢰를 찾고 신뢰를 소중하게 여기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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