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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이 '흉기'면 청와대는 '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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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이 '흉기'면 청와대는 '흉가'?

[진중권 칼럼] 청와대 '오버액션'의 진짜 이유

이상한 일이다. 내가 알기로 이 사건은 자연인 정운천, 민동석 씨가 <PD수첩>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다. 그런데 정작 이 두 사람은 말이 없고, 엉뚱하게 청와대에서 대신 난리를 친다. 한 나라의 대변인이 구사하는 언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기 그지없다. 뭐, <PD수첩>이 '흉기'라나 뭐라나? 듣기에도 음산하고 스산하다. <PD수첩>이 흉기라면, 청와대는 흉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한나라당에서 다시 연극 <환생 경제>를 공연하면, 이동관 대변인이 과거 주성영 의원이 맡았던 역을 맡는 게 좋겠다.

재미있는 일이다. 명예 훼손을 당했다는 이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제3자에 불과한 청와대 비서관이 대신 나서서 입에 거품을 문다. 이로써 그는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폭로했다. 애초에 이 사건은 정운천, 민동석이라는 자연인의 명예에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분에 불과했고, 이 수사가 MB의 정책을 비판하는 <PD수첩>에 대한 정치 보복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임을 청와대가 요란하게 나서서 스스로 입증해 준 것이다. 광기에 가까운 청와대의 오버액션은 이 수사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이 <PD수첩> 관계자를 기소하자마자 "<PD수첩>은 '흉기'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프레시안

정운천, 민동석 씨가 <PD수첩>을 고소한 것이 자그마치 지난 3월 3일. 수사가 시작된 지 반 년도 넘은 후의 일이다. 어떻게든 기소는 하고 싶은데 명분은 없고, 그래서 부랴부랴 사후적으로 법적 명분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방송을 아무리 봐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만 있을 뿐, 정운천, 민동석 개인에 대한 관심이나 비방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을 공직자 개인의 명예 훼손으로 거는 것 자체가 엽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나 나올 만한 일이다.

법원으로 갈 것도 없이, 애초에 검찰도 자체적으로 기소는 무리라 판단했던 사안이었다. 작년 12월말 <PD수첩>을 수사하던 임수빈 부장검사가 사표를 던졌다. 그는 이 수사에 관해 "명예 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맞다. 이번 수사는 검찰 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PD수첩> 수사 임수빈 부장검사 사의', <한겨레> 2009년 12월 29일) 직접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가 도대체 '거리'가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을, 수사를 담당하지 않은 윗분들이 억지로 '거리'로 만들어 내라고 주문한 셈이다.

사실 정권의 입장에서 정운천, 민동석 씨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관심사가 아니다. 정권의 목적은 <PD수첩>의 보도가 온통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한 마디로 혼네(비판 언론 탄압하기)와 다테마에(두 자연인의 명예 회복)가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후자를 내걸어 전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 MB 정권의 속셈이다. 이렇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없었던 법적 목표를 억지로 만들어내다 보니, 당연히 논리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검찰에서도 '거리'가 안 된다고 봤던 사안을 들고 법정에 가봐야, 얼마나 승산이 있겠는가? 검찰이 승소하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을 보자.

제작진을 명예 훼손죄로 처벌하려면 <PD수첩>의 보도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명예 실추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검찰이 확증해야 한다. (…) 또 검찰은 <PD수첩>의 보도 내용이 허위이며, 이를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해야 한다. 제작진이 정 전 장관과 협상팀의 명예를 실추시킬 뚜렷한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방송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는 뜻이다. (…) 법원은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보도에서 다소 과장이나 실수가 있더라도 취재진이 보도할 당시 사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하고 있다. 때문에 번역 상 오류나 일부 과잉 편집을 곧바로 허위 사실로 연결하긴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PD수첩> 일파만파. 형사상 명예훼손 입증될까', <서울신문> 2009년 6월 20일)

이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법정에서 무죄 판결이 나버리면 검찰의 처지가 아주 곤란해진다. 곧바로 정치 보복을 무리한 기획 수사였다는 역풍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동원한 꼼수가 뒤지고 뒤져서 찾아낸 프리랜서 작가의 사적 메일을 깐 것이다. 검찰은 메일을 공개한 동기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검찰 관계자는 이메일 공개와 관련, "제작진을 기소하면서 범죄 성립의 주요 요소인 악의가 있느냐 또는 현저히 공평성을 잃은 게 맞느냐는 판단을 할 때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고 판단했고 국민에게 이를 충분히 설득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에 강한 반감이 있는 작가의 정치 성향이 프로그램에 영향을 끼쳐 왜곡 보도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檢,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연합뉴스> 2009년 6월 18일)

이 모두가 결국 보도의 공익성을 부정하고 보도에 악의성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꼼수다. "국민에게 이를 충분히 설득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메일의 공개가 '법정 안의 재판'이 아니라 '법정 밖의 재판'을 위한 것이라고 순진하게 자백한다. 이렇게 기소를 위해 무리하게 불법까지 자행하는 데서, 역설적으로 검찰이 지금 법리적으로 얼마나 궁색한 처지에 놓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프리랜서 작가 한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이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만드는 프로그램 전체의 논조를 규정할 수 있겠는가? 이 가공할 논리적 비약에서는 어떤 처절함마저 느껴진다.

검찰은 30가지 왜곡을 발견했다 하나, 읽어보면 거의 문창과 습작 수준. 만약 내게 그 수사결과를 갖다 주면, 누구 말대로 '곱하기 2'해서 60가지 오류로 되돌려줄 자신이 있다. ('법대교수·의학전문가들, 검찰 <PD수첩> 수사 논리 반박', <노컷뉴스> 2009년 6월 19일) 검찰 발표는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므로, 왜곡 여부에 대한 판단은 반대편, 즉 <PD수첩>과 변호인 측의 목소리까지 들은 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에도 언론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줄줄이 흘린다. 검찰, 나이가 몇 살인데 왜 칠칠맞게 피의 사실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걸까?

그것은 물론 보수 언론의 입들 위로 내려주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검찰이 피의 사실을 흘리면 보수 언론은 그것을 졸지에 기정 사실로 바꾸어 놓는다. 도대체 이 검·언 유착에는 당연히 목적이 있다. 사실 법원이 미치지 않은 이상, 이 사안에 유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일단 기소를 해놓고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면, 시간이 많이 흘러 나중에 무죄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정치적으로 필요한 기간만큼은 <PD수첩>에 사실상 유죄 판결을 내려둘 수 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뭔가 뜨겁게 달아오른 것을 잠재우는 효과는 낼 수 있다.

법정에서 내려질 판결에 관계없이, 오직 기소만으로도 그들은 많은 일을 도모할 수 있다. 가령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그 특유의 오버액션으로 MB 정권의 은밀한 욕망을, 청와대의 정치적 리비도를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영국이나 일본 같으면 경영진이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총사퇴해야 하는 일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현업에 있는 이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 보자.

이근행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철저히 계산된 발언이며, 미디어법 국면이라든가 방문진 이사선임 시기까지 임박했으니 이런 것들을 고려해 내놓은 발언일 것"이라며 "<PD수첩>의 기소와 수사 결과 발표가 나오자마자 청와대가 받아서 취재진을 비난한데다 오늘은 이런 식으로 공영방송의 경영진 진퇴를 협박하듯이 거론한 것은 MBC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문진 이사, 총사퇴할 사람은 이동관·청와대', <미디어오늘> 2009년 6월 19일)

듣자 하니 이 대변인은 그는 <PD수첩>의 보도가 "심하게 비유하면 음주 운전하는 사람에게 차를 맡긴 것이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의 공식 입장을 말하는 대변인이 이 사용하기에는 별로 적절해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국민의 공감을 살 것 같지도 않은 썰렁한 독설이다. 그 말을 듣고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어, 검색창에 '음주'와 '이동관'을 넣고 엔터키를 눌렀더니 기사가 하나 뜬다. 이번 브리핑은 멀쩡한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자유선진당 박현하 부대변인)는 또 "이 대변인은 정부가 쇠고기 고시를 관보에 게재하던 지난 26일 출입기자들에게 '음주 브리핑'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 대변인의 거듭된 일탈은 청와대 2기 인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권력의 측근으로서 누리는 호가호위인가 객기인가"라고 반문했다. ('촛불집회 쓰지 말라? 이동관, 월권 넘어 언론 통제', <노컷뉴스> 2008년 6월 30일)

한나라당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PD수첩>'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치부를 감출 의사가 전혀 없다는 의미에서, 이 정도면 거의 '바바리맨'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확정되지 않은 피의 사실에서 초강력 발언으로 날아가는 비약에는 매우 수상한 구석이 있다. 사생활 침해의 비난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사적 이메일을 공개하는 기동 역시 해괴하기 이를 데 없다.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정작 정운천과 민동석의 명예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한나라당-보수 언론이 연출하는 저 오버액션은, 시국 선언이 이어지는 이 찬란한 6월에 국민의 대다수의 반대에 부딪힌 6월 '미디어법'의 운명을 요란하게 걱정하는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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