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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들을 잊은 당신, 지금 행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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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들을 잊은 당신, 지금 행복합니까?"

[울부짖는 용산 ①] 나는 묻는다

오는 29일, 경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6명이 숨졌던 용산 참사가 100일을 맞는다.

당시 사고 소식은 한국 사회를 경악케 했다. 철거 과정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대형 참사였다. 경찰의 진압 과정부터 재개발 정책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를 놓고 비판이 이어졌다.

검찰은 농성을 벌인 철거민만 기소하고 경찰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정부는 용산 참사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철거민 유가족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사회 역시 참사를 잊었다. 지금도 매일 사고 현장에서는 촛불 집회가 열리지만 발길은 뜸해졌다. 그 와중에 현장 주위에서 철거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굴러갈 수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프레시안>과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용산 참사 100일을 맞아 용산 참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글을 공동으로 연재한다.

▲ "이제 '용산 참사 100일'이다. 한 겨울에 일어났던 용산 참사, 이제 계절은 바뀌어 봄, 산과 들에 봄꽃이 흐들어지게 피어나더니 어느새 그 꽃들은 지고 신록으로 덮어 버렸다." ⓒ뉴시스

용산 참사 100일을 맞는 사람들

이제 '용산 참사 100일'이다. 한 겨울에 일어났던 용산 참사, 이제 계절은 바뀌어 봄, 산과 들에 봄꽃이 흐들어지게 피어나더니 어느새 그 꽃들은 지고 신록으로 덮어 버렸다. 눈 내리는 겨울에 시작한 이 싸움은 봄의 절반 이상을 지나고 있으니 곧 여름을 볼지도 모른다.

1월 20일,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일어났던 참사를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까? 우선 100일을 맞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유가족들이 추모객이 거의 끊긴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까도 의문이다.

나는 용산범대위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지난 2월 20일 참사 한 달을 맞아 현장에서 진행된 촛불 집회에서 진심으로 유가족들에게 사죄했다. 참사 한 달이 넘었지만, 정권의 사과도 받아내지 못하였고, 진상 규명도 못했음을 사죄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하루 빨리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다시 두 달을 넘어, 석 달, 이제는 100일을 맞게 되어 너무도 죄스럽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목 놓아 울어도 시원하지 않은 유가족들의 피 말리는 100일, 아마도 유가족들에게는 한만 채곡히 쌓인 100일일 것이다.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는 용산 참사를 외면한 채 유가족과 전철연, 용산범대위를 고립, 고사시키려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용산범대위가 제시한 5대 요구안에 대해 어떤 반응도 없이 무시할 뿐만 아니라 지쳐 떨어질 날을 기다리는 듯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틈만 나면 장례식장을 침탈하여 수배자들을 잡아갈 듯한 기세다. 그러므로 매일 이곳은 전쟁터다. 크고 작은 일로 경찰이 신경을 자극하여 비상이 걸리기 하루에도 여러 번이고, 그럴 때마다 항의하던 전철연 회원들이 연행되고, 구속되기도 한다.

정부는 2월 9일 검찰 수사 결과로 모든 게 끝났다는 태도에서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죽고, 여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은 입은 대 참사를 두고 '철거민 유죄, 경찰 무죄'라는 결론만을 내놓은 채 이를 믿으라고 강요했다. 더욱이 당시 일어났던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이용하여 사건을 은폐하려고 청와대가 나서서 시도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날의 밤 상황을 생생히 기억한다. 하루 종일 남편이자 아버지인 가장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울부짖으며 발을 동동 구르던 유가족들을 기만하여 경찰서에 잡아놓은 사이에 검찰수사본부가 대규모로 꾸려지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가족들에게 통보도 하지 않은 채 부검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끝에 기자들을 통해 시신이 순천향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달려온 유가족들에게 절차를 이유로 시신 확인조차 못하게 막던 경찰들, 그리고 끝내 날을 넘겨 새벽에서야 자신의 가족의 참혹하게 불에 탄 시신을 확인하고는 혼절하던 유가족의 모습, 그 지옥 같던 밤을 잊을 수 없다.

▲ "나는 그 지옥 같던 밤을 잊을 수 없다." ⓒ연합뉴스

지금은 '전쟁' 중

그러면서 떠나지 않았던 의문은 그것이었다. 과연 남일당 건물 철거민들의 농성 진압 작전이 김석기 당시 서울청장의 승인으로 진행되었을까? 최고책임자가 과연 서울경찰청장이었을까? 청와대는 사후에나 알았을까? 검찰의 대규모 수사본부도 검찰이 알아서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꾸린 것일까? 등등이 떠나지 않았다. 마치 철거용역업체의 뒤에 재개발조합이 있고, 그 뒤에 사실은 삼성물산과 같은 건설자본이 웅크리고 앉아서 조종하고 있듯이, 검찰의 뒤에는, 경찰의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평소 철거 지역은 무법천지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지역이다. 용산4구역도 마찬가지여서 덩치 큰 깡패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모욕, 협박은 공포로 다가왔다. 그때마다 경찰은 너무 멀리 있거나 용역들의 편이었다. 덩치 큰 깡패들에 폭행을 당하고도(철거 지역에 동원되는 용역들은 조폭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폭로되었지 않은가) 오히려 철거민만 영업 방해니 폭행죄니, 협박죄니 하는 등의 혐의로 경찰 소환 조사를 받고, 사법 처리되기 일쑤다. 철거민들은 헌법에서 규정한 기본권을 보호해주지 않아도 좋은 '비국민'으로 취급되었다. 그런 끝에 철거민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이 망루농성이었다.

그 방어용 망루에서 몇 달이고 버티다 보면 조합이 협상하자고 들어오기 마련인 것이어서, 그때까지 버티기로 작정하고 오른 용산4구역 철거민들이었다. 대화를 하자며 폭력을 피해 올라간 그들에게 어떤 대화나 설득, 협상도 없이 무력으로 진압해 버린 게 용산 참사다. 장기화될 수 있는 농성을 25시간만에 특공대까지 동원해 진압하는 초강도의 진압작전을 과연 경찰이 세울 수 있을까? 박종환 전임 경찰종합학교 교장이 퇴임 인터뷰에서 지적하였듯이 경찰의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앞섰을 것이다. 정부는 현장에서는 경찰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에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음에도 용산4구역에서는 3월 11일부터 야금야금 철거작업이 진행되었고, 다시 이 철거작업을 막다가 철거민들은 여전히 깡패들에게 폭행당하고, 욕을 얻어먹고, 경찰에 연행된다. 용산4구역의 철거민들은 언제고 경찰에 의해 구속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려 있다. 이처럼 지독하게 편파적인 법집행이 가능한 것은 철거민들은 싹 쓸어버려도 된다는, 기본권을 지닌 국민으로 대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장례를 치를 수 없다

그러므로 참사 100일을 맞으면서도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용산4구역에서 철거민들이 요구하던 소박하기만 한 이주 대책과 생계 대책이 마련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용산 참사를 겪은 이 와중에도 국회에서는 재개발 요건을 완화하는 재개발 관련법들이 통과되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서울에만 뉴타운, 도심 재개발 사업 지역이 500군데가 넘고, 그곳에서 언제고 용산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살인 개발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묻는다. 이 지독하기만 전쟁에서 법과 원칙을 말할 수 있는가. 법은 늘 건설자본과 권력을 쥔 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도구일 뿐,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의 피눈물을 강요하는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체계적인 국가폭력을 우리는 용산에서 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무엇이 폭력인가. 전철연이 폭력집단인가. 그렇다면, 철거 현장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철거용역업체의 폭력은 왜 방치되어도 좋고, 기껏해야 저항폭력에 불과한 철거민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 폭력으로 매도되고,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는가. 오히려 폭력의 희생자인 이들과 연대하기를 주저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폭력을 저주하는지 답해야 한다.

다시 묻는다. 용산을 보고도 아직 이 나라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국가라는 착각 속에 빠진 이들이 있다면, 민주주의국가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용산이란 이름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이처럼 철저하게 짓밟혀도 되는지 묻고 싶다. 용산범대위가 하는 집회는 100일 동안 다 한 건도 '허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추모제를 치룬 죄 때문에 많은 이들이 소환되고, 구속되고, 수배되는 이 현실을 해명해 보라.

그래서 '용산'은 비켜갈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수많은 과제들이 있겠지만 사람 목숨 여섯이나 희생된 21세기 서울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학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혹자는 말한다. 먼저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나도 빨리 장례를 치르고 이 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이 불안하기만 수배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라도 간절하게 장례를 치루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신부님들이 매일 미사를 드리고, 아직도 사람들이 매일 현장을 찾아 촛불을 들고, 돈을 모으고, 쌀과 김치를 보내고, 간절한 소망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먼저 용산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이 시대의 현실을 처절하게 증언하는 용산 문제로부터 비켜나서 인권과 민주주의는 없다.

용산 참사 100일,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하는 많은 이들의 연대의 물결을 보고 싶다. 살기 위해 올랐던 망루에서 죽어 내려온 그들을 잊고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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