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안보에 직격탄을 맞은 일본의 강경한 입장, 북한과 대화를 원하는 미국의 애매모호한 태도, 그리고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센 반발 속에서 유엔 안보리는 14일(한국 시간) 비교적 경미한 제재 수준인 의장 성명으로 사태를 일단 봉합했다.
우여곡절은 또 있었다. 광명성2호 시험통신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리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발사한 은하2호는 "광명성2호가 성공적으로 지구 궤도에 진입했다"는 그들 주장과 달리 한·미·일 정보당국의 종합적 판단으로는 지구 궤도 진입에 실패한 것으로 판정한 것이다.
▲ 북한 미사일 발사 예상도. ⓒ국민일보 |
특히 제임스 카트라이트 미 합참 부의장은 로켓 발사 이튿날 "3번(1998년, 2006년, 2009년)이나 거푸 실패하고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미사일을) 구입하겠느냐"며 북한 로켓 발사의 의미를 일소에 부쳤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판정에 심대한 오류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북한이 한·미·일의 최초 관측보다 '더 성공적으로 로켓을 발사했다'는 분석이 제기된 것이다.
"北 기술 수준 예상 밖"
미국 항공우주과학 전문사이트인 <스페이스플라이트 나우(Space flight Now)>는 12일 '북한 로켓 초기 생각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로켓이 (우주 궤도 진입에) 실패해 대기권으로 추락하기 전에 일시적으로 우주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또 "발사체가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수백 마일 더 날아갔고 전보다 훨씬 개량된 조향 장치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사이트는 레이더 추적과 미 공군의 미사일 경보 위성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북한 로켓이 발사대에서 약 3058킬로미터(㎞) 날아갔다는 미국과 일본의 초기 분석과는 달리, 실제로는 최대 805킬로미터나 더 날아가 3846킬로미터를 비행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단계 추진체는 북한이 사전에 선박과 항공기들에 경고했던 위험 지역에 실제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로켓의 우주 정상궤도 실패와 관련, 이 잡지는 "발사체의 3단계 고체추진연료가 적절히 분리되지 않아 일어났다"면서 "2단계 추진체는 정상적으로 작동해 우주로 향해 올라갔지만, 그곳에서 분리 발사되게 돼 있는 3단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고 당초의 판단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종합해 보면 "광명성 2호는 40.6도의 궤도 경사각으로 지구로부터 제일 가까운 거리 490킬로미터, 제일 먼 거리 1426킬로미터인 타원 궤도를 돌고 있으며 주기는 104분12초"는 발사 당일 오후 조선중앙통신의 발표는 허위라 쳐도, 2단계 추진체의 작동과 우주궤도 진입 실패라는 판정은 오류임이 확인된 셈이다.
발사 실패 불구 챙길 건 다 챙겨
아울러 <스페이스플라이트 나우>는 북한이 공개한 로켓 발사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이륙 당시와 직후 로켓 측면에서 나온 연기는 로켓이 고도제어장치를 갖췄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장거리 로켓이 우주 궤도 진입에 실패했고, 본토나 하와이에 위협이 되지 않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미국의 발표나 북한 미사일 발사 전 요격 등의 강경 자세를 보여 온 일본이 정작 북한의 로켓 발사를 지켜만 본 것 역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정황임을 유추할 수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주변의 평가절하 코멘트와 달리 북한은 이번 로켓 발사로 챙길 것을 다 챙겼다는 사실이다. 우선 1년에 "2억~3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입원"(2000년 여름 남한 언론사 사장단 방북 시 김정일의 멘트)이라는 대륙간탄도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의 미사일의 몸값을 이번 기회에 대폭 올려놓았다. 그동안 북한의 단골 고객이었던 세력들은 이번 기회에 더 진전된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점수를 더 줄 것이다.
따라서 인민들이 굶어죽는 판에,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실제로 실패한) 5억 달러 규모의 미사일 발사를 무모하게 강행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주위의 비아냥은 어느 면 생뚱맞은 것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입지를 재차 다진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안보리 의장 성명이 채택되자마자 북한은 "6자회담 불참하고 핵개발을 지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짐짓 벼랑끝에 서서 국제사회와 미국에 대해 경계색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스스로의 몸값을 높인 것이다.
美, 우방 한국에 多重 족쇄
정말로 유념해야 할 사항은 이제부터다. 아직까지 300킬로미터 사거리 능력밖에 갖고 있지 못한 우리의 로켓 기술에 더해, 러시아가 당초 계획보다 훨씬 더 엄격한 인증 시험을 요구하면서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일정이 늦어져 우여곡절 끝에 오는 7월 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 최초의 소형 위성 발사체 KSLV-I의 신세는 처량하기 짝이 없다.
1987년 4월16일 미국·독일·영국·이탈리아·일본·캐나다·프랑스 등 서방선진7개국(G-7) 주도로 우리나라 등 33개국이 미사일 확산 방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채택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에 따라 우리나라는 500킬로그램(㎏) 이상의 탄두를 300킬로미터 이상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무인비행체 및 이와 관련된 기술의 확산 방지와 핵·화학·생물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개발 발사할 수 없는 족쇄를 차고 있다.
여기에 한미 미사일협정에 따라 고성능에 언제든 로켓에 저장해 둘 수 있어 군사용 미사일로 쓰기에 적합한 고체연료조차 쓸 수 없도록 돼 있다.
科技에 대한 北 관심 부러워
지난 9일 북에선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해 3기 체제를 굳혔다. 그야 각본대로라고 치부하면 그리 주목할 것도 별로 없다.
기실 관심을 끈 것은 이날 김정일 제의로 그의 매제이자 권력 2인자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포함, 이번 로켓 발사의 주역인 주규창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과 주상성 인민보안상,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을 국방위원에 새로 뽑은 사건이다.
특히 국방위에 신규 진입한 주규창에 대해선 북한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동당 군수공업부 제 1부부장인 그는 지난 5일 김정일의 로켓 발사 참관 당시에 바로 옆에 서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전문가'다.
▲ 김정일이 5일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찾아 광명성2호의 발사 전 과정을 관찰한 후 과학기술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왼쪽은 전병호 당 군수공업담당 비서이며 오른쪽은 개량형 로켓 개발 총책임자로 알려진 주규창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다. ⓒ연합뉴스 |
김책공업대 출신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로, 지난 1983년 노동당 기계공업부 부부장을 시작으로 군수공업 부문에서 활약해 왔다. 정황상 이번 로켓 발사와 관련해 (실패했음에도 김정일로부터) 그 업적을 당당히 인정받아 국방위에 새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는 김정일이 이번 발사가 물리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국제정치 역학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치부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무튼 작년 상반기 김정일을 수행한 횟수가 1회에 불과했던 주 부부장은 로켓 발사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 김정일 수행이 6회로 급증했다.
북한의 군수공업부는 북한의 미사일 등 전력과 관련한 장비 개발과 생산을 관장한다. 군수공업부는 형식적으로는 국방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지도를 받는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할기관이라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군수공업부 산하의 제2자연과학원(우리의 국방연구소 격)에서 미사일을 개발하고, 생산은 제2경제위원회 4총국에서 운영하는 각 공장에서 하고 있다. 군수공업부 부장은 전병호 당비서가 맡고 있지만 실질적인 책임자는 주 제1부부장이다. 여기에 부총리 4명 중 전승훈 부총리를 해임하고 오수용 전 전자공업상을 기용한 것 또한 눈에 띄는 변화다.
北은 그런데, 우리는?
이런 요건이야 우리의 미사일 관련 기술을 압박하는 외생변수라 치자. 정말로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이제부터다. 비록 김정일이 핵과 미사일에 스스로의 존립과 명운을 걸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북 최고 실권자의 이 같은 행보를 보면서 드는 자괴감은 전혀 상반된 남쪽 최고 지도자의 엇갈린 행보다.
김영삼 정부 이후 홀대받아온 대한민국 과학기술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나마 지금 비리 혐의를 듬뿍 쓰고 있는 노무현 정부 시절엔 외형만으로도 부총리급 과학기술부 장관이 과학기술을 관장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서면서 과학기술 행정은 교육과학기술부에 피통합돼 제2차관 소관으로 격하됐다. 그나마 확실한 콘트롤 타워가 어디 있는 지 누구도 제대로 아는 이도 답하는 이도 없다.
북한을 고무 찬양하자는 게 아니다. 북한이 처한 절박한 상황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우린 뭐 다른가? 과학기술에 목을 매지 않고는 저탄소 녹색성장도, 지속 가능한 발전도 만사휴의(萬事休矣)라는 것이 상식이 된 지금, 조속히 컨트롤 타워를 확정하는 동시에 최고 지도자가 직접 과학기술을 챙기는 단안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김정일이 핵과 미사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도 결국 과학기술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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