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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부동산은 구원투수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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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부동산은 구원투수가 될 수 없다"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 현안<하>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현재까지 무려 9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투기 억제책 중 서울 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규제를 풀었다. 부동산 정책을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일단 부동산 규제부터 푸는 것은 이명박 정부만 한 일은 아니다. IMF 위기로 어느 정도 부동산 거품이 해소된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마치 공식처럼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을 활용한 결과, 부동산 거품은 IMF 위기 전보다 훨씬 많이 끼었다. 그리고 현재 그 거품이 꺼지고 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투기 촉발 정책'으로 거품 붕괴를 막고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잠시 반등하는 듯 했던 강남 부동산값이 2월 들어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김종인 박사는 "거품은 어떻게든 터질 수밖에 없고, 거품이 커질수록 꺼지는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이 따른다"며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자칫 일본의 90년대 장기불황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명박 정부가 '예고된 실패'를 피하기 위해서는 구조의 문제를 경기부양을 통해 회피하려는 '꼼수'를 버리는 게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편집자


▲ ⓒ프레시안
대한민국 노조가 유래 없는 강성 노조?

전성인 : 다음으로 이번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에 대해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노동 문제는 지금 겉으로 드러난 기업 구조조정, 부동산 문제 못지않게 우리 경제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노동문제로는 해고, 청년 실업,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2년 전에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들었는데 올해 6-7월 한 획을 긋는 시기가 도래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 아무리 올해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물가가 지난해 많이 상승했기 때문에 실질임금의 하락을 경험한 근로자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기업 내부에서 임금 인상 등 노사 협상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이슈들이 생길 것 같습니다. 올해 노사 관계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김종인 : 나는 약간 생각을 달리 합니다. 다시 말해 올해 노사관계 차원에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노조가 아무리 강성이라고 하지만 지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직장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노조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어요.

최근 불황 속에 노사관계가 합의를 봤다면서 지난 1월에는 노사분규가 없었다고 하는데 결국 시장 상황이 근로자 쪽에도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노조도 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는 힘을 쓸 수가 없어요. 국민들이 지금 경제 때문에 다들 걱정하는데 노조가 조합의 이해 때문에 분규를 할 정도로 불합리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사회에서 87년 6.29선언 이전까지 노조는 거의 힘이 없었어요. 87년까지 경제가 발전했지만 소득 분배는 결코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87년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노사분규가 쏟아지고 임금이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2년까지 보니까 소득증대에 비해 임금이 크게 높아지진 않았어요. 지금 언필칭 노사문제 때문에 우리 경제가 잘 안 된 것처럼 몰아붙이지만, 그동안 우리경제가 잠재성장률 정도로는 늘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우리가 근로자 문제가 심각한 나라는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근로자들의 임금이 높아서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2004년에 수출이 30% 증가했고 그 후에도 2007년까지 매년 두 자리 숫자의 수출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진짜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수출이 그렇게 늘어날 수가 없죠. 우리가 일부 지역의 노사분규를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만큼 노동시장 유연한 나라가 어디 있나"

전성인: 불황기에는 언제나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말하면 정리해고 문제를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요새는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더 많이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참여정부에서 씨앗을 뿌린 것인데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김종인: 재계의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이야기하는데 지금 한국 노동시장만큼 유연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반을 넘는 상황인데요. 기존 노조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해결 안 해주면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력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해서 현 비정규직법이 생겼습니다.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뒤 2년이 지나면 정규직 고용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인데, 지금 나타나는 문제, 즉 기업주들이 2년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을 다 해고하고 다시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은 법을 만들 때부터 이미 우리가 다 예상하고 있던 문제입니다. 뻔히 알면서 순간적인 생색을 내기 위해 법제화하니까 불과 2년 만에 문제가 튀어나오게 된 것입니다.

과거 얘기를 좀 하자면 70년대 1차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 때는 서구에서도 처음 당하는 일이라서 경기 상황과 관련 없이 노조들이 임금인상을 크게 요구했었습니다. 그게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죠. 서구도 경험으로 통해 알게 되면서 굉장히 많이 절제하고 있어요.

나는 우리 노조가 다른 나라에 비해 극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대중공업에서 과거에 크레인에 올라가고 이런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 노동운동사를 보면 영국의 노동운동은 피의 역사입니다. 남의 나라가 수백년 동안 겪은 것을 우리는 불과 십수년 동안 겪는 것 뿐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대한민국 노조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노조라는 소리를 하는 건 좀 곤란하지요.

우리가 이미 발달된 나라에 가서 공부하면서 그 발전 과정은 안 보고 결과만 보고 왜 우리는 안 되냐고 그러는데, 우리는 아직 초보단계에 있는 것 아닙니까.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연말에 국회에서 일어난 사태를 놓고 이런 국회가 어딨냐고 하는데, 예전에 영국은 의회에서 의원들 간에 칼로 찌르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나는 본질적으로 노조가 경제상황을 넘어 자기 요구를 관철 못 시킨다고 봅니다. 우리가 기업노조 양태니까 특정 기업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그건 기업주와 노조 양쪽의 문제입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SOC 투자보다 저소득층 생계 대책이 시급

전성인 : 근로자의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기존에 고용돼 있는 사람, 또 하나는 그 안에 못 들어간 사람, 즉 실업자나 또는 불안정하게 고용돼 있는 비정규직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용돼 있는 사람의 경우 노조가 있건 없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고, 그렇다면 큰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임금인상을 자제하거나 일자리 나누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청년실업자나 해고가 임박한 비정규직 근로자 같은 경우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뒤를 돌아볼 게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쪽은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김종인 : 그건 사회적 긴장의 문제로 봐야지, 노사 문제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 문제는 정부가 실업대책을 강구해야지요. 지금 경제가 어려워서 고용이 축소될 수밖에 없고 신규 고용은 좀체 전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이걸 누가 해결할거냐, 정부의 몫입니다. 정부가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그 사람들에게 생존을 보장하는 길을 제공해야죠. 지금 정부가 목표가 부정확한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것보다 이런 사람들의 생계대책을 세우는 게 오히려 경기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거품은 어떻게든 터질 수밖에 없어

전성인 : 노동문제는 이 정도로 마무리 짓고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사실상 거의 다 풀어줬습니다.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십니까?

▲ 김종인 박사 ⓒ프레시안
김종인
: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보면 경기가 어려우면 무조건 부동산을 구원투수처럼 생각합니다. 내가 (90년대 초에) 부동산 투기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 한국에 다시 한 번 투기가 나면 한국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IMF 위기 이후 2001년 미국에서 9.11사태가 터지니까 11월에 경기활성화 차원에서 경제대책을 발표했는데, 이게 사실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강만수 장관이 발표한 위기 대응 정책도 전부 부동산 규제완화였죠.

다른 나라들을 보면서 경제정책자들이 반성할 필요가 있는데,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어떻게 발생했습니까. 9.11사태가 발생하니까 부시 정부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금리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내리고 은행들이 대출도 늘려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도 싼 금리로 집을 사게 만들었어요. 그 집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라가니까 소비가 엄청나게 늘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거품이 터진 것이 서브프라임 사태 아닙니까. 거품은 어떻게든 터질 수밖에 없어요. 거품이 커질수록 꺼지는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이 따릅니다.

미국이 지금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또 하나의 위기의 씨앗을 뿌리고 있지 않나 걱정도 됩니다. 9.11 이후 처방 방식과 거의 비슷한 방식을 지금 FRB 의장인 버냉키가 하고 있어요. 버냉키가 1930년대 디플레이션을 연구한 전문가라지만 현 경제 여건은 당시와는 다릅니다. 미국에서 독자적인 신기술이 개발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일본식의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어요.

우리도 부동산 바람이 불면 투기가 일어나서 경제가 좀 나아지지 않겠냐 기대하는 것 같은데, 일본은 90년대 초 경기를 활성화한다면서 공공부문 투자를 늘리고 전 국토를 개발하는 식으로 했는데, 부동산은 안 오르고 경기는 회복이 안 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과거 60-70년대에 우리가 사회간접자본의 투자를 늘려 경제효과를 봤다고 하지만 같은 정책으로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면 곤란합니다. 산업화 초기에 도로 등 기반시설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이미 다 포화상태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하다가 일본이 90년대 겪은 장기불황에 빠지면 이후에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한국경제가 처한 위기는 간단한 상황이 아닙니다. 국제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위기로 수출 수요가 확 무너졌습니다. 또 국내는 97년 이후 양극화 현상이 심화돼서 중산층이 무너져 소비가 늘어날 수 없어요. 수출이 줄고 소비가 주니까 투자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게 공공부문 수요인데, 이걸 통해 다른 수요를 모두 불러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는 과거 관행에 사로잡혀 부동산으로 경기부양하면 어떻게 되지 않겠냐고 기대하는 것 같은데, 물론 다른 선택이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너무 거기에 의존하지 말고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솔직히 찾아내서 처방해야지만 한국경제가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공공부문에 돈을 집어넣는 것은 짚불을 태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돈 넣을 때만 반짝 하고 끝입니다. 구조의 문제를 경기 문제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조적 모순을 경기부양책으로 해결하겠다?

전성인 : 정말 여러 가지 한국경제정책 운용의 모순이 집약돼 있는 게 부동산인 것 같습니다.

김종인 : 난 우리나라 경제정책 수립가들이 지난 30년의 모습을 한번 냉정히 분석해봤으면 해요. 그래서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정책을 썼으면 합니다. 솔직히 우리가 10년을 주기로 위기를 겪지 않았습니까? 겪을 때마다 상황이 똑같아요. 근본적인 구조를 바꿀 생각을 안 해요.

전성인 : 정책의 일관성 문제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 정부는 집권 초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경제정책을 펼치는 데 실패한 것 같습니다.

김종인 : 환율이 최근 40% 가까이 평가절하 됐습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 환율이 40% 절하됐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체질이 취약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그걸 솔직히 인정하질 않아요. 2007년 말 한국경제가 1인당 국민소득(GNI)이 2만 달러가 넘어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1만2000달러로 줄어든 것입니다. 원래 목표인 4만 달러는 언제 달성할 것입니까. 정책은 일관되게 얘기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하면, 거기서 신뢰가 상실됩니다.

지금 한국은행이 고민스러울 것입니다. 국제사회 나가면 각국 총재랑 어울려서 얘기도 하고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상황을 뭐라고 설명할지...지난 1월에 물가상승률이 3.7%였어요. 그런데 지금 기준금리가 2.0%면 이미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셈이죠. 그런데도 금리 인하를 하겠다고 합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2.5%에서 2.0%로 낮췄습니다. 거기는 물가상승률이 1% 이하로 떨어졌어요.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2.0%를 마지노선으로 얘기하더라구요.

▲ 전성인 홍익대 교수 ⓒ프레시안
이번 국제 경제위기에서 어느 나라가 경제운용을 함에 있어 정책을 제대로 잘 코디네이트 해서 이길 것이냐가 판가름 날 것입니다. 위기는 '국제' 경제위기이지만 해결은 각 나라가 독자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가 경제적인 취약성이 적은가를 볼 것입니다.


전성인
: 이번 위기는 각국 정부가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씀을 했는데, 우리나라 경제팀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맞는 제대로 된 시험장인 셈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그동안 위기가 오면 일단 적당히 아편을 써서 시간을 벌고 있다가 우연히 외부 여건이 호전되면 거기에 힘입어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제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선 국제경제가 쉽게 호전될 가능성이 없고, 다음으로 부동산 거품 자체가 커져 있는 상황이라 이런 상태에서 부동산 경기를 또 부양하면 그 효과가 단순히 안정제를 투여하는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김종인 : 동감입니다.

한국은행, '재정부 남대문 출장소'로 돌아가려나

전성인 : 마지막으로 중앙은행 애기를 해봤으면 하는데요, 최근 한국은행법 개정 문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97년 한은법을 바꾸면서 물가안정을 통화정책의 유일한 목표로 채택했습니다. 이게 밀튼 프리드만 식 아이디어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입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단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게 정책투명성이나 신호의 안정성에서 바람직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한은과 정부 모두가 내심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은 입장에서는 금융감독 권한의 회복을 통해 97년에 잃어버린 권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거의 비원에 가까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만 생기면 감독권이 없다는 것을 탓하고, 반면에 감독권을 좀 주면 모든 이슈에 타협해 버립니다. 대표적인 게 자본시장통합법 아닌가요.

정부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한은이 물가만 보는 게 여러 가지로 불편할 수 있습니다. 경기가 어려울 때 물가안정목표제 때문에 섣불리 금리를 낮출 수 없다고 하니까요.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국제유가가 높아서 한은이 금리를 낮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높였죠. 그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금리를 낮추기 시작해서, 지금은 만사 포기하고 금리를 낮추는데 올인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물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데 명시적으로 언약한 물가안정목표를 못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3년 동안 물가상승률 3%를 내걸었습니다. 물론 ±0.5%라는 여지를 좀 남겨두기는 했지만, 지난 2007년에는 물가가 2.5%, 작년에는 4.7%였습니다. 그러면 올해 3% 아래로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망이 과연 달성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물가가 떨어진다는 전망으로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한은 입장에서 지금과 같은 시기에 돈을 찍어내는 게 시장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라는 면도 있어서 생색을 내고 있는 측면도 있죠. 이런 배경에서 한은의 목표 중에 경제안정 목표를 추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고민스러운 게 중앙은행이 급할 때 경제안정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죠. 중앙은행이 지금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영란은행이 경제위기 때 은행들에게 돈 빌려 주면서 위상을 찾으면서부터 입니다.

그러나 그런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그나마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붙들어왔던 제약을 허물어 버리고 한은이 예전 개발연대 때처럼 무작정 돈 찍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앞섭니다.

더이상 단기적 처방으로는 안 된다

김종인 : 어느 상황을 전제로 제도를 고치는 발상을 하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을 전제로 해서 제도를 고치려면 모든 게 비정상적으로 될 수밖에 없어요.

최근은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물가와 관계없이 통화량이 증가해도 되는 상황인데, 지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은법을 고치면 이전처럼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가 될 가능성이 커요. 이성태 한은 총재가 그동안 논리를 갖고 자기 방어를 했는데,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니까 정부 논리대로 가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고 나가야 되니까, 양심의 갈등은 있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금융기관의 유동성 공급 방법으로 정부가 강제로 자기자본을 증진시키는 공적자금 투입이 안 되니까 한은이 70년대처럼 한은특융을 해주는 식으로 은행에 돈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나 서민들 입장에서는 금융기관에 돈이 있어도 대출이 안 되니까 22조가 어디 갔냐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안정화 기능까지 가져야 한다는 논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기적 생각에서 한다면 몰라도 모순된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전성인 : 이 정부의 모순의 핵심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임명한 것입니다. 참여정부 때문에 경제가 잘못됐다면서 참여정부 때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을 지낸 사람을 새로운 경제팀 수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가 압축 성장 코스트를 치룰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한국경제는 비유하자면 지금 애가 잘 안 커서 성장호르몬 주사를 놓아서 인위적으로 키워놨더니 키는 큰데 뼈도 튼튼하지 않고 부실해서 휘청휘청 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 대응은 체질을 바꾸고 전체적으로 튼튼하게 만들 생각을 해야 하는데 휘청휘청할 때마다 단기 처방을 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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