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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에 좋은 것은 한국에도 좋다', 맞나?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의 근본 개혁이 안되는 이유 <하>

1960년대 후발주자였던 한국이 선진국을 빨리 따라잡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몰아주기'였다. 한정된 자원을 특정 소수 기업에 몰아주면서 이들이 성장을 주도하게 했다. 이렇게 형성된 재벌체제는 지금까지 한번도 구조적인 변화를 겪지 않았다.

국가와 기업의 이익이 동일시되는 현상은 국가가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힘을 갖게 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시스템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김종인 박사는 지적했다.

특히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해줄 경우 특정 기업들에 나라 경제를 의존하는 왜곡된 경제구조의 문제는 더 심화될 것이다. "산업자본이 들어가 금융을 점령한다면 한 기업의 몰락이 국가 전체 운묭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김 박사는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가 '공정한 심판'으로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위기 극복은 요원한 일이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1월 28일 김종인 박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선성장 후분배, 분배는 과연 언제?

전성인 : 앞에서 산업화 이후 한국경제의 위기와 관료주의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제 재벌체제를 좀 살펴봤으면 합니다.

IMF 위기 이후 재벌개혁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으로 주주권 강화, 이사회의 책임 강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순환출자, 문어발식 확장 등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이 한 때 폐지되었다가 다시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개혁의 배경에는 재벌들이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거대한 경제적 자원을 좌지우지한다는 데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업 쪽 얘기를 들어보면 좀 다릅니다. 예전에 암묵적으로 정부와 합의했던 것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기업들은 70년대 정부가 기업공개촉진법을 통해 기업 공개를 강제하면서, 당시 암묵적으로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는 걸 합의했다고 주장하던데요.

▲ 김종인 박사. ⓒ프레시안
김종인
: 74년 5.29 조치로 기업공개촉진법이 시행되면서 공개적으로 선정된 기업은 법에 따라 재무구조를 공개하도록 했어요. 하지만 이는 72년 8.3 사채동결조치로 부실기업의 부채를 대거 탕감하는 혜택의 후속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업에게 불리한 것을 정부가 억지로 강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원해서 해준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당시 정부가 재벌들과 경영권 보장 약속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는 김용환 당시 경제수석이 만든 정책인데, 나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왜 그것을 기업의 사회 환원이라고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60년대 근로자들이 참고 견디고 해서 한국경제가 그만큼 온 건데 자본축적분의 일부라도 근로자들한테 주고 사회 환원이라고 해야지요. 내가 보기에는 빚을 많이 가진 기업들이 (주식매각을 통해 일반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재무적으로 허약한 회사를) 팔아먹는 거와 똑같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사회 환원이냐 그랬어요. 결국 기업공개촉진법은 기업들을 위해서 해준 겁니다.

기업은 솔직히 말해 어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이윤추구 하려는 사람들 아니요.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만 경제를 맡겨 놓으면 최근 국제금융위기에서 보는 것처럼 시스템 자체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정부가 룰을 갖고 규제해야 하는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있지요.

전성인 : 기업의 사회환원으로 논의가 흐르는데요. 그 때는 성장과 분배 중에서 거의 언제나 성장쪽이 우선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이런 경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요.

김종인 : 많은 사람들이 흔히 선성장 후분배 논리를 내세워 파이를 키워야 나눠먹을 수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후분배 된 적 있나요? 엄밀히 말해 분배는 정부가 하는 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재분배를 하는 것이죠. 분배와 관련해서 정부가 할수 있는 건 미국의 루즈벨트 뉴딜 때처럼 노동조합을 활성화해서 노동조합 의 힘을 보강하는 정도지요.

선성장 후분배에 대해 나는 이렇게 얘기했지요. 70년대 당시로는 정부가 기업에 명령하면 꼼짝 못하는 걸로 생각하지만 계속해서 경제가 성장한다고 생각해봐라. 성장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사이에 기업 힘이 커진다. 지금은 경제력이 정치력에 눌려있지만 점차 엇비슷한 상황으로 가게 될 거고 6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92년이 되면 경제력이 정치력을 압도할 거다. 지금 현재 상황이 그런 거 아닙니까? '어느 대기업이 망하면 우리 경제가 망하니 안 된다', 지금 우리 관료들이 그런 인식으로 경제를 운영해온 것이지요. 그러니까 전체의 조화를 위한 경제정책이라는 게 될 수 없어요. 경제위기가 오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죠.

전성인 : 분배를 말씀하셨는데 박정희 정부 시절 도입한 것 중 그래도 분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게 재형저축(근로자재산형성저축)이 있지 않습니까?

김종인 : 재형저축이 어떻게 나왔느냐? 기업공개촉진법 도입 후 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나왔어요.

내가 김용환 경제수석한테 한국경제를 총괄 입안하는 입장에서 너무 지엽적인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생각을 해야 한다. 산업사회에 새롭게 형성되는 세력인 근로자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권고했죠.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약속했는데, 이 분이 한 달 뒤 재무장관으로 가게 됐어요. 재무장관 되시더니 날 보자 그러더라구요. "김 교수 내가 재무장관으로서 여러 부처를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포괄적인 정책은 못한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재무장관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세제와 금융이니까 근로자 재산형성 저축이나 합시다." 그래서 고병우 당시 차관보와 아웅산 참사로 숨진 하동선 이재국장, 이헌재 당시 금융정책과장 등이 같이 재산형성저축법을 논의했어요. 이렇게 해서 재산형성저축법이 시작된 것입니다.

재형저축은 일반 저축이 아니라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위해 정부가 통상의 이자에 플러스 알파를 더 주는 건데요, 재무부에서 재형저축법을 만들어서 차관회의에 올라가니까, 여기서 왜 근로자만 주느냐고 반대도 많았었지요. 그래서 내가 차관회의까지 가서 그 필요성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전성인 : 박정희 정부가 분배를 위해 또 도입한 정책들이 있었나요?

김종인 : 75년 봄 경제수석이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내가 새로 생기는 사회세력에 대한 안전대책을 강조하는 사람이니 그 방안을 직접 만들어보라고 대통령께서 지시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혼자서 이 엄청난 작업을 못 한다고 하니까, 당신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성해서 위원회를 만들어 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당시 서울대 조순 교수하고, 또 노동법 하는 서울대 김치선 교수, 인사 관리하는 정종진 연세대 경영학 교수, 개발경제하는 서상철 고려대 교수,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과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특보가 '금융회'라는 비공개 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 위원회에서 제일 먼저 한 게 노동법을 전반적으로 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박 대통령에게 직접 어떤 자료를 요구해도 좋고 정부 정책을 비판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동청장이 바뀌면서 얘기가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왕 시작한 거 의료보험을 도입하자고 해서 만들려고 하는데 반대가 엄청났어요. 우리나라 실정에서 할 수 있냐는 거지요. 또 보건부에서는 73년 복지연금을 도입하려고 했어요. 일단 돈이 들어오고 나가지 않으니까 도입하자고 했는데 이것도 보류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내가 의료보험을 주창하니 당시 경제팀이 절대로 안 된다는 겁니다. 어쨌든 논쟁 끝에 박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박 대통령이 보고서를 보고 이거 하긴 해야겠는데 참모들이 다 반대하니까 최규하 총리를 시켜서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교수들의 의견을 물어 보고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평가교수단에서 내가 다시 의료보험의 도입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이 보고서를 총리가 대통령께 보고하고 그 결과 의료보험 도입의 결정이 이뤄진 거죠.

DJ-노무현 정부, 연금 개혁 통해 양극화 심화

▲ 전성인 홍익대 교수 ⓒ프레시안
전성인
: 우리 경제정책 중에서 사회화합을 위한 것으로 대표적인 게 재형저축,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외환위기 이전에 도입됐던 것이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별로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김종인 : 김대중 정부 때 최저생계비와 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한 것에서 그쳤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일부에서 좌파라고 하는데 경제사회정책적인 면에서 보면 오히려 더 기업 친화적 정책을 한 사람들이라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년에 양극화가 문제라고 아무 대책 없이 얘기만 하는데 그쳤습니다. 내가 보기엔 노 대통령 스스로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겠다고 했지만 '비전 2030'이라는 보고서를 하나 만들고 용두사미로 끝났지요.

민주화 이후 일반 대중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 시스템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끌어당길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을 한 게 하나도 없어요. 나는 노무현 정권이 오히려 양극화를 확대시켰다고 보는데, 연금개혁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65세 이후 생계 안정 자금으로 도입된 게 국민연금인데, 이 돈만 받아서는 사실 생활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김대중 때도 수급액을 줄이고, 노무현 때도 연금개혁을 통해 줄였어요.

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면서 매번 일시적으로 위기가 있는 것처럼 했지만 지금처럼 생활이 급격하게 나빠진 적이 없어요. 경제가 기본적으로 성장하니까 생활은 계속 향상만 됐지요. 그래서 아직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위기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위기다, 위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위기가 파급될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어요. 나는 금년 하반기 가면 위기가 보다 강렬하게 피부에 와 닿을 것이라고 봅니다.

전성인 : 이제 금융 쪽 얘기를 좀 해봤으면 합니다. 개발연대 시대엔 우리나라 은행들이 한편으로는 자금 공급줄 역할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동건설 붐 때도 확인됐는데 부실 기업을 떠안아서 재처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와서 시장개방하면서 자본자유화, 금융자율화를 얘기하다가 96년 OECD 가입하면서 자본시장을 확 개방했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자본이 국내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도 나왔죠.

이명박 정부가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것도 이런 비판을 등에 업은 것인데요. 지금 상황에서 은행들이 자기자본비율(BIS)을 높이기 위한 자본확충이 어렵다, 외국자본이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산업자본에게도 길을 터주자는 게 금산분리 완화의 명분입니다.

국민·신한·하나 은행이 살아 남은 이유?

김종인 : 우리나라 은행은 IMF 위기 전까지만 해도 자본수집 기능만 했습니다. 예금을 모아서 돈은 정부의 지시에 의해 나눠줬어요. 정부도 금융 본래의 기능을 무시하고 자기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기관으로 활용해, 우리나라에서 금융 전문인력이 양성되지 못했죠. 그렇게 오다가 82년에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사건으로 불린 장영자 사건이 터졌어요. 이 사건이 계기가 돼서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과 강경식 재무장관이 은행들의 민영화를 추진했습니다. 은행들을 민영화하고 사채시장 양성화를 위해서 단자회사를 하루 아침에 20개 가까이 만들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국회 재무위원회에서 옥신각신했죠. 은행을 민영화하면 진짜 은행이 자율화될 수 있느냐 말이 많았는데 결국 민영화 됐지만 자율 경영은 못 했죠. 금융기관의 소유만 바뀌었지, 나머지는 크게 바뀐 게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90년대 들어오는 과정에서 큰 기업에 계속 돈을 대출해주는 대마불사가 이어졌고, 가끔씩 정부가 재벌의 여신규제 했지만 김영삼 정부에서 '신경제 100일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마저도 싹 없애버렸어요. 그러다가 IMF 위기가 터졌죠. IMF 위기로 오래된 은행은 부실은행으로 다 퇴출되거나 합병됐습니다.

조흥, 상업, 신탁, 서울은행 등 비교적 오래된 은행들이 없어지고, 국민, 신한, 하나은행 정도가 살아남았죠. 신한은행은 82년에 일본에서 금융실명제인 그린카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재일교포들의 자금으로 설립된 은행입니다. 또 하나은행은 보람은행이 단자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만들어졌으니까 IMF 때까지 부실이 별로 없었고, 주택은행과 합병된 국민은행은 서민은행이니까 큰 부실이 없어 살아남았습니다. 이 은행들도 아마 큰 기업이랑 거래했으면 다 망했을 겁니다. 내가 전에 국민은행 이사장을 8개월 가량했는데, 가서 보니까 '우리는 왜 큰 기업 대출을 못 하게 하느냐' 이게 불만이더라구요. 내가 IMF 이후에 이 은행 창립기념일에 가서 건배사를 하면서 과거 당신들이 기업 대출이 활발하지 못한 때가 있어서 살아난 거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IMF 이후 은행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의한 경영을 한다고 사외이사제, 스톡옵션, 이런 제도를 도입했어요. IMF 이후 문제가 된 건 금융정책당국이 겉멋만 든 것입니다. 과거 금융관행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글로벌 스탠다드 한다고 되겠어요? 보수체계만 올려주고 금융허브 만든다고 아우성만 치고 말입니다. 결국 금융허브 하려면 대형화해야 한다, 감독체제도 미국식으로 가야 하니 철저하게 하면 안 된다, 이런 논리를 앞세웠어요. 이게 2000년대 이후 정부의 은행 정책이었습니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대형화해야 하는데 대기업들이 IMF 학습효과로 은행 돈 안 빌려 쓰고 내부 사내 유보금 쌓고 하니까, 소매금융을 활성화한다고 주택담보대출을 확 늘린 것 아닙니까? 신용 없는 사람도 일부러 신용 등급 올려서 대출해주고. 우리 은행들이 지금 곤란 겪는 이유가 미 서브프라임 여파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네들이 자초한 것입니다.

▲ ⓒ프레시안
전성인
: 금융기관 대형화 논리는 이번 정부에서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죠. 산업은행을 우리은행과 합병하여 메가뱅크를 만들겠다는 정책이 그것이었지요. 관료들이 은행시장의 독과점 정도나 예금보험제도의 불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요. 관치금융도 사실상 여전한 것 같고요.

김종인 :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답답하니까 중소기업에 왜 대출 안 해주냐고 은행들에 압력을 넣는데, 은행들 입장에서는 자기 생존이 급급하니까 돈을 안 푸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2%까지 낮춰도 회사채는 여전히 7-8% 금리입니다. 시장금리가 안 떨어지는 것입니다.

기업하는 사람은 항상 죽겠다고 하고 기회만 있으면 경제 핑계를 대면서 정부 제도에 구명을 뚫어 놓으려는 게 생리입니다. 정부가 그걸 따라가면 자기 발에 스스로 고랑 차는 꼴입니다.

금산분리 완화도 솔직히 얘기해서 지금 한국경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지금은 금산분리 완화한다고 산업자본이 금융에 들어갈 상황이 아닙니다. 또 나중에라도 산업자본이 들어가 금융을 점령한다면 한 기업의 몰락이 국가 전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합리적 판단을 할 관료들이 없어요. 나라의 장래를 보고, 사회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가야 하는가, 이런 개념이 경제관료들에게 없어요. 경제는 경제논리대로만 하고, 나머지 파생되는 문제는 경찰력으로 해소하거나 공안식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사고를 가진 이들이 우리나라 70-80년대 관료들이었고,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관료에 포위된 대통령, 재벌에 포위된 관료

전성인 : 이제 개발연대와 외환위기를 넘어 주제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넘어온 것 같습니다. 이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종인 : 역대 정권의 경험을 보면 집권 초에 여러 비전을 얘기하지만 결국 자신이 없으면 권력이 관료들한테 가게 돼 있어요.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번에 새로 구성된 제2기 경제팀을 보니까 다시 재무부 출신들이 대거 기용됐더라구요. 노무현 정부 때는 경제기획원 출신이 주로 기용됐었는데요. 이번에 세 명(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모두 재부무 출신이더라구요. 문제는 이들이 금융만 다루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위기는 금융만 다루던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재정, 사회정책도 다 알아야 합니다.

나는 김대중이 준비된 대통령이라 해서 이 사람은 뭔가 하겠지 기대를 걸었지만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한 정권은 초기 내각을 보면 대충 예측이 가능합니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도 <프레시안>과 인터뷰하면서 이 얘기를 했어요. 이명박 정권도 초기 내각을 보고 1년도 못 가서 관료체제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고, 결국 그대로 가는 것 같습니다.

전성인 : 관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긴 안목에서 정책을 세우고 철저하게 집행하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단기미봉책과 무책임함 이 두 가지가 관료의 특징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집단 이기주의도 있고요.

김종인 : 관료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역대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제 갈 길을 못 갔던 겁니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 때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고 했다면 쌍용자동차나 삼성차나 다 정리했어야 했어요. 삼성차는 아직 빚도 다 못 갚고 있어요. 1심에서 법원이 3조1000억 원을 삼성차가 삼성생명의 주식을 팔아서 서울보증보험 등 채권단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삼성그룹과 채권단이 모두 항소해 현재도 소송이 진행 중인데, 이처럼 빚도 못 갚고 있는 삼성차에게 쌍용차를 인수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죠. 하이닉스가 지금 매우 힘들다고 하던데, 이러다가 삼성 혼자 살아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하이닉스도 IMF 이후 구조조정 됐어야 했어요. 다 산업구조조정에 대한 생각이 없고 무조건 살리고 보자는 식으로 끌고 오다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또 출자총액제한제도도 무슨 성과를 보려고 도입을 했으면, 성과가 있는지 없는지 보고 폐지를 얘기해야지, 무조건 없애버리자, 그럴 거면 처음부터 정책을 세우지 말았어야 해요.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PEF)를 허용하는 간투법(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만들 때 난 반대했어요. 도대체 우리나라 국민들 성향도 좀 파악해야될 거 아닙니까. 독일도 미국식 본 땄다가 이번에 혼이 난다고 뒤늦게 후회를 하는데….

전성인 : 이렇게 관료제가 잘못된 형태로 판을 치니까 정부가 제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김종인 : 미국 금융위기와 관련한 상원 청문회에서 증권감독원(SEC) 사람이 나와서 증언을 했어요. 과거에 SEC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감독부서 인원이 140명이었는데, 이걸 부시 정권 들어 구조조정 한답시고 다 잘라버리고 1명만 남겨 놨다는 겁니다. 당시에 미 예산관리국(OMB) 디렉터로 JP모건 출신이 오면서 '감독이 필요없다'며 그런 식으로 운용했다는 겁니다.

미국의 금융사고는 결국 미국 정부의 금융규제 의무를 포기하면서 초래된 일입니다. 부시도 기업 프렌들리라는 말을 잘 썼어요. 미국은 녹색성장 기초기술이 개발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써먹지 못 했습니다. 석유 재벌 등이 정부에 로비를 해서 이런 산업이 발전하지 못 하도록 했어요. 정부는 객관적이고 냉철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지요.

우리나라 관료들 입장에서 보면 50대에 장관되어서 1-2년 하다가 나가야 하니까 (관료를 그만 두면) 갈 데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기업들과 평소 감정이 나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대기업들의 부동산 대책할 때, 우리 비서관들이 나보고 '수석님 그런 식으로 하면 재벌들한테 죽습니다' 그랬어요. 그래서 '죽는 거 내가 죽지 당신들은 괜찮다'고 하고 내가 밀고 나갔어요. 그렇게 나온 게 5.8부동산 대책이지요.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했는데,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부동산을 잡으려면 원천을 잡아야 하는데, 원천은 못 잡고 밤낮 보따리 싸서 100평, 200평 사는 사람들을 잡아봤자 의미가 없어요. 86년부터 89년까지 대략 330억 달러의 국제수지 흑자가 났어요. 그 기간동안 대기업들은 무려 130억 달러의 땅을 사들였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본업을 제쳐두고 땅 투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기업 소유의 토지에 세금을 높이 부과하더라도 기업이 세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기업주는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추진한 것입니다.

전성인 : 아마 관료 보고 그 정책을 하라고 했다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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