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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권은 유한하나 관료는 영원하다"

[김종인·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의 근본 개혁이 안되는 이유 <상>

'한강의 기적'. 한국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고도 성장'의 역사. 하지만 그 '압축성장'의 부작용이 이제는 한국경제를 갉아먹고 있다고 김종인 박사는 평가한다.

특히 빠른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형성된 재벌체제는 이제까지 한 번도 변화를 겪지 않았다. 김 박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경제정책은 친재벌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관료는 바뀌지 않는 관료체제는 재벌체제를 지탱해온 중요한 힘이다.

또 명확한 자기 철학과 비전 없이 관료에게 의존하는 통치자 역시 한국경제를 망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김 박사는 "우리 대통령들은 경제는 관료에게 맡기면 저절로 굴러갈 것이라는 생각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니 한국경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1월 28일 김종인 박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 김종인 전 국회의원(오른쪽)과 전성인 교수(왼쪽) ⓒ프레시안

위기의 뿌리 : 개발연대에 형성된 재벌체제

전성인 : 오늘은 한국 경제가 걸어온 과거를 돌아 보면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해 얘기를 나눠 봤으면 합니다. 지난 97년 IMF 위기 이후를 돌아보면, 왜 한국경제가 잘못 됐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위기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절 잘못이 누적된 결과가 아닙니까? 또 이명박 정부가 작년 1년 동안 대응책을 잘못 써 위기를 키워오지 않았습니까?

김종인 :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운용은 말만 그럴듯하게 했지 60-70년대 개발연대 방식과 실질적으로 변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경제를 운용하는 사람들 성향이 개발연대에서 배운 지식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지요. 개발연대 당시 압축성장 과정을 보면 소련의 계획경제와 비슷해요. 생산요소에 대한 민간소유를 인정했다는 것 빼고는 국가가 자원배분에 깊숙하게 개입한다는 점에서 계획경제와 똑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자원이 부족하니 자원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간인 몇 명에게 희소자원을 나눠줘 경제 일으켰어요. 특히 70년대 중화학공업 시절에는 몇 명에게 집중적으로 자원을 배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재벌구조는 60년대 생성기, 70년대 확장기를 거쳐, 70년대 말에 완성됐어요. 이어 80년대 안정기, 90년대 들어와서는 재벌이 정치세력 위에 서는 시대가 됐습니다.

전성인 : 결국 현재 위기의 원인을 따져보자면 60-70년대 개발연대에 형성된 재벌구조를 얘기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군요.

김종인 : 그렇죠. 그만큼 재벌 문제가 중요하죠. 그런데 과거 정부는 한 번도 재벌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어요. 솔직히 내가 90년대 초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해보려고 하다가 당시 정부 내에서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고 당사자인 재벌이 반대하니까 옥신각신 하다가 끝났습니다. 93년 들어 김영삼 정부가 '신경제 100일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게 뭡니까? 재벌에게 또 한번의 확장기의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결국 이게 과잉투자를 하게 만들어서 과잉부채를 만들고 IMF 위기를 야기했습니다.

IMF 위기 후에는 뭐가 변했죠? 김대중 정부가 뭘 했습니까? 김대중 정부 초기에 있었던 구조개혁은 IMF의 요구 사항을 이행한 것에 불과합니다. 공적자금으로 은행 부실과 기업 부실 메꿔 주고 일부 기업의 소유자만 조금 바꿨을 뿐입니다. 특히 2001년 미국에서 9.11사태가 발생하고 난 다음부터 우리 경제관료의 입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 경제체제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구호의 차원에서마저도 잊혀지게 된 것이죠.

그 다음 노무현 정권은 경제정책이라고 특별히 한 게 없어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좌파라고 하는데 경제정책은 오히려 친재벌적이었습니다. 좌파 냄새가 하나도 안 났어요. 우리는 재벌구조라고 하는 압축성장이 가져온 내부모순을 한 번도 바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똑같은 상황을 놓고서 노무현 정부가 뭘 특별히 잘못해서 현 위기가 왔다? 난 그렇게 안 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한국경제의 기본틀을 못 바꿨고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이명박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 사람들은 외환보유고 2600억 달러는 쌓아놓은 것 아닙니까?

물론 그게 진짜 대한민국 경제 실력 배양하면서 쌓은 것은 아닙니다. 금융기관이 외국에서 쉽게 단기로 끌어오면서 쉽게 쌓았습니다.

전성인 : 그리고 그 당시에는 운 좋게도 세계 경제 여건도 좋았습니다.

김종인 :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권을 비난하려면 우리나라 경제 기본구조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이런 것들을 못 했다고 딱 집어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들지 않습니다. 그냥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처방이 나오지 않아요.

현 정부가 시작할 때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웠는데, '시장친화적(market friendly)'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정부 스스로가 '기업 친화적'이라는 말은 상식 밖의 얘기가 아닙니까?

전성인 : 시장에 기업 외에도 소비자, 근로자, 금융기관 등 여러 참가자가 있는데 특정 참가자에게만 친화적인 건 비시장적인 태도입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이명박 정부의 지난 1년도 간단히 돌이켜 볼까요?

▲ 김종인 전 의원 ⓒ프레시안
김종인
: 이명박 정부는 현 위기를 세계경제 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계경제가 위험신호를 보낸 것은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 사태가 나면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서 이긴 2007년 12월 말이면 앞으로 세계 금융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상식이 있는 사람은 다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떤 목표를 제시했습니까? 상황과 전혀 동떨어진 경제정책 목표를 세우고 작년 8월까지만 해도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해온 것 아닌가요? 작년 9월에 리먼 브라더스 도산 사태가 벌어지니까 그제서야 허둥지둥하고 말았지요.

그 직전에 곧 파산할 수밖에 없었던 리먼 브라더스를 산업은행이 인수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국책은행인 산은이 혼자서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일부 언론까지 가세해서 리먼을 인수해야 한다고 부추겼어요.

전성인 : 동감입니다. 세계 경제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어려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하고 기민하게 대처했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DJ정부, 요식행위로 끝난 구조조정-盧정부, 신자유주의 전면 등장

김종인 : 경제정책을 제대로 세우려면 상황인식이 분명해야 됩니다. IMF 사태만 해도 그래요. 김대중 정부의 정책 잘못이 뭐였나? IMF 사태가 나서 모든 국민이 긴장했고, 기업도 큰소리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한국경제의 근본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거 아닙니까. 그런데 말만 그렇지, 구조조정을 1년 하고 끝났다고 하는데 끝나긴 뭐가 끝났습니까? 결국 끝나지 않았는데 끝났다고 했다가 2000년 들어와서 문제가 또 복잡해졌습니다.

그래서 2000년 8월초에 경제팀을 이헌재 장관에서 진념 장관으로 바꿨는데, 새로운 경제팀장의 말인즉 "경제를 현재와 같이 끌고 가면 대통령 임기 말까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했다가 2주일도 안 되서 "4대 부문에 2차 구조조정한다, 2002년 1월 말까지 끝낸다" 고 했습니다. 어떻게 6개월 동안에 4대 부문 구조조정을 하겠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그러다가 이제는 기반은 구축했으니 앞으로 구조개혁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2001년 9.11사태가 났습니다. 9.11 사태가 나서 갑작스럽게 세계경제를 비관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세계경제가 침체할 것이니 우리도 경기부양 해야겠다고. 그때부터 구조조정이란 말이 싹 사라졌어요. 그리고 나온 것이 그해 11월에 경기부양정책이에요. 이게 결국 부동산 규제완화한 것 아니요? 한국은행은 계속해서 금리 내리고 그래서 부동산에 불이 붙은 거 아닙니까? 이걸 결국 노무현 정권이 연장한 셈인데, 노무현 정권은 이미 부동산 투기가 상당히 진척된 상황에서 출범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그러니 김대중 정부 때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을 수립한 사람을 다시 경제총수로 앉힌 것 아닙니까.

전성인 : 2000년대 초반의 상황은 저도 생생합니다. 저도 당시 무리를 해서 집을 샀지요. 엄청난 돈을 대출 받아서요. 그 뒤로 집값이 정신없이 오르더라고요. 아마 이 때 집을 산 사람들은 대출받은 액수만큼씩은 다 돈을 벌었을 거예요. 본의는 아니었지만 한국 사회에 죄를 짓는 것 같아서 경제학자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었지요. 그리고 그 때 집값이 폭등하고 있으니 금리를 인상하여 돈줄을 죄어야 한다고 글을 썼지요. 그랬더니 경제신문들이 저를 정신나간 경제학자쯤으로 치부하더군요.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대기업은 증권시장 등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니 은행은 가계부문에 대출해 주는 것으로 장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가계대출 늘어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컬럼을 써대기도 했지요. 이분은 그 후 결국 관계로 진출했지요.

김종인 : 내 경험을 얘기하자면, 87년 10월 19일에 미국에서 블랙먼데이가 있은 다음에 대선을 치렀어요. 노태우 씨가 당선됐는데, 내가 대통령 취임 전에 경제 관련 얘기를 나누는데 "당신 하고 다른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다"고 말하더라구요. 무슨 얘기냐면 다른 사람들은 세계경제가 급속하게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갈 수 있으니 경기부양 해야 한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때 내가 지금은 1929년 상황과 달라 세계경제가 불황으로 갈 여건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안 그래도 선거 이후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상황이었고, 취임하고 나면 올림픽 특수까지 겹칠 텐데, 이를 감안하면 여기서 경기부양책을 쓰면 큰일난다고 했어요.

그런데 약 10여년이 흐른 뒤 9.11 사태 직후에도 똑같은 소리를 경제관료들이 얘기 한 거에요. 경기부양 해야 한다고. 그래서 DJ 정부에서 말이 구조조정이지 실질적인 구조조정을 못 했습니다. 이헌재는 교수들 모아놓고 자기는 신자유주의자고 정운찬 교수는 케인지언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구조조정할 사람이 자기가 신자유주의자라고 하면 어쩔거요?

우리나라 정책가들이 뭘 잘못하냐면 기업 구조조정과 정부 구조조정을 식별을 못 한다는 겁니다. 기업 구조조정은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기업들 자신이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고, 정부 구조조정은 전 산업을 조망하여 한국경제가 어떻게 될지 보고 해야 하는 건데 그런 게 머리에 없어요. 그러니 김대중 정부 때 땜질해서 지나간 거지요. 김대중 씨를 병원장에 비유하면 한국경제라는 환자를 고치려고 경제장관들을 모아 수술하라 했더니, 이 사람들이 배를 갈라 놓고 속을 보니 뭘 끄집어내면 피 튀고 골치 아플 거 같으니 다시 덮은 뒤 몽혼주사 놓고 아프지 않은 거 같으니 다 했다고 한 게 김대중식 구조조정이다. 그런 것이 그 다음에도 해결이 안 되고 계속 끌고 왔습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오니 신자유주의가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노무현 정부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식이었어요.

▲ 전성인 홍익대 교수 ⓒ프레시안
전성인
: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조금만 외부의 경제여건이 악화되어도 한국 경제는 휘청거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경험하는 경제위기도 결국은 어느 특정 정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몇십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은 무사안일주의의 산물인 것 같아요.

김종인 : 결국 그러다가 이번 위기를 맞게 됐죠. 지금 미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인데 미국이 어렵기 때문에 전 세계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우리는 수출위주 경제운용으로 해외시장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보니 세계경제가 무너지면 살아날 길이 없는 거죠. 협소한 내수시장에 소비를 늘려봐야 얼마나 늘리겠습니까? 국내소비도, 해외시장도 형편없으니 어떤 기업가가 투자하려고 하겠어요? 그러니 성장잠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지금 몇몇 기업에 대한민국 경제를 너무 맡겨 놓고 있어요. 국가경제 전체를 이렇게 끌고 가도 괜찮겠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평화연구가가 이렇게 묻더라구요. 지금 세계평화가 지속되는 한 한국도 괜찮은데 갑자기 세계에 큰 충격이 와서 교역이 중단되는 사태가 왔을 때 당신 나라가 먹고살 수 있는 방도를 연구하는 사람이나 기관을 소개해달라.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

국가운용이라는 것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상당히 취약해요. 최근에 와서 삼성전자가 적자가 나니까 대한민국이 큰일 났구나 이런 소리를 하는 여건이 될 수밖에 없어요.

10년 주기로 찾아온 경제위기, 세계경제 호황 덕에 넘겼으나…

전성인 : 97년 여름에도 삼성전자가 적자 났다는 얘기가 나와서 주식시장이 난리가 났었죠. 좀 정리하자면 우리경제의 제일 큰 문제가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성장에 의한 과실을 특정인에게 집중시키다 보니 재벌체제라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이걸 지금까지 끌고 왔다는 것과 함께 거시적 정책에 있어 섣부른 경기부양정책, 특히 부동산 투기와 관련한 정책들에 잘못이 많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한국은 97년 IMF 위기 이전에도 10년을 주기로 위기를 겪어 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위기라고 얘기할 만큼의 경제규모도 안 됐으니까 제외하더라도 70년대 이후 경제위기가 반복됐습니다.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갔습니까?

김종인 : 1970년대 3차 5개년 경제개발 와중에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와서 경기가 침체되고 외환보유고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75년에 처음으로 수출 목표를 달성을 못 했어요. 물론 그 후에 만회를 했지요. 그걸 두고서 우리나라가 정책을 잘해서 위기를 극복했다고들 하는데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당시 갑작스럽게 중동건설이 붐이 불었고, 세계경제도 1차 오일쇼크의 위기를 극복하고 호황을 이뤘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초 목표였던 100억 달러 수출 달성을 77년에 이미 달성했어요.

그 다음 온 위기가 85년였어요. 당시 외채망국론 얘기가 나왔는데, 그때도 85년 9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가 플라자협정(Plaza Accord)에 맺어 환율이 다 재조정돼 달러 가치가 떨어졌고, 우리는 또 달러에 비해 더 평가절하 돼서 1달러당 860원이던 환율을 890원까지 끌고 가서 위기를 넘겼어요. 86년 처음으로 45억 달러 흑자를 봤고, 그 뒤로 330억 달러 혹자를 기록했어요. 그러다가 환율이 달러당 690원까지 평가절상 되니까 90년부터 수출이 꺼지기 시작했죠.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사태 나서 국제유가가 급격하게 오르니 국제수지도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국제교역에서 330억 달러 흑자가 난 직후 우리 정부가 뭐라고 했나요? 선진국 다 됐다, 해외 가서 부동산 사는 거 자유화 한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 경제정책이 밤낮 되풀이 하는 건데, 노무현 정부 말기에도 외환보유고가 2600억까지 늘어나니까 해외 부동산 구입에 대한 규제를 풀어줬잖아요.

그 이후에 97년 IMF 위기가 왔는데, 그때도 기업들이 과잉투자를 하다보니까 국제수지 적자가 확 늘어난 겁니다. 이 IMF 위기도 우리가 자력으로 극복한 게 아닙니다. 97년 12월 24일에 미 재무부에서 우리나라에 1600억 달러에 달하는 스탠바이크레딧을 제공하기로 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전성인 : 한국 경제의 위기가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 구조개혁을 통해 극복했다기보다는 대외여건이 호전되면 묻어가는 식으로 넘어갔다는 지적인데요, 이런 측면에서 십여년만에 다시 찾아온 이번 위기는 대외 여건의 상황이 과거와는 매우 다릅니다.

김종인 : 그렇죠. 지금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해외 여건이 극도로 악화돼서 예전과 같은 '구세주'가 없어요. 이번 위기는 금융과 실물의 위기가 겹친 아주 특별한 상황입니다. 이 위기를 벗어나고 보면 각국의 경제의 본질 자체에 변화가 올 것입니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됐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우리의 정책 역량이 어느 정도인가, 이게 앞으로 한국이 어느 정도 뻗어나갈 수 있는지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전성인 : 국가의 정책 생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경제관료인데요, 이들의 인식이 지난 수십년간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 반복되는 문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과거 주요 경제관료들의 공과를 따져보는 것도 향후 우리가 경제운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함에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김종인 : 개인들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기본적으로는 그래요. 박정희 정권의 압축성장시대 경제관료의 역할과 오늘날 경제관료 역할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 당시 상황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니 일본의 50-60년대 체험을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 와서 보면 그때 경제정책을 한 사람들이 굉장히 유능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금 관료들이 무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지금은 경제규모도 커지고 체제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훨씬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많고 경제주체들의 이해와 요구도 다양해졌습니다.

어찌됐든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쳐야할 건 고치고 넘어가야 하는데, 관료 생리상 자기가 조금 유능하다 생각되면 다 장관 하고 싶으니까 단기적 성과를 내는 것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보니 경기부양 정책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기본적으로 책임의식이 없는 거죠. 우리가 과거의 잘못에는 대단히 관대한 편입니다. 언론도 과거에 대해서는 안 묻잖아요. 과거 실책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컴백하면 금의환향이라고 과거를 다 묻어버리고 하니까 정책이 개선될 리 있나요.

내가 연말에 개각과 관련해 강만수 장관의 교체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묻길래, 하마평에 오른 사람들이 다 비슷한 사람들이던데, 차라리 강 장관이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했으니 그대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또 작년에 국회에 있을 때 내가 우리 보좌관들에게 그랬어요. 이명박이 당선돼 새로 자기사람으로 내각을 꾸리고 하지만 1년도 안 가서 경제는 또 관료체제로 갈 거다. 지금 보니 그대로 관료체제로 갔어요. 현 상황에서 뾰족한 수단도 없고 하니까 그냥 관료들한테 의존해서 가는 거지요. 나는 여기서 새로운 경제정책이 나올 거라고 별로 기대를 안 해요.

철학 없는 대통령+영혼 없는 관료=좌표 상실한 경제

전성인 : 새로운 경제정책을 내지 못하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남의 것을 가져다 도입할 때 그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쓰려는 것도 문제인 것같습니다.

김종인 : 그 대표적인 예가 1977년 7월 1일 부가가치세 입니다. 이 세금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경제정책이 대부분 일본 것을 그대로 베꼈는데요, 부가가치세는 일본이 없으니까 영국의 것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그런데 이 영국 부가세가 처음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영국이 72년에 EC에 가입하면서 74년 부가가치세를 서둘러 도입했어요. 당시 EC는 세제통합 차원에서 부가가치세를 공통의 일반소비세로 채택하고 있었는데, 영국은 이를 대체할 소비세가 없었어요. 그래서 단일세율(single tax rate)로 부가가치세를 도입했죠. 그런데 영국이 단일세율로 운영해보니까 부작용이 많아서 실시 6개월 후 부가가치세의 수정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74년 7월 재무부 부가가치세 시찰단이 영국을 방문하여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 도입은 영국의 초기 부가가치세법을 그대로 이관하여 도입 실시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정학 교과서에 나오는 부가가치세의 긍정적인 효과에 도취되어 우리 현실과는 무관하게 부가가치세를 도입하게 된 것이지요.

이 부가가치세가 76년 말 국회를 통과해 77년 7월 1일부터 10%의 단일세율로 시행이 되고 나서 서민들의 조세 부담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공화당이 78년 선거에서 민주당한테 의석으로는 이겼지만 득표울면에서 1.2% 졌는데, 부가가치세 도입이 큰 역할을 했어요. 오죽하면 이만섭 씨가 10대 국회에 나와서 부가가치세를 폐지하자는 얘기까지 나왔겠어요.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78년 선거 끝나자마자 경제팀을 싹 갈아버리고 신현확 부총리 체제로 갔습니다. 그리고 부가세 개편 작업을 했죠.

그러다가 80년 신군부가 들어섰고, 이들이 79년 부마사태를 조사하니까 부가가치세가 근본 원인이었어요. 학생들의 데모에 상인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사태가 커진 거였죠. 그랬더니 부가세를 폐지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그것이 내가 정치권에 들어온 배경이 됐어요. 내가 부가세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니까 신군부 입장에서는 나를 데려다가 부가세 폐지를 시키면 되겠다고 생각해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을 시켰어요. 나는 '부가가치세 도입하느라 엄청나게 비용을 많이 치렀는데 이걸 갑자기 폐지하면 또 문제가 생기니까 폐지하지는 말자'고 했지요.

전성인 : 부가가치세 도입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사실상 끝났다고 말씀하셨는데, 세금 때문에 정권이 날아간 또 하나의 사례가 종부세(종합부동산세)입니다. 종부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김종인 :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었다고 봐요. 노무현 뿐 아니라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다 똑같았는데, 경제는 관료에게 맡기면 저절로 돌아간다는 사고를 본질적으로 갖고 있어요. 그러니 한국경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수가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 말기부터 시작된 부동산 투기는 노무현 대통령 초기에 이르기까지 진행 중인 상태였죠.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공급만 하면 된다는 어떤 사람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만 생각하는데, 큰 병이에요. 미국도 그것만 믿다가 금융위기를 맞지 않았습니까? 공급이 늘어나야 가격이 안정된다는 한 가지 생각만 했지 누가 수요자인지 생각 안 한 겁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2003년 11월에 김진표 당시 재경부 장관이 투기억제책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 2월 이헌재로 장관으로 바뀌고 카드대란 등 여파로 경기침체가 오고 부동산이 주춤하기 시작하니까 경기를 진작시킨다면서 그해 8월에 투기억제책을 또 풀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투기가 불붙기 시작했고,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2005년에 국세청에 부동산 투기 유형을 조사하게 했어요. 그 당시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의 아파트 구입자를 조사했더니 1가구 3주택 보유자가 58%를 차지했어요. 내가 보기엔 그래서 종부세 개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종부세를 1가구 2주택 이상 보유자에게만 부과했으면 위헌이니 뭐니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을텐데, 1가구 1주택에도 부과해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전성인 : 헌법재판소도 1가구 2주택 이상에만 종부세를 부과했으면 문제 삼기 어려웠을텐데, 어떻게 1가구 1주택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가게 됐을까요?

김종인 : 한 사람이 몇십억 짜리 아파트 사는 건 어떻게 할 거냐? 이렇게 생각한 거죠. 당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헌법보다 뜯어고치기 어려운 세금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거기에 재산세까지 현실화한다고 과표를 공시지가의 75%까지 올리다보니 전국민한테 조세저항을 일으킨 거죠.

아무리 관료가 영혼이 없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조세정책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러면 안 됩니다. 또 우리가 세금에 대해 너무 몰라요. 유럽에서는 '세금의 역사는 곧 혁명의 역사다'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조세연구원도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재정부에 세제연구실이 됐는데, 정권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합니다.

전성인 : 결국 경제정책은 어떤 철학적 배경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관료가 정책의 최고 결정자가 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지 않고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지요. 아니면 자리보전에만 연연하든지요.

김종인 : 경제정책을 나는 그렇게 봐요. 자기 확신과 동떨어진 정책을 할 수밖에 없으면 그만두고 나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이 없어요. 자기가 어제까지 주장하던 것도 180도 바꿔서 얘기하고, 그러니 경제정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죠. 순간적으로 자기 입지 보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

이명박 정권 초기 강만수 장관과 최중경 차관도 대표적으로 그런 식으로 가다가 경제에 큰 혼란을 준 케이스입니다. 대통령이 7%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7%는 안 되더라도 6%라도 끌고 가야 하지 않겠냐. 그런데 자기들도 국내 상황이 안 좋은 것을 아니까 수출을 늘려 성장률을 높아야 하는데, 수출 늘리는 방법 뭐냐, 원화 평가절하해서 밀어보자, 그렇게 해서 고환율 정책이 시작된 거 아니요? 되지도 않는 환율주권론을 주장하니 외환시장에 큰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던 거죠.

우리나라 경제운용을 보면 딱 프랑스 혁명을 맞이한 루이 16세와 똑같아요. 루이 16세가 혁명 전날 밤까지 무도회를 열고 즐긴 사람인데, 마지막 죽기 전에 사형 집행관에게 한 말이 있어요. '나는 10년 전부터 이런 사태가 오리라고 생각했는데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결국 왔다'고 했다는 겁니다. 우리 경제정책이 그래요. 다 알면서 설마 올까 하다가 나중에 잘못되면 내가 뭐 잘못했냐는 식입니다.

97년 외환위기와 관련해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 등이 다 '정책의 실패는 법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무죄 판결을 받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경제정책하면 안 된다고 봐요.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경제장관이 자기 주장하다가 안 되면 자리를 버리는데, 우리나라는 관료 시스템으로 운용되다 보니 그런 사람을 볼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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