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는 김석기 내정자를 옹호하는 글들이 하나의 IP 주소에서 나와 누리꾼이 눈총을 받았다.
이곳 게시판에 한 누리꾼('아이슬란전기')이 '<PD수첩> 용역 직원이 쏜 소방호수를 물대포라고 믿고 싶은거겠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 누리꾼의 IP 주소는 211.252.XXX.56 이었다. 주목할 점은 누리꾼 '아이슬란전기'와 동일한 IP 주소가 'Mountain Dew', '색연필', '낙동강', '바둑이', '최고야', '청포도', '고군분투' 등 다른 아이디로도 이용됐다는 것. 이 글은 모두 김석기 내정자를 옹호하고 철거민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또 있다. 59.29.XXX.130라는 IP 주소 역시 여러 개의 아이디에서 동시에 발견됐다. '칼이쑤마', '밤바우', 'inovtion', '지팡이', '열정-정열', '예따기' 등의 아이디를 쓴 누리꾼들은 동일한 IP 주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모두 경찰의 입장을 두둔하고 김석기 내정자의 퇴진에 반대했다. 이들 누리꾼은 아고라 게시판에 김석기 내정자를 옹호하는 글 이외에는 한 건의 글도 쓰지 않았다.
CBS 여론조사 몰표 IP, 아고라 글 쓴 IP와 동일
특히 211.252.XXX.56라는 IP 주소는 최근 CBS에서 실시한 인터넷 여론 조사에서 '정당한 법집행'이라는 응답에 몰표를 던진 IP 주소와도 일치했다.
CBS는 참사 직후인 지난 1월 20일부터 29일까지 '용산 철거 사망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CBS는 자체 조사를 통해 참가자들의 IP 주소를 분석한 결과 조직적인 설문 참여를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당시 '무리한 진압이 부른 예고된 참사였다'에 응답한 누리꾼들의 IP주소는 제각각이었던 반면 '정당한 법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불의의 사고였다'에 투표한 누리꾼들의 IP주소는 중복되거나 한 기관에서 쓰는 것들이 많았다.
한 컴퓨터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투표했거나 한 사람이 여러 번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현재 아고라 게시판에 올린 IP와 동일한 주소 211.252.XXX.XX에서는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답에 70표를 던진 것으로 집계됐다.
▲ 포털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글. 글을 쓴 누리꾼은 똑같은 IP 59.29.XXX.130으로 여러 아이디로 김석기 옹호 글을 썼다고 주장했다. 실제 그림에서 빨간 줄을 그은 부분이 IP주소인데 각각 아이디는 다르지만 IP주소만은 같음을 알 수 있다. ⓒ프레시안 |
▲ 열정-정열, 예따기 등 글을 쓴 누리꾼의 아이디는 다르지만 IP 주소는 같다. 빨간 줄을 칠한 부분이 IP주소. ⓒ프레시안 |
경찰이 용산 참사와 관련해 여론 조작과 여론몰이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수 차례 드러났다.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문화방송(MBC) <100분토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적게는 200여 명, 많게는 1만7000여 명이 참여하던 보통 때와는 다르게 무려 4만여 명이 참가했으며 불과 몇 시간만에 '불법과격 시위' 때문에 참사가 벌어졌다는 응답이 우세해지기도 했다.
이때 경남·경기·광주경찰청 등이 일선 경찰에게 여론조사에 참여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독려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런 문자메시지는 전국 경찰서에서 보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용산 참사와 관련해 경찰이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게시판에 철거민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고 진압의 정당성을 알리는 전단지를 붙인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사진에는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있는 시위대', '경찰 진압 저지를 위해 시너를 붓는 시위대' 등의 설명이 붙어 있었다.
관할 지구대는 이를 부인했지만 사진에는 'OO지구대'라는 검인이 찍혀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시경에서 현장 사진을 취합해 보냈다"며 서울지방경찰청 차원에서 조직적인 홍보지시가 내려졌음을 시사했다. 또 운전면허관리공단 홈페이지에도 역시 '용산철거현장화재사고,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과 사진을 게재하고 경찰의 입장을 설명하는 홍보물을 올려 놓았다.
아고라 게시판 내의 여론 조작 의혹은 이처럼 용산 참사 이후 지적된 경찰의 여론몰이 행태의 연장선 상에서 나온 것이다. <프레시안>은 6일 경찰청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모른다"는 답변만 받았다.
▲ 경찰이 서울 시내 아파트 게시판에 부착한 전단지. 철거민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고 진압의 정당성을 알리는 사진 및 설명이 있다. ⓒdau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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