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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혁명'의 종말, 그 이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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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레이건혁명'의 종말, 그 이후는?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1>세계경제(상)

"위기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해결은 각 나라가 해야 한다."(김종인 전 의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3일 한국경제가 올해 -4% 경제성장을 할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6.9%를 기록한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하게 될 전망이다. 수치로 봐도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 국면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더욱이 '위기 극복은 각 나라가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엄중한 현실이다. 97년 외환위기 등 과거의 위기는 운 좋게 세계 경제 호황과 맞물려 넘어갔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처방을 써야할지,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자신들만이 옳다며 비판적 의견은 무조건 억누르고 외면하고 있고,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냉소주의에 빠져 있다. 바로 이 때문에 '-4%'라는 숫자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프레시안>은 본격적인 위기 심화 단계에 진입한 2009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조망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김종인 전 의원과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실력 모두 견고함을 인정 받는 원로와 소장학자다. 두 사람의 4회에 걸친 대담을 8차례로 나눠 연재한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1월 21일, 김종인 전 의원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현 글로벌 경제위기는 1980년대 이후 확산된 '레이건 혁명'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욕구를 무한정 허용해준 영미식 금융자본주의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종인 전 의원은 "자유화, 규제완화, 민영화가 화근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적인 실물경기 침체가 아니라 금융위기와 맞물린 경기 침체는 회복에 3-4배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금년 하반기에도 미국 경제가 회복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정부 인사들의 기대와 달리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가 쉽게 회복 국면에 접어들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위기의 발원지인 미국은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적잖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 링컨을, 경제정책에 있어 루스벨트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오바마는 붕괴된 중산층 복원에 나서고, 전국민 의료보험제 도입 등 복지체제도 보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불행히도 오바마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향후 세계경제 전망을 두 번에 나눠 게재한다.

▲ ⓒ프레시안

전성인 : 오늘은 한국경제를 둘러싼 세계경제 흐름을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우선 미국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얘기하고 싶은데 현재 진행 중인 경제 위기와 또 하나는 새롭게 출범한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입니다.

두 번째는 최근 중국경제가 급속히 식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경제의 경착륙은 한국의 수출 문제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중국경제의 경착륙 문제가 한국 경제 최대 현안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유럽 경제에 대해 짚어봤으면 합니다.

우선 IMF가 최근 2009년 세계경제전망을 냈는데 처음에는 2%대로 발표했다가 최근에는 0.5%대까지 수정했습니다.

김종인 : 유엔은 마이너스 성장을 얘기합니다.

전성인 : 세계경제 침체는 확실한 사실이고 그중에서도 미국경제 침체가 핵심적입니다. 작년에 전 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미국발 금융위기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요, 전체적인 영미식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하는 분도 있고, 그게 아니라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김종인 전 의원 ⓒ프레시안

김종인
: 이번 사태의 원인부터 짚어보자면, 사실 80년대 초부터 시작한 레이거노믹스의 여파가 오늘날까지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사람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를 위해 좋은 것처럼 생각됐는데, 결국 이기심이 무절제한 탐욕으로 표출 됐습니다. 그런 식으로 가면 자본주의 체제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고 있습니다.

전성인 : 고전적인 자본주의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로운 상태가 달성될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논리는 성립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순수한 계획경제도 순수 자본주의체제도 존속 불가능

김종인 : 순수한 계획경제체제가 성공할 수 없었던 것처럼 순수 자본주의체제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1929년 월가가 붕괴되기 전까지 고전주의경제학에 바탕해 시장경제가 진행되다가 29년에 월가가 붕괴됐습니다.

고전주의 경제학으로는 문제 해결이 없어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때 국가 역할을 강조하는 뉴딜정책을 시행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미국 경제가 회복이 되고, 시장경제 체제에 정부 역할을 가미한 시스템이 30년간 지속되지 않았습니까.

전성인 : 결국 루즈벨트가 이끈 뉴딜정책이 자본주의체제에서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경제가 제대로 운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뉴딜을 운하개발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이해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사회정책적 측면이 매우 강했던 것 아닌지요?

김종인 : 그렇습니다. 뉴딜은 상당히 사회개혁적 측면이 있고, 기본적으로 경제의 틀을 바꿨죠. 예를 들면 30년대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인상도 했고, 사회보장(social security) 제도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도입됐어요. 그 이후 이런 전통은 미국 경제정책의 대전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이후인 1952년,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정부가 들어서자 일각에서는 뉴딜정책을 무효화하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아이젠하워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오히려 뉴딜을 보강했습니다. 캐네디-존슨도 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국가경제가 더 잘 될 수 있다고 봤어요. 60년대 중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만은 "우리 모두 케인지안이라고 해도 좋다"는 얘기까지 했죠. 70년대 시카고학파들이 들어왔는데 그나마 닉슨은 자유주의를 극단으로 추진하지 않고 조화를 이뤘습니다. 닉슨은 심지어 71년 달러화의 금태환 중지를 선언하면서 임금통제와 수입통제를 하는 등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 정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 전성인 홍익대 교수 ⓒ프레시안

전성인 : 주제가 뉴딜에서 국제 금융체제의 위기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요. 이 문제는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조금 더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불완전성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70년대 이후 조금씩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김종인 :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케인즈 이론이 더 이상 경제정책에 효험이 없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소위 신자유주의경제가 시작이 됐습니다. 레이건 혁명이라고들 하는데 그 이후부터 미국의 경제정책이 모든 걸 시장에 맡기고, 규제완화 하고, 사유화 하고, 이런 식으로 30년 정도 미국경제 운영이 진행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양극화가 심화됐어요. 1978년부터 시작해서 2005년까지 미국 근로자의 실질임금(명목임금에서 물가상승률을 뺀)은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4반세기동안 미국 근로자의 실질 임금인상률은 '0'

전성인: 양극화가 심화되면 누구는 떼돈을 벌고 누구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지요. 이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몫 챙기려는 심리가 팽배해지고 이것이 사회의 건전성을 좀먹게 되지 않습니까? 미국 경제에서도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게 된 것 같아요.

김종인 :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경제운영에 있어 도덕이 무너져버리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소련 경제체제가 무너진 뒤 자본주의체제가 우월한 것처럼 인식되고, 자본주의체제 운영을 가속화했습니다. '개인 자유의 극대화가 더 효율적인 것 아니냐'는 인식을 바탕으로 미국사회의 도덕률이 무너져 버렸어요. 열심히 일해 자기 경제활동에 걸맞은 보상을 얻는 게 미국사회의 전통이었는데 그게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싼 이자로 돈을 공급받아서 집도 사고 하니까 이게 아메리칸 드림이 이뤄진 것처럼 생각됐습니다.

특히 자본시장 규제를 너무 없애버리는 정책을 취했어요. 투자은행은 감독을 전혀 받을 필요 없는 형태로 운영됐고, 거기서 싹이 시작된 게 신용 위험 전가(credit risk transfer)부터 시작해서 파생상품이 생겨나고 서브프라임 사태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전성인 : 드디어 최근 경제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서브프라임 위기까지 왔는데요. 이번 위기는 방만한 금융정책에서부터 연유되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김종인 : 앨런 그린스펀은 자서전에서 마치 자기가 싼 금리정책을 취해 저소득층, 유색인종에 금융 혜택을 줘서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룬 것처럼 말했더라구요. 본질적으로 금융을 갖고 사회정책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다가 금융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집값, 자산이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미국의 주택 경기 지표인 '케이스 쉴러 지수'를 보면 2001년부터 5년 동안에 주택 값이 106%, 더블(2배)이 됐어요. 자산효과에 의한 소비증대가 계속 이뤄지는 게 미국 경제를 뒷받침했는데 2006년 말부터 집값이 무너지니까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나고 소위 말하는 파생금융상품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금융을 가지고 신용위험 전가 방식을 통해 일종의 폭탄돌리기를 한 것입니다. 계산상으로만 돈이 계속 늘어나는 거죠. 일반실물과는 다른 형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디 한 군데가 막혀서 구멍이 나니까 전체 세계 금융이 마비됐어요.

하루 외환 거래량이 90년대 말 1조 달러에 불과했는데, 2000년대 들어와서 하루에 2조 달러씩 거래되는 모양새를 가지다가 어느 한 군데가 정지가 돼 금융위기가 생겨났습니다. 지난 2007년 7월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현 금융위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는데, 시장에 맡겨 놓으면 치유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이렇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최근에 와서 사뮤엘슨은 '시장경제 펀더멘탈리스트는 정서적 불구자'라고 평가하기도 했어요.

"시장 문화는 절제의 문화를 필요로 한다"

전성인 : 결국은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느낌입니다. 처음이 이 좌담을 시작하면서 순수한 자본주의 체제는 많은 자기 모순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무절제한 이기심 역시 조화로운 상태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을 얘기했었는데 미국 경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니 결국 그런 교훈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프레시안

김종인 : 자본주의 체제도 안정된 발전을 위해 절제가 필요한데 제도적인 장치가 막아주지 않아서 이런 사태가 왔습니다. 심지어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막스 베버도 "시장 문화는 절제의 문화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절제 하지 못하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영국 자유주의자 버크도 "개인의 욕구는 무한하기 때문에 그 욕구를 제도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결국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전성인 : 정리를 좀 해보자면 경제체제 혹은 사회운용체제는 중도가 중요하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교하면, 이념형으로서 사회주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동구권 몰락으로 증명이 됐고,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도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번 위기로 증명이 된 셈입니다. 사회주의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을 너무 무시했고, 자본주의는 합리적 이기심과 탐욕을 구분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자유를 밀어붙이는 게 문제였습니다.

김종인 : 인간의 합리적 이기심은 없다고 봅니다.

3대 화자 돌림, 자유화·규제완화·민영화가 화근

전성인 : 그리고 미국경제 역사를 20세기 초반부터 보자면 1930년대에 큰 물줄기의 변화가 있었고, 그것이 196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레이건 집권으로 또 큰 틀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김종인 : 3대 화자 돌림, 자유화, 규제완화, 민영화가 화근을 불러왔다고 봐요.

전성인 : 개인의 근면함, 절제라는 가치와 탐욕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미국사회가 어렵게 됐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특히 금융은 조심스럽게 운영돼야 하는데 사회정책적 도구로 쓰다보니까 결과적으로 방만해질 수밖에 없었고 정책적 차원에서도 오류가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탐욕이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 위험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환상까지 이어지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서 오바마 정부가 이제 공식 출범했습니다. 오바마가 어제(1월 20일) 취임하면서 링컨의 사회 통합 상징을 많이 사용했고, 경제적으로는 루즈벨트식 뉴딜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이를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현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위기는 세계적으로 전개되지만 해결은 각 나라가 알아서 해야

김종인 : 오바마가 취임하는 날,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미국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근 IMF가 리세션을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조사해 발표했는데, 시장의 경기 순환에 의해 발생한 리세션은 11-18개월 지나면 정상화됐습니다. 하지만 금융위기와 맞물린 침체는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3~4배 더 걸려요. 금년 하반기에 미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의 25%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미국경제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다른 나라도 회복이 어렵지 않겠어요? 글로벌위기라고 얘기하는데 해결은 각 나라가 해야 됩니다. 남의 나라 사정을 고려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외분업에 의존하고 본질적으로 수출지향적인 경제성장을 이뤄왔기 때문에 주 수출시장 경제가 정상화돼서 수출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성장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전성인 : 그래도 비록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미국 경제는 궁극적으로는 다시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오바마 신임 대통령 역시 여기에 정치 생명을 걸지 않겠습니까?

김종인 : 오바마 체제의 출범이 오바마의 말대로 미국을 리메이킹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아직은 정책상 여유는 있는 것 같아요. 미국은 또 R&D 분야에서도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가 얘기한 녹색성장을 위해 정부가 큰 관심을 갖고 하면 새 성장동력이 창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하면 2~3년 지난 다음에 새 싹이 틀 수 있어요. 하지만 미국이 그런다고 다른 나라가 자기 체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똑같이 흉내 내는 건 굉장히 우둔한 판단입니다.

오바마,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 강화할 것

전성인 : 미국의 새로운 고질병이 될 수 있는 탐욕과 무절제에 대해서도 어떤 치유책이 나올까요?

김종인 : 오바마의 취임사를 보면 정부 역할을 확실히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날 미국사회는 무절제와 탐욕 때문에 위기를 맞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어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지만 5000만 명 가까운 국민이 병원을 마음대로 갈 수 없습니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이건 미국으로서도 수치스러운 얘기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후쿠야마는 소련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역사의 종언'을 얘기 하더니, 이번 경제위기를 보고 '레이건 혁명의 종말'이라고 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나타난 현상들 즉, 탐욕을 무절제하게 허용하는 것이나 모든 것을 시장과 개인의 활동에 맡기겠다는 소위 레이건 혁명이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오바마는 시장경제의 효율은 최대한 이용하되 정부 역할은 하겠다고 해요.

자본주의 체제는 공산주의와 달라 스스로 수정하는 능력이 있어요. 마르크스가 예언한 대로 되지 않았냐는 사람도 있지만, 마르크스 이론의 문제는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면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탄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입니다. 지난 20-30년 동안 미국 중산층이 무너져, 이대로 가서는 미국의 장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되니까 오바마가 당선된 것입니다. 미국은 역동적인 국가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재정비하고 가는 계기를 맞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한미FTA 현실화, 쉽지 않을 것

전성인 : 저도 한 시대가 이제 종말을 고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레이건이 1기보다는 2기 때 훨씬 더 많은 지지를 받고 당선됐습니다. 그야말로 압승을 거두었는데, 그때 시작했던 한 시대가 종말을 고했습니다. 실제로 오바마가 그런 부담 속에서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죠.

오바마가 대내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꾀하겠지만 대외 정책에 있어서도 적잖은 변화를 꾀하리라고 예상됩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 문제와 맞물려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는데요?

김종인 : 글로벌 위기라고 하지만 해결은 각자 자기나라 위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미국은 자유무역 한다고 하지만 자기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대해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미FTA는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 "곤란하다, 좀더 있다 하자"고 하면 못하죠. 쉽게 이 문제가 한미 간에 타결되리라고 보진 않습니다. 미국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미국이 GM,크라이슬러 등 문제를 완전히 내버려 두지 않는 한, 그 문제는 계속 현안으로 남아서 한미FTA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미국 공화당 일각에서는 'GM이 없어진들 어떠냐' 그렇게 말하는데 기본적으로 GM은 미국의 상징입니다. GM은 자동차말고 군수관계 물자 등도 많이 생산하죠. 그래서 금방 전환되기는 어렵지 않겠나 싶습니다. 확실히 정부가 경제정책에 종전보다 훨씬 많은 개입을 할 수밖에 없어요.

▲ ⓒ프레시안

전성인 : 자동차 산업은 우리나라도 최근 문제가 되고 있지 않나요? 물론 국내 경제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국내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간단히 견해를 밝혀 주시죠.

김종인 : 우리나라도 쌍용차 사태 등이 터지면서 자동차산업을 구조조정 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정치적 고려를 앞세워서 문제입니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최근 삼성이 쌍용차를 인수해줬으면 한다고 얘기했는데 삼성은 아직도 삼성자동차의 빚 4조5000억도 못 갚고 있는데, 무슨 자동차 산업에 다시 진출합니까. 김문수 지사야 쌍용차가 있는 평택이라든가 경기도 지역경제를 위해 그런 말을 했겠지요. 옛날에 삼성차도 부산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허가를 따냈는데, 세상에 지역개발을 위해 산업정책을 결정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저금리정책, 무작정 미국 따라가다간 큰일 날 수도

전성인 : 미국 경제는 아직도 위기가 진행 중이고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에서는 계속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준은 사상 초유의 돈을 풀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김종인 : 현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인 버냉키는 30년대 디플레이션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그때 정책대응에 실패했던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한정 통화공급을 하고 있어요. 또 이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일본의 90년대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90년대 대응책이 지금 미국과 똑같아요. 공공정책을 통해 재정을 풀고 제로 금리로 낮추는 것입니다. 당시 일본이 퍼부은 돈이 10년 동안 1조2000억 달러입니다. 하지만 하나도 문제를 해결 못 했어요. 그래서 잃어버린 10년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왜 그렇게 됐느냐면 일본은 구조적 문제를 경기문제로 보고 경기부양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도 재정지출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는데 사실은 말이 사회간접자본이지 수술할 만한 게 별로 없습니다. 도로 보수 수준인데요.

미국은 일본처럼 우둔한 짓 하진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일본은 사회간접자본 많이 해놨기 때문에 돈을 넣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때 일본이 한 게 일본의 강 110개를 갖다가 물줄기 바꾸고 댐 만들어 전부 그냥 시멘트화 하는 데 돈을 퍼부었습니다. 결과는 일본의 재정적자만 엄청나게 늘었죠.

그래서 이런 식으로 금리를 저금리로 해서 제로 정도까지 끌고 가고 정부가 공공지출을 통해서 빚을 지는 상황에서 나중에 통화정책에 행동반경이 생기겠습니까. 금리를 올리면 정부 재정부담이 엄청나게 커져버리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미국도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데 우리는 상황이 조금 다르죠. 물가상승률이 4%나 되는 나라가 미국 따라간다고 무작정 금리를 낮추어도 되겠나 싶습니다.

전성인 : 경제위기 왔을 때 돈을 풀어서 막고자 하는 건 전임 연준 이사장인 그린스펀이 닷컴 버블이 꺼졌을 때 작은 스케일로 했는데, 지금 많은 사람이 그 정책이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버냉키도 작년 9월 7000억 불 구제금융법안 통과될 때까지는 아무 조치 없이 긴급자금을 투여하고 금리를 낮췄습니다. 그러다가 1년반 동안 문제해결에 아무 도움 못 주고 결국 구제금융법안 나와서 환부에 직접 돈 넣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조금씩 문제가 해결되는 거 같습니다. 결국 단순한 미봉책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셈이죠.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정부가 썼던 미봉책도 언급 안할 수 없습니다. 작년에 우리나라는 엄청난 외화유동성 부족에 직면했는데 정부의 대응방식이 참으로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외환이 부족하니 어차피 외환보유액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하는데, 외환보유액을 사용하는 방식에도 여러 방식이 있다. 시장에 나가서 무조건 달러를 파는 방식이 있고, 또 하나는 현금이 부족한 은행에 스왑 자금을 대주는 등 목표를 정해서 넣어주는 방식이 있습니다. 한은도 지난해 6-8월에 시장에 들어가서 무작정 외화를 파는 방식을 쓰다가 외환보유고가 급감하니까 타겟팅으로 전환했어요. 무작정 시장에 달러화를 뿌리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점을 겨우 깨달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기를 부양한답시고 금리를 무작정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김종인은...

헌법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에서 경제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 이 조항은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린다. 또 '김종인 조항'으로도 알려져 있다. 1987년 헌법 개정을 논의할 당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이었던 김종인 전 의원이 주도해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조항 도입에 대해 정치권 및 재계의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당시 김종인 의원이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해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김종인 조항'은 개헌 논의가 있을 때마다 재벌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어떻게든 없애려고 하는 조항이다. 이 짧지만 결정적인 문구를 헌법에 넣으려고 하는 사투를 통해 김 전 수석의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초대 대법원장이자 1960년대 초 야당 통합을 주도한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가인의 비서실장으로 대학시절부터 정치를 접했던 그는 귀국 이후 서강대 교수를 거쳐 국회의원, 청와대 경제수석, 보사부 장관 등 경제관료이자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권력 내부와 깊게 조응했지만, 그는 여느 관료나 정치인과는 달리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행보가 '김종인 조항'에 담긴 내용을 실현하려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 90년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그는 재벌이 보유한 비업무용 부동산의 매각을 유도한 '5.8 부동산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성인은...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스승인 조순, 정운찬 교수 등과 <경제학원론>을 함께 냈다. 전 교수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과 함께 정운찬 전 총장이 특별히 아끼는 제자다. 금융이 전공인 그는 대표적인 '금산분리론자'이다. 4일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학자로서 '목소리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부쩍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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