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고 당당하게 묘사된 에이즈…편견 부추기는 보도와 대조적
이 드라마의 주인공 이영신(공효진 분)은 미혼모다. 그리고 아이가 에이즈 환자다. 그런데 당당하다. 아이의 표정도 환하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운동장에서 넘어져서 피가 흐르면, 비닐봉지에 피를 담아온다.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내 피는 '천사의 피'라서요"라며 밝게 웃는다.
'사랑'을 다룬 이 드라마가 여느 멜로물과 다른 지점이다. 병과 환자를 다룬 드라마는 과거에도 흔했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는 대개 해당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외면당했다. 병에 대한 상투적인 편견만 퍼뜨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고맙습니다'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사랑받는 드라마다. 에이즈 환자 및 HIV(에이즈 발병 바이러스)감염인에 대한 사회 일반의 오해를 허무는 내용인 까닭이다.
에이즈가 텔레비전 드라마의 소재가 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방송에서 쓰이는 '에이즈'라는 단어는 종종 어둠과 죽음, 불결과 타락의 뉘앙스를 풍겼다. 한 방송사는 최근 "에이즈 환자, 호텔에서 일해"라는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다. 이 보도에서 에이즈 환자는 근처에 다가가기조차 꺼려지는 '불가촉 천민'쯤으로 묘사됐다. 보도에 등장한 호텔 직원은 HIV에 감염됐으나 아직 발병하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에이즈 환자 인권 존중이 에이즈 예방 지름길"
한림대 의대 최용준 교수는 지난 4월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언론의 이런 보도를 비판했다. 이런 보도는 '국민 건강권'을 내세우지만, 에이즈 환자의 인권을 훼손할 뿐 국민 건강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다. 에이즈 환자의 인권과 국민 건강권이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묘사한 것 자체가 이미 오류이기 때문이다. 당시 기고에서 최 교수는 "에이즈 환자 인권 존중이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최용준 교수 기고문 "에이즈가 '불치병'이라는 위험한 오해" 보기)
보건 당국의 인식도 이와 비슷하다.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은 보건복지부 보건정책관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2월, <국정브리핑> 기고를 통해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고, 단순 만성질환일 뿐"이라며 "꾸준한 투약으로 에이즈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본부장은 "에이즈 환자와 함께 음식 용기를 사용하거나 감염인의 침, 땀, 눈물이 묻는 경우라도 물론 감염이 되지 않는다"며 "에이즈 예방을 위한 활동도 강화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에이즈 감염인에게 낙인을 지우고 이들을 이 사회에서 배제하거나 소외시켜서는 더더욱 안되겠다"고 지적했다.
에이즈 환자 30%가 자살…"편견과 오해가 죽음으로 내몰아"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이런 인식에서 한참 뒤쳐져 있다. 그런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다르다. 에이즈 환자와 그 어머니가 밝고 건강하게 묘사됐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권미란 씨는 "주변의 에이즈 환자들 사이에서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화제가 됐다"며 "에이즈에 대한 편견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만으로도 에이즈 환자들은 힘을 얻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밝힌 통계에 따르면 에이즈 환자의 사망 원인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게 '자살'이다. 그리고 자살한 환자 중 상당수는 과거 밝은 성격이었으나 감염 사실이 알려진 뒤 주위의 따돌림과 냉대로 인해 심한 절망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결국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신체적 질병이 아니라 심리적 절망감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런 절망감을 부추긴 것은 사회 일반의 오해와 편견이었다.
에이즈 환자들, 그리고 그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애써 온 이들이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희망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병보다 무서운 편견을 치료하는 드라마가 되리라는 기대다.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던 이경희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가는 '고맙습니다' 대본을 쓰기 위해 에이즈 환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을 폭넓게 취재했다.
한편 '고맙습니다' 제작진은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에이즈에 대한 일반인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게시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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