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1일부터 16일까지 태국에서 열리는 국제에이즈 회의 참관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나도 여러분의 우려에 깊이 동감한다"며 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메리 로빈슨 씨가 15차 국제에이즈대회의 빈약한 인권의식을 지적했다. 로빈슨 씨는 "대회 기간 동안 이 문제를 인권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우려하며 "HIV/AIDS에 맞서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 있는 접근은 인권에 기반 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이번 국제에이즈대회는 글로벌 펀드와 WHO의 3+5(2005년까지 300만 명에게 치료제를 공급한다는 계획)에 대한 내용만이 주를 이루면서 '돈과 과학의 이야기 잔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이레네 칸 사무총장은 "왜 인권에 기반 한 HIV/AIDS 확산저지와 치료에 대한 접근이 일어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것은 "감염과 동시에 일어나는 인권유린이 감염을 확산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하였다. 빈민, 여성,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마약사용자 등 빈번하게 인권유린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 집단들이 주로 감염에 노출된 사람들이라는 점도 왜 HIV/AIDS 문제에 인권의 시각이 통합되어야하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감염인과 고위험 그룹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HIV/AIDS 확산을 저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주장. 그러나 공공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이들에 대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 결국 HIV/AIDS 문제는 '질병의 위기'가 아니라 '인권의 위기'이며, 인권의 시각 없이는 결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HIV감염자와 AIDS환자는 처참하게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 △직장에서 강제적인 의무 검사 △감염인에 대한 해고 △종사할 수 있는 직업의 제한 등 노동권 박탈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한 마약사용자 감염인의 경우, 경찰의 폭력과 고문·학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실제 태국정부가 작년부터 발동시킨 '마약과의 전쟁'으로 지금까지 2,500여 명의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주노동자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감염인으로 판명될 시 즉각 강제 추방되고, 심지어 비자신청에 HIV/AIDS검사를 의무조항으로 요구하는 국가도 있다.
HIV/AIDS를 도덕적 타락으로 접근해 감염인이 국가의 위신을 하락시켰다며 이들의 인권을 존중해줄 필요가 없다는 국가도 있다. 이레네 칸 사무총장 역시 중국의 사례를 들며 중국 정부가 작년 처음으로 중국 내의 HIV/AIDS에 대한 보고서를 냈지만, 감염인은 끊임없이 탄압 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방콕에서 국제에이즈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중국에서 4명의 HIV양성반응 농민활동가들이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에이즈 고아들이 다니던 학교가 폐교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ACT-UP 등 HIV/AIDS 활동가 단체들은 방콕 현지에서 중국 정부에 대한 항의를 조직했다. 태국감염인네트워크 의장은 "이처럼 공공보건과 안전의 이름으로 감염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HIV/AIDS를 도덕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들을 탄압하고 억압하면 할수록 마약 사용자 등 고위험 집단은 지하로 숨어 들어가 더 큰 위기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아시아·태평양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은 지난 1년 동안 국가별 자문과 전문가 회의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HIV/AIDS 인권 권고안을 발표했다. 건강과 인권의 상호의존성, 공동체참여의 중요성, 국가의 책임성이라는 원칙 아래 각국 정부가 감염인과 여성, 수감자, 성적소수자, 이주노동자, 마약 사용자 등 고위험 집단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인권의 시각에서 법률적 정비를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예를 들면 △검사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강제검사를 금지할 것 △감염인 이주노동자를 강제 출국시키는 것을 금지할 것 △비자 신청시 검사의무조항을 삭제할 것 △섹스워커(성 산업 종사자)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고 그들의 직업을 존중해줄 것 △감염인과 고위험 집단들이 HIV/AIDS와 관련된 정책 수립, 집행, 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 등을 국가에게 촉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 국제에이즈대회는 대회 기간 내내 감염인의 건강권을 요구하며 미국을 필두로 G7과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비난과 항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시위대는 콘돔 사용보다 순결을 강조하는 에이즈 예방정책을 국제원조의 조건으로 내거는 미국 행정부에 항의하여 미국 대통령자문위원 토바이어스의 강연장에서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외치며 연설을 중단시켰다. 또한 시위대는 캄보디아 등 저개발국에서 비감염인, 여성, 섹스워커 등을 대상으로 치료제를 실험하여 감염에 노출시킨 초국적 제약회사 길리아드의 부스를 붉은 페인트로 뒤덮었다. 뒤이어 파이자, 로쉬, 애봇 등 초국적 제약회사의 부스들도 희생자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페인트로 얼룩지며 박살났다. 이런 시위와 항의는 한국의 나누리+를 비롯한 에이즈활동가들이 조직하고 있으며, 이들은 민중의 의료접근권을 획득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 이 기사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제공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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