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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쌍용차의 눈물' 보며 <도가니>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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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공지영, '쌍용차의 눈물' 보며 <도가니>에 빠지다!

[진짜 '내부의 적'을 고발한다] 공지영의 '첫 르포' <의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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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의자놀이>(휴머니스트 펴냄)는 아주 좋은 제목이다. 이 책이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를 다룬다는 최소한의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제목이 '사람 수보다 적은 의자를 놓고 빨리 앉는 사람이 살아남는 놀이'의 은유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의자놀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결국 그 놀이는 마지막 한 사람의 생존자만을 남긴 채 모든 사람들을 떨어뜨린다. 그러므로 의자놀이를 해봤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탈락자가 되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야 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다니다가, 누가 채가기 전에 먼저 내 자리를 확보해야만 하는 그런 종류의 놀이가 주는 불안과 공포를, 우리는 일찌감치 배우게 된다.

그것이 2009년 4월 8일 쌍용자동차에서 벌어진 일이다. 무려 2646개의 의자가 한꺼번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2005년 1월 27일 중국 기업인 상하이차에 매각된 지 4년 만에, 회사는 법정 관리에 들어갔고 사측은 대규모 정리 해고를 골자로 한 쌍용자동차 회생안을 발표했다. 바로 전날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에서 제시한 자구책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바로 그 날 첫 번째 자살이 발생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총 스물두 명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연쇄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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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놀이>(공지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어떤 이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너무도 익숙할 것이다. 가령 네이버에 뜬 기사를 통해 '프레시안 books'에 들어오지 않고 매일 <프레시안> 사이트를 직접 체크하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완전히 낯선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프레시안>, <경향신문>, <한겨레> 등 이른바 '진보 언론'을 꾸준히 챙겨보는, 혹은 그럴 것으로 당연히 추측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한 모든 구체적인 사안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더라, 죽고 있다더라, 그것 때문에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있다더라, 이 정도가 전부일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의자놀이>를 쓴 공지영 본인부터가 그랬다.

"그러니까 왜요? 해고당한 사람들이 그들뿐만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대체 그들은 그렇게 죽어요?"

내가 물었다. 정혜신 박사는 약간 의외라는 듯 나에게 무슨 말인가 할 듯하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분이 내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요, 참 복잡해요. 그러니까 지금 쌍용자동차가 인도의 마힌드라라는 회사 것이거든요."

"쌍용자동차가 쌍용 게 아니고 인도 거예요?"

사람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기는 내가 쌍용자동차에 대해 그 이상 뭘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해 알고 싶지 않았다는 게 옳을 것이다. 부끄러웠다. (38쪽)


공지영은 시인 송경동의 손에 이끌려 경향신문사 건물 내에 위치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향해, 쌍용자동차 연대를 위한 문화예술인 선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공지영이 쌍용자동차 문제에 무지하다는 것에 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글을 쓰겠다는 결심에 감탄했다. 모임이 열린 후 며칠 뒤 몇몇 "고마우신 분들"이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자료들을 메일로 보내"(43쪽)주었다.

이후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고, 영화 <두개의 문>을 시사회에서 보면서, 삽입되어 있던 쌍용자동차 진압 현장의 영상을 접한 공지영은 전율한다. 크레인을 이용한 무리한 진압 작전으로 인해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로부터, 스물두 명이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늘의 이 죽음까지,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사태는 계속되었다. 기자들이 해고당하고, 김진숙 씨가 크레인에 올라 난간에 서있고……. 내가 그들의 죽음에 (누군들 아닐까마는) 광의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실은 내가 오래도록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는, 그래도, 그러니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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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는 바로 이런 깨달음과 실천의 결과물이며, 동시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또한 같은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저자 인세와 출판사의 이익이 모두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권당 4000원(?) 가량을 기부하는 셈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본문이 모두 끝나고 나면 따로 마련된 '함께합시다' 꼭지에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즉, 이 책은 ①쌍용자동차 파업 및 정리 해고 사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②파업자 및 해직자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며, ③그들을 위한 후원금 및 여타 지원 활동을 얻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책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미 이 책을 구입하는 순간 독자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에 4000원 상당을 기부하게 된다. 더불어 이 책에는 사건일지 및 쌍용자동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하고 또 회생 절차를 밟을 당시의 자산 평가액 등, 인터넷을 통해 찾아볼 수는 있지만 대중적인 출판물에서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았던 정보들이 담겨있기도 하다.

요컨대 이 책은 '평범한 시민'을 '쌍용자동차 파업 지지자'로 만들어주는, 혹은 그렇게 하기 위한 첫 단추를 꿸 수 있는 일종의 관문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누적 판매 부수 1000만 부를 자랑하는 공지영의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거나, 들어보았더라도 이 책을 쓰기 전의 공지영과 같이 매우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의자놀이>를 통해 눈이 확 떠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지영 한 사람, 혹은 그의 책 한 권이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문제를 진보 진영에 속한 사람, 혹은 그러한 이슈에 익숙한 사람들 너머에까지 알리고 싶다면, 공지영의 이름을 단 책이 나와 주는 것은 분명히 큰 힘이 된다. 어쩌면 다시금 무관심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쌍용자동차 사태의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카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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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지영은 소설가이면서 소설가의 범주를 뛰어넘는 직접적인 사회적 영향력의 주인공이 되어본 바 있다. <도가니>(창비 펴냄, 2009년)가 그것이다. 물론 '도가니 열풍'은 그 책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온 덕분이겠으나, 책이 없었다면 군대에 간 배우 공유가 소설의 형태로 극화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알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애초에 영화가 나올 수도 없었다.

워낙 이런 저런 이슈가 많이 터지는 대한민국이어서 다들 잊고 있을 수도 있지만, 영화 <도가니>가 불러온 파장은 상당했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무진 자애학교'로 묘사된 광주 인화학교는 정부의 예산이 삭감되면서 결국 문을 닫았고, 이른바 '도가니 법'이 제정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 사건에서 친고죄 조항이 삭제됨으로써, 이제는 더 이상 소설에서처럼 장애 아동을 성폭행한 가해자가 단지 피해자의 부모와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죄 혹은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을 받는 일이 벌어질 수 없다.

한 권의 책과 그에 기반을 둔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낸 파장이 이토록 크고 깊은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의자놀이>가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 파업 노동자, 자살 노동자들의 유가족, 그 외 관련자들이 품은 '희망'도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사실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다. <의자놀이>가 제2의 <도가니>가 되기를,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건 이 지겹고 괴로운 싸움의 결판이 나기를, 그렇다,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평은 <의자놀이>에 무조건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은 아니다. 더불어 이 책에서 인용된 하종강의 칼럼, 그 하종강이 인용했던 이선옥의 인터뷰에 대한 갈등을 다룸에 있어서, 굳이 편을 가르자면 하종강과 이선옥의 쪽에 서 있다.

그럼 이제 어려운 문제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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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말했다시피 <의자놀이>가 낳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제2의 <도가니>가 되는 것이다. 일단 책으로서 수많은 독자들의 손에 들리고, 읽히고, 그러다가 영화 제작자 혹은 방송 매체 관련자의 주목을 받고, 영상화되고,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그런 책이 되는 것 말이다.

그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의자놀이>는 소설로 나왔어야 한다. 애초에 소설과 비소설은 독자층의 규모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공지영이 이 사건을 책으로 쓰는 이유가 '대중과의 소통'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은 표지에 적혀있다시피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이며, 현실 속에서 직접 생성된 텍스트들을 수없이 인용 혹은 직접 참조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문제가 된 부분이 책의 초입에 있는 만큼,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간략하게나마 본문을 쭉 읽어나가 보자. 표지를 넘기고 머리말을 지나면,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112 신고의 '7분 지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납치당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그 신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여성이 끔찍한 폭행 끝에 살해당하는 현장의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고 알려진 그 사건을, 공지영은 책의 첫머리에 배치했다.

이와 같은 도입부가 의도하는 바는 명백하다. 끔찍한 폭력이 지금도 어디선가 저질러지고 있고, 사실은 우리의 귀에 들리고 있다는 것. 못 들은 척, 못 본 척 하는 방관자가 되지 말라는 것. 이어지는 전태일과 그 유명한 "대학생 친구"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의도는 더욱 뚜렷해진다.

"그의 죽음은 온 사회를 뒤흔들었고, 생각 있는 자들의 양심을 아프게 찔렀으며, 모든 상식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잘 산다는 것과 진정 산다는 것의 차이를 돌아보게 했다." (16쪽)

이제 우리 시대의 전태일들을 만나보러 갈 차례다. 쌍용자동차 사태의 열세 번째 희생자 임성준 씨. 그는 열일곱, 열여섯 살짜리 남매를 두고, 달랑 4만 원 남은 통장과 150만 원의 카드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공지영이 "쌍용자동차 문제를, 살려달라는 '7분'의 외침을 처음 바라보게 된 것은 이 고아가 된 남매의 소식을 트위터로 접한 후의 일"(21쪽)이었다.

여기서 잠시 공지영은 정신과 의사 정혜신에게 책의 주인공 자리를 넘겨준다. 정혜신이 평택으로 달려가 고아가 된 남매뿐 아니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만난다. 노동자 본인뿐 아니라 부인과 아이들까지 모두 와서 상담 심리 치료를 받고, 지옥이 되어버린 삶을 그려내며, "올 여름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눈물의 강"(24쪽)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정혜신이 쌍용자동차 해직자들을 위해 연 '와락 센터'의 사례 보고서를 인용하여, 공지영은 약 4쪽에 걸쳐 다양한 목소리들을 전달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분명 그날들이 잊히지 않는데 실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29쪽) 상황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약 다섯 쪽 뒤에 나오는, 정혜신이 라디오 진행자 정관용과 나눈 인터뷰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고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오픈하우스 펴냄)를 쓰면서 우울증에 대해 조사했던 이야기와 함께 공지영은 다시금 화자의 자리를 넘겨받는다.

앞서 이 서평이 시작될 때 인용한, "쌍용자동차가 쌍용 게 아니고 인도 거예요?"라는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그 질문을 들어주던 사람이 바로 정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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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공지영. ⓒ뉴시스
여기까지의 구성은, 전적으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 쌍용자동차 사태뿐 아니라 인간의 황폐화된 정신에 대해 잘 모르는 나(공지영)와, 전문적인 지식 및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한 발 늦게 현장에 도착한 또 다른 나(정혜신)의 더블 캐스팅을 통해, 서로 주고받으며 독자를 인도한다. 본문의 38쪽까지 이런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독자들에게 이 어이없는 죽음의 연쇄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같은 생소한 용어를 전달하는 일이 몇 배는 더 어려워졌을 터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퀴즈를 풀고 지나가보자. 대체 위 내용 중 어디에 하종강의 글이 인용된 것일까? 이미 책을 읽었거나 <의자놀이>와 관련된 논란의 맥락을 놓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점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답을 공개하자면, 공지영이 트위터를 보고 행동을 개시하는 시점, 그러면서 이야기의 주인공이 정혜신으로 바뀌는 그 지점에서, 하종강이 <경향신문>에 게재한 칼럼의 '인용' 부분이 시작된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가령 58쪽의 "쌍용자동차 노조 간부였던 이창근 씨가 쓴 글이다" 같은 식으로, 인용된 글을 그 외의 것과 분리시켜주는 장치를 확실히 동원하고 있는데 반해, 오직 그 부분에서만은 그와 같은 힌트를 전혀 제공해주지 않는다. 대신 "정신 건강 컨설팅 기업 마인드프리즘 대표인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가 평택으로 달려간 것도 그즈음이었다"(22쪽)는 문장이, "내가 쌍용자동차 문제를, 살려달라는 '7분의 외침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이 고아가 된 남매의 소식을 트위터로 접한 후의 일이다"(21쪽)라는 전 쪽의 문장과 바로 맞닿아 있다.

이러한 편집이 노리는 바는 명백하다. 공지영과 함께 트위터로 고아들의 소식을 들은 독자들이 "이것은 하종강이 쓴 칼럼이다"와 같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와 마주치지 않고, 곧장 정혜신의 손을 잡고 그 고아들을 향해 달려가도록 해주려는 것이다. 이런 배려가 있기 때문에 앞서 말한 '주인공 전환'이 매끄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마치 계주 선수가 바통을 넘기듯, 공지영에서 정혜신으로, 다시 공지영으로 서사의 흐름이 이어진다.

이것이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판단이지만,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말을 빌려오고 싶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 사이에는 우연이 개입할 틈이 없다.") 감히 장담하건대, 인용을 제대로 했지만 그것을 표시할 만한 어떤 장치를 빼먹은 것이 아니다. 그 지점에서 인용을 드러내는 장치가 들어가면 글이 망가지기 때문에 그것을 들어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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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트위터 사용자(@windburial)가 정리한 "공지영-하종강 원문 대조"(☞바로 보기)를 검토해보면 그 의혹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하종강이 <경향신문>에 보낸 칼럼(☞관련 기사 :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불행하다)과 <의자놀이>의 해당 대목을 일일이 비교한 그 작업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인용할 때와 달리, 이 시점에서 저자는 텍스트를 미세하게 수정하였다. 가령 칼럼에서는 "몇 마디 했을 뿐인데도 '장대 같은' 노동자들은 눈물을 쏟았다"라고 되어있는 것이, 책에는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보가 터져 나왔다. '장대 같은' 노동자들도 눈물을 쏟았다"라고 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인용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 내용을 건너뛰면서 "(중략)"을 사용할지언정, 인용하는 텍스트 자체는 원문의 것과 동일하다. 반면 이 대목에서는 절묘하게 어감을 조절하고 흐름을 매끄럽게 해주는 문구나 문장들을 삽입한다.

둘째, 현재형 서술어를 과거형으로 바꾸었다. "말한다"로 끝나는 문장은 "말했다"로, "맺힌다"는 "맺혔다"로 수정되어있다. 이 또한 단순한 '실수'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작업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책의 '현재'는 공지영이 스스로가 쌍용자동차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 즉 38쪽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 이전은 과거로 기술되어야 옳다.

39쪽부터 공지영은 잠시 자신의 대학 시절과 과거를 반추하고, 나이가 든 스스로를 돌이켜본 후, 송경동의 인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발을 내딛는다. 이런 섬세한 조절이 문자 그대로 '실수'에 의해 벌어진다고 상상하는 것은, 원숭이가 실수로 시를 쓰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령 하종강의 칼럼에 이선옥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한들, 과연 그것이 '편집'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인터넷, 특히 트위터상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재인용' 논쟁은 완전히 잘못된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의자놀이>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면 일단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어보면, 작가와 출판사가 어떤 효과를 의도했는지가 너무도 명백하다.

셋째, 쌍용자동차 해직자가 아니라 그 아이들을 부각시키는 서술이 대량으로 삽입되었다. 인용된 칼럼에서는 단지 "엄마 손에 이끌려 나와 참혹한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아이들은 상담 심리 치료를 받았다"로 되어있는 문장이, 다음과 같이 길고 구체적인 묘사로 바뀌어있는 것이다.

아빠들이 매를 맞고 쓰러지며 짐승처럼 쫓기던 참혹한 광경을 문 밖에서 엄마와 함께 지켜봐야 했던 아이들도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엄마와 함께 도시락을 먹으려는데 헬기가 낮게 뜨면서 모래바람이 일어 입 안 가득 모래가 들어갔던 기억들……. 아이는 파업이 끝난 후에도 화장실의 물을 내리지 못했다. 그 소리조차 헬기 소리를 연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선풍기 소리를 들으면 새파랗게 질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것도 헬기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부모들도 치료에 임했다. (24쪽)

책에서 이 내용을 옮겨 치고 있을 뿐인데도, 서평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아이들이 받았을 충격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의자놀이>는, 다시 한 번 <도가니>가 되고자 했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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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분노.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공지영이 <의자놀이>의 발문으로 선택한 빅토르 위고의 말을 되새겨보자. "정의는 그 안에 분노를 지닌다. 정의에서 나오는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가 된다." 문제는 그 분노의 성격이다. 분노는 한없이 명쾌할수록 강렬해진다. 적은 더 나쁘게, 희생자는 더욱 애처롭게, 서사는 더욱 단순하게.

<도가니>가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농아들. 대부분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도 못했으며, 계속되는 착취와 학대로 발육 상태조차 뒤떨어지는 아이들. 기득권. 한 지역을 넘어 국가적 차원으로, 선배 후배 동기 동창 전관예우 자리 마련 등등으로 똬리를 튼 독사의 무리들. 그리고 그 앞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소시민적인 자세를 벗어던지기로 가까스로 결심한 나.

하지만 <의자놀이>는 그렇게 단순한 구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어려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비단 공지영뿐 아니라, 감정에 호소해 파업 문제를 대중들에게 설득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문제이다. 물론 파업과 투쟁 과정에서 그들이 당하는 폭력은 그들을 희생자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쌍용자동차 해직자와 그 가족들을 전적으로, <도가니>의 농아들을 바라보듯 동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해자의 실체 또한 뚜렷하지 않다. 공지영은 쌍용자동차 문제가 "원래는 회계 부정과 조작에 따른 상하이차의 부정 그리고 그와 연루된 한국의 회계 법인이 부당 해고를 설명하는 키워드"(166쪽)였다고 말하지만, 애초에 쌍용자동차가 상하이차에 매각된 시점은 2005년이고, 문제의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자면 거기까지 더듬어야 말이 된다.

그러나 공지영은 그런 지점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대신 쌍용자동차 인수·합병 용역의 주간사로 선정된 삼정 KPMG 컨소시엄에 맥쿼리가 참여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 맥쿼리는 우면산 터널과 지하철 9호선, 인천공항 매각에도 모두 관여하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큰아들 이지형이 2007년 9월까지 맥쿼리 IMM의 자산 운용사 대표였다고, 슬쩍 흘린다. 단정 짓지는 않고 "참고로 알려드린다"(84쪽).

아직도 의혹에 싸여 있는 BBK를 보라. 주가 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소액 주주들 역시 대체 누구를 고소해야 좋을지, BBK의 주인이 누군지 아직도 모른다. 맥쿼리사를 보라. 인천공항을 매각한다는데 그걸 맥쿼리사가 산다면 이명박 정부가 공항을 파는 것인지 사는 것인지 아리송해질 수 있다. 맥쿼리 주식을 이명박 일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설 때문이다. 현대 자본의 무서움은 이 모호함이다. 그래서 쌍용자동차 해결이 우리에게 더 중요해진다. (168쪽)

이것은 공지영 또는 그가 대변하는 특정 계층이 만들어내는 '도가니'이다. 피해자는 피해자이기에 한없이 순결해지고, 가해자는 가해자이기에 한없이 '명박'스러워진다. "내가 소설을 썼다면 아마도 '전날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람들을 차에서 끌어내려 집단으로 폭행하는 동안 경찰 관계자와 사측 관리자가 만나 대책을 의논했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도가니>의 장 경사 식으로 이야기하면…"(106쪽) 같은 대목에서 그 욕망을 확인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원이 지정한 법정 관리자 역시 <도가니>의 인화학교 교장과 비교된다(83쪽). "이쯤 되자 나는 '도가니'가 광주에만, 장애아들이 다니는 외딴 사립학교와 교육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버젓이 대기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83쪽) 대체 누가 누구를 어떤 도가니에 빠뜨리고 있는 것인가.

9

공지영은 책을 시작하면서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전태일기념사업회 펴냄)을 언급했다. 이 책이 제2의 <도가니>뿐 아니라, 어쩌면 제2의 <전태일 평전>이 되기를 저자가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이 책을 둘러싼 논란의 또 다른 측면을 만날 수 있다.

책장이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가해자의 악마화와 더불어 피해자는 순결한 존재로 타자화되고, 그럼으로써 저자와 독자는 자연스럽게 전태일이 아닌 '전태일의 친구들'의 입장에 서게 된다. <의자놀이>가 대상으로 삼는 독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처럼 대량 실업을 경험했거나 앞두고 있는 육체노동자도 아니고, 전태일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대학을 나왔어도 취직이 되지 않아 절망하는 청년 실업자도 아니다. 이 책의 1차적인 독자는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화이트칼라 직장인'이다.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에 앉아 지나가는 회사원들을 바라보며 나는 가끔 생각하곤 했다. '이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닌 거 아시죠? 이 사람들도 나름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보수층이었다는 거 아시죠? 사장이 오늘 당신을 해고한다고 해서 대드는 순간 불법이란 거 아시죠? 아시죠, 네? (161쪽)

문제는 이와 같은 독자 설정이 과연 어디까지 유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앞서 살짝 언급했다시피, 2012년의 전태일은 더 이상 대학생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0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나라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누가 전태일이고 누가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인가? 불쌍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전태일이라면, 그들보다 훨씬 못 벌고 고되게 일하는 나는, 내가 어떻게 전태일의 친구 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타자화된 피해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 '악마 같은 놈들'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서사 구도는 이 시점에서 분명한 한계에 부딪친다.

<의자놀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인터넷과 트위터에서의 논란을 보며 느꼈던 불편함의 본질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노동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더 널리 퍼져야 하거늘, 그 목소리가 따옴표로 묶인 채 그 누군가의 '지적 재산권'으로 둔갑해 배포를 거부당하는 이 사태의 황당함보다는…공 작가의 싸가지에 대한 분노가 더 큰 게죠."(☞바로 보기)라는 진중권의 발언에서, 제2의 <전태일 평전>을 만들기 위해 스크럼을 짜고 힘을 몰아줘도 모자랄 판에 왜 전선을 흐트러뜨리느냐는 '지도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전태일의 친구들'은 대학생이었고, 운동권이 되었고, 나름 방황을 했지만 결국 대한민국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것, 개인적 불만을 잠시 접어두고 거대한 적과 맞서기 위해 헌신하는 것,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내 의자가 치워지더라도 투덜거리지 말고 게임의 룰에 승복하는 것. 이것은 '대의'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이, 그럴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미덕이다. <의자놀이>에 대한 논란에서 바로 그 모습이 반복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쌍용자동차 사태라는 것을 전혀 몰랐거나 거의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단비와도 같겠지만, 이 한 권의 책을 위해 다른 모든 이들이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홍보의 효과를 위해, 혹은 '좋은 일 하는데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누구는 좋은 일 한다고 명성을 드높이지만 또 다른 누구는 본인의 글이 인용되었는데 이름조차 제대로 표기되지 않는 상황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러한 과정 역시 상징 자본을 두고 벌이는 의자놀이 아닐까?

'현실'은 바로 이런 괴물이다. 내가 맞서 싸워야 하지만 동시에 내가 발 딛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현실이라고 불러야 한다. 나는 생산자이면서 소비자고, 사장님 월급 받아 사는 노동자이지만 내가 매달 푼돈을 넣는 변액 보험은 주식 시장에 투자를 하고 있으므로 어떤 면에서는 자본가다. 전태일은 한자로 뒤덮인 근로기준법을 읽어줄 수 있는 대학생 친구를 목 놓아 외쳤다. 지금 대학생들은 한자는 고사하고 순 한글로 쓰인 책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채,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주워들은 부정확한 정보들을 복사해서 붙여 넣고 있다.

그 대학생들도 졸업을 하면 취직을 하고 노동자가 된다.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될 것을 기대했던, 즉 여유 있는 사회 엘리트 계층이 되어 노동자들의 아픔을 보며 눈물 닦아주는 것으로 양심을 달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젊은이들은, 어깨 위에 얹힌 현실의 무게 앞에서 정치와 도덕과 정의와 공동체를 모두 냉소하게 된다. 그들을 보며 '선배'들, 혹은 아직도 자신들이 '선배'라고 믿고 있는 낙오한 중산층들은, 다짜고짜 따져 묻는 것이다. 요즘 젊은 것들은 왜 그러냐고. 하지만 그 대학생들의 부모 중 누군가는 지금 엉뚱한 타이밍에 구입한 아파트 대출금을 갚느라 쩔쩔매면서, 누가 됐건 내 아파트 높은 값에 팔리게 해줄 사람에게 한 표를 던지겠노라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이 '현실' 속에, 공지영 식으로 극화된 <의자놀이>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넓지 않다. 각자가 각자의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를 짊어진 채 오지 않을 구원을 기다리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것이 바로 지금의 풍경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남의 글을 자신의 필요에 의해 뜯어 고친 후, 그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를 '내부의 적'으로 몰아붙인다. 그로 인해 벌어진 불필요한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쌍용자동차 매각의 진실은 <나는 꼼수다> 식의 음모론과 슬쩍 버무려진 채 저 너머로 사라지고, 아직도 우리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싸워나가기 위해 서로 보고 듣고 배우는 그물망을 짜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지 모른다. 모두가 전태일이면서 동시에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욱 세심하게 읽고 상대방으로부터 배우고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올바로 인용하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 먼 길을 가기 위한 최소한의 미덕이다.

도망치는 현실에 언어의 그물을 던져 낚아내는 사람들이 본인의 노력에 걸맞는 사회적 인정과 존중을 받을 수 있어야, <의자놀이>처럼 도화선 역할을 하는 한 권의 베스트셀러가 세상을 뒤흔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자놀이>가 우리 사회의 '의자놀이'의 악순환을 끊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덧붙임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의자놀이>를 구입하시면 4000원 가량이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들의 후원금으로 들어간다. 다음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후원하기 위한 계좌 번호다. 후원금을 직접 입금하는 것 역시, 지금까지도 그날의 충격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후원 계좌 : (농협) 351-0156-5171-53 김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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