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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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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

[한윤수의 '오랑캐꽃']<200>

한국인 A씨는 아마추어 등산가다.
히말라야로 등산을 갔다.
산을 오르다 휴식 시간,
가운데 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셰르파를 발견하고
"어쩌다 그랬어요?"
하고 묻자 셰르파는
"한국 공장에서 짤렸다. 왜?"
하며 적의를 드러냈다.
A씨가 당황해서 쩔쩔매자 그는 더 독이 올라서
"한국 놈만 보면 다 죽이고 싶어!"
하고 노려봤다.
A씨가 외면하자 그는 코앞으로 바싹 다가들며
"난 이미 마음속으로 당신을 죽였어."
하고는 가버렸다.
A씨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귀국했다.
그 사건 이후 인생관이 바뀐 A씨는 지금 이주 여성 자녀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A씨 얘기를 듣고 나도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풍경이긴 하지만.

그 셰르파는 한국에 와서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산재를 당하고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면 전부 증오의 대상으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나도 한국 사람의 하나로서 미안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사람 모두가 그에게 책임을 느끼고 사죄해야 하는가?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손가락이 잘린 것은 A씨 탓이 아니며, 따라서 A씨 개인이 괴로워할 일이 아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당한 박해나 불행에 대해 한국인 하나하나가 직접 책임을 질 수는 없지 않은가. 박해나 불행의 구조가 쉽게 개선되지 않는 데 대한 '시민적 책임'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해도 말이다.

나는 셰르파가 한국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본 게 안쓰럽고 안타까운 일이기는 해도 A씨가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정리한 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말이 엄밀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 뚱딴지같은 생각이 떠올랐을까? 나의 상담 경험 때문이다. 몇 년 간 외국인 노동자들을 접촉하고 상담한 바로는 그 나라 사람 중에 유독 *과장이 심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밥을 먹다 말고 A씨 얘길 전해준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A씨에게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사실이래도 괴로워할 필요는 없지만, 정확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래요?"
"예, 제 경험상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렇게 좀 전해 주세요."
"그러죠."

나는 괴로워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를 위로하느라 셰르파에게 또 다른 억울함을 덧씌운 건 아닌지 꺼림직하기도 하고, 죄의식과 연대책임의 여러 범위와 차원을 생각하느라 머리에 쥐가 나기도 한다. 셰르파의 손가락은 당분간 내 화두일 수밖에 없겠다.

*과장이 심한 경우 : 전형적인 동남아시아에 속하지 않는 몇몇 나라 사람들 중에는 산재를 당하면 후유장해보상금으로 소위 팔자를 고칠 수 있을 정도의 거액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럴 경우 과장이 심하고 객관성이 떨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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