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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의사들의 '섬기는 정신' 되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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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의사들의 '섬기는 정신' 되살려야"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4/22] 연세대 의대 서일 학장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올해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서양식 면허 의사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햅니다. 1908년 6월 4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자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에서 서양 의료의 초석을 놓은 7명의 한국인 의사가 탄생했고 올해 이를 기념하기 위한 여러 가지 행사들이 열렸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연세대 의대 서일 학장을 초대해 한국 최초 면허의사 탄생 100주년의 의미는 무엇이며 면허의사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의료계의 현실은 어떤지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연세대 의대 서일 학장입니다. 서일 학장은 1954년 서울 출생으로 7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고 87년 같은 대학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86년부터 년부터 연세대 의대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고 지난 2006년부터 연세대 의대 학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현재 한국역학회 회장과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미국 심장협회 펠로우와 세계심장연맹역학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선 축하드립니다. 면허의사 100주년, 서일 학장님 본인도 의사시니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어떠십니까?

서일 : 사실 저 개인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서양의학을 배운 의사가 배출돼서 100년이 지났다는 건 상당히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박인규 : 지난 4월부턴가요 면허의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소개 좀 해 주시죠.

▲ ⓒ프레시안

서일 :
면허의사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처음 면허의사를 받은 7분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인 제중원의학교 출신입니다. 이 분들의 업적과 우리 의료계에 미친 여러 가지 영향을 기리기위해서 우리가 이걸 하기 위한 학술강연회도 개최했고, 또 그 한 분의 동상제막식도 가졌고. 무엇보다 한국 최초 면허의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특별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하고 있는데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5월 31일까지 계속 전시될 예정입니다.

박인규 : 한국인 스스로의 힘으로 서양식 의료를 시술하기 시작한 지 100년이 된 건데 제가 알기론 제중원이라는 병원이 알렌이라는 미국 선교사가 1885년도에 설립했다고 들었는데 한국인 의사는 1908년, 20년이 지나서 나왔어요. 어떻게 보면 상당히 늦게 나왔다는 느낌도 드는데, 어떻게 해서 한국인 면허의사가 탄생하게 됐는지 과정을 좀 설명해 주시죠.

서일 : 사실 지금 생각해 보긴 어렵겠지만 벌써 120년이 넘는 그 전의 일인데, 당시만 해도 서양의학에 대해선 거의 몰랐던 때고. 물론 우리나라 의학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서양의학이 들어오게 되는 게 1885년입니다. 당시 고종이 계시면서 제중원을 설립하면서 됐는데 처음에 모든 게 그렇듯이 처음에서 점점 그게 모습을 갖추려면 시간이 걸리고, 처음부터 해서 바로 학생들을 교육할 여건이 잘 안됐습니다. 특히 잘 아시겠지만 그 한 말에 있어서 여러 가지 정변이, 그럴 때 있어서 정부에서 그대로 신경쓸 수 있는 면도 아니고. 그래서 결국은 결국 제중원을 선교부에서 맡아 운영하게 되고. 또 병원을 지으려면 돈이 없으니까 돈을 구하기 위해서 요청을 했고 마침 세브란스씨라는 분이 돈을 기증을 해서 1904년에 우리가 현대식 병원이 문을 열게 됩니다. 그게 세브란스 병원이죠. 그래서 그런 게 되면서 그 다음에 좀 더 본격적으로 의학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 뒤에 학생들 받고 교육을 시키면서 철저한 교육을 시켜서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했을 때가 1908년으로 오게 되는 거죠.

박인규 : 1885년에는 알렌을 비롯한 서양인 의사가 의료를 시술하다가 자리잡혀 가면서 한국인 의사를 키워보자. 요즘은 사실 의사가 되려면 최소 10년 이상은 공부해야 되는데, 그 당시 7분은 몇 년이나 공부하셨을까요?

서일 : 정확한 기록은 보기 어렵지만 적어도 한 10년 이상은 공부한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 기록을 보니까 19세기 말에 콜레라가 창궐을 해서 방법이 없으니까 궁에선 하늘에다 대포를 쏘고, 민간에서는 고양이 부적을 붙인다고 했는데, 그 당시 서양식 의료가 우리나라에 주는 충격이랄까, 어땠습니까?

서일 :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질병에 대한 과학적 개념이 없었을 때였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세계적으로도 균이 발견된 게 1883년이거든요.

박인규 : 콜레라라는 질병이 세균에 의한 거라는 건 알 수 없었군요.

서일 : 몰랐죠. 그때로서는 이게 균이 아니라 귀신에 의해서 생겼다. 어떤 귀신이냐 하면 왜 그런지 몰라도 쥐의 귀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귀신에 의해 생기니까 큰 소리를 내야 귀신이 도망가니까, 그래서 대포를 쏘고. 또 민가에서는 쥐니까 고양이 부적을 붙이면 쥐가 못 들어올 거다 생각해서. 그럴 때였죠. 전혀 콜레라에 대해서 몰랐을 때였어요. 그런데 콜레라는 상당히 유행했거든요. 그때 알렌 에비슨이 들어오셔서 콜레라는 균에 의해서 생기는 거라는 걸 처음 가르쳤죠.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해서든지 숭늉을 끓여 먹고 이렇게 하면 나을 수 있다는 걸 가르친 겁니다.

박인규 : 무엇보다 1908년 6월에 졸업하셨다는 7명의 한국인 의사가 어떤 분들인지 궁금한데요 한 분 한 분 소개를 해주시죠

서일 : 7분을 일일이 다 소개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면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분을 소개하면 김필순 선생님이 계시는데, 김필순 선생님은 집안 자체에서 상당히 개화가 먼저 된 집안이었고 배재학당을 다니고 언더우드 박사의 통역도 맡은 분이었어요. 그 분이 1회 졸업생 중 한 분인데, 그리고 그런 분이 있는가 하면

박인규 : 김필순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과도 의형제를 맺었다고 하던데요

서일 : 그렇습니다. 안창호 박사와 의형제를 맺어서, 안창호 선생의 아들이 필립인가 그런데 그 필 자가 김필순에서 딴 필자입니다. 그런 분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게 교육을 잘 받은 그런 집안의 분이 있었는가 하면 아주 대조적으로 백정의 아들이 한 분 계십니다. 박서양 선생입니다.

박인규 : 이름도 서양이시네요

서일 : 사실 그때 사회에서 백정은 아주 하위계급으로, 기본적으로 교육을 거의 받을 수 없었던 분인데, 와서 우리나라 서양의사면허를 받은 7명 중 한 분이고 그 분이 나중에 교수도 되시고 또 나중에 독립운동도 하십니다. 이렇게 7분들이 상당히 다양한 분들이 같이, 그 외에도 그 7분 중에서 네 분들은 거의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아주 몰두하시는 분들이 있고. 또 여기서 학생들 가르치기 위해서 남았던 홍석후 선생님이 계신데 그 분 동생이 홍난파씨였습니다. 홍난파씨도 사실은 우리 제중원의학교에 들어왔다가 중간에 그만 뒀습니다. 그리고 멋진 음악가가 되셨죠

박인규 : 가수 윤형주씨가 생각나는데요. 김필순, 주현칙, 박서양, 신창희 이런 분들은 항일운동을 하셨다는데, 특히 김필순 선생님은 그 아드님도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서일 : 예. 셋째 아드님이 상해에서 아주 유명한 영화배우 김염씨입니다. 아주 중국을 휩쓸던 연예인 중 한 분이죠.

박인규 : 단순히 의사가 아니라 사회운동가고 우국지사였는데, 이번 면허의사 100주년 기념식을 하면서 이 분들의 후손들이 같이 모였다고요

서일 : 이번에 저희들이 모셨습니다. 7분의 후손 계시는 분들을 쭉 해서 멀리는 칠레에서까지 오셨고. 박서양 선생님의 손자 분이 칠레에 이민가서 계세요. 그 분까지 모셨고, 김필순 선생님의 후손, 또 주현칙 선생님, 홍석후 선생님, 홍종훈 선생님... 저희가 알 수 있는 그런 후손들은 전부 이번에 모셨습니다.

박인규 : 제중원의학교가 우리나라 서양식 의료교육, 서양식 의료, 의학교육의 효시라고 한다면 그 뿌리가 세브란스 연대 의대로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일제 강점기간엔 어렵지 않습니까?

서일 : 상당히 어려웠죠. 실제 그동안 그래도 일제 강점기에도 에비슨 박사가 계속 계시면서 학교를 죽 지켜줬고, 그리고 오붕선 박사가 한국인 초대교장으로 오붕선 박사가 맡습니다. 그리고 계속 유지하면서 마지막에는 이름까지 바꾸면서 아사히 의학전문학교로 이름까지 바꾼 게 1942년입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학교도 창씨개명을 했군요.

서일 : 그건 아니고 별 수 없이 압력에 의해 바뀌었다가 해방되면서 다시 저희 이름을 찾았습니다.

박인규 : 최근에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근대 의학, 또는 근대 의학교육의 효시가 어디냐 해서 서울대와 연세대 의대 간에 약간의 갈등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서일 : 특별히 갈등이라고 할 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다 훌륭한 대학이고, 우리나라 의료계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여태까지 역사를 보고 앞으로도 발전을 시킬까 하는 걸 서로서로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서일 학장께서 이번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뭔가 의사의 역할을 되돌아보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혹시 관련된 세미나나 심포지엄 같은 것도 있습니까?

▲ ⓒ프레시안

서일 :
이번에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그 전에도 했고. 이걸 하는 건 적어도 사회에서 의사가 일할 때 어떤 정신을 갖고 의사가 역할을 해야 되겠느냐는 걸 한 번 짚어보는 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역사를 보면서 크게 두 가지 정신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가 우선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정신이 가장, 소위 크리스차니티입니다. 두 번째가 개척하는 정신을 가르쳤다고 봅니다. 이게 초창기에 사회에 의사를 배출하면서 그런 정신을 갖고 가르쳤다는 게 상당히 큰 뜻이 있었다고 보고 저희는 이런 것들이 계속 더 크게 유지되면서 발전돼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처음 서양식 면허의사가 나올 때의 섬기는 정진, 개척정신을 이어받아야 된다. 1908년도에 7명의 면허의사로 시작된 우리나라 서양식 의료. 지금 의사가 몇 분이나 되시죠?

서일 : 지금 약 9만5천 명 정도 됩니다.

박인규 : 그럼 거의 만 배이상 늘어난 거네요. 지금 우리나라 의학수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기술적인 수준으로 본다면. 제가 예전에 암센터에 계신 박재갑 원장님을 모셨는데, 그 분은 약간 과장한다면 한 5등 안에는 든다고 본다고 하셨는데

서일 : 글쎄요. 어떤 부분으로 얘기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 대학에서의 기준이나 이런 걸 보면 제일 중요한 게 교육이고 두 번째가 연구고 그 다음이 진료거든요. 그래서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다 봐야 되지 않을까. 그걸 하나 갖고 얘기하긴 어렵지 않을까. 한 측면 갖고. 뭐 진료만 갖고 어느 정도 우리가 앞서나갈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는 어떻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육인데 교육수준이 어떤지는 한 번 봐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교육, 연구, 진료가 말하자면 의학수준을 결정하는 세 가지 척도라고 하셨는데 셋 중에서 가장 앞서있는 건 진료라고 보시는 건가요?

서일 : 잘 모르겠습니다. 진료가 과연 얼마나 앞섰다고 얘기할지, 물론 우리가 서양의학에 많이 노력을 해서 진료의 수준이 어느 정도 와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의료현실에 우리 진료가 과연 앞섰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건 조금 더 검토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인규 : 일부에서는 최근 한 10년, IMF위기 이후 특히 의대를 선호하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까 의대가 굉장히 늘어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약간 양적으론 늘어나지만 질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걱정하시는 분도 있는 것 같아요

서일 : 저도 그 부분에 동감입니다. 지금 연간 3800명 정도의 의사가 배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그만큼 우리가 충실한 의학교육을 통해 사회와 인류에 봉사하는 충실한 의사들, 의학자들을 키워내고 있는가는 다시 반성해봐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인규 : 아까도 말씀하시면서 최초의 의사들의 정신, 섬기는 정신, 개척정신을 말씀하셨는데 사실 많은 분들도 의술은 인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요즘 일반인들이 의사를 보는 눈은 썩 우호적인 건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의사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일 : 많은 분들이 보시는 시선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의사들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래서 이번에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러한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겁니다. 과연 의사는 자기 혼자 크는 게 아니고 사회가 키워주는 게 의사입니다. 그랬을 때 사회가 키워준 의사로서의 이 사회, 이 인류에 대해서 과연 역할을 했느냐. 특히 한국에서 배출된 의사들이 그걸 했느냐. 봤을 때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다든지 좋지 않은 눈으로 본 것의 첫 책임은 의사들에게 있다고 보고, 그것이 우리가 여태까지 해왔던 의학교육에도 그러한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은 합니다.

박인규 : 한국인 면허의사 100주년을 맞아서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한 번은 깊이 고민하고 성찰할 때가 됐다는 말씀이시군요.
지금부터는 의료계 현안에 대한 말씀을 나눠보죠. 저희가 한 번은 외과학회 이사 되시는 분을 모신 적이 있는데, 한 20년 전만 해도 의대에서 무조건 제일 잘 한다고 하면 외과 가고,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요즘은 외과, 산부인과 이런 데는 완전 찬밥이라고 해요. 잘 하시는 분들은 안과, 성형외과, 피부과 가신다고. 사실 외과라는 데가 사람의 생명과 가장 직결되고 가장 중시돼야 되는데, 이게 사회적 대가나 보수 때문인지 모르지만 걱정된다. 최근에 외과를 좀 선전하는 TV드라마도 나왔고, 왜 이렇게 됐을까요?

서일 :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호도라든지 이런 게 항상 시대에 따라 변하는 거 아닌가. 시대적인 유형이 있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우리가 의료계에서 제일 중요한, 저희는 메이저, 마이너 이렇게 얘기하는데 큰 과는 내와,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였거든요. 그 전에는 그걸 하려고 노력들을 했죠. 그러다가 다시 그런 걸 요즘은 더 기피하는 현상이 있지 않습니까. 이건 어떻게 보면 전체적인 사회적, 시대적 흐름과 같이 가는 거 아닐까. 그리고 사실 어느 의사든 다 필요하지, 필요 없는 의사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너무 이걸 해야 된다 꼭 이걸 해야 된다 그럴 것도 없는 거고요

박인규 : 하지만 외과에 계신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수가라고 합니까? 진료할 때 나오는 경제적 보상, 이게 책정이 잘못돼서 굉장히 중요한 수술을 했을 때하고 어떻게 보면 약간 생명과 관계없는 수가가 차이가 너무 없다. 그러다 보니 외과를 안 하는 거 아니냐. 수가조정 같은 게 필요하다는 말씀도 하시던데요.

서일 : 물론 맞습니다. 왜냐면 의료보험제도에서 수가가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그 수가가 제대로 노력하는 걸 반영해 주지 못한다면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지금 같은 의료보험체제하에서는 지금 전국민 의료보험이니까 거기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을 안 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이 원인이라고 보고 싶지는 않지만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인 건 사실입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예를 들면 기존에 정해진 수가가 하는 역할에 비해 불합리하다면 그렇게 고친다는 것이 쉽지 않은가보죠?

서일 : 정부에서 해야 될 일이죠. 정부에서 국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어떤 원인 때문에 다른 왜곡된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을 때는 정부에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그걸 고치는 노력을 해야겠죠.

박인규 : 의료계에 대해서 일반인들의 약간의 불신이 있다고 한다면, 예를 들면 특진 같은 데서 진료비가 부당하게 많이 나왔다, 또 일각에선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데가 있다. 특히 진료비 부당청구 문제에 대해서는 의사들 입장에선 수가가 불합리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해야 수입이 보전된다는 말씀도 하시던데 이걸 어떻게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서일 : 그게 전체적으로 의료보험제도와 관련된 거라고 봅니다. 의료보험에서 인정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실제 진료를 해도 그런 것들이 인정이 안 되면 받지 못하게 되고, 그걸 보고 부당청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뭐가 맞고 뭐가 안 맞는 거냐, 부당이 뭐냐는 정의부터가 달라질 거라고 봅니다. 적어도 의료계에서 환자를 위해 하는 시술이나 예방적인 어떤 치료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만들어주는 게 정부에서 할 일이지 못하게 하는 걸 정부에서 한다면 결국 이런 일들이 자꾸 나오게 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박인규 : 제가 아는 친구도 의사인데, 이 치료를 하면 분명 효과가 있는데 의료보험이 적용이 안 돼서 못한다. 그런 말을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의사와 정부 당국이 합의해서, 환자를 위해서 고치는 게 어려운가요?

서일 : 당연히 해야 될 일이고 여기에 있어서 책임은 제가 보기엔 의사들보다는 정부 당국이 더 져야 된다고 봅니다. 정부 당국에서 획일적으로 하려는 행정적인 사고 때문에, 그것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적어도 정부에선 이런 걸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게 뭔가, 이런 걸 왜곡되지 않게 하는 일은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된다고 봅니다.

박인규 :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요즘은 개방이 대세가 돼서 의료개방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거기서 나오는 문제가, 예를 들면 의료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라든가, 의료기관을 영리법인화하자든가,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는데. 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되면 돈 많은 분들은 좋을지 몰라도 저소득층은 의료혜택을 못 받을 수 있다. 그런 불만도 나오고요. 개방화시대를 맞아 의료의 질도 높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료혜택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 ⓒ프레시안

서일 :
개방화라는 건 달려오는 물결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단은 닥치는 거고 이걸 피할 순 없습니다. 소위 세계화, 국제화, 모든 것이. 그리고 그런 것들을, 그리고 모든 게 객관화되고 하는 측면에서 좋은 측면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면 너무 규제에 의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조금 옛날발상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 분야 전공은 아니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넓게 받아들이면서 누구든 차이를 인정할 수 있고 그걸 또 할 수 있도록 자꾸 넓은 측면에서 이런 것은 어프로치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은 듭니다.

박인규 : 그 말씀은 외국의 선진의료기관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건 허용해야 된다.

서일 : 충분히 허용 안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렇게 되면 외국도 영리법인입니까?

서일 : 외국에는 영리법인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들어와서 하고 그런 걸 통해서 우리 의료계도 그만큼 세계적으로 성장해야 된다고 봅니다. 옛날에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국산품 애용하자고 해서 국산품만 애용하라고 했더니,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기업을 과연 보호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박인규 :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는 건 그 경우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은 올라가겠지만 특히 저소득층, 가난한 분들이 소외되는 거 아니냐. 이 부분에 대해선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서일 : 구체적인 영향은 다시 또 검토를 해봐야겠지만 기본적인 의료가 제공되는 한, 그게 전제가 돼야겠죠. 그렇게 해서 개인의 다양성은 충분히 인정돼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되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올해가 우리나라 면허의사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됐고, 7명으로 시작해서 9만5천 명이 활동하고 계신데, 결국 국민들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살게 해주는 게 의사의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부분에서 앞으로 이런저런 현안들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마무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일 : 저희가 지금 100주년 기념사업을 하는 것도, 사실 서양의학을 우리가 갖고 온 게 아니고 서양에서, 좋은 정신을 갖고 있는 분들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 것이 시작됐고 우리 국민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까지 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그러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되겠느냐. 우리 안에, 우리나라만 보고서 지금 있겠느냐. 120년 전에 그렇게 어떤 위대한 분들이 오셔서 했던 것에 대해서 이제는 세계를 향해서 우리 의사들이 뭘 해야 되겠느냐를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우리가 도움을 받는 만큼 이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뭔가 베풀어야 한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서일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연세대 의대 서일 학장을 초대해 한국 최초 면허의사 탄생 100주년의 의미는 무엇이며 면허의사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의료계의 현실은 어떤지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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