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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고전에서 넓은 시야 배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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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고전에서 넓은 시야 배우길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1/04] 건양대 김원중 교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우리 사회 '진정한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요 요즘같이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에 동양의 고전이나 인물들을 통해 리더십과 관련된 혜안들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동양 고전 속의 인물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지만 가장 창의적이었던 실험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인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어제에 이어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김원중 교수와 함께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21세기 생존 전략은 무엇인지.. 얘기 나눠봅니다.

박인규 :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될 지혜는 뭔가 말씀 나눌 텐데요, 지난해 말 대선이 있었습니다만 경제,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화두였어요. 우리가 보통 동양의 고전 하면 인간이 되어라, 예의 이런 게 주로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기에 보면 큰 돈 버는 방법도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경영학원론일 수도 있다. 동양판 경영학 원론이다.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화식열전이 그런 겁니까?

김원중 : 예. 화식열전은 가장 사기에서 명편으로 꼽히는 편명이죠.

박인규 : 화식이란 뜻이 돈벌이란 얘기죠?

김원중 : 화가 재물 화자, 식이 불릴 식자, 재물을 불리는 자들의 이야기, 그래서 방법도 다양하고 거론되는 인물도 상당히 많습니다.

박인규 : 여러 분이 나오긴 합니다만 그 중에서 범려와 자공이 가장 대표적이라던데요 소개 좀 해주시죠.

▲ ⓒ프레시안

김원중 :
먼저 자공부터 소개를 좀 하면, 자공은 공자의 제자죠. 공자가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다지만 막상 그 중에서 핵심측근들은 자공, 자로, 안연, 이런 사람들이 주로 공자와 같이 다녔는데. 그 중에서 자공은 공자와 항상 같이 다녔습니다. 그 이유가, 자공이 그 당시 대단한 거부였거든요. 부자였습니다. 공자는 사실 굉장히 어렵게 살았던 사람 아닙니까

박인규 : 요즘으로 치면 스폰서 겸

김원중 : 스폰서 그런 거죠. 공자가 어느 제후국을, 15년 정도의 유랑생활... 말하자면 제후국을 쫓아다니면서 나 좀 써달라는 일종의 자기PR을 많이 했는데 그때 늘 데리고 다녔던 사람이 자공이었죠. 그런데 춘추전국시대에 만날 전쟁을 하다 보니 군비가 별로 없고 왕들이 늘 돈이 부족한 거예요. 그러니까 자공이 가면 밑에 수하에 큰 말을 거느리고 재물을 가져가면서 제후를 만나니까 제후들이 버선발로 달려나오는 거예요. 어서 오시라고. 그 옆에 있는 키 큰 사람이 서 있는데 바로 공자거든요. 그래서 역으로 공자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자공이라는 자가 워낙 돈을 많이 갖고 다니니까, 그러면서도 자공이 스승인 공자한테는 깍듯이 하거든요. 그러니까 공자가 느낀 게 바로 그런 거죠. 자공이 돈이 없었다면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았겠느냐. 그만큼 돈의 중요성이 있다고 하구요.

박인규 : 범려란 사람은 어떤 분입니까?

김원중 : 범려는 오나라에서 상당히 돈을 많이 갖고 있던 사람이죠.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니까 범려가 거기서 피난을 합니다. 피난을 어디로 가냐면, 수중에 재물을 감추면서 바로 가신들과 함께 그 당시 제나라로 갑니다. 제나라로 가서 자기 이름을 바꾸고 생활을 하면서 또다시 돈을 벌 수 있는 걸 강구하죠. 그러다가 결국 자기가 갖고 있는 종자돈에다가 다시 해서 수만 수천만의 거금을 모으게 됩니다. 그러니까, 모았는데 제나라 사람들이, 생각해 보세요. 제나라는 그 당시 전통이 굉장히 강한 나라거든요. 그런데 밑에 있는 오나라, 남방에 있는 오나라에서 와 있는 사람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돈이 많으니까, 어, 제나라 사람들이 이 사람 능력있네 하면서 재상을 시켰어요. 그러니까 범려가, 야 내가 만약 돈이 없었다면 제나라라는 대단한 전통이 있는 강한 나라에서 재상이라는 큰 벼슬을 하겠느냐. 하면서 자기 스스로 상당히 한탄을 해요 어찌 보면. 내가 천금이라는 돈을 갖고 있으니까 재상이 됐구나 하면서, 원래 범려가 평민 출신이거든요. 그러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까. 그리고 나서 되자마자 재상에게 주는 인수를 반환해버리고 재물을 다 주변사람에게 나눠줍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돈으로 해서 재상 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러니까 당시 사람들이 범려를 쫓아와서는 물어보죠. 돈을 어떻게 모으는 거냐. 그랬더니 범려가 자기 돈 버는 얘기를, 암서 5마리를 사라. 그걸로 해서 계속 암소가 새끼 낳고 해서 불릴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죠. 사기에선 이 정도까지만 얘기하고 있는데, 범려가 여기서 사마천이 강조하는 건 그만큼금전적인 문제가 중요하다. 범려는 물건을 유통시키는 문제. 따져본다면 매점도 하고 이런 식으로 벌었던 거죠.

박인규 : 사람 사는 데서도 돈 버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거기 보면, 열전에 보면 돈은 흐르는 물처럼 유통시켜야 된다, 시세변동에 따라서 새처럼 민첩하게 사고 팔아라, 돈을 벌 수 있다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 이런 식의 말이 나온다는데 그게 그 당시 유교의 가르침과 비하면 어긋나는 거 아니었을까요

김원중 : 맹자에 보면 그런 게 나오죠. 맹자의 경우도 전국시대 때 살았던 사람인데 맹자가 양양을 만났을 때 양양의 첫 마디가 그거였거든요. 노인장께서 여기 왔으니 우리나라를 어떻게 이롭게 하시겠습니까. 이였거든요 이. 그런 걸 보면 그 당시 모든 제후국에서 관심있었던 부분은 돈이었는데, 막상 한나라 때 유가라는 관점에 의해서 국교로 정해지고 했지만 사람들의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는 금전적인 문제가 상당히 배태가 됐죠. 그것을 끄집어내느냐 안 내느냐의 차이였지, 반고는 한서에서 안 끄집어낸 거고 사마천은 앞으로 끄집어낸 거죠.

박인규 : 지난 연말에 우리나라에서 선거가 있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화두가 됐었고 여당 후보 간에 도덕성 대 경제 이런 식의 대결이 됐어요. 만일 사마천이 우리나라 대선을 봤으면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요. 역자로서 보시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난번 대선을

김원중 : 사마천이 주목한 것은 역시 실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반고가 한서에서 명분에 집착해서 역사를 쓴 것에 비해서, 사마천은 철저히 그건 아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천도시비. 하늘의 도가 옳으냐 그르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것처럼 어떤 역사의 큰 물줄기를 가는 것은 늘 도덕성이나 명분의 문제에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라 그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 시대의 주된 흐름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건데 아마 사마천이 봤다면 이번 대선의 과정을 보면서 그런 두 가지 문제가 충돌하고, 결국 어느 한쪽이 이번에 승리했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을 아마 상당히 자신의 관점에 투영시켜서 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박인규 : 도덕적으로 옳은 것만이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사람 사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김원중 : 늘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는 거죠.

박인규 : 그렇다면 사마천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리더는, 말하자면 변화하는 세상을 잘 봐야 된다. 그런 건가요?

김원중 : 그렇죠.

박인규 :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와서, 요즘 청년실업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요. 그래서 굉장히,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많은데. 교수님이시니까 학생들 취직시키는 문제도 간단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청년실업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 있습니까? 사기열전 중에

김원중 : 있죠. 저는, 근본적인 것 같지만. 저도 대학에서 13년 14년 정도 학생들 가르치면서 느끼는 게 뭐냐면, 학생들이 좀 과거에 비해서 자꾸만 미래에 대한 대비를 덜 하고, 자꾸만 현재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박인규 : 오히려 저는 취업준비다 뭐다 해서 공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먼 장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김원중 : 공부도 물론 하죠. 그런데 우린 항상, 10년 정도는 최소한 내다보고 공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사기열전에서 회음후 한신. 한신이 사실 어떤 사람입니까

박인규 : 유방을 도와서 한나라를 건국한 최고의 장군이었던 사람

김원중 : 최고의 모사 전략가죠. 그런데 어렸을 때의 한신은 정말 동네 겁쟁이여서 가랑이 밑을 지나갔고, 밥 좀 달라고 해서 먹었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한신이 이좌거란 사람을 만나고 또 한신이 노력을 해서 결국 대장군 자리까지 올랐고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에 기여하죠. 그런데 그런 한신이 갖고 있었던 건 뭐냐면, 나는 언젠가 무엇이 되겠다는 거거든요. 사실 열전에선 다뤄지지 않고 있지만 진섭세가에서 진섭이란 사람, 머슴에서 나중에 결국 왕이 된 자. 이런 사람도 결국, 내가 언젠가 큰 뜻을 품고 있으면 된다는 확신인데, 요즘의 분위기에서는 주변의 환경도 그렇지만 10년... 자잘하게 보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청년실업을 부추기는 하나의 반성적인 것도 느껴집니다.

박인규 : 큰 뜻을 품고 먼 장래를 보고 천천히 준비를 해가라.
약간 다른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사마천의 사기가 기원전 한 100년 즘 전에 나온 책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부러워요. 우리나라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그로부터 1000년쯤 뒤. 물론 그 전에도 있었지만 남아있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부럽다는 느낌이 들면서, 사마천이 조선열전이라고 해서 한민족에 대해서도 쓴 부분이 있다는데, 대체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조선에 대해서

▲ ⓒ프레시안

김원중 :
사마천이 우리 조선열전만 다룬 건 아니고 남월, 동월, 흉노, 서남이가 사실 하나의 세트입니다. 4이로 분류되는 이민족의 역사를 사기에선 다 다루고 있거든요. 그것이 공교롭게도 열전에 포함돼 있는데, 사실 조선열전에서는 우리가, 선조가 기자라는 설에 입각해서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책봉했고, 그러자 기자가 주나라에 복종하지 않다가 자손을 약 40여 대 전했죠. 그리고 나서 전국시대 이르러서 연나라가 진번을 치니까 그 다음에 조선이 연나라에 귀속됐다가 다시 진나라가 멸망하면서 요동의 변방을 다스리고. 그리고 나서 한나라가 설립되면서 한4군 설치하는 그런 과정까지 묘사된 것이 조선열전인데요, 제가 생각할 땐 조선열전은 철저히 화이관념에 의해서 서술된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고 조선은 하나의 부속, 아류지. 그것이 하나의 개별적인 것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것. 그런 면에선 우리 일연이 쓴 삼국유사를 보면, 우리나라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우면서 중국의 요순시대랑 똑같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민족역사를 요순과 같은 반열에 뒀는데 그런 면에서 좀 비교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인규 : 우리 입장에서는 사기열전을 썩 좋아할 수만은 없는 부분도 있긴 하네요.

김원중 : 조선열전 같은 경우는 그런 부분이 좀 존재하죠. 그러나 단지 조선열전이 갖고 있는 중요성. 정사삼국지에도 오한선비동이전이라는 것에서 조선 파트가 나오는데, 그런 면에서 중국은 늘 우리나라라든지 일본이라든지 이족들을 대하는 시각은 먼저 중국이 우선이고 그 밑에라는 인식이 사실은 깔려있는 거죠

박인규 :
그렇게, 말하자면 사마천이 화이사상. 중국이 가운데 있는 문명국이고 나머지 이웃나라들은 오랑캐다. 그것의 시조라고 합니다만, 그러면서도 사마천이 당시 한무제나 경제의 대외정책에 대해선 상당히 비판적었다구요. 왜 그런 거죠?

김원중 : 그렇죠. 사마천이 단순하게 궁형 때문에 한무제를 비판했던 거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사마천이 갖고 있는 것은 왜 한무제가 정벌정책을 많이 해서 백성들이 고통에 빠지게 만드느냐. 그래서 열전에 보면, 몽염열전에서 몽염이 진시황을 도와서 만리장성을 쌓은 공신 아닙니까. 그 몽염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으로 애기합니다. 똑같은 맥락이라는 거죠. 진시황이 정벌정책으로 나라를 망했듯이 한무제가 정벌정책을 자꾸만 하면서 나라를 궁지에 몰아가는 것이 결국은 한나라한테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비판적이었던 거죠.

박인규 : 전쟁을 너무 자주 일으키면 안 된다.

김원중 교수께서 사기열전이 굉장히 방대한 책인데 번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원중 : 우선 기본적으로는 중국 정사 25사, 정사 중에서 전체가 번역된 책이 별로 없고요. 그 다음에 제가 삼국유사도 번역서를 냈고 정사삼국지를 냈지만, 사실 어찌 보면 역사를 모르고 우리 것을 찾으려고 하는 시도가 상당히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특히 사기에 보면 우리나라 상고사 부분과 겹치는 게 상당히 많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이것을 좀 해야 되겠는데, 막상 또 자료를 찾아보니까 기존의 번역사 나와 있는 것도 물론 다 훌륭한 번역서인데 나름대로 새롭게 번역해보자는 생각에서 이렇게 작업을 한 겁니다.

박인규 : 얼마나 걸리셨어요?

김원중 : 사기는 약 한 12년 정도의 작업이 진행돼 왔습니다.

박인규 : 본기도 번역하셨고

김원중 : 본기 했고 세가가 거의 완성단계에 있습니다. 본기, 세가, 열전, 이 세 개를 다 하고. 그 다음에 표와 서를 이어서 번역서를 낼 생각입니다.

박인규 : 거의 필생의 작업 같이 되신 건데, 번역하시면서 어려우신 점은 없었습니까?

김원중 : 번역하면서 느끼는 건 고전은 역시 어렵습니다. 특히 사기열전 같은 경우는 워낙 인물도 많고, 그 중에서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그 당시 풍습이라든지 제도사 이런 것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은 책이 늘 나올 때마다 늘 두렵습니다.

박인규 : 우리가 보통 삼국지 하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생각하는데, 교수님께서는 진수의 정사삼국지를 번역하셨어요. 많이 다릅니까?
소설과 역사는 많이 다르다고 하는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김원중 :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소설이지만 철저히 유비 중심의 촉한정통론에 의해서 쓴 거고, 진수의 정사삼국지는 조조를 정통의 위치에 놓고 쓴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다릅니다.

박인규 : 그럼 완전히 다릅니까?

김원중 : 완전히 다르죠. 시각 자체가, 조조에 대한 평가문제라든지 유비에 대한 평가, 제갈량에 대한 평가, 우리가 흔히 아는 손권 이런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다 다르고. 그 다음에 소설에서 주안점으로 다루는 적벽대전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정사에선 사실 좀 미미하게 다뤄지고

박인규 : 많은 분들이 삼국지연의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람직한 리더십의 모습으로 유비를 얘기하는데, 어떤 자리에서 보니까 김원중 교수께서는 오히려 조조가 바람직한 리더다, 그런 말씀을 하신 걸로 기억해요.

김원중 : 저는 철저히, 제가 정사를 번역해서 그런 게 아니라, 물론 유비의 리더십도 어느 정도는 수긍할 부분이 있습니다. 남을 포용하고, 명분과 이런 것에 의해 하는 것이 도움이 되죠. 그러나 조조 같은 경우는 철저한 원리원칙, 조조가 왜 천하의 재능있는 선비를 모은다는 기준으로서 만든 것이 유재시거. 오직 재능있는 자만이 추천의 기준이다라는 말을 했거든요.
재능만 있으면 누구든지 과거라든지 이런 걸 불문해서. 사실 소설에서 왜곡이 많이 돼서 그렇지 그 당시 천하의 한 80%의 인물들이 위나라에 다 모여 있었고요. 뭐 사실 제갈량이 죽을 때 출사표에도 그런 얘기가 나와 있지만 비의하고 동윤 이외의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촉나라가 멸망한 것도 결국 인재난이었고, 그런 면에서 인재를 적절히 활용하고 다스릴 수 있는 자는 분명 조조가 아니었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박인규 : 실제 역사를 보면 오히려 유비보다는 조조가 바람직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김원중 : 그렇죠.

박인규 : 쭉 말씀 나눴습니다만 사실 사기라든가 삼국지가 중국의 역사에요. 중국에서는 사실 이쪽 한반도에 있는 사람들을 오랑캐로 보기도 하고. 과연 중국의 고전을 볼 때 우리가 너무 그 부분에, 말하자면 우리의 주체성을 지키면서 중국의 고전이라는 걸 어떻게 봐야 되는 건지. 약간 어려운 문제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원중 : 저는 사기도 그렇고 삼국지도 그렇고, 또 다른 정사류에서 강조하는 것은 중국의 어떤 역사지만 그 당시에, 저는 이렇게 봅니다.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중국과 우리나라, 그 다음에, 그당시 일본은 약간 열외였지만 신라 때도 마찬가지였고 상당히 교류가 활발했고. 그때는 또 한자문화권도 같았고. 그래서 큰 틀에서 바라봤을 때 그 역사를 함께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느냐. 꼭 이것은 중국 것, 이것은 우리나라 것이야 하는 구분보다는 중국 것을 통해서 우리나라를 비춰보고, 또 우리나라 역사책을 바라보면서 중국 것에서 야, 이러이러한 차이점과 같은 점을 같이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중국 역사책을, 고전을 바라봐야 되는 시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동아시아 공통의 유산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최근에 동북공정이다 뭐다 해서 고구려사도 중국사다 하니까 한국에서도 굉장히 사실 받아들일 수 없죠. 외교문제가 되고 있는데, 또 많은 분들이 한국의 대응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많이 해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대응하는 게 바람직한 건지, 중국 고전의 전문가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김원중 : 동북공정. 제가 역사학자는 아니니까 상세하게는 말씀 못 드릴 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말씀드리면 중국에서 사회과학원에 명을 해서, 일종의 국책사업입니다. 자료를 보니까 동원된 학자들도 굉장히 많고, 거기서 철저히 얘기하는 것이 바로 고구려가 자기네 것이라는 쪽이거든요. 그 의도는 뭐냐면 사실 중국은 고구려에 대해서 아주 아픈 기억을 갖고 있죠.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해 와서 결국 을지문덕한테 당하면서, 그때 사실 정사에도 나와 있고 다 인정하는 바지만 거의 백만 명 이상 죽으면서 수나라의 멸망을 앞당겼고. 망한 거죠. 그리고 당태종 때도 고구려를 정벌하려다가 또 실패하니까 당태종이 신라와 손을 잡고 결국 백제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는데, 중국으로서는 고구려를 자기네 변방의 한 지역으로 봐야만 자기들이 국가 대 국가로서 전쟁을 해서 멸망했다는 걸 없앨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왜곡했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나라도 고구려 문화재단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 가지고는 부족할 것 같고, 국책사업으로 해서 지금도 늦은 감이 있지만 전문적으로 상고사, 특히 이런 걸 연구를 해서 중국의 학자들이 내세우는 어떤 학자적 논리에 대응을 해야지

박인규 : 학문적 축적이 필요하다

김원중 : 그렇죠. 저는 그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인규 : 그것에 비교하면 중국이 25사라든가 굉장히 나름대로 현대어 번역사업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고전을 현대말로 바꾸고 널리 알리는 작업들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는 평가가 많은 것 같아요.

김원중 : 지금 학술재단에서 고전 한 100종 가까이 책을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가지고는 사실 중국에, 25사... 저도 168권인데 그걸 중국에 있는 한 250명의 학자들이 변역한 걸 제가 전 질을 사서 갖고 있는데 정말 대단한 작업이거든요. 중국은 그런 면에서 돈이 부족할 것 같은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굉장히 많은 돈이 있는데 왜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역시 번역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나 연구비 지원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프레시안

박인규 :
조선왕조실록이 번역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 이전에, 고려라든가 삼국시대 관련된 책들을 많이 번역해서 일반인들이 공유하고, 중국과도 그런 부분에서 학문적으로 싸울 수 있고, 그런 작업들을 많이 해야겠군요.
많은 중국 고전을 번역하셨는데, 앞으로 번역만 하시진 않겠습니다만. 앞으로의 학문적 계획 같은 걸 마지막으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원중 : 저는 사실 번역서를 여러 권 냈지만, 학술논문도 많이 썼습니다. 학술서도 냈는데, 우선은 사기 완역작업을 끝마치려고 하고 있고요.

박인규 : 지금 본기와 열전이 나왔고

김원중 : 네, 세가를 금년도까진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표와 서를 내년에 해서 작업을 끝내고, 그 다음에 지금 학술서를 하나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중국 역사의 으뜸 책이라고 하니까 잘 마무리해 주시고, 앞으로도 중국을 이해하는 데 많은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원중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어제에 이어..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김원중 교수와 함께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뭔지 또,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21세기 생존 전략은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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