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후보와 이인제 후보를 주인공으로 한 '시즌 1'은 18일 엔딩을 목표로 막판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시즌 1'이 흥행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관전평도 엉망인 졸작이었다는 점은 일반론에 가깝다. 양 당 후보가 발표한 합당 약속이 한나절 만에 뒤집어지는 '나름의 반전'이 있었지만 그 반전에 별을 달아 줄 유권자는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시즌 1' 막바지에 '시즌 2'의 복선이 스친다는 점도 미드와 단일화 드라마 간의 또 다른 공통점이다. 등장인물이 곧 제작자인 정치권 드라마의 특성상 '시즌 2'의 결말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시즌 1'에 나타난 복선을 기초로 '시즌 2'를 전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일화 모멘텀 없어"…文 캠프 내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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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의 결말을 풀 열쇠는 문국현 후보가 쥐고 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이미 "원칙 없는 단일화는 하지 않겠다"며 문을 닫아 건 상태. 문 후보는 정동영 후보와 이인제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이 성사된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어 "세력과 세력이 권력만을 위해서 무원칙하게 몸을 섞는 단일화에는 관심이 없다"며 "정치 공학적 단일화는 없다"고 선언했다.
물론, 지난 8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단 한 번도 문 후보가 "단일화를 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으니 이번 선언도 '몸값 올리기'를 위한 정치적 수사로 해석해 볼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단일화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던 주변 기류가 바뀐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로 여겨진다.
며칠 전 캠프의 중대사를 의논하는 아침 정례회의에서는 "단일화는 '경우에 수'에서 빼자"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단일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데 공감대가 모아졌다는 것이 참석자의 전언이다.
문 후보 측 다른 관계자 역시 "서로 힘을 겨루기를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기술을 걸어야 하는데 모멘텀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헛발질 할 바에야 그냥 가자는 게 캠프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전략적 판단이라 상황논리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전제가 달리긴 했지만, 다음 주 중으로 문 후보가 기자회견을 열어 똑 부러지게 '마이웨이'를 선언해 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5대 실정 사과'요구, 들어주기 힘든 鄭
이에 정동영 후보 측은 그간 진행해 왔던 '물밑협상'을 아예 공개화했다. 김한길 의원이 박상천 대표를 비밀리에 만나 지분 등을 논의했던 '시즌 1'의 방식으로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정 후보는 16일 대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비공개 태스크포스팀에서 한명숙 전 총리와 양길승 최고위원, 천정배 가족행복위원장 등이 공동 책임으로 접촉을 해왔다"며 문 후보 측과의 비공개 접촉 사실을 공개했다.
그간 비공개에 붙여왔던 채널을 공개했다는 것은 곧 이 채널의 효용이 사라졌다는 반증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에 정 후보 측이 '반 한나라당의 결집', '민주평화개혁세력의 단합' 등의 명분으로 문 후보 측에 단일화를 공개 압박하는 쪽으로 전략을 변경하려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 후보는 또 "내가 집권하면 참여정부의 집권 연장이 아니다"라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당을 중심으로 정치를 하지 않았지만 (집권하게 되면) 새로운 정부의 중심세력은 당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 후보가 "참여정부 실정에 책임이 있는 인사와 함께할 수 없다"며 각을 세우는 데에 대한 응답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문 후보 측이 요구한 "참여정부 '5대 실정'에 대한 공개 사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문 후보 측은 '진정성'의 표징으로 정 후보의 '자기부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권 내부의 정서도 감안해야 하는 정 후보가 문 후보만 바라보고 결행하기에는 어려운 주문이라는 평가다.
김경준 수사, 신당 내 균열 기류 등이 변수
다만 반전을 기대해 볼만한 지점이 몇 군데 남아 있기는 하다.
가장 결정적인 '반전 카드'는 이날 오후 귀국하는 김경준 씨의 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귀국과 동시에 시작될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와 그 반향으로 인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 추이가 범여권 후보 단일화의 성패를 가를 중요 변수인 것이다.
범여권은 검찰 수사 결과에서 이 후보의 위법 사실과 거짓말 정황이 드러난다면 '진보 DNA를 갖고 있는 이명박 지지자들'이 대거 부동층으로 빠져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권 후보들이 기회를 도모해 볼 여지가 넓어진다면 단일화의 동력도 새로이 충전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기술을 걸 '모멘텀'이 생긴다면 문을 닫아 건 문 후보 측의 전략적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과의 합당 선언 이후 신당 내에서 감지되는 균열기류는 문 후보 측에서 주목하고 있는 변수다.
이날 신당 의원 28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관행과 기득권을 포기하는 자세로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라"며 당 지도부와 정동영 후보에게 문국현 후보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단일화 노력을 주문하는 등 '이인제 단일화'에 대한 반작용이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문 후보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문국현은 열려 있다. 대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며, 기존 정치인들의 '실천'과 '용기'를 거듭 강조한 것이나, 민주당과의 합당에 반발하는 의원들에 대해 "선량한 분들"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 같은 기대의 반영으로 보인다.
신당 의원 일부가 민주당과의 세력위주 통합에 반발하며 문 후보쪽으로 합류해 올 경우 '정동영 중심'의 현 여권 구도는 순식간에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 문 후보 측의 판단이다.
이에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민주당과의 합당 협상 조건이 변화하지 않으면 예기치 않은 인사의 탈당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 친노 진영의 한 의원의 경고가 현실화 되면 다른 프레임의 '시즌2'가 펼쳐질 여지도 없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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