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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봉사활동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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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요즘도 봉사활동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10/30] 문화훈장 받은 가수 최희준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하숙생', '진고개 신사' 등의 노래로 시대를 뛰어넘어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가수 최희준씨가 최근 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인데요, 최희준씨는 현재 우리 가요 산업은 어렵지만 그래도 한국 가요계의 미래는 밝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가수 최희준씨를 초대해 지난 50년 동안의 히트곡을 비롯한 그의 가수생활을 되돌아보고 우리 가요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가수 최희준씨입니다. 최희준씨는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로 데뷔했고 '진고개 신사', '빛과 그림자', '하숙생', '종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해 서민들의 지친 삶을 어루만지고 용기와 희망을 안겨줬습니다. 1996년부터 4년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문예진흥원 상임감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대중음악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소개를 드리다 보니까 1960년에 데뷔하셨어요. 제가 5살 때였습니다.

최희준 : 제가 얘기를 들으면서요 과연 내가 그랬나 하고 ...

박인규 : 많은 청취자 분들이 최희준씨 참 오랜만이다, 생각하실 텐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최희준 :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가끔 봉사활동으로 제 노래가 필요한 데 가서 노래도 하고

박인규 : 혹시 리사이틀 같은 건 올해에 혹시 계획 안 하고 계세요?

최희준 : 금년엔 안 했고 그 대신 제가 가톨릭입니다. 그래서 성당에서 몇 번 제 공연을 했습니다.

박인규 : 자원봉사 개념의 공연을 하셨군요

최희준 : 돈하고 상관없는

박인규 : 문화훈장을 받으셨어요. 화관문화훈장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해서... 물론 그동안의 공을 인정받으신 거겠지만 좀 늦었다는 생각도 들고, 어떻습니까?

최희준 : 그저 고맙고 감사하고, 내가 과연 받을 만한 자격이 있나 하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요. 상당히 고맙습니다.

박인규 : 50년 노래하시기가 쉽지 않은 건데, 1960년에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저도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 보통 트롯이 일반적이었을 때 말하자면 스탠다드팝을 부르셨어요.

최희준 :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때 홈송이라고 제목을 붙여야 좋을지 손석우 선생님이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부를 수 있는, 애절한 노래만이 아닌 밝은 노래들을 많이 보급시켜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가수들하고 선생님과 또 몇몇 뜻이 있으신 작곡가 선생님들하고 같이 그런 운동을 했습니다.

박인규 :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최희준씨께서 대학을 이른바 유명하다는 서울대 법학과를 나오셨는데 요즘도 법대가 세긴 하지만 그 당시 서울대 법대라면 참 대단한...

최희준 : 그 당시도 쉬운 대학은 아니죠. 아무튼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인

박인규 : 물론 노래를 워낙 좋아하시고 잘 하시니까 가수가 되셨겠지만, 어떻게 하다가 가수의 길로 들어서신 거예요?

최희준 :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던가봐요. 그 당시 작은 라디오 틀어 놓고 AFKN이라고 해서 베가본드라고 했던가요, 틀어놓고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냇킹콜의 모나리자니 이런 등등의 노래들이 포근하게, 좋아할 수밖에 없는 노래들로 자리하게 됐어요. 팔자라 그러려고 그런 거죠.

박인규 : 정식 가수로서 데뷔는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라고 제가 소개해 드렸지만 노래활동은 더 이전부터 하신 걸로 아는데요

최희준 : 서울대학 제 1회 장기놀이대회라는 게 있었습니다. 문리대 교정에서 지금 문예진흥원이 있는 동숭동에서 단과대학별 장기놀이대회라고, 말하자면 카니발이죠. 법대 대표로 저하고 유명한 황병기 선생하고

박인규 : 아, 가야금 하시는. 그 분도 서울 법대 나오셨죠

최희준 : 그게 인연이 돼서 소문이 주변에 나서 아무개가 노래를 곧잘 하더라 이래가지고 8군에 나가서 노래를 하게 됐어요.

▲ ⓒ프레시안

박인규 :
장기놀이대회 나가신 게 정확히 몇 년인지 기억나세요?

최희준 : 58년 아니면 9년일 겁니다.

박인규 : 그럼 혹시 그때 나가서 1등을 하신 겁니까?

최희준 : 1등 아니고 입선이라고 그랬습니다. 저도 그렇고 황 교수도 그렇고

박인규 : 황 교수님은 가야금으로. 법대에도 참 인재가 많았던 것 같아요

최희준 : 한 대학별 두 사람씩 나가기로 돼 있었습니다.

박인규 : 그때 말하자면 한국 음악계를 빛낼 두 분이 딱 나오신 거였군요. 그 당시에 팝송 같은 거 부르신 분들이 주로 8군 가서 노래 많이 하셨잖아요. 최희준 선생님도 그러셨습니까?

최희준 : 저도 그랬습니다.

박인규 : 주로 어떤 노래를 많이 부르셨나요?

최희준 : 주로 냇킹콜을 참 좋아했고. 팻 분 노래도 좋아했고, you don't know me라는 노래를 부른 제리 베일이라고 그 사람 노래도 좋아했고 딘 마틴 노래도 좋아했고. 아무튼 소위 스탠다드팝이죠.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시면서 손석우 선생님 같은 분이 홈송이라는 운동을 하셨다는데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라는 노래를 받으신 뒷얘기랄까. 소개를 좀 해주시죠.

최희준 : 지금은 호텔로 바뀌었는데 국도극장이란 데서 공연을 했습니다. 세계의 휴일이라는 제목으로. 그때 냇킹콜의 스타더스트하고 낙엽하고, 노래를 했는데 조금 소위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한테 화제가 됐었던가봐요. 그래서 손석우 선생님을 알게 됐죠. 그래서 선생님이 저한테 권해주신 노래가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내 사랑 쥬리안, 목동의 노래, 그림자, 이렇게 네 곡을 저에게 해보지 않겠느냐고 주셨어요. 그게 인연이 된 거죠.

박인규 : 말하자면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로 정식 데뷔하신 셈인데, 집안에서 부모님께서 반대가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최희준 : 반대 정도가 아니죠. 아버님께서는 숫제 저하고 얘기도 안 하셨으니까요.

박인규 : 언제쯤 풀리셨어요?

최희준 : 한, 한 달 이상 갔습니다.

박인규 : 한 달이면 그래도 오래 가시진 않은 거네요

최희준 : 그 무렵으론 저는 오래였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박인규 : 그 당시 최희준씨가 하시던 스탠다드팝이란 건, 홈송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그 당시 가요계로 봐서는 참 신선하지 않았나요?

최희준 : 그때 아무래도 우리가 미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을 때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주제가라든가 그 당시 게리쿠퍼가 나온 하이눈, 또 안나, 좋은 노래들이 많이 나왔어요. 학생들 간에 그게 상당히 사랑받고 그랬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최희준씨 하면 사실은 가장 대표적인 히트곡이 하숙생인데 아직도 굉장히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까요?

최희준 : 가수로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늘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좋은 노래를 제가 할 수 있어서, 오랫동안 여러분들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된 곡이 하숙생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바로 하숙생은 KBS라디오의

박인규 : 연속극 드라마 주제가였죠.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 가요계가 가수를 하면 목소리가 청아하고 맑아야 되는 것처럼. 물론 그 전에 남일해 선생 같은 분도 계셨지만, 전형적인 가수의 목소리는 아니셨죠. 오히려 그런 특색있는 목소리 때문에 사랑을 받으신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최희준 :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허스키보이스라고 해서 저도 그렇고 현미씨도 그렇고 한명숙씨도 그렇고. 전혀 맑은 목소리가 아닌

박인규 : 개성있는 목소리

최희준 : 나중에 개성있는 목소리로 취급해 주셨죠.

박인규 : 하숙생 같은 경우 KBS라디오드라마 주제가라고 하셨는데 작사는 누가 하신 겁니까?

최희준 : 작사는 돌아가신 김석야 선생이 하셨어요

박인규 : 가사가 참,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최희준 : 글쎄요. 짧은 얘기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각자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가사. 제가 운이 좋은 거죠, 그렇게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니까

박인규 : 하숙생이라는 노래 때문에 그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최희준씨한테 연락을 했다거나 그런 일화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 ⓒ프레시안

최희준 :
그런 것보다는, 그 노래가 유행이 되려고... 그때 제가 호남지방공연을 나갔어요. 주제가를 녹음을 해놓고. 그런데 극장에서 노래를 끝내고 들어갔는데 하숙생을 하라고 해요. 저는 녹음만 해놓고 와서 가사도 그렇고 선율도 그렇고 확실치가 않은데 참 난감하더라고요. 낮공연이 끝나고 들어가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다시 연습을 해서 저녁공연을 했습니다. 그랬던 기억이 나고, 그게 여수중앙극장이었는데. 아무튼 처음부터 굉장한 관심을 끌게 한 노래였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 60년대만 해도 많은 분들이 TV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라디오드라마를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 기억에도 팔도강산, 나는 곰이다, 맨발의 청춘, 주로 그런 영화나 드라마 주제가를 많이 부르신 것 같아요.

최희준 : 그랬습니다. 정말 많이 했죠.

박인규 : 최희준 선생께서 정말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해오셨는데, 전성기는 60년대라고 말할 수 있겠죠

최희준 : 그렇죠. 60년대, 70년대까지도 무척 바빴습니다. 아무튼 71년인가, 제가 가수분과위원장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굉장히 정신없이 바빴죠. 가수 전체의 일을 맡아서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제 가수로서의 활동을 정리를 했죠.

박인규 : 96년부터는 국회의원을 하셨어요. 지역구로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국회의원 당선되기도 쉽지는 않은데 4년간 국회의원으로 활동해보신 경험 어떠셨습니까?

최희준 : 정신없이 4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평소 생각했던 소위 대중문화 쪽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제도화하고, 그런 작업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걸 많이 생각하고 지나왔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노래 부르는 작업이 감성적인 쪽의 일이니까 조금은 좀

박인규 : 한 마디로 말하면 정치가 쉽던가요, 노래 부르는 게 쉽던가요?

최희준 : 노래 부르는 쪽이 훨씬 체질에 맞죠.

박인규 : 대개 국회의원 하시면 재선에 도전하시고 하는데 재선에 도전을 안 하신 건가요?

최희준 : 그건 아니고, 소위 공천이라고 하는 과정에서 조금 제가 속상한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에이 이럴 바엔 관둔다고 안 했죠.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신 중에 대중문화인들 입장에서 정치권에 바라는 것들이 있다고만 말씀하셨는데, 대중문화인의 입장에서, 정치인도 해보셨으니까, 정치권에 대해서 주문하시고 싶은 게 있나요?

최희준 : 글쎄요. 처음에 저는 우리나라 예산의 1% 정도는 문화예산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대중문화면 대중문화의 집중적인 재정적인 지원. 집중적인, 그런 게... 예산이라고 하는 생각으로 할 게 아니라 투자라는 생각으로 해야 되지 않겠나

박인규 : 일부 인기스타에 국한되는 것이긴 합니다만, 굉장한 스타들은 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연간 몇십억을 번다고 하는데 그런 스타들만 보면 많은 분들이 대중연예라는 게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직종인데 거기 지원이 필요하겠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최희준 : 그렇게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소위 외연을 좀 넓히고 우리 분야의 가능성을 많이 찾아내기 위해서는 역시 재정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가령 예를 들어 뮤지컬이라든가 오페라라든가, 상업적으로 그렇게 크게 메리트를 주지 못하는, 그러나 그런 쪽에 소위 발전이 있어야 되는, 그런 쪽에 지원이 필요한 게 아니겠나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속 정치활동을 했으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최희준 : 아니 지금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굉장히 저는 상당히 낙관하는 쪽인데요. 틀림없이 소위 대중문화예술계는 앞으로 전망이 밝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약간 얘기가 빗나가긴 합니다만 요즘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굉장히 뜨거운데 요즘 정치판을 유심히 보시나요?

최희준 : 아무래도 관심있게 보게 되죠.

박인규 : 대선판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최희준 : 제가 그때 할 때도 그랬습니다만, 너무 양당 간의 극한적인 대립, 그런 것을 좀 순화시키면 어떨까.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배경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독재랄까요, 그런 과거에 항거하는 의미로 의미부여가 되니까, 자꾸 싸우게만 되는 것 같아서. 이젠 좀 싸움을 해도 멋있는 싸움을 해야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박인규 : 싸움을 하더라도 멋있게 하고, 가급적 공통점도 찾아보고.
오늘은 문화훈장을 받은 가수 최희준씨와 함께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최희준씨의 대표적인 히트곡, 하숙생을 들어보겠습니다.

50년 노래를 하셨는데요. 요즘 연예인들의 위상과 그 당시 데뷔하셨을 때 위상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한테 물어보면 전부 다 희망이 연예인이라고 하고. 그 당시만 해도 선생님 같은 경우는 가수를 하시겠다고 해서 집안에서 힘드셨는데, 요즘 활동하는 후배가수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최희준 : 참 대견스러워요. 특히 비도 그렇고 보아도 그렇고. 거의 이제 세계적인 수준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옛날엔 우리는 생각도 못했던 얘기였고 그 당시 한참 푸념 같이 우리끼리 만나면 하던 얘기가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샹송이 있고 이태리에는 깐소네가 있고 미국엔 재즈가 있는데 우린 뭐가 있느냐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아무튼 요즘 친구들은 물론 대학에서 4년 정규과정으로 실용음악이 들어가 있는 대학도 많고. 그러니까 확실히 행복하게, 더 나은, 자기실현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여건 속에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한류라는 것도 생겨난 것이 아니냐

박인규 : 굉장히 재능있는 연예인들이 많이 나오는 건 사실입니다만 가요산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른바 불법다운로드니 뭐니 이런 게 있어서. 제가 엊그제도 이쪽 관련 계신 분 얘기를 들어보니까 가요산업시장이 연간 5천억에서 7백억으로 확 줄어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부분이야말로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되는 거 아닙니까?

최희준 : 그러게 말입니다. 저작권에 대한 문제를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교통정리를 해야 될 사안들이 있을 겁니다. 이건 뭐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고요

박인규 : 실례되는 질문이 될지도 모르지만 최희준 선생님은 히트곡이 많으신데, 거기서 나오는 저작권료 같은 것도 꽤 될 거란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어떠세요?

▲ ⓒ프레시안

최희준 :
전혀 없다고 얘기할 순 없고요, 하여튼 제 손에 들어오는 건 없고요. 작사나 작곡의 경우는 여지껏 쭉 사용료가 나갔습니다만 가창의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박인규 : 가수들의 몫이 적기 때문이 그런 겁니까?

최희준 : 그게 아니고 하여간 관심들이 없었던 거죠.

박인규 : 이 프로그램에 예전에 윤형주씨나 정훈희씨 같은 가수권리찾기운동을 하시는 분들 얘기 들어보니까 실제로 가수 분들이 그동안 부른 노래의 현실적인 혜택을 못 받는다고 하시더라구요.

최희준 : 그렇습니다. 요즘은 인접저작권이라고 하는 용어도 생기고, 조금 관심들을 가져주니까 향후 좀 나아지겠죠 아무래도.

박인규 : 가요산업의 기반을 갉아먹는다고 할 수 있는 불법 다운로드나 이런 것에도 불구하고 최희준 선생님이 우리 가요계의 미래가 밝다고 보시는 가장 큰 근거는 어떤 걸까요? 재능있는 연예인들이 많다는 겁니까?

최희준 : 그렇죠. 잘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그건 작곡도 그럴 거고 작사, 가창도 그럴 것이고. 아무튼 저는 상당히 희망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저작권 문제 같은 것도 상당히 정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정비가 되고. 아무래도 오늘보다야 나아지겠죠.

박인규 : 정부가 나서서 가요시장 질서를 제대로 바로잡을 수만 있으면

최희준 : 네. 정부가 나서든 아니면 관계되는 우리들의 협회라든가 이런 모임에서 주관해서 뭘 하든. 아니면 문화예술위원회 같은 데서 하든 어디서 하든 간에 권익신장을 위해서 노력을 하리라고 봅니다.

박인규 : 한류 말씀도 하셨는데 최근 일본이나 이런 데서는 한류가 벌써 끝났다. 영화고 가요고. 그런 식의 시샘어린, 어떻게 보십니까?

최희준 :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처음에 일본에다가 시장을 오픈하는 게 상당히 금기시되고 큰일날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박인규 : 아,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최희준 : 그것도 그렇고요. 하여튼 굉장히 큰일 날 것처럼 생각했는데 열어보니까 안 그랬거든요.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개방을 하면 개방한 만큼 우리한테 득이 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박인규 : 몇 년 전에 큰 콘서트를 하신 이후로는 지금 콘서트를 잘 안 하시는 걸로 아는데 많은 팬들은 가끔 그래도 1년에 한 번쯤은 콘서트를 했으면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콘서트 계획은 없으십니까?

최희준 : 있습니다. 저도 노래하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관객의 숫자가 적든 많든 그게 문제가 아니고 노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겁니다 하고 제가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박인규 : 저희 프로그램에 말하자면 예술인생 50년 해서 나오신 분이 안숙선씨도 있고 김덕수씨도 있는데 사실 연세는 더 어리신 분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서울대 장기자랑부터 시작하시면 내년이 딱 50년 되는 것 같은데 혹시 내년에 하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최희준 : 글쎄요. 준비가 되면 해야지요.

박인규 : 많이 기대해 보겠습니다.
실례되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뵙기에는 아직 50대쯤 밖에 안 되신 것 같습니다.

최희준 :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박인규 : 예.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최희준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문화훈장을 받은 가수 최희준씨를 초대해 지난 50년간의 히트곡을 비롯한 가수생활을 되돌아보고 우리 가요계의 미래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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