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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데선 좌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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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데선 좌우가 없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8/15]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오늘은 제62회 광복절입니다.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은데요. 그래도 최근,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째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하라는 결정이 내려지고 또, 미국 하원에선 '일본군 성노예 결의안'이 통과되는 등 우리의 과거사를 바로 세우고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들이 국내외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과 함께 62돌을 맞는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우리의 과거사를 바로 세우고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얘기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입니다.

임헌영 소장은 1941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65년 중앙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습니다. 『월간독서』『한길문학』『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주간으로 일했으며 현재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입니다. 88년부터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문학평화포럼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한국현대문학사상사』『분단시대의 문학』『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자유인에서 자유인으로』등이 있습니다.

박인규 : 광복절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광복절, 삼일절, 제헌절, 개천절을 잘 모른다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린 친구들은 그냥 광복절은 노는 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임헌영 소장님께서는 여러 가지 현대사의 고난을 겪어오신 분으로서 8월 15일 광복절을 맞게 되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되십니까?

임헌영 :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인 조문기라는 독립운동가가 계시는데 이분은 광복절이 되면 항상 도심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숨어버립니다. 어떤 인터뷰도 응하지 않고, 아주 유명하신 분입니다. 20년 넘게 그러셨는데, 왜 그러냐고 제가 여러 번 여쭙고 제발 말씀 좀 해달라고, 연구소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안 하시는데 해방도 아니고 광복도 아니다. 오히려 친일파들에게 권력을 안겨줘서 그 사람들의 낙원을 만든 것이 1945년 8월15일인데 왜 그걸 우리가 이렇게 즐거워해야 되느냐.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즐겁게 노는 건 사마천의 사기 식으로 말하면 임금 이름이 누구인지 모르고 사는 게 태평성대라고 했는데, 독립된 것도 모르고 사는 건 참 어떤 면에선 독립되긴 된 것 같아요. 사실 미국처럼 더 축제를 벌여야지요.

▲ ⓒ프레시안

박인규 :
해방도 아니고 광복도 아니란 말씀을 하셨는데 최근에 저희가 정치학 하시는 장을병 교수를 모셨더니 1945년부터 48년까지를 보통 해방공간이라고 얘기하는데 장 교수께서는 자기를 해방공간이라는 말을 못 쓰겠다. 그게 무슨 해방이나. 북쪽은 소련군정, 남쪽은 미국군정인데, 그건 미군정기가 맞지 어떻게 해방이냐. 또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말이 있었지만 8월 15일이 해방의 날이라기보다는 분단의 시작이기 때문에 분단으로 봐야 된다는 약간은 과격한 해석도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임헌영 : 저도 분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8.15 하면 나중에 한 50년이나 100년 뒤에 우리가 통일이 됐을 때 1945년 8.15를 분단의 시작, 분단시대, 이렇게밖에 구분할 수 없고 저도 문학사 시대구분을 하면서 분단시대의 문학으로 구분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해방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고 공간이란말도 안 맞는 것이 공간이라는 말을 어떻게 보면 역사의 공백지대, 마치 중세의 다크에이지 하면 암흑시대, 이런 개념이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근대 우리 민족사 100년 중에서 8.15부터 3년 동안 미군정기일망정 그때만큼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의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개진하고 토론하고 피터지는 싸움을 한 적은 없다는 점에서 저는 공간이란 말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거죠. 굉장히 그때 논의했던 대로 우리 민족이 우리 운명을 개척할 수 있었으면 우리 역사가 훨씬 좋았지 않느냐,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인규 : 굉장히 많은 가능성이 있었던 공간인 건 사실이지만 결국은 분단으로 끝나고 말았다.

임헌영 : 네. 그땐 지식인들이, 그게 안 된 거죠.

박인규 : 민족문제연구소는 무엇보다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꼭 8.15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고요. 무엇보다도 특히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과거사를 바로 세우고 청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작업들이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만 해도, 이른바 찬일파라 하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갖고 있는 재산들을 국고로 귀속시켜라. 그런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보시면 뭔가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실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임헌영 : 긴 안목으로 보면 역사라는 건 굽이치다가 결국은 올바른 길로 간다는 게 낙관적으로 보는 거고. 8.15 자체가... 분단이 됐으니까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분단이 되더라도 일제 사슬로부터 풀려난 건 잘했다는 거죠. 그렇다고 그럼 다시 일제로, 그건 아닙니다. 분단되더라도 8.15는 잘 됐다는 거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리 독재의 시대가 암담하고 앞이 안 보여도 언젠가는 민주화가 되는 거고, 민주화가 되니까 또 잊어버린 민족사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도 오고. 그리고 지금 젊은 세대들이 아무리 과거를 모른다고 해도 독도 문제만 나오면 네티즌들이 제일 뜨겁습니다. 다만 젊은 세대들에게 어른들이 독도 문제와 과거가 하나다. 말하자면 과거가 과거가 아니고 현재와 똑같다. 현재의 정치와 미래의 정치, 통일방법까지도 과거를 청산해야만 한다, 이걸 젊은이들에게 심어주시 못한 기성세대가 잘못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젊은이들에게 기본적인 민족애는 있는 것이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흘러온 것임을 잘 모르게 만든 기성세대에 책임이 있다.

임헌영 : 교육정책의 책임, 교육과 언론매체, 사회적인 매체 전체의 책임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조금 전 말씀드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을 국고에 환수시키는 작업, 이런 것도 그런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요?

임헌영 :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사실은 그런 일본의 과거사와 관계한 모든 것의 입법을 저희 연구소가 발안해서, 물론 국회의원님들이 국회에서 하신 거지만 아이디어를 내거나 이런 건 다 저희 연구소가 다 했거든요. 그랬는데 이번에 두 번째 발표된 건 19명이 한 320억 정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국민들이 정말로 실상을 알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단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연구소가 몇 년 전부터 그걸 안 해야 된다고 얘기했거든요. 왜냐면 유명한 송병준이나 이런 사람들이 인천에 갖고 있는 땅을 보면 개인재산이 1000억 2000억 가까이 되거든요. 그런 재산이 이미 몇몇 손을 넘어가버려서 손을 댈 수 없게 돼 버린 겁니다.

박인규 : 이미 주인이 바뀌었다.

임헌영 : 예. 그래서 그걸 보고, 그때 국민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 딴 데는 흥분 안 하는데 부동산만 나오면 흥분해요. 참 저는 불만인데, 그때 그걸 하니까 대단했습니다. 인천시민들도 모르다가 정말로 그 정도가 되느냐. 그런데 그것도 사실 시가로 천몇 억 이랬거든요. 그래서 그때 토론도 많이 했는데 결국 재판하면 판정에서 다 져요. 왜냐, 자본주의 사회에선 개인의 소유가 제일이 되고요. 그런데 제 논리는 뭐냐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개인재산을 옹호하는 건데 그 개인재산은 정당하게, 자본주의적인 윤리의식으로 번 돈이 법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 거지, 우리가 도둑질한 거나 부정부패한 건 재판에서 다 환수하지 않습니까. 벌금이니 징수금이니 하는데, 이건 나라를 팔아먹고 한 게 분명한 건데 어떻게 넘기면 그대로 되느냐 했는데, 제 말은 전혀 권위도 없고, 한낱 그냥 문사, 언어의 희롱에 불과하고 다 패소했어요. 백발백중 패소입니다. 그래서 이 환수법을 만들어야겠다 했는데 참 늦었습니다.

박인규 :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더 이런 친일재산 환수를 위해서 더 이런 것을 해줘야겠다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 ⓒ프레시안

임헌영 :
소급법입니다. 그건 우리나라에선 이런 말 하면 헌법재판소 가고 난리가 나겠죠. 그런데 이게 사실 유럽 쪽으로 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쪽은 일찍 해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법의 시효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관계없는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반인륜범죄라고 하면 그런 말이 어딨느냐부터 시작해서 아주 복잡해지죠.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만이라도 잘 했으면 좋겠고, 지금 사실 환수위원회에서 이미 한 400명을 조사다가 친일혐의가 있는 109명의 재산이 흔들린다고, 넘어갈 가능성도 있고 넘어간 것도 있다고 해서, 공시지가 979억 정도의 토지를 이미 넘길 수 없는. 동결시키는 조치를 해놓고 있습니다.

박인규 : 과거사를 바로 세운다. 이런 걸 하면서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가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회주의계 운동가를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 최근에 상훈도 하고 독립운동의 공을 인정하는데 최근 언론보도를 보니 좌익운동가와 우익운동가 사이에 차이가 있다. 어떤 분은 똑같이 했는데 한 분은 1급이고 한 분은 2급이다. 이런 지적이 있던데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임헌영 : 참 민주화가 많이 된 거죠. 사실 그 전에는 아예 사회주의 계열 사람들을 일체 훈장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훈처에서 국가보훈공로자로 하는 전체가 약 81만 가구가 되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서 독립운동가가 6500 정도 됩니다. 7000 안 되거든요. 이건 0.1%도 안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 과연 우리나라가 그렇게 독립운동도 안 하고 그랬느냐. 사회주의자들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걸 포함하면 만 명도 훨씬 넘고 지금의 2배 내지 3배가 될 거라는 추산인데, 그렇게 안 하다가 결국 민주화가 된 뒤에 사회주의자들, 좋다, 그래서 넣었는데, 그것도 8.15 이후에... 저도 그 심사위원이거든요. 그런데 8.15 이후에 북에서 북과 연관된, 북을 이롭게 하는 활동을 안 한 사회주의자만 넣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보훈처 규정에 의한 급에서 반드시 한 등급 낮춰서 줍니다. 이래서 여운형, 김규식 하면 누구든지 여운형은 다 알고 김규식은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죠. 그런데 김규식은 1등급, 여운형은 2등급. 이래서 여운형기념사업회에서 항의도 했는데... 사실은 저 같은 입장에선, 저 같은 사람이 강경파라는데 사실은 굉장히 온건하거든요. 그래서 우선은 발전이다. 안 주는 것보다는. 그런 처지에 있습니다. 그런 데다가 조금만 8.15 후의 행적에 이상한 것이 있으면 지금도 심사위원회에선 통과가 안 되고 있죠.

박인규 : 이른바 친북활동을 했으면 안 되는 거고.
아직도 분단시대의 제약이 있는 거군요.
그것 말고 또 이런 부분. 효창공원, 김구 선생 묘소가 있는 데인데 거기가 원래는 공원이라기보다는 효창원이었다고 해요.

임헌영 : 효창원이죠. 원래는 조선왕조시대에 하나의 왕릉이었는데 그걸 옮기고 거기다가 백범 김구 선생이 8.15 직후 귀환하셔서 그 당시 독립투사였던 사람들, 이봉창, 윤봉길 같은 우수한 분들 몇 분하고, 나중에는 백범 선생도 거기 안장되셨죠. 그랬는데, 지금은 7분이 됐습니다. 거기에 백범 선생을 안장하고 나니까 거의 일종의 민족의 성지처럼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그걸 없애버리려고 묘를 딴 데로 옮기려고도 하다가, 또 거기를 불도저로 공사해서 좁히려고 하다가. 또 연못 있는 건 메워버렸습니다. 연못이 있으면 굉장히 터가 좋고 왕이 날 터가 된답니다. 그런데 연못을 없애버리니까 풍수지리학적으로, 이런 말 하면 우습습니다만 완전히 없앴고. 그리고 운동장을... 효창구장이라는 게 원래 없었던 겁니다. 스타디움 지을 데 많은데 하필이면 그런 데에다가

박인규 : 말하자면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에 관한 기억을 가급적 잊게 하기 위해서

임헌영 : 임정의 기억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

박인규 : 저도 사실 중고등학교 때 축구 구경하려고 가봤지 거기 김구 선생 묘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임헌영 : 그렇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거기서 온갖 짓을 다하고 심지어는 거시서

박인규 : 지금이라도 좀 더 경건한 독립운동의 성지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시는군요.

임헌영 : 그렇죠. 효창구장도 옮기고, 땅 아무리 좁아도 효창구장 만들 데 많습니다. 후보지도 많고. 옮기고 아예 없애버리고 옛날식으로 연못도 만들어 주고 그대로 회복하자는 게 우리 연구소도 후원하고 우리 연구소 회원들이 나서서 하는데, 이상하게 관련기관들이 협조를 안 해요. 심지어는 어느 정도로 이걸 모르고 있느냐 하면, 그 안에 다 문화재청 관할로 돼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도 자기네 관할 아니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얼마 전에 심포지엄에서 밝혀졌습니다. 다 보니까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건데 다 지정한 적이 없다고..

박인규 : 한 마디로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런 거군요.

임헌영 : 모르고 관심이 없고, 또 알게 되면 복잡하니까 피하려고 하는 것..

박인규 :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하시는 분에게는 최근의 여러 가지 사태진전이 굉장히 미진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만, 그래도 지난달인가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성노예 결의안이 통과된 건 상당히 의미가 크다고 보는데요.

▲ ⓒ프레시안

임헌영 :
크죠. 그래서 저는 금년 8.15의 의미를 지금까지의 8.15와 분단 이후에 1945년 8.15부터 지금까지 쭉 보면 금년 8.15가 한반도 우리 민족에게는 가장 중요한 8.15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면, 나라 안으로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작년까지는 분단을 위한 8.15였다고까지도 할 수 있는데. 금년에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 밖으로는 미국이, 미 국회가 2차대전 종료 후 처음으로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일본의 과거를 국회 전원 만장일치로, 너무나 의미 깊은 일이에요. 그건 뭘 뜻하느냐 하면, 그동안 일본이 버텨왔는데 미국과 일본이 동시에 참의원 선거에서 과거에 관심있는 당이 되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당이 소수당이 되지않았습니까. 그래서 금년 8.15가 어쩌면 우리 민족의 앞으로의 진로를 헤쳐나가는 데서 굉장히 중요한 시사를 주공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우리 민족의 앞날, 특히 과거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국제적 환경도 굉장히 좋게 가고 있다.
이번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원동력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국정신대문제연구소에서 종군위안부 하시던 분들의 수기 이런 것들을 모아서 영문 자료를 냈다고 들었습니다. 언제죠?

임헌영 : 책이 지난 6월에 나왔습니다만, 2권으로 나왔습니다. 그건 아주 저희들이 정말 공을 많이 들인, 물론 이성순 소장이 완전히 그 일만 전담으로 활동하시는 분인데, 왜냐면 너무나 사실을 잘 몰라요. 만약에 이런 일제의 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사실 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일본이 쓰던 말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일부러 쓰고 있는데... 일부러 고의로 회상하기 위해서 종군위안부라는 말을 저는 일부러 씁니다. 연구소에서 명칭을 어떻게 해야 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종군위안부였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런 제도가 인류 역사에서 어떤 잔혹한 전쟁에서 없었거든요. 이것을 서양, 서구문명권, 오늘날 유럽의 인권이 생활화된 문화권에서 알았을 때, 도저히 이건 용납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 우리가 일본만 상대로 하느냐, 그러지 말고 영문판으로 해서 국제문제화시켜야 된다. 초장부터 이미 제소해 둔 상태고, 그래서 책을 냈는데 너무나 이걸 보고 놀랍니다. 왜냐면 우리가 나눔의 집에만 가도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나 글도 있고. 주로 그림을 보면 너무나 피카소 못지않은 감동을 주는 예술적인 감동이 아니라 현실감, 리얼리티가 있는 충격을 받는 건데. 여기서 1권에서는 리얼한 수기나 실록, 이런 것 관련. 2권에서는 외국NGO활동들이나 외국국제기구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문제제기를 했던 걸 싣고. 굉장히 큰, 두 권 합치면 7, 800장 정도 되는 엄청난 크기거든요. 그래서 그게 굉장히 낸 뒤에 국내외적으로 반응이 너무나 좋고 일본 사람들도 그걸 보고 상당히 놀라요. 이렇게까지 우리가 했던가.

박인규 : 말하자면 일본군의 범죄상을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린다는 의미가 있는 건데 지금 몇 부 정도나 배포가 됐습니까?

임헌영 : 정확한 부수는 제가 잘 기억을 못하겠는데, 어쨌거나 웬만한 중요한 기관, 국제기구에는 다 보냈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도 그런 작업들... 말하자면 우리만 일본에 대놓고 당신들이 잘못했다고 외치기보다는 사실이 이렇다. 국제사회가 판단해라. 그런 작업도 굉장히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임헌영 : 예. 그래서 저희들이 야스쿠니 문제도 작년부터 저희 연구소가 주축이 돼서 작년 8.15때는 동경에 저도 가서 아스쿠니NO! 하는 촛불시위를 했거든요. 도쿄 종전 이후에는 일본에선 그런 촛불시위를 처음 봅니다. 놀라서 시민들이. 그런데 지금 도쿄는 굉장히 극우경화돼 있는 데서, 그 사람들 보기엔 조선인들이 와서 그것도 촛불시위, 평화 촛불시위를 하니까 대단했어요. 시민들이, 우리가 가니까 우릴 때리려고... 테러 넣으려고 막 그러는데 일본 경찰들이 출동하면 꼼짝을 못합니다. 어떤 불안스러운 사람들도, 그런 위기를 겪으면서 시위를 했는데. 야스쿠니에 대한 개념도 서구 기독교적인 문명관으로 보면 도저히 이건 서양 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랍니다. 기절할 정도로. 왜냐하면 이건 기독교적 교리로, 기독교적 교리로 꼭 세계를 봐야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문명관으로 볼 때 이건 완전히 미신적인 야만적인 한 부족국가가 할 수 있는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그런 종교의 형태를 띠고 있는 거거든요. 야스쿠니라는 게.

박인규 : 말하자면 전범을 신으로 모신다. 그런 식으로 이해가 간다는 거죠.

임헌영 : 그렇죠 말하자면 일본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간다 이러면 야스쿠니에서 만나자. 이러고 나간다는 겁니다. 야스쿠니가 뭐냐 천황을 위해서 죽은 사람이 영혼이 되면 야스쿠니로 다 돌아온다. 제가 작년에 가보고 너무나 놀랐어요. 우리 한국 관광객들이 일본 가면 백화점에서 쇼핑만 하지 말고 반드시 거길 가보고 와야한다는 겁니다. 가보면 생각이 달라질거란 말입니다. 일본사람들이 우릴 이렇게 생각하는데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가보면 완전히 2차대전때 침략했던 동남아시아를 빨리 공격을 재개해서 다시 찾아야 된다. 그런 결의가 가득 찬 곳이 야스쿠니 신사입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일본 정신의 진수랄까 실상을 볼 수 있는 거군요. 민족문제연구소 차원에서 그럼 야스쿠니 참배 특히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참배에 부분 관해서 어떤 문제제기를 하고 계십니까?

임헌영 : 항상, 항상 비판하고 있고 작년에도 그랬고 금년에는 말씀하신대로 국제화시키기 위해서 미국으로 갑니다. 뉴욕 워싱턴 LA 몇 군데에서 집회도 하고 유엔본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실제적으로 국제 심포지엄을 했는데 미국의 저명한 교수들이 작년에 국제 심포지엄을 한국에서 했거든요. 그런데 와서 보고 정말로 놀아요. 이런 줄은 몰랐다고 야스쿠니가 이런 기능을 하는 줄 몰랐다. 그냥 알링턴 국립묘지 정도로 알았는데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완전히 침략을 위한 침략을 찬양 고무 격려하는. 말하자면 일본의 헌법구조를 정식으로 위배하는 시설이다.

박인규 : 동아시아의 일그러진 역사, 그것을 바로잡는 문제를 그동안은 한중일이 서로 줄다리기해 왔는데 앞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에다 호소하는 그런 방식으로 나가는 거군요.

약간 화제를 돌려서 민족문제 연구소를 비롯해서 과거사 바로세우기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에 대한, 보수파라고 할까요? 그분들의 시각에서 봤을 땐 일종의 정치적 보복이 아니냐. 라는 말씀도 하시고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언제까지 과거사에 얽매일 거냐. 치열한 국제전쟁도 있고 한데 미래를 봐야지 자꾸만 과거에 얽매이는 것은 퇴행적이라는 비판을 하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프레시안

임헌영 :
참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나 하고싶은 호소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은데,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유럽을 여행하면 다 유럽이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을 보면, 그런 유럽이 어떻게 형성됐느냐 독일은 어떻게 2차대전 때 배상을 다 했느냐 하면은 이웃나라들이 친독 협력자들 다 청산하고 자기 국민 속에 친독협력자들 반민족주의,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이죠 우리나라로 치면, 그런 사람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했느냐 그런 속에서 민주주의를 정착했기 때문에 경제정치사회문화종교 모든 게 발전할 수 있었거든요. 그걸 그런 유럽의 과거를 안 보고 오늘의 유럽만을 보면 안 되고 우리나라가 오늘 정치적인 갈등이 과거가 아닙니다. 오늘 정치적인 갈등이 왜 생겼느냐, 그런 것들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것을 인식해 주시고. 그 다음에는 과거가 아니고 현잽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사 청산을 해야지 왜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해야 됩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만약에 그것 없이 그때 잘못했어.

우리가 이러면 안 돼. 그러면 어떤 면에서 안 해도 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이 과거에 나쁜 짓을 한 사람일수록 목소리가 크고 여러 가지 이유를 대거든요. 자기가 옛날에 나빴기 때문에 하면 이러면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역사상에, 자기의 죄는 숨기고 경제가 이런데 왜 그러느냐 몇 년 전 과거인데 왜 그러냐. 이렇게 말하는데 유럽에서는 7~80년 전 행위도 나치, 친 나치 행위는 지금도 잡아넣고 있습니다.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말도 안 되고 경제도 아무 관계 없습니다. 유럽은 왜 그렇게 발전했습니까?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그건 전혀 관계없기 때문에, 다만 세계의 민족국가들 혹은 문화국가들이 다 그렇게 했고 우리도 그걸 안 하면 계속 이런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오히려 그런 걸 가지고 마치 과거를 발목잡는 것처럼 되는 거고. 그리고 제일 오해받는 것이 현 정권과의 관계인데 사실 현정권과 전혀 관계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만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했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는 과거를 청산하는 정권이면 어떤 보수정권도 과거 문제를 청산해야 된다고 보고 이번에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되니까 우리나라 보수 언론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구요. 그런데 5월 16일 취임식 한 후에 제일 먼저 간 곳이 어디냐, 그게 바로 파리 교외에 있는 레지스탕스 35명이 희생된 곳에 가서 하고는, 오늘 프랑스 청년이 본받아야 될 게 누구냐... 거기 17살짜리 희생자가 하나 있습니다. 이 청년, 이 정신을 본받아야 된다. 프랑스가 지금 왜 그럽니까. 매년 과거를 되새겨 줍니다. 그게 민족의 존엄이고, 민족과 나라를 지키는 데선 좌우가 없습니다.

박인규 : 지금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바로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과거사가 우리 미래를 발목잡을 것이다.

임헌영 : 예. 그러니까 독도가 일본이 왜 저러느냐, 결국은 우리나라에 과거청산 안 한 사람이 있고 일본편 들어주는 사람 있다. 독도 문제 나오면 엉뚱한 이유 대서 우리가 너무 떠들면 안 된다 조용히 해야 된다. 이러는 사람들 있거든요. 그러니까 일본이 그러는 겁니다.

박인규 : 예. 62돌을 맞는 광복절. 마냥 기뻐하거나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과거를 바로 세울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이제부턴 좀 개인적인 질문도 드려볼까 합니다. 오늘 인터뷰 준비하면서 어떤 자료를 봤더니 임헌영 소장님의 일대기를 쓴 글이 있더라구요. 보니까 41년생이신데 가족사로나 개인사로나 이른바 현대사의 모든 고난을 겪으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인으로서도 세 번이나 옥고를 치르셨고 6.25 겪으시면서 작은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큰형님은 실종되시고. 8월을 맞으면 본인으로서도 소회가 남다르다고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임헌영 : 참 착잡한데.. 집안도 그렇고. 또 성장해서 보니까 저뿐이 아니고 저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고 이래서 이게 역사다, 그렇게 이해하고. 결국은 우리 세대가 겪었던 비극을 후손들에게는 안 물려줘야겠다. 그러려면 결국은 우리나라가 민주화돼야 하고. 우리나라만 민주화돼서는 안 됩니다. 이웃나라, 예를 들면 일본이 과거사를 되돌려서 또 전쟁을 하면 또 당하게요. 그러니까 동아시아 평화가 돼야 되고. 또 동아시아 평화가 돼도 19세기 말처럼 서양이 쳐들어오면 또 안 되죠. 결국은 세계가 평화로워야 된다. 그러려면 우리가 올바른 생각을 전 인류에게 전파해야 된다는 생각을 저는 갖게 됐습니다.

박인규 : 일대기를 보니까 46년 10월 1일. 보통 대구폭동이라고 하죠. 그때 작은아버님이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 폭동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형님 되시는 분도 연루되셨고. 말씀하신 걸 보니까 제주 4.3항쟁이나 여순반란사건 같은 경우는 대개 많이 밝혀졌는데 오히려 10.1 사건 같은 경우는 잘 안 밝혀지는 게 지역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고 하셨어요.

임헌영 : 예. 그래서 저는 지금 지역감정이라고 하는 건 잘못이라고 항상 주장하고 또 글을 쓰면 경상도 분들, 우리 고향 사람들이 굉장히 흥분합니다. 왜냐면 호남 쪽 사람들과 경상도 쪽 사람들의 역사의식의 차이가 한 3, 40년 납니다. 호남 쪽에 가면 아무 것도 아닌 게 경상도 오면 빨갱이가 돼요. 똑같은 말인데요, 신고 받을 정도로 경상도 사람을 깜짝 놀라고. 실제로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면 그런 의식의 차이를 느끼거든요. 그만큼 차이가 나고 그게 현실정치로 나타나는 거죠. 저는 그래서 지역감정이 아니고 역사의식의 차이다, 이렇게 자주...

박인규 : 사실 일제시대에는 오히려 경북 쪽이 더

임헌영 : 훨씬 앞섰죠. 독립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 사회주의운동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일제식민지시대 때의 정황으로 보면 독립운동 방편으로 그렇게 다 했는데 대구가 제일 전국에서 강했고. 그리고 자유당 때도 마찬가집니다.

박인규 : 어찌 보면 선진적이었다는 말도 들었다는데...

임헌영 : 예. 자유당 때도 대구가 제일 센 거고, 경북고등학교에서 데모도 제일 먼저 일어났고.
언제부터 그렇게 됐느냐면 74년 긴급조치와 60년대 인혁당 사건이 대구 중심 아닙니까. 그때 모든 대구 인재들이랄까 이런 게 다 잘라지고. 그리고 박정희 정권 밑에서, 고향이기 때문에 거기 많이 휩쓸려 들어가게 되고. 정권 실세들로.,

박인규 : 6.25 전쟁 당시에 임헌영 소장님은 둘째시고 형님이 10살 위이신... 우리 나이로 20살. 결국은 못 만나시고 작년인가요, 조카를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임헌영 : 예. 제 고향이 의성인데, 헤어질 때가 선합니다. 우리 시골에서는 맏이가 제일이니까 형님만 살고 나는 죽어도 좋다고 우리 어머니나 집안에선... 가방에다 논문서고 뭐고 다 싸서 형님이 피난을 나갔어요. 그게 마지막 헤어진 거죠. 나중에 전연 알 길이 없어서 이산가족신청에 계속 냈습니다. 온갖 단체마다 다 저도 가입해서, 그랬더니 적십자사에서 작년에 통보가 돼서 작년에 갔더니만 형님은 돌아가시고 조카하고 질녀. 아들 하나 딸 하나. 아들 하나 더 있는데 아파서. 둘을 만났습니다.

박인규 : 임 소장님은 워낙 문학평론가소 사회에 이름을 알리셨고, 본인이 문학은 본처고 인문사회과학은 애첩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민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랄까요? 이유는 어떤 겁니까?

임헌영 : 그게 가족사 문제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중학교 때부터 뭐랄까 우울증 내지 비관적인... 그러니까 친구들과 말도 하기 싫고, 만날 혼자 집에 가면 어머니나 누나들이 울기만 하고 그런 데서 크면서 비관론적인. 고등학교 들어가서 책을 많이 읽다 보니 그리 들어가서, 학교 공부 다 그만 두고 그런 것만 했습니다. 동양철학도 하다가 별거 다 했어요. 나중에는 사회과학 쪽에 관심이 있어서 책을 보면서 대학 와서는 완전히 방향을... 문학을 하긴 하되 문학의 방법을 사회를 평화를 정착하는 것. 이쪽으로 해야만 올바른 문학이 되겠다 싶어서 그리 전념하게 됐죠.

박인규 : 민족문제연구소가 사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임종국 선생의 친일파연구소가 뿌리인데 그 당시에는 굉장히 어렵게 하셨어요. 재작년인가요? 친일파인명사전 할 때도 국회에서 예산이 안 나와서 상당히 고생하신 걸로 아는데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어느 정돕니까?

임헌영 : 참 이 우리나라가 보면, 국민들 성원은 대단합니다. 우리 회원들이 한 5000명 되는데 개개인의 성원은 대단한데 5000명의 성원은 열렬합니다. 우리가 만약 올바른 말을 한 하면 제가 회원들한테 비판을 받습니다. 그런 정도로 저도 조심해야 될 정도로 회원 하나하나가 다 이론가들이고 똑똑한데, 중견급 실업인도 없어요. 다 영세... 영세는 아니지만 소상인들이나 소기업가들이고 대기업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지원도 못 받고 있습니다.

박인규 : 왜 그럴까요?

임헌영 : 그걸 보면 아, 참 이게 우리나라는 무서운 나라란 생각이 들고. 누구를 위한, 뭘 지키기 위한 나라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혼자 가만히 생각하면.

박인규 :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번듯한, 자리 잡은 세력이나 단체에서는 아직까지는 꺼린다고 볼 수있는 건가요?

임헌영 : 그렇죠. 전연 후원비나, 하는 게 없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 한 10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열심히 하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임헌영 : 글쎄요. 그 뒤는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지금은 그런 지경입니다. 그야 말로 믿는 건 오로지 국민의 힘.

박인규 : 민족문제연구소가 활동한 지는 16년이 됐고 소장님으로 활동하신 지는 한 4년 되셨죠?
앞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활동계획이나, 또 임헌영 소장님 본인의 활동계획이나..

임헌영 : 그런데 사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굉장히 강경하건가 이런 줄 아는데, 우리처럼 온건한 게 없어요. 왜냐면 친일인명사전 하면 우리가 막 집어넣는 줄 알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에선 친일기념사업을... 99건이 되거든요. 친일파 기념사업이

박인규 : 언제 완간 계획입니까?

임헌영 : 내년 8.15를 목표로 지금 하고 있는데 사실은 4000명도 안 들어갑니다. 이 4000명 때문에 왜 전 국민이 그렇게 두려워하고. 과거사 청산이 무섭다느니, 온 국민을 죄인으로 만든다느니 하는지 이해가 안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 연구소에서 하는 일은, 사실 우리 연구소가 과격한 게 아니고 저를 비롯해서 다 온건하고 오히려 누구든지 한 사람이라도 빼려고, 어떤 구실만 있어요. 왜냐하면 사르트르가 프랑스 국민이 1%밖에 독일에 협력 안 했다고 프랑스 국민이 자랑스럽다고 했는데 우리는 0.001%거든요. 너무나 자랑스러운 국민이에요. 이걸 국민들이 알아 주셨으면 좋겠고, 연구소는 그것만이 일이 아니고 나온 뒤에는 이걸 영구화시켜서 이걸 역사박물관 비슷하게 해서 국민들께 상시로 외세침략에 대항하는 의식을 가지는, 민족독립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걸 가지는 계몽적인 단체와 운동기구로 남을 계획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임 소장님이 쓰신 글을 보니까 북한의 위협만 무서운 줄 알고 외세의 위협은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 걱정된다고 하셨는데. 앞으로도 사실 친일파 이것이 정치적 보복이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기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앞으로 많은 활동을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임헌영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과 함께 62돌을 맞는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우리의 과거사를 바로 세우고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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