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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론 아시아의 시각장애인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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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앞으론 아시아의 시각장애인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8/14] 실로암안과병원장 김선태 목사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시각 장애의 어려움을 딛고 실로암시각장애복지회를 설립해 봉사활동을 해온 김선태 목사가 올해의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특히 김선태 목사는 개안수술전문병원인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해 지난 21년간 2만 명이 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을 찾아주었고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회를 통해.. 직업훈련과 재활훈련도 해왔는데요. 필리핀 마닐라 소재 라몬 막사이사이상 재단이사회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김선태 목사가 펼쳐온 사회봉사활동 공로를 인정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김선태 목사를 초대해 지난 20여년간 그의 봉사활동을 되돌아보고 봉사활동의 참정신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김선태 목사입니다!

김선태 목사는 1941년 서울 출생으로 10살 때인 1950년 6.25 때 부모를 잃고 본인의 두 눈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온갖 역경을 딛고 1966년 숭실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93년 미국 맥코믹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목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1986년 실로암 안과병원을 설립해 시각장애인에게 개안수술을 해주고
무료 안과 진료를 해주고 있습니다. 또, 1997년 사회복지법인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회를 만들어 현재 상임이사 겸 사무총장을 맡고 있습니다.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했고 올해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 상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축하드립니다. 막사이사이상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말하는데 그동안 많은 축하를 받으셨겠지만,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선태 : 참 감사하고요. 또 이 상은 제가 대표로 받는 거고요, 저를 위해 도와주시고 많은 맹인들에게 개안수술을 할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신 분들의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도에 고 장준하 선생님께서 처음 받으셨고 그 이후로 쭉 받으셨는데 보니까 2002년도에는 시민운동하시는 윤혜란씨, 작년에는 시민운동 하시는 박원순씨, 3년 내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막사이사이상을 받네요. 얘길 듣자 하니 막사이사이상이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만큼 수상자를 결정하는 데 검증작업이 굉장히 까다롭다던데요.

김선태 : 그렇습니다. 저도 한 3년 전에 그분들이 와서, 저도 만나봤지만 한국의 저명한 인사분들 20분을 만나서 이렇게 저렇게 검증하고 알아보고 세밀하게 해서 제가 이번에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3년 전부터 검증했군요. 실제로 상은 받으신 겁니까?

김선태 : 제 상은 8월 31일에 마닐라에서 받게 됩니다.

박인규 : 상금도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김선태 : 상금은 5만 불인데요, 요즘에 우리 달러가 좀 내려가서 우리나라 돈으로 한 4천5백만 원 됩니다.

박인규 : 혹시 쓰실 데는 생각해 놓으셨나요?

김선태 : 저는 이 돈을 모두 다 앞 못 보는 맹인 형제자매들의 무료 개안수술, 또 실명예방을 위해서 모두 바치기로 했습니다.

박인규 : 수상을 하신 가장 큰 이유가 무엇보다 실로암 안과병원을 통해서 21년간 2만7600 명의 개안수술을 해준 것이라고 했는데, 우선 실로암이라는 게 특별한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 ⓒ프레시안

김선태 : 네. 실로암은 성경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어떤 앞 못 보는 사람이 길을 갈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누구 죄입니까? 했을 때 부모의 죄도, 조상의 죄도, 자기 죄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맹인을 불러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 그래서 씻었더니 보았다. 그것이 일화가 돼서... 실로암이라는 것이 연못인데, 뜻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실로암 안과병원도 연못처럼 세상에 보냄 받은 병원이다.. 그래서 실로암 안과병원이라고 했습니다.

박인규 : 그래서 실로암에 오시면 보실 수가 있다.

김선태 : 그렇습니다.

박인규 : 1986년도에 실로암 안과병원을 설립하셨는데 본인도 시각장애인이신데 어떻게 병원을 내겠다고 생각하게 되셨나요. 구체적 계기가 있으셨습니까?

김선태 : 네. 사실 계기는 말씀이 깁니다만 줄여서 말씀드리면, 이 개안수술의 시작은 1977년부터였어요. 충북대학교 가정대학에 계신 이종순 교수님이 청주 맹학교를 우연히 방문했다가 맹학생들의 눈을 관찰하신 후 어떤 맹학생들은 눈이 깨끗한데 눈 가운데 흰 점이 박혀 있더랍니다. 그래서 조금만 제거해 주면 볼 수 있겠다 해서 며칠 밤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 아들의 결혼자금 준비한 걸 가지고 저한테 와서 이것이 개안수술의 시작이 돼 달라고 바쳤어요. 그것이 시작이 돼서 수술을 했는데, 그땐 병원이 없어서 이 병원 저 병원에서 하던 중 어느 계기에 음악회가 있었는데 음악회 때에 어떤 개안수술을 받은 소녀가 눈 뜬 데 대한 고마움과 기쁨을 얘기했을 때 거기에 참석했던 고려합섬 장치혁 회장이 감동을 받고 뜻 있는 실업인들을 찾아다니며 기금을 모아 줘서 1980년에 병원을 짓고 개원하게 된 것이 바로 개안수술 전문병원이 됐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사회독지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혹시 김선태 목사님도 직접 진료를 하십니까?

김선태 : 저는 앞을 못 보고, 저는 목사고. 저는 목사기 때문에 마음, 정신치료, 재활치료, 영혼의 치료를 해주는 영적 의사입니다.

박인규 : 그리고 병원 운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재원이라든가 이런 걸 모아 오시는 군요.

김선태 : 그렇습니다. 그런 걸 캠페인을 해서 일할 수 있도록 기금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안과병원. 이게 외국에도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특징이 있는지 소개 좀 해주시죠.

김선태 : 특징으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와서 무료로 진료 받고 수술 받을 수 있는 병원. 또 비록 시각장애인이 아닐지라도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판단될 때에 무조건 무료 진료와 수술을 해드리는 병원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희 병원은 1년에 12억 내지 15억이 적자가 나요. 모자라야 설립정신이 살아나는 병원인데 제가 바로 그 일을 전적으로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저희들은 시각장애인, 하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다시 빛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개안수술을 해서 볼 수 있는 분들이, 비율이 좀 있는 모양이죠?

김선태 : 네. 어쨌든간에 사실 이 개안수술이라는 건 결국 망막이 괜찮고 각막의 혼탁이 없고 신경위축이 안 된 경우... 백내장으로 앞을 못 보는 분에게는 거의 100%가 개안수술이 가능합니다. 대개 개안수술을 하게 되면 전혀 못 보는 분이 어떤 분은 0.4, 0.6, 0.8, 더 적게 나오면 0.2... 참 신기한 게 처음엔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서 왔다가 수술 받고는 스스로 발로 걸어 나가는 걸 보면 참 거기서 신기한 기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에 시각장애인이 한 20만 명쯤 된다고 들었는데 그 중에서 개안수술을 통해서 빛을 볼 수 있는 분들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김선태 : 대강 한 20만 시각장애인이 있고요, 또 농어촌, 섬지역, 변두리 지역에 저시력이라는 게 있어요. 저시력.. 약시. 0점 이하인 분들이 약 500만 명이 있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합하면 아마도 2, 30% 수술을 받으면 분명히 빛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왜 그런 통계가 나오냐면요, 우리가 40인승 리무진버스에 병원을 차려서 농촌, 어촌, 섬지역을 다니는데요, 가서 400명을 진료했다면 한 30명이 개안수술을 하면 분명이 빛을 찾고 치료를 받게 돼서 통계를 그렇게 내고 있습니다.

박인규 : 시각장애인 20만에 저시력 500만... 따지면 지금까지 2만7천 명에게 빛을 찾아 주셨는데 앞으로도 하실 일이 굉장히 많을 것 같습니다.

김선태 : 네. 저희들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40인승 리무진버스에 병원을 차려서 1년에 40주간을 나가서 현지에서 진료하고 수술을 해요. 그리고 주로 나 혼자 정착촌이나 변두리 지역, 농어촌, 섬지역, 전국의 맹학교 등... 아마 실로암 안과병원만이 특별하게 하고 있는 일이 움직이는 병원을 통한 순회진료입니다. 더 많이 해야 되겠고요, 더 나아가서 이따가도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인근 나라에 있는 후진국들에는 더욱이 시각장애인들이 많아요. 그분들을 위해서도 실명예방도 하고 또 치료도 하고. 그리고 개안수술을 하려고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말 나온 김에 소개를 해주시죠. 인근 나라에 가셨다는데 혹시 중국이나 북한...

김선태 : 중국에도 우리 병원을 세웠습니다. 연변에 실로암 안과병원이 있고요, 그래서 1년에 한두 번씩 꼭 가서 수술해 드리고, 봄에 필리핀도 갔고,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케냐, 이런 데에 저희들이 가서 수술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너무나도 실명자들이 많아서 한두 번 가서는 부족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집중적으로 좀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혹시 북한 쪽은 가보신 적 없나요?
▲ ⓒ프레시안

김선태 : 북한에는 못 갔고요, 북한에는 저희들이 40인승 리무진버스에다가 병원을 완전히 기계와 더불어 설치해서 한 4년 전에 진료버스를 평양 적십자병원에 보냈습니다. 저희들이 가려고 했어요. 가서 기계 쓰는 법도 알려 드리려고 하고 될 수 있으면 우리 실로암 안과병원하고 북한에 있는 맹인기관과 연결하려고 했는데 비자를 못 받아서 못 갔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막사이사이상을 받으셨으니까 내년쯤에는 들어가실 수 있지 않을까...

김선태 : 그렇게 기대하겠습니다.

박인규 : 지금 병원도 하시고 국내 이동진료도 하시고 저개발 국가나 이국가에 가서 봉사도 하시고. 그 외에도 실로암 시각장애인 복지회라는 것도 만들어서 활동하시는데, 이건 어떤 일을 하는 뎁니까?

김선태 :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개안수술을 해서 볼 수 없는 분들, 또 이미 중간에 실명해서 참말로 재활을 못 하는 분들을 위해서 소위 말하면 직업재활, 정신재활을 시키는 곳이 실로암 복지관입니다. 거기서 갖가지 직업훈련을 시킵니다. 컴퓨터를 비롯해서 점자 가르치는 일, 그리고 대한항공에서 귀에 끼는 이어폰을 비닐에 싸는 일, 그렇게 해서 약 100 가지 직업을 개발해서 맹인들을 직업훈련을 시켜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정부에서 100% 보조를 해줍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1년에 한 5천 명이 실로암 복지관을 이용해서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재활하는 기관이 바로 실로암 복지관이 되겠습니다.

박인규 : 실로암 복지관 같은 경우 정부에서 100% 지원을 해준다고 하셨는데, 실로암 안과병원 같은 경우는 1년에 한 12억에서 15억 적자가 난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다 메웁니까?

김선태 : 실로암 안과병원은 의료법인이기 때문에 정부보조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로암 안과병원은 뜻있는 분들이 협력을 해요. 가령, 한 분 수술하는데 30만원이 드는데요, 어떤 분들은 결혼기념, 입학기념, 생일, 졸업, 환갑 기념, 일일찻집, 자선음악회, 바자회, 이렇게 모이고 모여서 주시는 자그마한 돈들이 1년에 8백 내지 천 명에게 개안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랑을 베풀어 주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충당이 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보이지 않게 베풀어 주는 분들이 많이 계시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병원을 운영하실 때 어려운 점이 있으시면 이 자릴 빌어서 말씀해 주시죠.

김선태 : 어려운 점은 역시 경제죠. 그래서 우리 환우들에게 만족할 만하게 돕지를 못하고 참 죄송하게 생각하고 우리 직원들에게도 남만큼 대우를 못 해주는 것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민족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함께 봉사합니다. 그렇게 늘 제가 강조를 합니다. 눈이 불편한 분들 계시면 실로암 안과병원으로 연락해 주세요. 전화번호가 2653-5561부터 5565번입니다. 낙심하고 절망한 분들 보내주시고, 또 혹시 여유가 있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하시면 기쁘게 환영하겠습니다.

박인규 : 2653-5561부터 5565번까지.

김선태 : 많은 후원자를 저희가 원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김선태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보면 선구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병원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빛을 준 건 좋은 일인데요... 작년인가요? 시각장애인들이 거의 유일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안마업을 개방하겠다고 해서 대단한 문제가 됐었는데 현재 정부에서 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포함해서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 중에서 정부에서 이런 일들을 좀 해주면 장애인들이 좀 더 편하게... 그런 제안 같은 게 있을까요?

김선태 : 그런데 말이죠. 제가 학교를 다닐 땐 참 어려웠어요. 저는 앞을 못 보지만 정상인 중고등학교, 맹학교, 신학교를 거치는 동안에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참 어려웠어요. 책 하나 만들기도 어려웠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은 우리나라도 천국입니다.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전 정부에게 바람이 있다면 시각장애인들이나 기타 장애인들에게 완전복지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특히나 안마는 맹인들의 특권이거든요. 안마도 맹인들이 좀 자유스럽게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더 완전하게 보장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데 저희 실로암 안과병원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병원이기 때문에 법을 바꿔서 의료법인도 좀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박인규 : 김 목사님은 살아 오시면서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을 겪어 오셨는데 물론 그러면서도 보람과 기쁨의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막사이사이상 수상도 그 중 하나겠지만 살아오시면서 내가 산 의미, 보람이 있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한 가지만 소개해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선태 : 저는 참 거지에다가 전쟁고아였는데, 하나님의 은혜, 또 많은 분들의 사랑의 도움으로 살아서 정말 우리 젊은 맹인들에게 장학금을 근 천 명을 줘서 지도자를 길러내고 많은 맹인들에게 빛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고 또, 안과병원을 만들어서 사회를 향해서 일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저는 가장 생애에서 행복하고 가장 보람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다고 하는데 잘 안 되더라구요. 김 목사님은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시는 것 같습니다.

김선태 : 그렇습니다. 전 그저 언제나 긍정적으로 삽니다. 언제나 기쁘게, 즐겁게, 긍정적으로, 할 수 없다가 아니라 뭐든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철학을 가지고 인생을 살기 때문에, 저는 어려움을 뚫고 정상인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개인적인 질문도 좀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좀 전에 말씀하시면서 전쟁고아에 거지였다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열 살 때 6.25를 맞아서 부모님 두 분을 여의시고 본인의 두 눈도 잃으시고... 굉장히 어떻게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인데 어떻게 이겨내실 수 있었는지..
▲ ⓒ프레시안

김선태 : 절망이었죠. 눈을 다치고 고아가 돼서... 저는 친척집에 가서 살기로 작정하고 찾아갔어요. 그런데 친척집에서 앞을 못 본다고 때리고 학대하고. 얼마나 매를 맞았던지 제 몸에는 지금 흉터가 60곳이 있습니다. 견딜 수가 없어서 제가 도망을 나가서 거지생활을 2년 반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여러 가지 고난이 많았죠. 어떤 때는 다리에 동상이 걸려서 썩어들 때도 있었고 식중독에 걸려서 사경을 헤맬 때가 있었고. 어떤 때는 옻이 올라서 퍼져서 거의 죽게 돼 있을 때 그때 예수님을 잘 믿는 훌륭한 할머니가 저를 치료해 주시고 도와주셔서 제가 치료를 깨끗하게 받았습니다. 아마 지금도 저는 그 할머니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때에 그 사랑을 잊을 수가 없고. 그래서 저도 이 할머니처럼 살아야겠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를 하면서 시각장애인으로서 일반중고등학교를 다닌 건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한 일이 많죠. 눈 감은 사람으로서 안과병원 원장도 처음이고 또 앞 못 보는 사람이 박사학위를 한 것도 처음이다.

박인규 : 말씀하신 중에, 어떻게 시각장애인이신데 이른바 비장애인과 함께 중고등학교를 다니실 수 있었는지도 참 궁금하네요.

김선태 : 네. 그래서 그 때에 참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야말로 남이 잘 때 자지 않고 노력했고, 남이 먹을 때 굶었고요. 하면 된다, 해야 된다. 배워야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결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순교정신을 가지고 기도하고 땀을 바치고 생명을 바쳐서 공부하니까 정상인 학생을 능가할 수 있었어요. 그때 공부할 때에 많은 선생님들이 저에게 용기를, 꿈을 줬어요. 우리 선태 참 잘 한다. 성공할 수 있다. 넌 됐다. 또 그때 하늘나라에 가신 한경직 목사님이 계세요. 저를 보시면 학생 참 훌륭해. 학생은 문제 없어. 훌륭한 사람 될 거야. 그때 그분들의 그 용기와, 저를 참 아껴주신 것이 큰 힘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오늘날의 제가 됐다고 생각할 때 정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박인규 : 칭찬과 격려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는 10살부터 56년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오셨는데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까?

김선태 : 옛날보다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지나가면 놀리고 돌 던지고 그랬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직 좀 덜 된 것 같아요. 장애자들에 대해서 말이죠, 원색적인 표현을 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눈이 안 보이는 경우는 시각장애인 혹은 눈이 불편한 분, 언어가 불편한 분, 청각이 불편한 분 이래야 되는데 막 원색적으로 하니까 그 말을 들을 대 참 실망되고 낙심되고 별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이나 청각장애인들을 대할 때 돈 안 들이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명칭을 좀 좋게, 아름답게 써줬으면 하는 것을 우리 사회에 부탁을 좀 드리겠습니다.

박인규 : 인격적으로 대우를 해달라. 목사님이 상을 받으시게 되면 장애인이시기 때문에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이 자리를 빌어 장애인들에게 도움말이랄까요? 해주신다면...

김선태 : 우리 모든 장애인들, 때론 낙심하지 마세요, 절망하지 마세요...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언제나 우리 장애인들은 먼 미래를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고 항상 기쁘게 사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사시고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하게 성공의 밝은 아침이 안겨진다 하는 말씀을 저는 모든 장애인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박인규 : 지금까지 2만7천 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을 주셨는데 보니까 앞으로도 하실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상도,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시라도 주신 측면도 있는데,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활동계획을 갖고 계신지..

김선태 : 저는 한국의 시각장애인, 또 아시아 지역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아이센터를 건축하려고 합니다. 눈센터. 그래서 눈센터가 건축이 되면 모든 장애인들에게 전인치유, 심리치유, 육신치유,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실로암 아이센터를 건립하기 위해서 지금 저희들이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벽돌 한 장에 천 원이니까 벽돌 열 장, 혹은 백 장, 또 한 평에는 450만 원, 한 층에는 한 2500만 원 하고 있는데 뜻있는 분들이 종종 도와주셔서 금년 12월이면 착공을 해서 2년 후에는 실로암 아이센터를 건립해서 한국사회에 바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장애는 사실 결함이 아니죠. 단지 불편한 것일 뿐이죠.

김선태 : 그렇죠. 불편하고, 어렵고. 그렇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도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 위해서 많은 활동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

김선태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실로암 안과병원장 김선태 목사를 초대해 말씀 나눠봤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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