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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여름방학때 서울 놀러왔다가 가수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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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1 여름방학때 서울 놀러왔다가 가수가 됐죠"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7/06] 데뷔 40주년 맞는 가수 정훈희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안개', '꽃길', '꽃밭에서' 등 수많은 히트곡을 통해 우리 가요계 '영원한 디바'로 불리는 가수 정훈희씨가 최근 데뷔 40년을 맞았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가수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가수협회 부회장으로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그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가수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선후배 가수들과 함께 공청회도 여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가수 정훈희씨를 초대해 그녀의 노래 인생 40년을 되돌아보고 가수들의 권리찾기 등 다양한 최근 활동들에 대해 들어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가수 정훈희씨입니다. 정훈희씨는 1967년.. 작곡가 이봉조씨의 노래 '안개'로 데뷔해 '보고 싶은 얼굴', '무인도', '꽃길', '꽃밭에서'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습니다. 1970년 도쿄국제가요제 가수상을 비롯해 72년 그리스 가요제, 75년 칠레국제가요제에서 수상했고 현재 대한민국가수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반갑습니다. 벌써 가수데뷔 40주년 되셨어요...

정훈희 : 예. 67년도에 '안개'를 불렀으니까 40해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박인규 : 40년이면 강산이 네 번 바뀐 건데 실감이 나세요?

정훈희 : 항상 어른들 말씀 틀리지 않다고... 우리가 지나 보니 모든 것이 어른들 말씀 맞았구나 옳았구나, 하는 걸 알 듯이, 세월이 그렇게 살처럼 빠르다고 하셔서... 젊었을 때 우리는 빨리 나이 먹어서 선배 소리 듣고 싶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정말 빠르네요.

박인규 : 목소리는 하나도 안 변하신 것 같은데

정훈희 : 다행히 감사하게도 목소리는 많이...

박인규 : 40년이니까 기념도 하셔야 될 것 같고, 최근에 음반을 준비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정훈희 : 예. 제 개인적으로는 부부로 '우리는 하나'라는 게 나왔었고 그동안에. 남편 김태화씨,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한 10년도 더 된 것 같아요 앨범을 발표한 게. 개인앨범으로..그래서 지금 40주년 앨범에 작고가 이영훈 선생님과 우리 후배들 중에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씨 윤상 씨 이런 분들이 주신 곡들이 있고. 그리고 또 RPM 이라고 젊은 래퍼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그 사람 바보야, 빗속의 연인들 리메이크 하고 싶다고 해서 그 곡을 둘이서 같이 해서 또 하고. 또 제이가 이번에 앨범을 냈는데, 제 조카죠. 그 앨범에 제 히트곡을 저랑 같이 듀엣 한 게 있는데 그것도 같이 실리게 됐고. 그래서 선후배가 어우러지는 앨범을, 다양한 앨범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준비중입니다.

박인규 : 래퍼들과 하는 건 리메이크, 나머지는 전부 신곡. 제이 같은 조카하고도 같이 하고.
작은 콘서트가 되겠네요.

정훈희 : 그렇죠. 남편하고도 한 곡 어떠냐고 하는데 글쎄요 남편하고는 우리는 하나로 끝내려고요.

박인규 : 그래도 하나 하시지요. 지금 한창 준비가 바쁘시겠어요.

정훈희 : 네. 지금 한창 준비하고 있고요. 아주 기분 좋은 앨범 발표가 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음반은 언제 나옵니까?

정훈희 : 9월 초로 준비하고 있어요.

박인규 : 이번에 음반이 나오면 몇 년 만에 나오는 건가요?

정훈희 : 우리는 하나 이후로 한 15년

박인규 : 많은 분들이 기대할 것 같습니다. 처음 데뷔하신 게 1967년... 40년 전이었어요. 그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셨죠. 굉장히 일찍 하신 건데, 데뷔곡이 안개. 제가 그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지금도 TV에서 노래 부르신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고등학교 1학년 때 데뷔하시게 됐어요?

정훈희 : 방학 동안 저희 친정아버지께서... 저희는 지금 3대가 가수를 하고 있는데요. 아버지께서 일제시대 때 일본 빅타레코드에 앨범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선배님들은 저희 아버지와 음악생활을 많이 하셔서 많이 아세요.

박인규 : 혹시 성함이


정훈희 :
정근수. 정자 근자 수자. 6.25가 나고 난 후 서울로 오셔서 음악활동을 많이 안 하셔서, 그냥 부산에 계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모르시지만 그 당시 굉장한, 가수지만 실력군으로. 음악이나, 또 그 당시 트로트를 하시면서 외국 노래를, 스탠더드 재즈를 잘 하시는 가수가 없었거든요. 제가 들었어도 저희 아버지는 대단한 가수셨어요.

박인규 : 어렸을 때부터 말하자면 집에서 가정교육을 받은 거군요.

정훈희 : 그렇죠. 저는 준비된 가수였습니다. 오빠들도 쭉 음악을 했기 때문에 저는 말 배우면서 이미 음악을, 재즈 스탠더드, 외국 노래를요.

박인규 : 오빠들 중 한 분은 히식스인가...

정훈희 : 네. 제 위로, 제가 5남 1녀인데 제 위로 오빠들이 넷 다 음악을 했어요.

박인규 : 음악가족이셨군요. 그렇다고 해도 고1때 데뷔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정훈희 : 방학에 서울에 놀러 왔다가 이봉조 선생님이 안개라는 곡을 작곡해 놓으시고 저 같은 목소리를 찾고 계셨나봐요. 그래서 작은아버지 반주에 맞춰서 노래하고 있는데 작은아버지께서는 너는 너무 어리니까 좀 더 커서 해라. 그리고 연습하고 있는데 그 목소리를 따라오셨어요. 제가 노래하고 있는 옆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다가 어디서 목소리가 들리니까 그 목소리를 따라오셨어요. 그랬다가, 아.. 근도씨. 저희 작은아버지가 유명하신 음악 하시는 분이니까, 누굽니까. 제 조캅니다. 그럼 노래 한 번 시켜 볼게요. 그래서 노래를 오디션 몇 곡을 봤죠. 그랬더니 선생님 첫 말씀이 '쪼그만한 게 노래 잘 한다.' 그러시더라구요.

그리고 안개를 주셨어요. 그리고 한 보름 후에 밤에 데리러 오셔서 갔더니 그 당시에는 안개라는 게 노래가 가사가 없었어요. 그냥 색소폰으로 연주를 했을 때거든요. 그래서 갔더니, 나홀로 걸어가는... 안개 영화 녹음을 하고 있었어요. 처음엔 취입을 한 게 아니고 영화 녹음에 삽입될 곡을 녹음해서 그 녹음을 들어본 방송국 프로듀서 분들께서 그걸 미치도록 좋아하셔서 릴테이프가 서로 쟁탈전이 벌어졌던 겁니다. 제가 부른 걸. 그래서 빨리 판을 만들어라. 그래서 1주일 만에 판을 만들었죠.

박인규 : 이미 말하자면 시장에서 전문가들의 점검을 받고 판을 만든 거군요. 처음 판이 나왔을 때가 정확히 언젠지 기억이 나세요?

정훈희 : 67년도 가을이었던 것 같아요. 67년 여름방학 때 서울에 왔다가 노래 선생님을 만났으니까 67년 가을에

박인규 : 영국의 어떤 시인이 자고 났더니 유명해졌더라 그랬지만

정훈희 : 제가 그랬어요. 한 달 만에

박인규 : 방송국도 그 정도면.. 저도 그 노래가 기억나는데, 그 당시 반응이 어땠어요?

정훈희 : 처음 이봉조 선생님이 그 영화 녹음을 하셔서, 곡이 너무 어렵다. 안개가 어렵죠. 그래서 히트를 칠지 모르겠다. 그때는 릴테이프였어요. 그걸로 한 번 방송국 피디들한테 한 번 돌려나 보자. 괜찮을지. 그래서 어느 피디께서, 그때 어느 방송국의 '세시의 다이얼'이 유명한 프로였어요. 최동욱씨가 하던. 그 프로에 한 번 나갔는데 전화통에 불이 났대요. 이거 누구냐고...

박인규 : 요즘 말로 하면 대박을 터뜨리신 건데

정훈희 : 대박이죠. 한 번 나가고 대박 터뜨린 거죠.

박인규 : 그리고 바로 전업가수로 뛰어드신 건가요?

정훈희 : 바로 가수가 된 거죠. 그 방송 나가고 난 일주일 후에 녹음해서 선생님이 19곡을 만드신 거죠. 그 당시 LP 만들면 10곡 들어갔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서 바로 판 만들고 한 달 후 가수가 된 거죠

박인규 : 공부는 그럼 어떻게.. 그만 두신 건가요?

정훈희 : 거의 공부는 못했죠.

박인규 : 그 이후로, 제 기억으론 70년 도쿄 국제가요제에서... 무인도였나요?

정훈희 : 아니죠. 70년도는 안개구요, 71년도에 좋아서 만났죠. 또 72년도에 그리스 가요제, 또 칠레 가요제도 75년도, 78년도.

박인규 : 제 기억으로 해외 가요제에서 수상한 건 정훈희씨가 처음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정훈희 : 처음이구요 아마 가요계에서 제 기록을 깰 가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세 개 가요제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세계.. .최초 수상자이자 최다 수상자겠네요. 몇 번 더 상 받았으니까..

박인규 : 너무 일찍 속된 말로 출세하신 것 같아요. 20대에 사랑을 많이 받으셔서..

정훈희 : 그렇죠. 일찍 출세했죠.

박인규 : 70년 도쿄 국제가요제에는 스웨덴의 아바도 참여했다던데

정훈희 : 72년도에 갔을 때, '좋아서 만났지요'로 갔을 때 그때는 제가 입상하고 가수상도 받았거든요. 그때는 아바가 출연했는데, 그때 머리 노란... 이름은 모르겠는데 여자가 두 사람이잖아요. 그 사람이 아기를 가졌었어요. 그래서 왔다가 그때 떨어졌죠. 그땐 아바가 아마 유명해지기 전이고 그리고 한 3년 있다가 워털루 부르면서 아바라는 이름이 히트하기 시작했죠.

박인규 : 정훈희씨도 사실은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거 아닙니까?

정훈희 : 그때는 세계적인 가수보다도 그저 세계 가요제 나가서 상 받는 것만 해도,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그렇게 큰 그게 없었죠. 그 당시엔 코리아 하면 잘 몰랐기 때문에

박인규 : 6번 국제가요제에서 상 받았다는 건 대단한 건데

정훈희 : 저도 그걸로 굉장히 프라우드하게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박인규 : 70년대까지의 전성기라고 할까요? 거기에 비하면 80년대 이후엔 활동이 쫌 뜸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훈희 : 79년도에 제가 애기아빠 만나서 결혼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당연히 뜸하죠. 지금도 그때도, 특히 여자가수, 여자 연예인들이 결혼하고 아기 낳고 그러다 보면 처녀때 인기 있던 거하고는 달라지죠. 인기 있는 색깔도 달라지죠.

박인규 : 결혼하시고 일단 현모양처로 들어서신 거군요.

정훈희 : 그렇죠. 현모양처보다도 열심히 사는 거죠.

박인규 : 아버님, 작은아버님, 조카분, 다 유명하신 가수 분인데, 혹시 가족 중에 자제 분들은 어떻게 되십니까?

정훈희 : 아들 둘인데요, 둘 다 가수 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데뷔는 안 했고. 어떤 한때의 스쳐가는 아이돌 스타보다도요.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긴 아이들 많고 많은데. 노래실력도 뛰어나야 되고. 일단 한국 남자는 군대를 필해야 된다. 큰아들이 9월에 제대하면 앨범을. 작은 애는 이제 군대 가야 되고요

박인규 : 엄마, 아빠가 다 가수시니까 잘 할 것 같긴 한데 엄마가 보시기엔 어때요? 노래 잘 합니까?

정훈희 : 엄마 아빠가 가수니까 도리어 어렵죠. 모니터가 세죠. 빵빵하죠. 더구나 저는, 제 자식이라도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죠. 어떻게 잘 한다고 얘기해요? 그러니까 엄마 아빠한테 OK사인 받기가 힘들죠. 그리고 그렇게 잘 하는 것 같지 않아요.

박인규 : 실제로 집에서 노래 지도 같은 것도 하고 그러셨어요?

정훈희 :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제가 가르쳐 주면요.. 제 아빠 말대로 세계적인 선생님인데.. 제가 얘기하면 잔소리로 듣고요, 다른 사람이, 음악 종사하는 사람이 가르쳐 주면 그걸 선생님 말씀으로 듣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안 가르쳐요. 그리고 성격 급하니까 먼저 때리고, 야 너 이런 것도 몰라 그러고, 손부터 먼저 가지. 안 가르쳐요.

박인규 : 두 아드님들은 장르로 치면 어느 쪽.. 래퍼도 있고 힙합이니 많은데

정훈희 : 걔네들은 작은 애는 아빠처럼 하드락을 하겠다는 거고 큰애는 발라드. 랩도 하구요. 발라드 하는 애들도 잘 하니까

박인규 : 올해는 정훈희씨 40주년 음반이 나오고, 내년에는 아드님이 데뷔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정훈희 : 네. 그래서 한 45주년 때는 아들들까지 세트로 쭉, 남편하고

박인규 : 기대가 됩니다.

정훈희 : 네. 그렇게 하면 집안만 가지고도 장사가 될 것 같아요.

박인규 : 여기서 잠깐 정훈희씨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이기도 한 '안개'를 들어보시겠습니다.

박인규 : 40년 동안 가수로 활동하시면서 본인이 부른 노래가 몇 곡이나 되는지 계산해 보셨습니까?

정훈희 : 저는 모르겠어요. 대략..

박인규 : 몇백 곡? 어떤 분은 천 곡이라고 하던데

정훈희 : 아니요, 저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제가 가수생활은 40년이지만 노래는 한 15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한 25년은 그냥 생활인으로... 그랬던 것 같아서 그렇게 노래가 생각 외로 많지는 않아요.

박인규 : 일단 안개는 제가 보기에도 가요사에 남을 명곡이란 생각이 드는데, 안개 말고 본인이 가장 좀...

정훈희 : 강 건너 등불, 호반에서 만난 사람, 또 꽃밭에서, 무인도, 제 노래 중에서 진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노래 같이 부르기 좋은 꽃길, 그 사람 바보야, 빗속의 연인들... 이런 노래들...또 스잔나 이런 노래들 굉장히 좋은 노래들이 많죠.

박인규 : 지금 말씀하신 히트곡만 해도 거의 수십 개 되겠네요.

정훈희 : 네. 그래서 열 곡을... 빅쇼를 할 때 프로듀서들이 가수를 고를 때 7곡 이상 히트곡이 있는 사람. 준히트가 아니고 1위를 한 곡을 얘기하는 거죠. 그런 가수가 몇 명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빅쇼 하기가 참 힘들다. 그렇듯이 노래가 히트곡이 한 한 열 곡 있다는 건 굉장힌 운 좋은 가수죠.

박인규 : 그 중에서 딱 한 곡을 고르라고 하는 건 너무 지나친 부탁인가요?

정훈희 : 딱 한 곡은 고를 수가 없죠.

박인규 : 돌아가신 작곡가 이봉조씨께서 정훈희씨 보고 100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말씀하실 땐 좀 허스키한데 노래하실 땐 맑고 청아하게 나와요. 본인의 목소리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정훈희 : 제 목소리의 매력은, 그냥 깨끗하게 노래를 부른다. 사실은 처음 들을 때나 지금 40년 후나 별 차이 없다고 여러분이 느끼시는 게, 항상 제가 처음부터 깨끗하게 노래를 불러서 그렇지 않나. 어떤 특징이 강한 가수는 결국은 그 특징이 강한 걸로 팬 여러분이 식상하다고 하나요? 식상해지죠. 그런데 저처럼 별 그렇게 특징 없이 그냥 깨끗하게 부르는 가수는.. 그냥. 그 대신 깨끗하게 부르기가 힘들죠.

박인규 : 데뷔 67년으로 따지면 지금 정훈희씨와 동기라고 할 수 있는 가수 분들이 어떤 분들 계십니까?

정훈희 : 제 동기가 없어요. 제 밑으로 이수미씨 방주연씨 이런 가수들이 있고, 제가 67년도 데뷔했을 때는 제 위로 2년 선배 문주란씨 계시고. 그리고 제 때 67년도 68, 69년도, 70년대까지 밑으로 유명한 가수가 없어요.

박인규 : 사실 지금 정훈희씨는 가수로 치면 원로 가수신데 최근에 운동가로도 나섰어요. 가수협회 부회장을. 저희 프로그램에 남진 회장도 한 번 나오셨고 윤형주 회장님도 한 번 나오셨는데, 가수협회 부회장으로 참여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세요?

정훈희 : 제가 노래를 하다 보니, 60년대부터 가수를 해서 제가 정말 원로에 들어가요. 그런데 가수협회가 항상 없어서, 다른 분야들은 우리보다 크지 않은데도 협회가 다 있는데 우린 항상 어느 협회에 속한 가수분과가 돼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참 모든 가수들이 안 좋았어요.

박인규 : 말하자면 제몫 찾기라는 면에서 손해가 많다.

▲ ⓒ프레시안

정훈희 :
그렇죠. 저희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여 주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리고 가수들도 협회가 아니라 분과니까 그냥 신경을 안 썼구요. 그러다가 위에 패티김 선배님, 또 여러 번 협회를 만들려고 하셨는데 그렇게 쉽지 않으셨대요. 그런데 작년 3월 29일에 남진 회장님, 최백호 이사, 저, 이 세 친구끼리 만나서 가수협회 만들자, 그래서 세 사람이 손뼉을 딱 치고 가수협회 만들어야지 되는데 돈이 있어야 되지 않느냐. 그럼 1억5천에서 2억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십시일반으로 걷자. 그래서 한달 만에 1억5천이 걷혔어요 제 통장으로요. 그래서 가수협회가 탄생된 거죠. 가수생활 40주년 만에 히트곡도 중요하지만 가수협회를 만드는데 저희가 첫 벽돌을 쌓았다는 걸 제일 저는 지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가수협회가 할 일로서 가수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말하자면 못 찾고 있다. 어떤 겁니까, 대표적으로?

정훈희 : 대표적으로 여러분이 가장 이해하시기 쉬우신 게, 지금 이렇게 안개가 나갔잖아요. 그럼 보통 여러분들은

박인규 : 저작권료인가

정훈희 : 그렇죠. 정훈희가 돈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40년 동안 한 푼도 못 받았어요.

박인규 : 어디로 갑니까?

정훈희 : 방송국에서는 돈을 지불하는 데가 있어요. 87년도에 생겨서 88년도부터 방송국에서 방송보상금을 지급합니다. 어느 협회로. 그러면 그 협회에서 작곡가 작사가들이 가져가고. 그런ㄷ 거기에 비해서 얼마 전 윤도현씨도 30억 벌었다는데 나한테는 3천만 원 밖에 안 들어왔다 그랬는데, 그 말이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저희들이 그렇게 퍼센트를 다 떼고 나면 정말 돈이 몇 푼 안 돼요. 그런데 그나마 그걸 쥐고 있는 협회에서 가수 각 개인한테 돈을 줘야 되는데 분배가 안 됐어요. 그래서 분배가 안 된 돈이 많았고. 그래서 가수협회들이 우리의 몫을, 가수 개인 개인의 돈은 얼마 안 되지만 우리 어려운, 고생하시는 선배님들이 많으세요.

그분들은 너무나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셨기 때문에 저희들처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없으셨어요. 없이 그냥 인기세월을 다 보냈거든요. 그런 분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후배들이 방송보상금을 가지고 그걸 모으면 1년에 얼마든지 몇 억이 돼요. 그걸 가지고 선배님들하고 우리 후배들한테, 이번에 방실이가 쓰러졌다든지...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얼마든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박인규 : 말하자면 가수협회가 창립됨으로서 가수들의 몫을 많이 찾아오신 건가요?

정훈희 : 찾기 위해서 준비 중이고 이제 드디어.... 싸운다고 하면 이상하지만요, 국민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가수들이 지금까지 이렇게 몫을 하나도 못 찾았습니다, 하는 걸 말씀드리고

박인규 : 앞으로 또 원로가수로서, 가수협회 부회장으로서 하실 일이 많을 것 같네요. 많은 분들이 올 9월에 나올 정훈희 데뷔 40주년 음반을 기다릴 텐데 마지막으로 청취자들에게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정훈희 : 제 개인 가수로서는 지금까지 후배들과 어울려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감사했구요. 그 감사함은 또 여러분이 사랑을 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후배들하고 아직까지 건강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이번 40주년 앨범이 나왔구요. 또 개인적으로는 지금처럼 아내 노릇, 엄마 노릇 하면서 별 탈 없이 갔으면 참 감사하겠구요. 그리고 40주년 기념앨범처럼 그보다 더 중요하게 45년 만에 찾은 가수들의 권리를 제대로 찾아서 선후배에게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선배가 됐으면, 그런 바람, 그 꿈이 제일 큽니다.

박인규 : 우선 다시 한 번 데뷔 40주년 축하드리고요, 음반 잘 내시구요. 무엇보다 가수들의 권리를 찾는 데에 선배가수로서 많은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정훈희 : 많이 도와주시고 많이 사랑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데뷔 40주년을 맞은 가수 정훈희씨를 초대해 그녀의 노래 인생 40년을 되돌아보고..가수들의 권리찾기 등 최근 활동들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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