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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다양한 삶의 문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확대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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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다양한 삶의 문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확대되야"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08]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 조희연 소장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지난 수요일부터 오늘까지 사흘동안 '6월 민주항쟁 20주년 특별기획'을 보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6월 민주항쟁의 의미와 성과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1987년 6월에 일어난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은 한국 사회체제를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는데요. 하지만, 민주화 20년... 1987년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져있다는 지적과 함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격과 의미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인 조희연 교수를 초대해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와 의미를 짚어보고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딘지 정리해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입니다. 조희연 교수는 1956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80년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92년 연세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 남가주대학과 영국 랭카스터대학, 대만국립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있었으며 참여연대 정책위원장과 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또, 현재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이며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과 통합대학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6월 민주항쟁을 평가하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함세웅 신부님과 당시 전대협 의장이었던 열린우리당 이인영 의원을 모시고 말씀 나눠봤는데.... 아마 그 당시 조희연 교수께서는 학자시고 강의하셨을 것 같은데...

조희연 : 저도 참여자이자 분석자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참여적 관찰자. 20년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조희연 : 저는 최근에 아시아민주화과정에 대한 비교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대단히 역동적인 사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이내믹코리아라는 말도 있는데, 정말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고 굉장히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하는 대표적 사례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6월 민주항쟁은 한국사회가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하나의 대전환적 사건이었죠. 올해 20년을 맞고 있는데요, 6월항쟁 20년이 또 하나의 전환적 계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 우리 사회가 또 다른 전환기에 처해 있다..4.19혁명과 비교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조희연 :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정을 가만히 돌이켜 놓고 보게 되면 해방을 하면서 한국에 헌법이 만들어졌는데, 크게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 모델이 헌법으로 도입되는 일종의 이식된 민주주의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독재정권이 이런 민주주의를 부정했고. 그런데 60년데 초기 이런 경우에는 국민들도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 이런 식의 사고를 가지고 민주주의를 쉽게 버렸던 점도 있죠. 그러나 60년대 말 70년대를 거치면서 정말 민주주의를 상실해 본 경험 위에서 민주주의의 귀중함을 느끼고, 어떤 시인도 얘기했지만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열망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오랜 투쟁을 통해서, 그리고 또 사실 개인적인 희생, 집단적 희생도 치르면서 민주주의를 다시 쟁취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구요.

그런 점에서 보면 4.19 혁명은 아무래도 그런 큰,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계기에 따른 자발적 분출의 성격이 강했다면 87년 6월항쟁은 60년대 이후 지속적 조직적인 반독재운동의 축적 위에서, 그것이 87년 6월 80년대의 대중들의 반독재열망과 결합하면서, 그런 자발성과 결합하면서 6월항쟁으로 분출한, 그런 점에서는 4.19혁명도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에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분화구였다. 이렇게 봅지만 그 성격은 조금 다른 점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난 시간에 함세웅 신부와 얘기를 나눴는데 그분은 87년을 6월만 볼 게 아니라 1월 박종철 열사가 죽었을 대부터 6월 6.29선언이 나왔을 때부터 12월 대선까지를 말씀하시더라구요. 말하자면 일반 시민들의 민주주의 열기가 87년 대선에선 사실 꺾인 측면도 있고 그것이 제도권에 의해 봉쇄됐다고 할까요 그런 측면들을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과연 87년에 일어난 민주항쟁의 성과를 제도권이 흡수하고 그런 측면들을 어떻게 봐야 될 것이냐, 그런 지적들이 있는데...

▲ ⓒ프레시안

조희연 :
그 점은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87년 6월항쟁은 단순히 6월의 사건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저는 더 소급한다면 광주항쟁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광주학살. 어떻게 보면 20년간 지속됐던 박정희 체제가 부마항쟁을 포함해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의해 붕괴됐죠. 그런데 가만히 보면 박정희 독재정권이 붕괴한 다음 바로 민주주의 이행의 길로 가지 않고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재권위주의화라고 할까, 학문적인 용어로 하면 전두환 독재정권, 제2기 박정희 독재정권, 즉 전두환 독재정권이라는 우회로를 거쳐서 87년에 이르게 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나라들의 경우에 따라서는 바로 민주주의 이행의 경로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한국 같은 경우 아래로부터 민중들의 열기와 투쟁에 의해서 독재정권이 붕괴됐지만 다시 그걸 광주학살이라는 거대한 희생을 치르고 제2기 독재정권이 만들어지고, 그러나 국민들이 굴하지 않고 그 2기 독재정권을 다시 무너뜨린 사건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70년대 말, 80년 광주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최근에 들어서는 87년 체제라는 말들을 많이 해요. 6월 민주항쟁에 의해 생겨난 우리나라의 정치제도랄까 사회체제를 87년 체제라고들 말하면서, 수명이 다했다. 이제는 뭔가 바꿔야 된다는 말을 하는데 87년 체제의 특징은 뭐고 왜 수명이 다했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건지

조희연 : 저희가 연도를 따져서 87년 체제, 61년 개발독재체제, 48년 체제, 53년 한국전쟁 이후... 휴전하고 극우반공주의적인 사회로 한국사회가 재편했기 때문에 53년체제라고 얘기도 합니다만, 87년 체제는 오랜 동안 지속됐던 군부독재정권을 아래로부터의 국민적 투쟁에 의해 붕괴시킨, 그러나 붕괴가 군부독재정권의 완전한 극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6.29선언을 통해서 일종의 타협적 민주화의 경로로 가게 된,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상당히 팽팽한 균형체제인 점이 있습니다.

물론 6월항쟁을 통해서 독재정권에게 항복선언을 받아낸 게 6.29 선언이죠.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그것은 독재정권이 일정한 개혁 내지 개량정책을 통해서 주도권을 갖고 있는 체제죠. 그러니까 87년 이후 일련의 민주화 과정을 놓고 보면 과거의 일종의 독재권위주의 세력이 일정한 이니셔티브를 가지면서 밀리지 않으려고 계속 자기변신도 하고 억압도 하고, 그러나 그것에 굴하지 않고 국민들이 민주개혁을 아래로부터 추동하는 굉장히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체제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냐는 얘기도 했지만, 요즘 와서는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뭔가 살기가 썩 좋지 않다. 지금 20년이 지났는데 우리 사회현실에서 민주주의라는 게 제대로 된 것인지, 민주주의 문제는 버려 놓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야 되는 것인지, 그걸 민주주의의 문제로 봐야 되는 것인지. 지금의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조희연 : 저는 개인적으로 6월항쟁 2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 사회가 새로운 사이클로 전환하고 있다는 느낌도 갖습니다. 역사발전이라는 게 아무래도 한 시기가 있고 그 한 시기에는 시대적 과제가 있었고. 예를 들면 87년부터 지난 20년 동안, 혹은 90년대 말까지의 시기를 놓고 보면 아마 독재정권이 붕괴됐죠. 형식적 민주주의가 복원되지 않았습니까? 직선제도 복원되고. 그런 최소한의 민주적 공간이 만들어지는 속에서 과거의 독재나 권위주의 유산을 극복하고 구체제를 개혁하려는 이른바 민주개혁이라는 것이 시대정신으로 존재했고 그것을 국민들이 열망했고 그걸 배경으로 해서 다양한 시민사회운동들이 민주개혁을 추동했던 어떤 시기가 있었는데, 그게 일정한 전환점을 맞고 있는데 그게 박 선생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절차적 민주주의나 정치적 민주주의는 진전됐는데 대중들이나 국민들 입장에선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하는...

단순하게 얘기하면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까지 확장돼야 하는 과제가 새롭게 제기되는. 그리고 실제로 그런 과제를 새롭게 실현하지 않으면,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 하는 민주주의 회의론이 다시 제기될 수 있는 그런 점에서 보면 87년 6월항쟁에 참여했던 많은 지도자나 개인이나 집단들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을 안게 된 시간 아닌가 싶습니다.

박인규 : 조 교수께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전환적 위기에 처했다. 또는 성공의 위기가 있고 도전의 위기가 있다고 말씀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말씀하신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삶의 향상이로 이어져야 된다. 그런 것과 관련 있는 겁니까?

▲ ⓒ프레시안

조희연 :
그렇습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87년 6월항쟁 때 내세워졌던 여러 가지 구호, 거리에 쏟아져 나오면서 사람들이 열망했던 게 뭘까 하면 아주 최소주의적인 요구와 구호도 있고 최대주의적인 것도 있습니다. 최소로만 보면 직선제 회복, 일정한 언론의 자유 회복이 되겠죠. 그러나 최대주의로 보면 노동해방, 민중해방, 인간답게 사는 사회, 이런 게 있을 겁니다. 철거 없는 사회.. 그런 점에서 보면, 최소주의적 기준에서 보면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래서 지난 20년간을 자학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공의 위기로 제가 표현하는데,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 사례를 비교해 놓고 보면, 예를 들면 필리핀의 아로요 정권은 필리핀에서는 여전히 수백 명의 정치학살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아직도. 이한열이나 박종철의 경우를 연상하면 그것이 민주화의 도정에 10여 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런 것들이 여전히 나타나고.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에는 일종의 광주학살 같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콘트라스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 대표가 무니르라는 인권변호사인데 그 변호사가 벨기에로 가는 차 속에서 공안기관에 의해 살해되는.. 저는 그런 점에서 보면 비교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오히려 아시아의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 민주화 이행을 경험하고 있는데 우리가 좀 지원하고 연대자가 되는 노력을 오히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다른 한편에서 보면 도전적 위기라는 지점이 있는 거죠. 지난 20년 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철거민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느냐. 무주택자 입장에서 볼 때 어떠냐. 노동자나 농민의 자녀가 일류대, 예를 들어 서울대에 들어가는 비율이 과연 높아졌느냐. 이런 기준을 댄다면 그렇게 낙관적인 순 없는 거죠. 저는 이것은 일종의 도전적 위기다. 이런 위기를 인식하고 우리가 조금 새로운 노력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제가 어떤 외국학자의 글을 보니까 아시아에서 자신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는 한국이 최초이고 거의 유일하다. 그런 부분에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말씀하신 중에 최소한의 요구는 많이 들어줬지만 진짜 최대의 사람들이 바라는 부분이 안 됐다고 말씀하셨고.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으로 많은 분들이 경청했던 고려대 최장집 교수 같은 분은 민주화 운동은 잘 했는데 민주주의 정치로는 이행되지 못했다. 그게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다, 원인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동의하십니까?

조희연 : 저도 최장집 교수님의 말씀에 한 80% 동의하구요 20%는 제 개인적으로 사족을 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크게 보면 87년 6월항쟁에서 국민들 대중들이 요구했던 것은 말하자면 민주적 정치, 혹은 민주적 정부, 이런 것들.. 그 외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사실 따져놓고 보면 87년 6월항쟁, 전두환 독재체제, 혹은 유신체제하에서는 제도정치의 영역들이 대단히 위축되고 억압, 통제돼 있죠. 그래서 김영삼이나 김대중 같은 야당지도자도 마찬가지지만 거리의 운동정치가로 바뀌어 있었죠. 강제적으로. 말하자면 제도정치로부터 추방당해 있었던 거죠. 그런 점에서 보면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과정에선 이렇게 운동정치화 됐던 혹은 의회로부터 제도정치공간에서 쫓겨났던 거리의 정치가 정당하게 의회공간으로 복귀되는 성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장집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87년 민주화 과정에서 운동권이 정치권으로 들어가면서 정당정치를 상당히 정상화시키고 회복하고 더 많은 기능을 하도록 노력했어야 되는데 그 점에서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당정치의 정상화라고 할까, 이런 점에서. 예를 들면 최근 FTA과정도 가만히 보면 미국과 비교를 해봐도 FTA라는 거대한 국가적 의제가 결정되는 과정에 의회라는 공간이 별로 역할을 못해버리잖아요.

박인규 : 공론화의 과정이 없었다.

▲ ⓒ프레시안

조희연 :
예. 정부에 의해서 공론화 과정이 없는 건 물론이고 사실 이런 의사결정과정이, 의회라는 것이 국민적 의사수렴을 하고 여론이 수렴되고 사회적 갈등, 이슈가 타협되고 조정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야 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의 의회정치 정당정치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고 그 점에서는 과거 권위주의세력은 당연히 그렇다 치더라도 386이라든지 운동권들이 그런 새로운 정치를 구현해내지 못했다는 점에선 비판받을 점이 있구요. 그러나 단지 제가 사족을 단다면 이런 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래도 일정하게 민주화가 된 마당에서, 정당과 시민사회운동이 얼마나.. 어떻게 바람직한 관계를 맺어야 될까, 정당의 몫은 뭐고 시민사회운동의 몫은 뭐고. 저는 정당정치의 몫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구요. 그러나 정당정치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 시민사회운동이 계속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말씀하신 중에 386 말씀이 나와서 질문해야 될 것 같은데 지난 20년의 민주화 과정에서 386세대들이 상당히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만, 최근에 와서는 권력화됐다, 아니면 일반 시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요구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게 아니냐. 어떻습니까... 386세대의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의 역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조희연 : 80년대 학생운동 세대들은 저는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표현으로 하면 일종의 정치적 개혁주의의 신념을 굉장히 강하게 가졌던 세대인 데 반해서 요즘 현안이 되는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라고 할까요, 양극화라든지 부동산, 교육 이런 여러 가지 사회 경제적 이슈에 대해서 대안을 갖고 정면대결하고 해결책을 만들려고 하는 그런 사회경제적 개혁주의가 좀 부족한, 스스로 계발해야 되는, 그런데 저는 386세대 같은 경우는 일종의 성찰적 자기전환 같은 것들이 6월항쟁 20주년을 맞아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저는 단적으로 이런 점이 있습니다. 386세대가 기성 정치인이 됐다고 쳐보자, 국회의원이 됐다. 혹은 386세대가 기업가가 됐다, 혹은 386세대가 가장이 됐다고 했을 때 저는 자신들이 저항했던 권위주의 세대와는 다른 모습을 구현할 수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치적 측면에서 과연 충분히 그런 기대에 부응했느냐 하는 지점, 또 독재와 싸웠던 386세대들이 기업가가 됐을 때 과거 우리가 비판했던 재벌이라든지 그런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기업경영의 모델과 다른 대안적인 기업경영모델을 실현했느냐. 저는 또 하나는 이런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칼럼을 한 번 써보려고 하는데, 386세대와 유산, 재산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386세대가 가장이 돼서, 정말 386세대가 과거 자기들이 비판했던 세대보다도 자기의 유산을 죽을 때 사회에 더 많이 환원할 수 있느냐. 저는 그건 도전이라고 봅니다.

박인규 : 아직은 평가하기 이르지만...

조희연 : 예.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는 반독재에 자기 몸을 던졌던 세대들이, 그러나 정말 이런 생활민주주의라고 할까요, 자기를 버리는 거라든지 새로운 유일한씨를 뛰어넘는 유한양행의 기업경영을 뛰어넘는 사회적 기업경영의 모델을 과연 실현하고 지향하고 있느냐 하는 점에서는 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새로운 정치 혹은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오히려 기존 체제에 편입해 버리는 감이 있다. 그런 말씀이군요.

조희연 : 동화되는.. 지금도 저는 그런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정치와 시민사회의 역할분담이랄까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특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보수세력에서 그런 비판들을 많이 하는데, 이중대다, 정치세력의 시녀 역할을 한다. 그런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조희연 : 예. 권력화 됐다는 평가도 있고, 그런 지점이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87년 이후 87년 6월항쟁은 민주개혁을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만들었던 사건이라고 저는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랬을 때 그 민주개혁을 추동했던 중요한 시민사회집단이 바로 시민운동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시민운동이 최근 와서 여러 가지 권력화 됐다든지 그런 비판을 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상당 부분 제도화 돼가는 지점도 있고, 정부나 정당의 협의적 파트너가 돼 가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고요. 저는 그런 점에서 일정하게 동의하는 지점이 있고. 물론 그것이 전부가 옳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단지 시민운동이 6월항쟁 20주년이라는 전환적 시점에서 시민운동이 새로운 자기 역할을 확충해 가는 채찍으로 생각했으면 좋겠구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90년대 시민운동이 주로 낙선운동으로 상징되는 바와 같이, 정당개혁, 정치개혁, 투명성, 이런 과제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굉장히 민주적이고 투명하지만 훨씬 더 양극화된 사회가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이런 사회적 의제들을 받아들이고. 또 저는 권력화 됐다는 표현도 많이 나오는데, 저는 운동이라는 게 어떤 시점에서 국민들이나 대중들이 고통으로 느끼는 것을 일종의 의제화 해서, 정책의제든 운동의제로든 만들어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 원래 처음의 운동정신으로 돌아가서 지금 이 시대 시민들이 가장 고통받는 게 뭐냐,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의제화를 하고 그걸 위해서 우리가 다시 희생의 대열에 동참할 거냐,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조금 고민해 본다고 하면 시민운동의 계속적인 국민에 부응하는 역할도 계속될 거라고 봅니다.

박인규 : 정리를 하자면 조희연 교수는 6월 민주항쟁이 일반시민들이 바라는 최소한의 요구는 충족시켜 줬지만 더 궁극적으로 나아갈 때까지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보수나 진보냐, 정파를 떠나서 앞으로 우리가 이른바 인간다운 사회,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욕구를 지킬 수 있는, 교육이든 의료든.... 그런 사회를 위해서 앞으로... 너무 거창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아가는 게 정답이냐.. 그런 말씀을 마무리로 해주시죠.

▲ ⓒ프레시안

조희연 :
87년 민주항쟁의 가장 큰 화두와 합의는 민주주의였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희 연구소도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입니다만,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순수히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훨씬 다양한 삶의 의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해서 광의로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보면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까지 민주주의를 보는 관점이 확장돼야 될 필요가 있고. 저는 예를 들면 민주화 20년에도 불구하고 생활세계의 민주화가 이뤄졌느냐 그런 생각도 해봐요. 문화적 차원에선 여전히 보수주의가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죠.

그 다음 과연 환경의제가 민주주의와 연결되느냐. 생태민주주의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느냐,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구요. 또 하나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말하자면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주의를 넘어서 아시아 민주주의나 혹은 글로벌한 차원에서의 지구촌 저 너머에 있는 의제를 우리들의 민주적 의제로 끌어안는 방식으로까지 확대됐느냐 하는 면에서 저는...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예를 들면 아시아의 인권체제와 규범. 아시아 민주주의 규범, 아시아의 노동규범, 사회규약.. 아시아의 사회복지 시스템 이런 것도 저는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IMF나 월드뱅크라든지 이런 국제적인 금융기구, 경제기구들의 민주화라고 하는 것도... 최근에 글로벌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지구촌 민주주의가 얘기되고 있기 때문에, 저는 20년 전의 민주주의, 그건 굉장히 소중한 건데 그 민주주의를 현재의 맥락에서 확장해서 보는, 그래서 우리가 지금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아시아의 많은 민중들에게 반려자와 연대자, 지원자가 되는. 그래서 저는 이런 얘기도 합니다. 박종철아시아고문기금... 이런 것도 만들자 이거죠. 그런 식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성과를 확대하고 우리 바깥에 있는 문제들을 끌어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민주주의 영역을 계속 확대하면서 그것이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렇게 보면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앞으로도 우리가 굉장히 해야 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조희연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6월 민주항쟁 20주년 특별기획' 마지막 시간으로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인 조희연 교수를 초대해 민주항쟁의 성과와 의미에 대해 말씀 나눠봤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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