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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거는 물으면서 우리 자신의 과거는 묻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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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의 과거는 물으면서 우리 자신의 과거는 묻지 않겠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8/15]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오늘은 광복절 6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61년 전 우리는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났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건국을 둘러싼 좌우익의 단절이 있었고, 민족상잔의 비극이 있었으며 민주화를 위한 고통의 투쟁이 있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활기찬 민주국가로,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지만, 남북대치상황을 비롯해서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는 많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생겨난 억울한 희생자들의 문제도 아직 온전히 해결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광복 61주년을 맞아 진실 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인 성공회대 사회학부 김동춘 교수를 초대했습니다.

광복 61주년 우리가 청산해야할 과거는 무엇이고, 과거사 청산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또,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는 현재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진실 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입니다.

김동춘교수는 1959년 경북 영주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84년에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93년에는 사회학과 박사를 받았습니다. 97년 3월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 교수로 지내면서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타 소장, 노동대학 학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참여연대 창립시부터 정책위워장과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황해문화] 편집자문위원, [비평] 편집위원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근대의 그늘', '전쟁과 사회',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등이 있으며 지난 5월 한길사가 수여하는 단재상을 수상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오늘이 광복 61주년입니다. 보통 사람으로 치면 진갑. 환갑이 지나고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되는 때인데요, 61년 전 우리에게 주어졌던 과제가 온전히 다 풀린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사회학을 공부하신 입장에서 61주년을 맞는 소회 같은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김동춘 : 광복 61주년이 됐는데요, 그동안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이나 경제력 같은 부분은 상당히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이 됐구요. 당시만 하더라도 아시아의 후진국이자 가장 어려운 나라였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1945년 당시 우리민족이 다 열망했던 통일된 자주독립국가 건설이라는 과제는 아직도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동아시아의 냉전체제가 아직도 해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한의 분단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아직 충분하게 자주적으로 서있지 못하는.. 이런 정치적인 굴절은 계속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지위를 획득해가는, 이런 이중적인 상황에 놓여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박인규 : 김동춘 교수께서는 97년부터 연구활동을 하시다가 작년 12월에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옮겨가셨습니다. 교수일에서 다른 일을 하시게 된 건데,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쪽으로 가셔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는지..

김동춘 : 이 위원회는 오랜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해서 분단60년, 한국전쟁, 군사독재하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억울한 과거, 자신의 가족이나 개인사에 피해를 입은 사실들을 진상규명하고 명예회복을 해달라는 요청 때문에 만들어졌는데요. 이 위원회는 정부에서 대통령이나 국회 혹은 국무총리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된 위원회입니다. 이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제가 이 위원회를 만들기 위한 입법운동, 사회운동에 쭉 참가해 왔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 이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있는 연구자로 지목이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에서 잠시 휴직을 하고 이 위원회에 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물론 이 위원회는 정부의 조직이죠. 정부조직의 한 관리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연구자로서도 참여하게 된 거고 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온 사람으로서도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많은 요구들이 있었고. 저는 연구자로서 그냥 활동하길 원했지만 주변의 요구에 의해서 이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박인규 : 과거사 청산, 또는 과거사 정리가 필요하다고 평소에 많이 주장하셨고 연구도 많았기 때문에 책임을 져라.. 제가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과거사에 관한 진실을 밝혀서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 글귀를 봤는데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게 작년 12월 1일부터죠. 과거의 억울한 일들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과거사의 어떤 부분들, 사건들에 관련된 걸 조사하시는 건지 말씀해 주시죠.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김동춘 : 국민들이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87년 민주화 이후에 우리사회에 과거사 문제가 쏟아져 나왔죠. 대표적인 것이 바로 5,18 진상규명이었는데, 당시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이 구속된 일도 있었고. 그 다음에 유명한 의문사위원회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에 국회 앞에서 유족들 400명 이상이 농성을 해서 군사정권 하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사람들의 진상규명을 요구한 예가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 위원회가 만들어진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가 여러 개 있습니다만 저희 위원회는 그 중에서 특히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 억울한 죽음들, 좌익이든 우익이든.. 비전투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한 사건들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 중 하나구요. 또 하나는 과거 의문사위원회에서 다뤘던 과제 중에서 좀 미진한 과제들. 7,8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의 각종 의문의 죽음들, 조작간첩사건들을 비롯해서 45년 이후에 많은 의혹사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구선생 암살사건부터 조봉암 선생, 장준하 선생 사건 등도 우리 위원회에서 다룹니다. 그래서 우리 위원회의 임무는 크게 봐서 이 두 가지고, 그 외에도 해외동포나 독립운동 관련 진상규명운동도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사실상 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진행돼 왔떤 여러 과거사 작업의 총결산, 종합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20세기의 숙제라고 할까요? 이런 부분들을 한꺼번에 진상규명하고, 억울한 일이 있다면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위령사업을 하고, 국민들 사이에서 갈라진 균열이나 갈등을 치유해서 나가자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말씀하신 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희생당하신 분들에 관한 진실을 규명하고 명에를 회복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거창양민학살사건 같은 사건 위주로 조사를 하시는지, 아니면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되는 건지..

김동춘 : 우선 절차는 피해자들이 신청을 하게 돼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 어머니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가족이나 목격자, 주변사람들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접수를 해서 사건을 조사하게 돼 있습니다. 만약에 동일한 사건에 10명 혹은 100명이 신청하게 되면 그걸 묶어서 조사한 다음에 그 진상조사 결과를 국회와 대통령에게 1년에 2 번씩 보고합니다. 그 다음에 본인들에게 그 결과를 통보해 줍니다. 예를 들면 진상규명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조사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은데, 진상조사가 되면 본인들에게 통보를 해줍니다. 그리고 본인들의 신청과 무관하게 직권으로 조사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분명히 피해사실은 있는데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이런 경우는 우리 위원회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사건은 직권으로 조사하고 밝혀서 국민들에게 알리는 과정으로 가게 되죠. 진상규명이 된 이후에는 화해작업을 하게 되는데, 화해작업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법에 의거해서 과거사 재단을 설립하게 돼있고, 혹시 가해자가 나타날 경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만나는 사업을 할 수 있고 위령사업도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사회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죠.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치료하는 화해작업도 위원회에서 진행하게 돼 있습니다.

박인규 : 무엇보다도 피해를 당하신 분, 또는 그 가족들이 신고하는 것이 조사의 첫 단계라고 생각되는데요, 지금까지 신고가 어느 정도 들어와 있습니까?

김동춘 : 작년 12월 1일부터 전국에서 약 4500건이 접수돼 있습니다. 전국의 약 250개 창구.. 시, 군, 구 단위별로 접수받고 있고 저희 위원회에서 직접 받고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상당수 사람들.. 약 80%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알고도 신청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청을 해서 진상규명이 된다 한들 지금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상처를 오히려 더 건드리지 않겠나 하는 생각. 그리고 혹시나 정치적 분위기가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또 한 번 피해를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국민들 사이에 깔려있는 것 같아요. 그 다음에는 보상문제가 여기서 다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 신청해서 뭐하겠는가.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열 배 혹은 백 배 정도의 피해자들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 분들이 신청하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고 우리 위원회에서 신청이 종료되는 게 올해 11월 30일까집니다. 몇 달 안 남았는데 홍보가 부족해서 아직까지 신청을 안 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복잡한 측면이 있습니다.

박인규 : 위원회 활동시한은 제가 알기로 4년인데 일단 신고를 받는 건 올해로 끝나는군요.

김동춘 : 예. 마감이 되고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조사를 한다는 취집니다.

박인규 : 그런 억울한 사정들을 다 조사하려면 현재 위원회가 확보하고 있는 조사요원의 규모로 봐서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지금 몇 분이나 계십니까?

김동춘 : 전체 인력은 187명인데요, 공무원 파견오신 분들이 70명 정도, 별정직 공무원이 한 70명, 그 외 계약직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만, 현재 인력으로 이 많은 사건을 조사하는 건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아마 내년 정도부터는 빨리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유족이나 피해자들의 요구와, 이걸 해결하지 못하는 위원회의 한계 때문에 상당한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큽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법을 개정해서 인원을 더 확충하고 제한된 기간 내에 빨리 작업을 완료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어쨌든 과부하 상태에 있다고 봅니다.

박인규 : 생각보다도 훨씬 적은 신고건수지만 이것도 제대로 조사하려면 현재 인원으로는 어렵다. 제가 언젠가 원로 소설가 최일남 선생이 쓰신 글을 봤는데, 과거의 진실을 밝혀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를 한다. 이건 굉장히 좋은 얘기다. 문제는 가해자 측에서 잘못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어야 용서도 해주고 화해할 거 아니냐. 그런데 이승만 시절부터 쭉 보면 가해자가 직접 나와서 자기 잘못을 용기있게 밝히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길 해요. 이번 경우도 피해자들이 많이 말씀하셔도 결국 진실을 밝히려면 가해자가 좀 나와 주는 게 굉장히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그런 사례가 좀 있습니까?

김동춘 : 대표적인 경우가 저희 위원회의 일종의 모델이라고 생각되는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었죠. 그 경우는 처벌을 하지 않는 대가로 가해자들의 증언을 유도했죠. 그렇게 해서 가해자들을 나타나게 해서 피해자들과 서로 만나게 하는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화해작업이 진행된 게 아닌가 합니다. 그 경우도 사실상 최상부의 명령자, 지휘자들이 고백한 예는 드물고 중간 단위나 하급 단위의 가해자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예상하건대 이런 가해자들 본인이 스스로 가해자가로 얘기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본인의 인생이 전부 부정되는 측면도 있고 동료들의 압력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화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몇 분이라도 그동안 잘못된 공권력의 행사의 집행자가 됐던 사실을 스스로 고백한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그간의 갈등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구요. 그래서 우선 이런 작업에서는 여러 가지 주변의 분위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아공의 경우도 사람들은 성공의 이유를 기독교문화라고 든 적이 있습니다. 관용과 고백.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과연 그런 문화적인 전통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되돌이켜 보게 되고. 우리나라의 기독교나 종교계가 이런 화해나 용서를 한 경험이 있는가도 돌이켜 보게 되죠. 그래서 중요한 시험대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박인규 : 약간 다른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올해가 광복 61주년이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우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인데 너무 과거에만 얽매여 있는 게 아니냐. 너무 회귀적, 복고적이라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동춘 : 그렇게 말하시는 분들은 일종의 자기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는 교과서 왜곡이나 침략주의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것을 얘기하면서, 우리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를 잊자고 얘길 하는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는 거죠. 만약에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다면 일본이 우리에게 저질렀던 침략의 과거사도 잊고 넘어가야 되는, 즉 일본의 현재 우익들을 정당화 해주는 논리적 모순이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례로 저는 독일과 일본의 사례를 들고 싶습니다. 독일이 폴란드,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과거에 대한 용서를 빌고 공동교과서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런 작업을 함으로써 독일이 EU의 중심국가가 됐고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 겁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자신의 과거를 계속 부인하는 과정 속에서 동아시아에서 계속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않고 일본이 우경화되는 문제들이 발생한 거죠. 결국은 과거사 정리라는 것은 국가나 사회의 아이덴티티 수립의 문제죠. 그런 점에서 어떤 국가냐, 어떤 사회냐.. 이런 걸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인권이나 평화, 법, 정의, 이런 개념이 우리 사회의 모든 관행이나 법, 제도, 의식 속에 스며들어 오느냐가 21세기 우리 사회가 과연 약자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느냐. 혹은 정의가 지켜질 수 있는 사회가 되느냐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위해서도 과거사 정리가 필요한 것처럼 국내적으로도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과거사에 대한 명백한 진실규명과 정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략 7,8년 과거사 정리를 해온 것 같은데, 과거사 정리라는 게 우리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로 나아가는 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중간평가를 하신다면..

김동춘 : 저는 분명히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5.18과거청산을 예로 들자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이라는 게 대단히 형식적이었죠. 그리고 사실상 5.18 당시 가해책임도 명확히 밝혀진 건 아닙니다. 그렇긴 하지만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억울한 죽음들을 진상규명 작업을 함으로써 광주지역의 지역주의 문제와 그 지역 사람들의 민주적인 의식이 분명히 향상된 효과가 있었고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분명히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계는 있었지만. 그리고 의문사 같은 경우도 물론 진상규명이 충분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거기에 응답했다는 사실. 즉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고 국가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무책임하게 그냥 내버려 두진 않는구나 하는 약간의 신뢰감. 그리고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통합성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의 재고에 분명히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과거사 관련 위원회가 굉장히 많아서.. 성급하긴 하지만 그런 과거사 규명작업들이 하나로 좀 종합돼서.. 그런 걸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좀 필요한 작업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김동춘 : 이상적이 된다면 이런 위원회가 난립하지 않고 하나의 단일위원회가 돼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면 가장 좋죠. 왜 이렇게 됐는가 하는 건 우리 정치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과거사 정리작업이 진행됐는데 상당부분 유족들의 요구에 의해서 정치권이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하는 과정 속에서 이렇게 된 겁니다. 그때그때 유족들이나 시민사회가 요구하면 법을 만들고 또 요구하면 또 만들고. 그런 민원처리적 방식으로 해결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 애초에 정치적으로 큰 플랜이 있었다면 이렇게 난립하지 않고 하나의 단일하고 일관된 계획하게 충분히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정치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과거사 정리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다른 생각이 있다면, 주로 야당에서 나온 얘긴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 행위, 친북행위에 대해서도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된다. 그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김동춘 : 바로 그 점이 저희 위원회 법에 반영돼 있습니다. 우리 위원회의 조사활동 중에서 이른바 적대세력이라고 지칭되는 북한 혹은 인민군 세력에 의한 인권침해나 폭력부분도 조사하게 돼 있습니다. 저는 그 큰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우리가 이 위원회 활동이 이데올로기로 다시 우리 사회를 찢어놓자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좌에 의한 학살, 우에 의한 학살 혹은 일부 운동권 세력에 의한 폭력.. 이런 부분들을 하나의 이데올로기 잣대로 구분하지 않고 모든 피해사실을 진상조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제기를 했던 분들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이 위원회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전제 하에 그런 문제를 제기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출발이나 핀트가 좀 안 맞는다고 생각하구요. 그래서, 여전히 우리 위원회 활동에 대해서 계속 이데올로기적인 사실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이런 부분들을 인권이나 평화의 잣대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경우에 국민들에게 공감대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60년 동안의 한국현대사의 비극들을 보면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우리가 우리 힘으로 독립하지 못했고 외세에 의해 분단됐다는 더 큰 외적 환경에 의해서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 특정 집단을 공격했을 경우에 오히려 그것이 적절치 않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과거사 문제는 이데올로기 보다는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게 마땅하다는 말씀이시죠?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광복 61주년을 맞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부터는 좀 개인적인 질문도 해보겠습니다. 김동춘 교수께서는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선생님도 하시고, 다시 학문의 길에 들어섰다가.. 상당히 독특한 이력을 갖고 계신데요. 무엇보다도 과거사 정리문제에 대해서 일찍부터 연구도 하시고, 또 과거사 정리를 위한 입법문제에 관해서 앞에 나서시기도 했는데, 과거사 정리가 왜 중요하다. 과거사 정리 문제에 천착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김동춘 : 개인적으로 유신시절에 대학을 다녔고, 그 유신억압이나 광주5.18 당시에 제가 학생으로서 체험을 했고 학생운동에도 약간 관여했던 경험 때문에 당시 억압적 체제나 그 체제 하의 고문이라든지 인권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의 억울함에 대해서 민감하게 느꼈던 경험도 있구요. 연구자로서는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의 노동문제를 갖고 썼는데, 그 노동문제에 접근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노동현장에서의 폭력문제에 특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 우리사회에서 인권이나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해결이 안 되는 중요한 이유들이, 우리 사회의 냉전과 반공이데올로기 등에 의해서 폭력이 끊임없이 정당화 되고. 과거에 인권침해를 한 사람들이 처벌되지 않거나 진상규명 되지 않는 이런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의 집단적 폭력의 기원으로 저는 한국전쟁을 보게 됐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폭력과 전쟁 이후의 폭력, 즉 연좌제. 이것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예를 들면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식의 담론, 그런 것들이 통용되는 이유가 바로 휴전체제죠. 전쟁은 끝났지만 지금 어떻게 본다면 기술적으로는 전쟁중 아닙니까? 그런 것이 구조화 된 폭력을 용인해 주는 시스템.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고 한국전쟁을 연구하게 됐구요. 그러면서 한국전쟁의 수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런 문제를 좀 해결해야겠다.. 이런 생각들을 갖게 됐습니다.

박인규 : 저나 김동춘 교수가 대학 다닐 때는, 사실 관이라는 건 억압적이고 기본적으로 가까이 안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지금 어떻게 보면 관에서 만든 기구에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본다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볼 수 있나요?

김동춘 : 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국가를 상당히 불신해 왔고, 또 어떤 분이 쓴 글을 보면 자기가 여전히 국가를 불신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또 국가가 과거에 가해주체였기도 하구요. 그런 국가가 문제해결의 당사자가 된다는 역설적 측면도 있고. 또 그것의 한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민주화가 되면 국가가 국민의 국가로 변하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되면서 점차 국민들의 요구가 국가의 활동에 반영되면서, 국가가 점차 국민의 국가로 변해오는 과정. 물론 김대중 정부가 국민의 국가를 표방했고 현 정부가 참여정부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것이 충분하게 실질적으로 그런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국가가 앞장서서 이런 역할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역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또 민주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국가의 힘을 빌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오지 않았나 생각하고 제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겁니다.

박인규 : 지금 활동하고 계신 곳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인데, 이건 국내적인 거죠. 많은 분들이 동아시아가 앞으로 공동평화와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라간의 진실규명과 화해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게 일본인데. 오히려 고이즈미 총리 이후로.. 그리고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까지.. 과거사에 대한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 듯한, 그래서 한일관계가 더 꼬이고 어려워지고 있는데요.. 이런 한일관계에서의 과거의 불행했던 진실을 양국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우리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김동춘 : 한일관계의 기본 핵심은 한일이 아니라 한미일관계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오늘의 일본의 우경화나 과거에 대한 부정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만든 거죠. 해방 이후 일본이 패망하고 난 다음에 일급 전범들을 처벌하지 않는, 미국이 처벌하지 않고. 그 사람들을 오늘의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로 만들어준 당사자가 미국이고. 그리고 미국의 이해관계로 인해서 동아시아 냉전체제를 유지해야 될 필요성 때문에 일본을 파트너로 삼고 한국의 군사정권을 파트너 삼아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과의 문제는 결국 어떻게 하면 동아시아가 하나의 공통의 역사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느냐의 문제겠죠. 그런 과정에서 아직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는 극히 초보적인 상태고. 민간차원에서 공동교과서 작업들이 시도되긴 합니다만 일본의 경우는 시민사회나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숫자가 대단히 적고, 중국같은 경우는 지금 경제성장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과정에서 과거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는 상탭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한국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식민지 경험을 했던 피해국가고 분단국가기 때문에 한국이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일본의 각성을 유도하고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깨우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한국의 역할을 통해서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의 관계가 가능하면 서로 균등한 관계로, 상호 협조적 관계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기들이 한국에서의 과거사 정리와 남북한 평화체제 과정 속에서 오히려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평택기지이전문제나 작통권환수 등 문제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리고 있는데,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글어갈지에 대해서 국내적인 통합된 의견이 안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동아시아와 미국간의 중재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어려운 얘기지만 한미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동춘 : 부시정권 등장 이후 한미관계는 지금 최악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정권과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이건 지지하는 입장이건 마찬가진데, 그 이유는 미국이 기본적으로 북한을 테러국가로 지목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북한을 화해의 당사자로 통일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이 간극을 좁히는 게 현재로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현 부시행정부가 바뀌거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되구요. 단지 미국 내에서도 일방적으로 테러국가로 지목하고 전쟁을 벌이는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높고, 미국 내에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상당히 많고. 또 우리가 과거의 전통으로 봤을 때 어떤 특정 외세에 의존할 경우에는 반드시 분단으로 갈 수 있는 비극적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어쨌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해야 되기 때문에 실리적 실용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지 부당하게 우리의 운명이 주변 강대국에 의해 좌우될 지도 모르는, 예를 들면 전쟁 혹은 식민지화 혹은 지나칠 정도의 우리 미족구성원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중국이나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되고. 지금의 움직임은 그 줄다리기를 하는 정상적 관계로 가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우리가 북한이 어려우니까 도와주자고 하다가도 미사일 발사하니까 도와주지 말자고 하고.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우리의 일관되고 통합된 의견이 안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김동춘 : 저는 남북관계는 미래 한국사회 한국정치의 차원에서 봐야 된다고 생각하고. 북한은 기본적으로 체제생존위기에 몰려있다. 그리고 그런 위기에 몰린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지 않고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다고 생각합니다. 대승적 견지에서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북한의 행동이 도저히 예측불가능하고 국제관계의 신뢰를 깨는 행동들을 많이 하고 있죠. 그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승적 관점에서 우리가 장기적으로, 결국 남북한의 하나의 경제정치단위가 만들어져야 된다는 목표를 갖고 본다면 북한에 대한 지원같은 부분은 미래투자고 우리가 미래에 지불해야 될지 모르는 비용을 지금 지불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훨씬 성숙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활동시한이 최소 4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동춘 상임위원은 2년 임기로 가셨는데 혹시 하시다 보면 4년 다 하시는 거 아닙니까?

김동춘 : 제가 앞으로 연구자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현재 연구활동을 못하는 상황이라, 가능하면 학교로 빨리 돌아가서 본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기본적으로 연구자시니까.. 앞으로의 연구테마랄까 활동계획 같은 걸 간단히 말씀해 주시죠.

김동춘 : 지금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주로 한국전쟁 피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활동을 그만 두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학문적으로 정리를 해보고 싶습니다. 특히 보도연맹학살사건 같은 경우 우리 현대사회의 너무나 큰 비극이고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하는 시스템. 그 사건 자체를 보기 보다는 제가 사회학자로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처벌하는 사회의 반인권적 메커니즘에 대해서 한번 분석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제가 연구하고 있는 좀 더 현재적인, 사회학적 주제. 특히 노동문제나 시민사회 등의 주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우리가 농담처럼 말하지만 인간답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건데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학문적으로 많이 기여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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