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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레슬링의 부활,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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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프로레슬링의 부활,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27] 김수홍 대한프로레슬링협회 회장

삶의 고단한 무게에 짓눌려 희망보다는 절망이 컸던 한국의 1960년대.. 답답한 가슴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했던 그때 그 시절...

우리에게 희망을 줬던 인물 중에 한 사람이... 한국프로레슬링의 영웅, 박치기 왕 김일 선수였습니다.

통쾌하고 시원한 김일 선수의 박치기 한방에 내일의 희망을 걸고, 인생역전을 꿈꾸기도 했는데요,

한 시대를 풍미하며, 모두에게 희망을 줬던 프로레슬링이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한프로레슬링 협회가 신임회장 취임식을 갖고 부활을 꿈꾸고 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대한프로레슬링 협회 신임 김수홍회장을 초대합니다.

현재 프로레슬링의 현실은 어떠한가? 침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프로레슬링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는가? 한국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대한프로레슬링 협회 김수홍 신임회장입니다

김수홍 회장은 1979년 용인대학교 유도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프로레슬링 선수로 입문했습니다. 1984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프로레슬링의 영웅 안토니오 이노키가 설립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했습니다.

연간 700회에 가까운 빅매치에 참여하며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스타급 선수로 인정받았으나, 국내 프로레슬링의 발전을 위해 5년간의 일본활동을 접고 귀국했습니다.

88년부터는 국내 프로레슬링회사인 월드 프로레슬링을 설립, 후배선수들을 양성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대한프로레슬링협회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대한프로레슬링협회의 11번째 회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선 회장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사실 요즘은 예전에 비해서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덜한데, 어려운 시기에 회장이 되셔서 양 어깨가 좀 무거우실 것 같습니다.

김수홍 : 그렇습니다. 다실 취임축하 인사 받기보다, 현재 너무 프로레슬링이 침체돼 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헤쳐나가서 다시 인기를얻고 팬들한테 사랑받을 것인가 생각하니 너무나 책임감이 앞서고 어깨가 무거운 게 사실입니다.

박인규 : 프로레슬링 쪽을 보니까 대한프로레슬링협회 말고도 다른 단체가 있더라구요. 한국프로레슬링협회,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김수홍 : 다른 단체는,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라는 게 생긴지 한 2,3년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원래 대한프로레슬링협회는 1957년도에.. 김청수 선생이란 분이 역도산 선생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서 한국에 맨 처음으로 프로레슬링을 도입하셨던 분입니다. 그때 당시 한국프로레슬링협회로 시작해서 66년 2월 14일에 대한프로레슬링협회로 개명을 해서 거기 소속된 선수들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일선생님, 장영철 사범님, 천기덕 사범님, 그 뒤를 이어온 역발산, 이왕표 선수라든지.. 저도 물론 대한프로레슬링협회 소속으로 돼있구요.

박인규 : 대한프로레슬링협회가 오리지널한 원래 조직이다. 현재는 대한프로레슬링협회에 등록된 선수가 몇 명이나 됩니까?

김수홍 : 한 50여 명 정도 됩니다.

박인규 :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거죠?

김수홍 : 그렇죠. 예전에는 100여 명 좀 더 됐는데 요즘은 좀 침체되다 보니까 들어오는 사람이 옛날만 못해서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박인규 : 그래도 그 중에는 여성 선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수홍 : 현재 여성회원 중 시합을 뛸 수 있는 선수들 다섯 명 정도가 시합을 하고 있죠.

박인규 : 예전에는 한국프로레슬링도 TV로 중계가 많이 돼서 사람들이 많이 알았는데 요즘에는 방송으로도 중계가 잘 안돼서 경기를 언제 하는지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일 년에 경기를 얼마나 하십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김수홍 : 한 40~50회 정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박인규 : 저 어렸을 때는 프로레슬링을 수십 명이 모여서 보고 그랬는데 요즘엔 TV중계를 잘 안 해주는 것 같더라구요. 왜일까요? 인기가 떨어져서 그런걸까요, 경기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요?

김수홍 : 모든 게 다 복합돼서 중계를 좀 안한다고 봐야겠죠. 그러나 우리 선수들이, 그중에서도 몇 사람은 해외에 나가서 인정받고 꾸준히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수들이 돌아와서 힘을 합쳐서 다시 한국에서 시합을 한다면 다시 한 번 인기가 올라가지 않을까..

박인규 : 지금 해외에 나가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까?

김수홍 : 예. 몇 명 되죠.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신 이왕표 역발산 선수 같은 경우는 저도 기억이 나는데, 그 분들도 한 4,50대 되셨죠?

김수홍 : 예. 이제는 후배들이 나서야지요.

박인규 : 그 뒤로는 저도 이름을 잘 들어본 적이 없고, 이런 식이라면 조직이라는 게 젊은 선수들이 자꾸 들어와야 이어지는데, 요즘 한국 프로레슬링의 현실이 이 정도라면 젊은 사람들이 희망자가 좀 적을 것 같단 느낌이 드는데요 어떻습니까?

김수홍 : 예. 옛날에는 젊은 사람들이 운동 자체가 좋아서, 프로레슬링이 멋있어서.. 자기도 한 번 링 위에 서고 싶고 멋진 경기를 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세대가 좀 바뀌다 보니까 젊은이들이 돈하고 많이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시합도 자주 없고 인기도 예전만 못하고 침체돼 있다 보니까 좋은 선수들이 그리 많이 입문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실력있다는 선수들은 이종격투기 같은 쪽으로 많이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씨름하던 최홍만 선수도 그렇고..

김수홍 : 프로레슬링 선수 출신 중에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도장을 열어서 격투기로서 후진양성을 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박인규 : 아무래도 대한프로레슬링협회 회장이시기 때문에 유능하고 실력있는 선수들을 프로레슬링 쪽으로 끌어오셔야 할 텐데, 지금 한 50명 정도의 선수가 국내에 있다고 하셨는데 일 년에 50회 정도 경기한다고 하면 속된 말로 생활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선수들의 생활은 어떻게 해결이 되는지 궁금하네요. 어디에 소속이 돼 있는 겁니까?

김수홍 : 현재 우리 선수들은 사단법인 대한프로레슬링협회 소속으로, 또 우리 협회 소속으로 프로모터가 있습니다. 레슬링회사죠. 거기 소속으로서 일년에 한 4,50번 경기를 하는데 그걸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선수들이 보통 직장을 갖거나 사업을 하거나.. 그런 상황에서 짬을 내서 운동을 하고 훈련시간이 적죠.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는 자기 생활이 보장되는데..

박인규 : 송강호씨가 나온 반칙왕에 나오는 선수들처럼 은행원 하면서 하는 그런 선수도 꽤 있는 모양이죠? 케이블방송 같은 걸 보면 미국의 레슬링을 중계를 많이 하더라구요. 그런 거 보면 아직도 레슬링 자체에 대한 인기는 국내에도 꽤 있는 것 같은데 한국프로레슬링을 잘 안 보게 된 것 같아요. 한국프로레슬링이 60년대에 누렸던 대단한 인기를 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수홍 :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 말씀하셨듯이 우리나라 선수들의 중계는 많이 안하고 있지만 WWE라든지 외국의 시합은 많이 거의 매일 중계하고 있는데 그 중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재밌게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중계를 좀 자주 해주고 선수들의 기량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서 잘한다면 희망이 있지 않나. 옛날 못지않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저도 초등학교 때는 많이 봤죠 레슬링을.. 60년대 말인가 장영철 사범 이후 김일 선수가 들어오면서 레슬링이 상당히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장영철 사범의 "레슬링은 쇼다. 짜고 하는 거다." 그런 말이 퍼지면서 레슬링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나 관심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십니까?

김수홍 :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장영철 사범님께서 링 위에서 쇼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얘긴 없었고. 김일선생님과 장영철 사범님과 무슨 오해가 있어서 밑의 후배들이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부경찰서로 끌려간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장영철 사범님이 경찰서에 잡혀있는 후배들을 빼내기 위해서 프로레슬링은 반칙을 좀 허용하는 운동이라고 말했는데 그걸 기자들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그렇게 발표를 한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장영철 사범께서는 곤경을 피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건데 와전된 것이다?

김수홍 :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저도 가끔 격투기나 레슬링을 보긴 하지만, 요즘 일본에서 인기 있다는 프라이드나 K1같은 격투기와 레슬링을 봤을 때 레슬링은 뭔가 좀 실감이랄까요? 격렬하다는 걸 못 느끼는 것 같아요. 레슬링만의 장점이나 묘미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수홍 : 프라이드나 K1같은 그런 관점에서 보지 마시구요. 프로레슬링은 룰이 반칙을 5초 동안 허용을 해줍니다. 그건 팬들한테 재밌게 서비스하기 위해서 만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작이 크고. 제가 보기에는 프라이드나 K1보다도 훨씬 재밌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프로레슬링 마니아들은 훨씬 프라이드나 K1보다 훨씬 재밌다고, 지금도 많이 보고 있고..

박인규 : 김수홍 회장께서는 젊은 시절에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하셨는데 지금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의 인기랄까 위상은 어느 정도입니까?

김수홍 : 일본에서는 대단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K1과 프라이드 때문에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많이 떨어진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일본에서 대단한 스포츠 중 하나입니다.

박인규 :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김수홍 : 아마 일본은 지속적으로 좋은 선수들이 계속 나와서 좋은 시합을 보여주고 방송중계도 연간계약을 해서 계속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의 생활이 보장이 되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첫째 생활보장도 안 되고 중계도 안 되고 시합도 자주 없다 보니 일본과 우리가 차이가 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사실 국내의 구기종목을 비롯해서 인기 스포츠 같은 경우는 경기인 출신보다도 대기업 회장님들이 돈도 퍼붓고 해서 많이 키워주는 편인데 프로레슬링 쪽은 독지가랄까요? 그런 분이 없으신 모양이에요.

김수홍 : 그런데 이번에 다행이 영안모자의 백성학 회장이 신월동 소재 1000평 땅을 우리 협회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거기에 우리 프로레슬링 전용체육관과 역도산 기념관 건립을 할 예정입니다. 건립이 되면 앞으로 과학적, 체계적으로 선수들이 훈련을 해서 좋은 시합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인규 : 영안모자가 최근에 경인방송인가요? 그 TV설립의 대주주로 된 기업이죠? 그 분이 1000평을 기증해서 레슬링 전용 체육관을 만드신다.. 말하자면 김수홍 회장님이 신임회장 되시면서 프로레슬링 중흥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보여지는데.. 그것 말고 프로레슬링 신임회장으로서 한국프로레슬링을 되살리기 위해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죠.

김수홍 : 전임 회장이셨던 장애인 신문사 최규옥 회장님께서 복지TV를 개국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말씀드렸듯이 백성학 회장님께서 경인방송을 인수하셨기 때문에, 프로레슬링이 그 두 개 채널만 계약해서 중계를 해도, 또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을 해서 좋은 시합을 보여주면 팬들한테 다시 사랑받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러면 경인TV는 공중파고 복지TV는 케이블 방송인 것 같은데 프로레슬링 중계에 관한 것들이 확정된 겁니까?

김수홍 : 거의 확정 단계입니다.

박인규 : 새로 프로레슬링 전용 체육관을 짓고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에서 중계를 하고.. 그것 외에 또 내놓으실 만한 계획 같은 게 있으십니까?

김수홍 : 안토니오 이노키씨... 일본 프로레슬링의 대부이자 지금 격투기에도 굉장한 역할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 분이 제 취임식때 오셔서 얘길 했는데 앞으로 정기적으로 일년에 한 두 번씩은 오가면서 한일 정규전을 하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안토니오 이노키 선생께서 아사히TV와 상의해서 자기 이름을 딴 안톤컵이라는 걸 만들어서 프로레슬링을 발전시키는... 한국과 일본이 주체가 돼서 발전시키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상당히 많은 준비가 돼있고 아마 지금부터는 국내 프로레슬링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게 앞으로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대한프로레슬링 협회 김수홍 신임회장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선수로서의 김수홍 회장님의 지나온 발자취에 관해 말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유도를 전공하셨고 공인 6단이라고 들었는데 유도를 하시고 바로 다음에 프로레슬링으로 전환을 하셨어요. 그렇게 프로레슬링이 재밌으셨나요?

김수홍 : 제가 유도를 하면서 김일 선생님이나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 선생님이 시합을 하는 걸 보고 반해서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바로 84년도에 일본으로 건너가셔서 안토니오 이노키 사범 밑에서 운동을 하셨습니다. 안토니오 이노키란 분은 어떤 분인가요?

김수홍 : 제가 설명 안해도 그 분은, 아시다시피 세계적인 프로 레슬러이자 김일 선생님과 같이 역도산 선생님의 제자이시자 일본에서는 대단한 영웅이죠.

박인규 : 제가 기억하기론 예전에 무하마드 알리와도 한 번 게임을 했었죠? 별로 화끈하진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은데..

김수홍 : 76년도에 하지 않았나 하는데, 아마 그게 오늘날의 격투기의 시발점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제가 처음에 김수홍 회장님 소개를 하면서 일본에 가셔서 연간 700회의 경기를 하셨다고 했는데, 연간 700회면 하루에 두 번이어야 하는데 숫자가 틀린 거죠? 4년 동안 하신 게 그런 거죠?

김수홍 : 예. 연간 200회 정도 됩니다.

박인규 : 김수홍 회장님이 그 당시에 경기하신 게 연간 200회입니까? 거의 이틀에 한 번씩 하셨겠네요?

김수홍 : 그렇습니다. 이틀에 한 번이 넘죠.

박인규 : 웬만한 체력으로는 못 하겠는데요?

김수홍 : 저 뿐 아니라 우리 프로레슬러들은 매일 훈련과 시합을 하기 때문에 충분히 해낼 수 있었습니다.

박인규 : 일본에서는 김수홍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셨습니까?

김수홍 : 예 본명을 썼습니다.

박인규 : 본인이 자기자랑 하기는 쑥스럽긴 하지만 일본에서의 선수생활은 어떠셨어요? 성적이나 인기는..

김수홍 : 그때 당시 일본의 프로레슬링이 너무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저 같은 한국사람이 가서도 상당히 인기를 얻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 우리 교포들과 일본사람으로 조직된 제 후원회까지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분들과 계속 교류하고 있고 저를 많이 도와주고 계시는데요, 참 고마운 분들이죠.

박인규 : 일본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시면서 프로레슬러에 대한 대접이 한국과 일본에서 참 다르구나 하고 개인적으로 느끼신 일이 한두 번 있다고 들었습니다.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김수홍 : 예 있습니다. 제가 89년도에 결혼을 해서 일본으로 신혼여행 겸해서 갔습니다. 그때 안토니오 이노키씨가 국회의원이 되셨거든요. 일본에서의 생활을 접고 들어온지 1,2년 지나서죠. 도코타워에서 이노키씨의 국회의원 당선파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신혼여행이니까 우리 집사람과 같이 갔는데 그때 당시 우리 집사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프로레슬링 뿐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들한테 환대해 주는 게 별로 없는데, 거기서는 저를 다 알아보고 사진찍자 악수하자... 인터뷰와 팬들의 사인요청, 또 그 다음날 신문에 나오고. 백화점에 쇼핑을 하러 갔는데 또 저한테 달려와서 '김상' 아니냐고 사인해 달라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제가 지금도 집사람한테 대접받고 살고 있습니다.

박인규 : 최고의 신혼선물을 해주셨군요. 회장님이 되셨으니까 국내 프로레슬러들이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셔야겠네요. 일본에는 일본프로레슬링협회에 소속된 선수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김수홍 : 일본에는 현재 단체가 많이 있고 선수들이 수백 명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거기에는 한국 선수들도 꽤 있죠?

김수홍 : 한국 선수들이 가서 종종 활약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좀 더 하셔서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한 번 평정하시고 돌아오셨으면 좋았을 텐데...(웃음)

김수홍 : 그때 당시 이노키씨나 여건부 선배님과 같이 신일본프로레슬링 회사에서 시합을 했는데 그때 당시는 저보고 남아서 계속 같이 시합을 하자고 했는데, 제 생각으로는 그때 당시 우리 한국 프로레슬링이 침체돼 있었기 때문에 제가 나가서 새로운 마인드를 갖고 프로레슬링이 잘 되고 있는 일본을 모델삼아서 한국 프로레슬링을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으로 88년도쯤 나가서 월드프로레슬링이라는 회사를 차려서 전용체육관과 사무실도 만들고 시합을 계속 해왔습니다.

박인규 : 88년 이후로는 선수라기보다는 레슬링 경영쪽으로 옮기신 건가요?

김수홍 : 선수생활과 같이 했죠.

박인규 : 지금도 하십니까?

김수홍 : 지금은 은퇴했습니다.

박인규 : 일본에서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노키 사범과도 대결을 한 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수홍 : 그때가 1989년 5월 6일로 알고 있습니다. 88체육관에서 KBS생중계로 제 스승이자 사범이신 안토니오 이노키씨와 시합을 했습니다. 결과는 제 실력이 부족해서 졌습니다.

박인규 : 작년인가요? 역도산이란 영화가 설경구씨 주연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당시에도 김수홍 회장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수홍 : 영화사 사이더스의 차승재 사장과의 관계 때문에, 차승재 사장이 저한테 부탁을 해서 설경구씨에게 운동지도를 해달라고 해서 제가 설경구씨에게 운동을 가르쳤습니다.

박인규 : 얼마나 가르치셨습니까?

김수홍 : 몇 달 가르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박인규 : 설경구씨가 잘 하던가요?

김수홍 : 설경구씨가 처음에는 "선생님 저는 몸치입니다. 운동을 여태까지 해온 일이 없습니다."그렇게 말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무슨 운동이든지 기본이 낙법이기 때문에 낙법부터 가르치니까 잘 따라하더라구요. 그리고 설경구씨는 연습할 때보다 카메라를 갖다 들이댈 때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역시 배우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일본에 계실 때 연간 200회 정도의 경기를 하셨다고 했는데 상당히 격렬한 경기잖아요. 레슬링 하시는 분들의 건강관리 같은 건 잘 하고 계십니까?

김수홍 : 모든 운동선수들이 격렬한 운동을 할수록 건강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더욱더 노후에 안좋은 것 같구요. 또 겉으로는 건장해 보니까 건강하게 보이지만 격렬한 운동을 하다 보니 나이 먹어서는 아픈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김일 선생은 지금 어떤 상태이십니까?

김수홍 : 김일 선생은 지금 을지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몸상태가 굉장히 안좋으셔서.. 우리 후배들이 볼 때는 안타깝죠.

박인규 : 그래도 회장 취임식에는 직접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수홍 : 예. 몸이 불편하신데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시고 직접 오셔서 축하를 해주셔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임기가 2년이라고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하실 일이 많을 텐데, 마지막으로 프로레슬링을 위해서 하실 일.. 그리고 국내 프로레슬링 팬들을 위해서 못 다 하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죠.

김수홍 : 우리가 신월동에 전용체육관을 건립해서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거기서 과학적 체계적으로 훈련을 해서 좋은 경기 보여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박인규 : 신월동에 체육관은 언제쯤 건립이 됩니까?

김수홍 : 아마 내년쯤 착공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빨리 체육관이 완공돼서 국내 프로레슬링 선수들의 멋있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네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수홍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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