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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적시나 가늘어 소리 없구나"

[남재희 칼럼] 韓·中·日 동북아 3국 관계의 미래상

MB의 돌연한 독도 방문으로 표면화되고, 한일 양국 간의 미해결 난제가 겹쳐 폭발에 가까운 갈등이 된 작금의 사태에 대하여 많은 해석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서 재일교포 2세로 일본 동경대학에 있는 강상중 교수의 진단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8월 20일 자 <서울신문> "MB 日王 발언, 日 민족주의 자극… 독도문제 등 다자외교로 풀어야" 참조)

그는 "일본의 파워 엘리트 그룹 중에서도 안전보장에 대한 불안감이 깊어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정치적으로는 해마다 총리가 바뀌는 등 독일 나치 정권 출범 전 바이마르공화국과 유사하다고 하였다. 일본 국민의 불안감 증가를 토양으로 강경 민족주의자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총리가 되려 하고 있으며 "평화헌법 개정은 물론 총리 권력을 대통령과 유사하게 강화, 강력한 민족주의 정책으로 '강한 일본'을 지향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MB가 결과적으로 사려 깊지 못하게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상기시킨 것이 특히 관심을 갖게 한다. 비단 일본만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우려를 하며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꼭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고 미니·히틀러, 미니·무솔리니가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들이 선거 정치에서는 중도층의 지지를 못 받아 성공하지 못 한다 하더라도 정치지형을 크게 우편향시키는 결과는 가져올 것이다.

그러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실제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의를 하고 보면 미니·히틀러, 미니·무솔리니가 보인다. 특히 무솔리니 형이 더 많은 것 같다. 무솔리니는 좌익에서 우익으로 선회한 선동가요 파시스트다.

경제민주화다, 재벌개혁이다, 복지증세다 하고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재계 일부가 불안해하는 것 같다. 그쪽에서의 지원이 미니·무솔리니들에 흘러갈 수 있다. 외국의 전례도 그렇다.

관심을 끄는 것은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의 발언이다(8월 25일 <한겨레> 참조). 그는 지난달 24일 동반성장연구소 주최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서 "민주당 안에 재벌 장학생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며 민주당 안에 50~60명의 장학생이 있음을 암시했다. 틀림없이 새누리당에는 더욱 많을 것이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경제전문가다. 물론 어느 정도 추측으로 한 이야기겠지만, 여하간 주목된다.

'미국의 아시아 귀환'(표현이 이상한데 아마 무게를 더 둔다는 뜻일 게다)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아시아 전역에 걸쳐 갈등이 커가고 있다. 한·중·일 사이에서도 독도·조어도 문제를 비롯하여 지난 역사의 지우지 못한 흔적 때문에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고 요즘 확대되고 있다.

마침 이때 미국의 일본 전문학자 존 다우어 교수의 <잊는 방법, 기억하는 방법 : 현대 세계 속의 일본>이라는 책이 나와 외지에서 자세히 소개를 하고 있다.

"일본의 보수파들은 과거의 잘못을 호도하며, 그들의 제국주의적 과오를 서양의 식민주의에 대항해서의 성전(聖戰)으로 미화하려 한다. 학교 교육에서 과거 역사의 어두운 곳은 축소하여 가르친다. 중국은 일본 침략에 대항해서의 그들의 투쟁에서 역사적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일본의 잔학행위를 교육에서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그 학자는 국가권력에 의한 담론의 지배와 하향식 국민의식 형성이 문제라면서, 시민에 의한 상부 엘리트들의 담론에 대한 도전을 통하여 상향식 의식 형성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중·일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음미해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 전에, 한일 간에 큰 일이 일어나면(예를 들면 '문세광 사건' 같은 것,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은 한일관계를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광복절 경축행사가 열린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은 박정희를 저격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대신 육영수 여사가 유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반일·항일 감정이 폭발하고(가끔 집단 히스테리처럼도 보였다) 데모가 일어나며 불상사가 나는 등 마치 홍수가 터진 듯한 사례를 보고, 그러한 반일의 흐름을 일시에 홍수 지게 하지 말고 댐을 쌓고 발전기를 놓고 하여 그것을 계속되는 전기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전날엔 한일 정치인 간에 부자(父子)관계란 터무니없는 말을 하기도 하였고, 평소에 "형님(아니끼: 兄貴)" 운운하기가 일쑤였다. 그런 무원칙한 유착 관계보다, 한일 간에는 일정한 정도의 긴장관계가 항상 있어야 정상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홍수를 댐으로 막고 발전하는 그 전기가 일정한 긴장관계의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중국 갑오전쟁 박물관 ⓒ남재희

최근에 중국 산둥반도 북단에 있는 전날 중국의 가장 중요한 해군기지였던 위해(威海)와 바로 앞의 유공도(劉公島)를 가보았다. 청일전쟁(중국은 '갑오전쟁'이라 한다) 때 북양(北洋) 해군의 기지였고, 일본과의 가장 큰 해전이 그 앞바다에서 치러졌다. 거기서 청나라의 자매 주력함 하나가 침몰되고 다른 하나는 투항하였다.

▲ 정여창 해국 제도 동상 ⓒ남재희
그 유공도 해군기지 유적지에 갑오(甲午)전쟁 박물관이 크게 세워져 있고, 패전 책임을 지고 자결한 정여창(丁汝昌) 해군 제독의 거대한 조각이 세워져 있다. 비록 청나라 때 일이지만 일본에의 패배를 잊지 않고 와신상담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여순에서 일본군이 민간인을 대량으로 학살한 것(2만여 명쯤이라고 한다)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중일전쟁 때의 남경학살은 더욱 끔찍하여 20~30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그 남경학살을 자세히 기록하여 책으로 낸 저자는 얼마 지나 자살했는데 계속되는 시달림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일전쟁은 한반도에서 동학혁명을 계기로 촉발되었고, 그 후 한반도가 일본 제국주의의 먹잇감이 되는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니, 그곳을 견학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동북아 3국 간에 또다시 긴장이 높아지는 시점이고 보니 더욱 그렇다.

거기서 좋은 한시 한 수를 읽었다.

"반가운 비로 시절을 알게 되네 (好雨知時節)
봄이 되어 비가 내리는구나 (當春乃發生)
바람을 타고 가만히 밤에 들어와서 (隨風潛入夜)
사물을 적시나 가늘어 소리 없구나 (潤物細無聲)"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

갑오전쟁박물관 부원장 왕지허(王記華)의 글 속에 있는데, 민간 교류 역시 가늘고 길게 세상을 적시는 봄비처럼, 서로 다른 나라 민중들의 거리를 좁힌다는 해설이 붙어 있다. 민간 교류 뿐 아니라 국가 간의 외교도 그래야 할 줄 안다.

그의 말이 아니어도 민간교류가 중요함은 모두 알고 있다. 큰일이 벌어졌을 때는 민간교류가 힘을 못 쓴다. 무력하다. 그러나 일단 수습을 하는 단계에서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요즘 한중, 한일 간의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는 논의들이 활발하다. 마침 한중 수교 20주년이기도 하다. 우리도 그 방면의 전문가들을 얼마간 축적하였다. 모두가 참고가 될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결론만 간단히 이야기해 두고 싶다.

한국은 일본에 대하여 평소에 항상 끊임없이 일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한다. 최소한 비극적 역사의 흔적이 지워질 때까지는 그렇다. 섣불리 "의리 인정(義理 人情)"하면서 유착해서는 안 된다. 최근에 무슨 코미디처럼 나왔다 들어갔으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운운과 같은 군사적 협조관계에 진입해서는 안 된다. 한·미·일 간의 군사 밀착 강화는 실익 없이 중국만 자극할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굳이 중국에 굽힐 것은 아니나 지금 이상 중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에는 손톱 밑의 가시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은 불가피했던 역사적 산물이며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미국과의 유대는 지금처럼 강고하게 유지해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커다란 자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진보세력들도 미국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점을 꼭 깨달아야 할 줄 안다. 다만 가까운 장래에 동북아의 긴장완화와 더불어 주한 미군은 점차 축소·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남북한 간의 긴장 해소와 평화를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유대는 계속 확고히 유지해야 한다. 그러는 것이 한중 간의 관계조정을 위해 필요할 것이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렇게 말하다 보니 '미국의 아시아 귀환'의 역코스를 말하는 셈이 되었다. 미국은 아마 조만간 중국과 현상유지와 안정과 평화를 위한 일대 타협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데탕트 이야기다.

다만 이러한 정책을 취함에 있어서 모든 일을 앞서 인용한 한시에 있는 것처럼 "사물을 적시나 가늘어 소리 없구나"여야 한다. 가늘고 조용히 세상을 적시는 봄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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