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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에서 기회로- 중·러 접경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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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에서 기회로- 중·러 접경지대

윤재석의 '지구촌 브리핑' <52>

냉전시대 국경분쟁의 대명사로 꼽혔던 연해주의 중국-러시아 접경지대가 최근 새로운 교역의 통로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중심도시가 연해주에 있는 중국 접경도시 브그라니체. 뉴욕타임스는 최근 연해주에 불고 있는 중-러간의 활발한 교류 양상을 31일자에 보도했다.

국경도시 브그라니체는 러시아어로 '변경에 있는(on the border)'이라는 뜻으로 수십년동안 러시아에서 '브그라니체', 즉 변경 도시라는 말은 병역의무라는 부정적인 뜻을 상징하는 용어로 쓰여왔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 연해주에서 변경도시라는 말은 '돈벌기'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지금 브그라니체에선 용접공들이 예전 중소국경 분쟁때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펜스를 설치하느라 분주하다. 철망으로 둘러친 30헥타르(9만평) 안은 중국인과 러시아인들이 비자 없이 출입하며 자유롭게 섞여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공장에선 면세점에서 판매할 물건을 만들기도 하며 머물 수 있는 특급 호텔들이 들어설 자유무역지대이다.

이와 같은 곳은 러시아에서 유일한 곳이며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라고 세르게이 다르킨 연해주 주지사는 주장하고 있다. 중-러간 수십년동안의 불신을 거두고 이 지역은 최근 일고 있는 중국의 고도 성장 열기를 따라잡으려 애쓰고 있다.

다르킨 주지사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고 철도연결편을 개선하고, 고속도로용 교량을 건설하고 루블-위안 교환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는 등 그 스스로 이곳의 개방에 열렬한 전도사다. 지금 러시아의 동부 3분의1이 조용히 중국의 경제 궤도에 편입한 것이다.

중국은 지금 러시아 연해주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다. 유럽지역의 러시아로부터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들어온 물품들은 운송비 때문에 워낙 값이 비싸 찾아보기 힘들다. 역시 자유무역지대를 만들려고 구상 중인 접경도시 하바로프스크의 국제고문을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쿠츠크는 "중국과의 합작기업 수가 최근 일본, 한국, 미국 등과의 합작기업수를 합한 것보다 많아졌다"고 실상을 소개했다.

올해 중-러간 교역규모는 2백20억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5년만에 4배나 늘어난 신장세이다. 지난 2월 2건의 수십억달러짜리 거래가 공표된 바 있을 정도다. 러시아 최대의 석유회사인 유코오일은 2006년부터 중국에 대해 30만배럴의 원유를 공급하기로 했는데 이는 작년 중국의 러시아로부터의 원유수입량의 3배 수준이다. 지난해 러시아로부터 중국의 원유수입은 2002년의 두배였다.

이와 별도로 중국은 같은 달 랴오닝성의 다롄과 연해주를 잇는 철도건설 15년계획을 발표했다. 다롄-브그라니체-블라디보스토크로 연계되는 철도가 건설되면 중국인들의 연해주 내왕이 더욱 빈번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중국은 그 동안 도외시했던 지린성,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등 동북3성지역에 대해 70억달러 규모의 장기 개발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러시아는 점차 인구희소해 지고 있는 지역인 시베리아의 경제개발 모델로, 캐나다에서 입증된 개발 방식(에너지와 천연자원을 공업화하고 있는 이웃에 수출하는 방식)을 따르려 하고 있다. 대부분의 캐나다지방 정부는 미국과 남북 교역, 다른 주와 도서 교역을 통해 지방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 극동 연해주로부터 원유, 가스, 목재, 수력발전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러시아 국경지대의 광활한 땅을 곡창으로 여겨 이를 개간할 의사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극동지방은 7백여만명이 거주할 정도로 인구 희소지역이다. 중국은 1억4천만이 밀집된 동북3성지역의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해 러시아 땅을 개간하려는 것이다.

35년전까지만 해도 수다한 국경 분쟁을 겪었던 이 지역이 최근 내왕이 빈번한 지역으로 탈바꿈하면서 바뀐 풍속도도 많다. 그라데코보역의 블라디미르 피로고프 역장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하얼빈으로부터 열차를 타고 이곳으로 입국한 중국인 및 러시아인은 얼추 17만5천명으로 2002년에 비해 22%가 늘어났으며 화물수송량도 27%나 증가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냉전시대에 양측 병력의 침공을 막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철도의 표준 궤도를 서로 다르게 했는데, 이것이 요즘은 양측의 소통을 저해하는 골칫거리가 되어버린 점이다. 러시아 측은 이곳과 바이칼호 남부도시 자바이칼스크의 화물 처리량을 늘리기 위해 5개년에 걸쳐 9천만달러규모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한다.

양측의 회동도 잦아졌다. 중-러 양측 철도관계자들은 거의 한달에 한번씩 새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해 모이는데 최근엔 이곳을 통과할 3천2백km길이의 광섬유케이블 가설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이것은 러시아 극동 연해주로서는 엄청난 변화를 의미한다. 모스크바로부터 멀리 떨어져 외로운 변경지대로 있어 온 연해주로서 오랜 위협의 존재였던 중국이 최근 기회의 존재로 탈바꿈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국경으로부터 불과 64km 떨어진 블라디보스토크에 지사사무실을 두고 있는 다르킨 연해주 주지사는 전임자인 에브게니 나즈드라텐코가 한 말을 상기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나즈드라텐코는 다르킨 지사가 취임하자 업무인계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국놈들, 몰아내 버려야 해! 몰아내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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