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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부의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대해

이효성의 언론마당 <30> 인터넷과 언론자유

인터넷 토론방이나 인터넷 매체에서 보듯이 인터넷은 이상적인 공론장이 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이 이상적인 공론장으로 역할할 수 있는 것은 그 기술적 특성에도 기인하지만 아무런 제약 없이 누구나 논의에 참여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때문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인터넷이 그 기술적 장점을 잘 살려 제대로 된 공론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언론자유가 주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자유는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언론활동에 대한 정부 개입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 의미의 것이다. 우리가 그냥 "언론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라고 부르는 것은 흔히 이 소극적 언론자유를 뜻한다. 소극적 의미의 언론자유는 언론활동을 제한하는 정부의 간섭이나 개입을 금기시한다. 언론사업에 대한 허가, 사전 검열과 억제, 언론활동 탄압과 그에 따른 언론활동 위축, 기밀주의 등이 소극적 의미의 언론자유에 반하는 정부의 행위들이다. 이들 행위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용납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 의미의 언론자유로 사람들로 하여금 말할 수 있는 기회나 수단을 부여하는 것이다. 반론권이 대표적인 적극적인 언론자유의 하나로 간주된다. 그러나 반론권은 적극적인 언론자유로서는 너무나 제한적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적극적 언론자유는 표현수단 즉 매체에 접근해서 마음대로 의사표시를 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소극적 언론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배척하는 것과는 달리 적극적 언론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을 요구한다.

소극적 언론자유는 적극적 언론자유를 전제로 한다. 아무리 소극적 언론자유를 보장한다 하더라도 적극적 언론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소극적 언론자유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사람들은 언론을 소유하거나 언론에 접근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 언론자유가 보장된다. 그러나 권력이나 금력이 없는 일반 공중은 언론을 소유할 수도 언론에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적극적 언론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따라서 소극적 언론자유도 누릴 수 없게 된다. 정부가 적극적 언론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해도 금력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언론자유는 잘 보장되는 반면에 정부가 적극적 언론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면 권력이나 금력이 없는 일반 공중의 언론자유는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 성원 모두, 특히 권력도 금력도 없는 일반 공중의 언론자유를 보장하려면 그들의 적극적 언론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이 요구되는 것이다. 적극적 의미의 언론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부 개입의 한 예로 정부가 출판시설을 갖추어 놓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들 수 있다. 스웨덴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적자 언론사에 보조금을 주는 것도 일종의 적극적 언론자유의 보장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정부가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고, 개인용 컴퓨터를 보급하고,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법을 교육시키는 정책은 본래 정보통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인터넷을 통한 공중의 적극적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어떤 매체가 공론장으로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그 매체에 누구나 접근하여 논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참여자의 논의에 아무런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공론장의 원리가 실현되어야 한다. 여기서 매체에의 접근과 논의 참여의 보장은 적극적 언론자유를, 그 논의 참여자의 제약 없는 발언의 보장은 소극적 언론자유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공론장의 원리란 소극적 자유와 함께 적극적 자유를 동시에 보장하는 것이다. 인터넷이 제대로 된 공론장으로 기능하려면 인터넷 안에서의 자유로운 의사표시와 함께 인터넷에 접근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오프라인 언론에서는 일반 공중의 적극적 언론자유는 잘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소극적 언론자유의 보장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릴 수 없다. 반면에 인터넷 토론방이나 인터넷 매체에서는 적극적 자유가 잘 보장되기 때문에 소극적 자유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공론장의 원리가 온라인에서는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인터넷에의 접근과 그곳에서의 논의에 제약이 가해진다면 인터넷은 그 기술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공론장으로 기능할 수 없다. 공론장의 원리 즉 적극적 및 소극적 언론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곳에서는 인터넷이 공공의 문제에 관한 여론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언론자유도 지나치면 도리어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소극적 언론자유가 그렇다. 한 사람 또는 소수의 무조건 무제한적인 언론자유 또는 남용되는 언론자유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언론자유를 해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회의장에서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사람이 발언권을 독점하는 경우, 또는 같은 내용의 발언을 여러 사람이 반복하는 경우, 남이 발언하는 중에 말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으로 남의 발언을 방해하는 경우, 명예훼손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 또는 주제와 관련이 없는 발언을 하는 경우 등은 다른 사람의 언론자유와 인권을 해치고 그 회의장이 제대로 된 공론장이 될 수 없게 한다.

따라서 공론의 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적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불가피하게 된다. 더 많은 언론자유를 위하여 어느 정도의 언론자유의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것은 역설이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같은 내용의 반복, 소수의 발언권 독점, 주제와 무관한 발언, 남의 발언을 방행하는 발언, 지나친 표현 등은 제한할 수밖에 없다. 접근 개방과 제약 없는 논의라는 공론장의 원리는 공론장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존중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바로 그 때문에 무제한적으로 존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은 공론장으로서 인터넷에서의 언론자유에도 해당되는 명제다. 인터넷의 토론방이나 인터넷 매체의 의견란이 공론장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라면 절제 있는 언론자유가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무제한적인 언론자유는 인터넷의 공론장 기능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인터넷이 진정한 공론장일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언론자유가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어 인터넷이 진정한 공론장이 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도배와 같은 동일한 내용의 반복, 논의의 초점을 흐리는 훼방적 발언, 주제와 무관한 상업적 메시지 또는 무관한 내용의 퍼나르기, 명예훼손적 발언이나 지역차별적 발언이나 원색적인 욕설과 같은 지나친 감정적 표현 등은 공적 논의에 필수적인 합리적 논의를 저해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인터넷에서의 언어를 정화하고 자유방임적인 언론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과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 중앙, 동아는 인터넷의 익명을 이용한 언어폭력 등과 같은 부작용을 부각시켜 오다가 최근에는 일제히 이른바 클린 인터넷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경우에는 기자가 원하면 등록한 독자들만 댓글을 달 수 있게 하고 있다. 서프라이즈는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딴죽을 거는 조직적 댓글 달기를 통해 논점을 흐리는 행위를 차단하고 있다.

인터넷이 제대로 된 공론장이 되려면 그 표현이 정화될 필요가 있고 또 정화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인터넷에서 도를 넘는 언론자유는 제한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정화 또는 언론자유 제한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터넷에서의 논의가 정화될 필요가 있다고 해서 그 정화가 외부의 강요에 의해 타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정부가 나서서 강요하는 것은 더욱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통부는 2003년 3월 28일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공공기관의 홈페이지 게시판부터 우선 도입하되 민간부문은 공청회, 법제화를 거쳐 확대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통부의 인터넷 실명제 도입 추진의 의도와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는 일종의 소극적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행위의 하나로 비쳐지고 있고 또 그렇게 될 가능성도 크다.

이 때문에 인터넷 관련 시민단체들이 정통부의 인터넷 실명제가 인터넷에서의 언론자유의 제한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 국가검열 반대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인권침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인터넷을 강제적으로 실명화 하여 국가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는 엄청난 인권 유린이 저질러질 참인 것이다. 국가가 강제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게시판에 실명제를 도입하겠다는 정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글쓴이를 '손쉽게' 추적하겠다는 발상이자, 노골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시도"라며 실명제 방침에 반대했다.

인터넷 실명제는 그 본래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소시민들인 일반 공중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이들은 대부분 권력도 금력도 없는 소심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공론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들에게 실명제로 발언하라고 하면 아예 발언을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말하자면, 실명제는 일반인들이 공론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비판이나 대안 제시와 같은 합리적 논의가 아닌 욕설, 명예훼손적 발언을 비롯하여 공론장 기능을 방해하는 행위를 제한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서 실명제가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정부가 나서서 강요할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정부의 행위가 적극적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 소극적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될 때 그것은 언론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으로 자유민주주의 전통과 헌법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커다란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날 대표적인 언론으로 간주되는 신문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근거도 없는 중상모략적인 내용, 명예훼손적인 내용, 그런 내용을 미끼로 한 추악한 거래 등과 같은 저질성으로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기자라는 직업은 교양인이 해서는 안 되는 더러운 직업으로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정부에 의해 많은 규제의 시도가 있었으나 신문은 이에 저항하면서 사회적 통제와 자율적인 정화를 통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렇다고 신문이 완전히 정화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발전에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인터넷 실명제를 비롯한 인터넷에 대한 규제도 사회적 통제와 자율정화에 맡기고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관용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통부는 인터넷 인프라의 구축, 컴퓨터 보급, 컴퓨터와 인터넷의 교육, 그리고 그에 기반한 정보통신 산업 육성에서 자랑할 만한 업적을 이루었다. 그 덕택으로 한국은 세계에서도 내로라 하는 막강한 정보통신 강국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 덕택으로 인터넷은 금력이나 권력이 없는 소시민도, 컴맹이나 인터넷맹이 아니라면, 쉽게 접근해서 공론에 참여할 수 있는 일반 국민의 표현수단이 되었고, 일반 공중을 포함하여 우리 국민들은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는 수준의 적극적인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언론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실명제의 강요로 적극적 언론자유를 확대한 공에 흠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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