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지하 연습실
윤재석=3년 전 첨 볼 때부터 일견에 조폭인 줄 알아봤지만,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우? 아니 샛별 같은 배우들 제치고 <레 미제라블>(원작 빅토르 위고, 연출 국민성)의 주교 역이라니. 그것도 박웅, 최병규 등과 트리플 캐스트(배역 3교대 출연)라며? 배우들 뭐 먹고살라고?
홍창진=난 뭐 광대하면 안되남? 그리구 나 절대 맹탕 아녀유. 안 돌아가는 머리 굴려서 겨우 캐릭터 잡아 놓고 있는데, 웬 태클?
윤재석=사실이 그렇잖은감. 가뜩이나 종교 간 화해위원회다, 장애우합창단 '에반젤리'다, 거기다 걸 그룹, 보이 그룹에 도곡동 아줌마 그룹까지 추종세력 관리하랴, 온갖 사회 담론에 감초처럼 끼어들기도 바쁜데, 이제, 뭐~? 과앙대? 그럼 양(羊)은 누가 키우나 양은?
홍창진=우리 여주 점동성당 교우님들 다들 신실하신 분들이걸랑요. 매일 제 걱정뿐이지요. 그분들이 양육되는 게 아니라, 제가 키워지는 거지. 쉽게 말해 제가 양이구유, 교우님들이 목자쥬.
▲ 미사 집례 중인 홍창진 신부 ⓒ윤이사야 |
윤재석=혹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급 수원교구 신부 월 급여 64만 원에 좀 보태려고 알바 나온 거 아냐?
홍창진=흥, 왜 이러슈. 나 이래 봬도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도 출연했다우. 그것도 추기경으루. 그뿐인 줄 아슈? 2005년 방영된 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도 신부 역할을 했구. 장애인의 성 문제를 다룬 독립영화 <섹스 볼런티어>에서는 형사 역할도 했는디.
정극(正劇)이 첨이긴 하지만 엄연한 정식 캐스트요. 그리고 <레 미제라블>은 50대 연기자 그룹과 한국공연예술센터 공동주최로 시도하는 명작시리즈 제1탄이란 말요. 전 캐스트, 전 스탭 노개런티에, 칼 같은 수익금 분빠이(분배의 일본말). 완전 몸 대고 돈 먹기. 냉정한 프로의 세계. 사실 난 요게 젤 맘에 들어.
윤재석=아주 명배우 나셨네, 나셨어. 그보다 진급 못 할 거 뻔하니까, 오페라에서나 추기경하고, 연극에서나 주교 한 번 해보자는 심산? 게다가 이젠 '상품 홍보'까지. 하긴 캐스트 면면이 장난이 아니더구먼. 오현경 선생까지 노구를 이끌고 질노르망 옹(翁)역에 참여하신 걸 보면, 날탕 연극은 아닌가베.
홍창진=우선 장발장 역만 봐요. 콰드러플 캐스트(quadruple cast: 이승호, 정상철, 강희명, 노진우) 한 분 한 분, 내공이 간단치 않은 분들 아니우.
특히 노진우(49)는 실제로 '빵(감옥) 생활' 경험이 있는 배우에요. 물론 장발장처럼 빵 때문에 빵에 간 게 아니라 '조직생활'하다 잠시 구치소 밥 먹은 경험이지만. 아무튼 그러니까, 아까 연습할 때 나오는 장발장 포스 봤죠? 굶주린 조카 위해 빵 한 조각 훔쳤다 19년 빵 살고 나온 캐릭터론 제격이지. 그밖에 나오는 캐스트들 거의 연극판에서 20~30년씩 굴러먹은 연기파란 말유.
윤재석=난 아까 연습 때, 미리엘 주교가 사흘 굶은 장발장 맞아들여 귀빈용 저녁에 귀빈용 잠자리를 제공하는 씬, 이튿날 헌병 반장에 의해 잡혀온 장발장에게 은촛대까지 덤으로 내주는 장면이 인상에 남고, 떠나는 장발장에게 "형제여, 나는 지금, 당신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분노와 저주로 가득 찬 마음에서 끌어내 하느님께 바쳤소" 고백하는 장면에선 눈물이 납디다.
▲ 홍창진 신부 ⓒ윤이사야 |
윤재석=양아치 신부의 연기에선 '불공정한 한국사회'와 '부자, 그들만의 리그'가 투영되면서 진정한 영혼 구제자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는 점도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지. '옥 떨매 정종철' 몰골에서 어찌 그런 포스가~. 근데, 기왕 <레 미제라블> 홍보에 나섰으니, 기회 좀 더 드리지. 이러다 <프레시안> 발행인한테 혼날라.
홍창진=정종철보단 정대세로 불러주슈. 그건 그렇고, 30일부터 다음 달 1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해요. 평일은 오후 7시 30분 한 편, 토요일은 오후 3시와 7시 두 편, 일요일은 오후 3시 한 편. 월요일엔 쉬고. 가격이 빠지면 안 되지. R석 7만 원, S석 5만 원, A석 3만 원.
윤재석=냉정한 프로님은 표 많이 파셨나?
홍창진=지가유. 12월 6, 8, 13, 15일 저녁 공연에 출연하걸랑유? 근디 4분의 3은 이미 팔렸구유. 이제 몇 장 안 남었슈.
윤재석=무슨 홈쇼핑 호스트 손님 바람 잡기 같네. 아무튼 개막도 하기 전에 대박 친 거 축하혀요. 근디, 대체 뭐에 쓰려구 그리 악착같이 돈을 당기는 거유?
홍창진=제 휘하에 멕여 살릴 중생(衆生)이 어디 한둘 이유? 우선 '에반젤리'(장애우 합창단) 애들 살펴야지. 그 외에도 내가 거둬 먹여야 할 곳 헤아리려면 열 손가락도 모자란다는 거 윤 위원이 더 잘 알면서.
윤재석=하긴 그대 오지랖 넓은 거야 호(號)가 났지만. 그래도 그렇지. 지난 금욜날 저녁 내가 점동성당에 갔을 때 그곳 펜션에 온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들이 "하느님, '비스트(beast)' 만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자, 즉각 자기가 만나게 해줄 거라 호언하던데, 감당이나 되는 거유?
홍창진=아그들 시켜서 오게 하면 돼요. 그 정도야 뭐. 제가 데리고 있는 애들 추리면 그럴듯한 기획사 하나 차리는 건 일도 아니쥬. SM보다는 약간 떨어질지 몰라도.
윤재석=아이들한테 무슨 주문(注文)인가 뭔가 하는 것 같던데?
홍창진=아이들이 그러더이다. 정말 신부님이 '비스트' 만나게 해 줄 수 있냐고. 그래 이렇게 얘기했죠. "너희가 '비스트'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서면 만나는 거고, 만날 수 있을까 의심을 하면 죽어도 못 만난다"구. 내 틀린 말 했슈?
▲ 연극 <레 비제라블> 중 노진우(왼쪽)와 홍창진 ⓒ윤이사야 |
윤재석=아이구, 신부님. 매사 의구심투성이인 이 죄인 용서하소서! 그건 그렇고 정말 오지랖 엄청 넓은 신부 하면 '엉망진창 홍창진'인데, 도대체 몇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거유.
홍창진=사실 나도 내가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또 하고 있는지 잘 몰라요. 그저 주님이 하라시는 대로했을 뿐, 또 할 뿐.
윤재석=그래도 몇 가지 꼽을 게 있을 터인데.
홍창진=굳이 말하라면, '6·15 공동준비위원회' 공동대표 및 대변인을 맡아 종교지도자들 모시고 평양을 수없이 다녀온 것. 바야흐로 남북 간 화해무드가 절정에 달했던 시절이라 통일을 위한 논의에서 가치 중립적 입장인 성직자의 일원으로 통일 사역에 매달릴 수 있었죠. 국가적으로도 중요했던 과업이고, 개인적으로도 보람 있었던 추억입니다.
윤재석=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종교 간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도 나름 역할을 했던 것 같은데.
홍창진='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종교 간 대화위원회 총무를 맡으면서 타 종교 지도자와 자주, 심도 있게 교류했던 것 역시 보람찬 과업이었죠.
윤재석=그러다 보니, 특히 스님들과의 과도한 밀착이 참새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고.
홍창진=제가 '에반젤리' 애들 데리고 히말라야 트레킹이다, 일본 북 알프스 원정이다, 다 가는데 국내에서 움직이다 보면, 먹고 잘 곳이 마땅치 않아요. 그래 이따금 '낙산사' 회주인 정념(正念) 스님 신세를 지곤 했죠.
윤재석=누가 서울깍쟁이 아니랄까 봐, '신세 진 건 반드시 갚는다'는 신념을 고수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작년 9월 1일 자 <한겨레신문>에 "낙산사 화재에 대한 오해"를 쓴 것도 품앗이 차원인가?
홍창진=아녀유. 그건 순전히 팩트(사실)가 틀린 사실을 놓고 한 독자가 오해하고 있는 걸 교정하려고 쓴 거유. 낙산사 화재는 인재가 아닌 산불에 인한 자연재해였고, 복원은 국민 혈세가 아닌 '국고+불자성금 100억 원'으로 복원됐음을 알리려 한 거죠. 일종의 기자 정신이랄까.
윤재석=이 자가 이젠 내 밥그릇까지 노리네. 참 신정아와 특수 관계라는 얘기가 여의도 증권가 찌라시(사설 정보지)에까지 등장했다던데. 그 전말 좀.
▲ 신정아 책 <4001> |
윤재석=하긴 조·중·동도 진실성에서 반타작이 안 되는 형편이니, 증권가 찌라시가 그 정도 보도했으면 상당히 정론 보도를 한 셈이구먼. 언 놈은 현찰 7만 원 내밀면서 1년만 봐 달라 애원이고, 언 놈은 고급 시계 채워주며 1년 보시라고 악다구니 쓰는 형편 아닌가. 신정아 얘기 나온 김에 한 마디 덧붙이면, 신정아 책 말요, 그 <4001>인가 뭔가 416~417쪽에 이런 구절이 있습디다. '(면회 와서) 단 한 번도 사건에 대해 물어보지 않으셨다. 홍 신부님에게 신정아는 그저 신정아라고 하신다.'
홍창진=이거 인터뷰하는 거야, 자기 말하는 거야.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보다 더 말이 많잖아. 나 시간 없단 말유. 연습 끝났으니 또 아그들 보러 가야 허는디. 제발 좀 보내줘.
윤재석=미안, 미안. 마지막으로 진짜 궁금한 질문 하나. 곤란하면 대답 안 해도 괜찮음. 리비도(libido)는 어떻게 해결하우? 혹 오 형제 또는 몽정? 아니면 영화 <박쥐>처럼? 불륜이야 목사님, 스님 전매특허니까 그건 아닐 거고.
홍창진=그 넘치는 에너지를 오지랖에 쓰는 거죠, 뭐. 리비도 없으면 오지랖도 못 넓혀요.
윤재석=그 넘치는 리비도 나하고도 가끔 같이 씁시다. 언제 심야 급식하는 '거리의 천사'에서 한 번 보자고. 요 밑 옛 서울 법대 옆 이화동에 거점이 있거든.
홍창진=그럽시다. 바이!
홍창진(洪昌辰) 돈보스꼬 biography -1960년 1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 출생 <홍두혁·김진숙의 4남 3녀 중 4남(다섯째)> -1987년 광주가톨릭대학 신학과 졸업 -1989년 광주 가톨릭대학 대학원 졸업 -1989년 수원 조원동 주교좌 성당 사제 서품 -1995년 천주교 율전동 성당 주임신부 -1995~97년 중국 다롄 외국어학원 방문연구원 -2000년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종교 간 대화위원회 총무 -2003~2005년 수원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 -2004년 6·15 공동준비위원회 공동대표 및 대변인 -2005년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 복음화 국장, 장애우 어린이합창단 에반젤리 단장 -2007년 현재 경기도 여주 점동성당 주임신부 interviewee 홍창진과의 緣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08년 여름 제주에서였다. 그때 무슨 국제회의 석상에서 발표자(윤재석)와 코멘테이터(홍창진) 관계로 낯을 익힌 둘은, 그날 저녁 차수를 누적시키며 대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를 보자마자 누구에게나 처럼 주민등록증 보여달라 했고, 그 결과 그는 나보다 여덟 살 아래라는 이유 하나로 졸지에 '양아치 헝아'를 모시게 된 거다. 아무리 그래도 근엄한(?) 신부님을 댓바람에 "야!", "너!" 한 건 지금 생각해도 좀 심했다. 한데 그는 전혀 근엄하지 않은 신부(神父)다. 생긴 거 답지 않게 '10월 어느 멋진 날의 신부(新婦)'처럼 치기발랄(稚氣潑剌)하기까지 하다. 이후 우린 이런저런 공식 석상에서 조우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적 만남을 가졌다. 지난주엔 무려 화수목금토일 엿새. 심지어 그는, 2009년 졸저(拙著) <나의 살던 서울은>(도서출판 청어 펴냄) 상재(上梓) 마당에 미사주 두 박스(48병)를 횡령해 오는 치기를 부리기도 했다. 이런 우리를 두고 한 초등학교 여선생은 "두 분 진짜 연애하는 거 맞죠?"라며 태클을 걸기도 한다. 신부(神父)에겐들 고민이 없을까, 2009년 어느 봄날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틀 호텔에서 환경관련 국제회의가 열렸다. 그는 그 대회의 막후 조직역이었고, 난 주제발표자였다. 대회는 잘 끝났다. 그날 저녁 집에 일찍 귀가해야 할 형편이어서 강동 쪽으로 차를 몰고 가던 나. 올림픽공원 정문을 지나고 있을 즈음, 홍 신부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술 한 잔 사란다. 그가 진을 친 방이동 먹자골목 안 카페에 갔더니 잭대니얼즈과 콜라를 시켜 놓고 홀짝홀짝. 내가 제일 싫어하는 조합. 맛도 없을 뿐 아니라, 전형적인 미 제국주의 칵테일 아닌가! 그날 주제는 어떤 자의 배신에 관한 거였다. 홍 신부 왈(曰), 내가 아끼는 후배이기도 한 자가 그를 배신했다는 거다. 내용이 좀 고약했다. 수의(守義), 불겁(不怯), 불교(不巧)가 신조인 나로서도 분기탱천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 당장 전화를 걸어 홍 신부에게 소명할 것을 말했다. 예상대로였다. 얘길 빙빙 돌렸다. 전활 끊었다. "그렇게 살다 죽으라고 냅두자" 합의보고 남은 잭&콕을 축냈다. 양아치 신부가 개신교 잡사에게 카운슬링을 청해 왔다? 이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그림. 하지만 우리 사는 모양 이렇다. So what? |
<홍 신부가 전해준 썰렁 개그 두 편> # 기일(其一) 지옥하고 천당하고 한 판 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까? 천국! 땡. 지옥. 딩동댕. 이유는 판 검사 변호사가 그쪽에 다 가 있으니까. #기이(其二) 독실한 개신교 신자, 천주교 교우, 불자들이 천당(극락)엘 가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이제 그곳에 가면 맘껏 예배(미사, 법회) 드리며 찬양(찬미, 찬불)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불발(不發)! Why? 목사님, 신부님, 스님들이 모두 다른 곳에 계시는 바람에. 예배(미사, 법회)를 봉헌(집례, 집전)할 수가 없었다. |
* 필자의 이메일 주소는 blest01@daum.net 입니다. 기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은 주저말고 메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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