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미국 주도하에 12월 이후 대북중유지원 중단을 결정함으로써 한반도 위기해결을 위한 마지막 실마리인 북미간 제네바합의가 파기될 운명에 놓이게 됐다.
이번 결정은 부시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 정부에 대해 "12월부터 중유지원 중단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지금 당장 11월 중유지원 수송선부터 회항시키겠다"는 압력을 행사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부시 행정부는 11월분부터 중단시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 KEDO 회원국들의 설득으로 12월분부터 중단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압박을 본격화시켰다. 향후 제네바합의 파기를 의미하는 중유지원 중단에 대해 북한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이며 한반도 위기해결을 위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이종석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실장의 현 상황에 대한 긴급진단을 들어봤다.
이 박사는 현재 상황에서 미 부시행정부가 대북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위기 해소를 위해서는 북한측이 핵개발의 실상을 소상히 밝히고 미국에게 더 구체적인 협상카드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과 북한간의 협상을 성사시킬 만한 유력한 중재자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나 대북중유 지원이 중단되는 12월 중순까지는 약 한달간의 시간이 있으므로 한국 등은 북한측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박사의 분석 내용.
***"북한, 핵개발 실상 밝히고 구체적 협상카드 제시해야"**
KEDO의 대북중유지원 중단 이후 북한의 태도변화를 결정하는 요인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은 그 동안 심각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외부지원을 전제로 한 경제개혁 조치를 취해왔다. 북한이 대외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외관계가 경색되고 심각한 갈등관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미국은 현재 북한의 핵개발계획 실태에 대한 정확한 진상을 동맹국들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문제해결을 위해선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북한 입장에선 KEDO의 중유지원 중단이란 표현을 미국이 공존의 길보다는 북한 체제붕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며 이는 미국에 대한 의구심과 위협의식을 강화시킬 것이다. 즉 생존권에 대한 위협 차원이 아니라 생존권을 박탈하겠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일 것이다. 북한이 체제전망과 관련해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인데, 생존권을 박탈한다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지 경제개혁을 통한 체제보장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셋째, 북미관계에서 북한은 그동안 보여준 관례적인 관성이 있었으나 현 상태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만일 중유지원 중단이 일단 12월로 미뤄졌기 때문에 아직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당장 중단됐다면 전망은 쉬울 것이나 한달이란 기간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어느 쪽에 관심을 두느냐를 주목해야 한다. 12월로 넘어가면 북한은 그에 따른 대응을 할 것이다.
따라서 한달 사이에 문제해결을 위한 실마리와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이 기간이 넘아가면 한반도에 위기가 에스컬레이트(상승)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미국측 태도 바뀔 가능성 거의 없어, '영변 공습론' 실제화할지도**
한반도 위기상황 고조란 중유지원이 중단될 경우 북한은 제네바합의가 파기됐다고 들고 나올 것이며 지금 평양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을 추방시키고 재입국을 막을 것이다. 북한은 또 미사일을 발사하지는 않겠지만 시험발사를 한다며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이렇게 나오면 부시 행정부가 가만히 있겠는가. 분명히 더 높은 수준으로 북한에 압력을 가하려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결국 미국의 제한적 공격론이 실제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문제해결을 위한 단초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북한이 켈리 미 특사가 얘기한 북한의 핵개발계획 시인은 과장된 것이라고 부인하고 나서며 국제원자력기구 등의 검증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다, 이번 한반도 위기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북한이다. 핵개발 계획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 정책으로 나온 것은 현 상황을 오판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핸들링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은데 이미 상황이 악화됐다.
둘째,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협상이기 때문에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를 약화시킬 구체적인 협상카드를 제시하는 것이다. 북한이 제시한 '북미간 불가침조약'은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으나 그보다 더 구체화된 협상카드가 필요하다.
***"유력한 중재자 없는 것이 문제"**
문제는 이러한 실마리를 풀어갈 중재자가 없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중재할 수 카드를 갖고 있었는데 일본내 납치 문제로 힘들어졌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경우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용인할 가능성이 없다.
중국이 중재에 나설 가능성도 현재 지도부 세대교체가 진행중인 상황이라 기대하기 어려우며 러시아도 체첸 문제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멕시코에 가는 것을 포기할 정도라 북미간 중재자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부시 미 행정부가 현 대북정책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결국 이를 약화시키는 방법은 북한의 태도변화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 일단 11월분 중유공급이 예정대로 이뤄진 데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있었으나 타협의 실마리를 북한이 줘야 풀어나갈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주지 않을 것이다.
민간이건 누군가 나서서 북쪽에 더 명료한 얘기를 하도록 협상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줘야 한다.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의 방북 이후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레그 정도론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은 12월 중순까지 한달이 남았다.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보기에 따라선 충분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현재 추진중인 모든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