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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경력 케이블기사 "진짜 사장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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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경력 케이블기사 "진짜 사장을 찾습니다"

[박점규의 동행] 박호준 씨의 '희망 여행'

박호준 씨(40)는 케이블방송 기사입니다. 고객에게 신청이 들어오면 장비를 들고 나가 케이블 텔레비전을 설치하거나 수리하고, 철거합니다. 그는 경력 19년의 베테랑 기사입니다. 1995년 처음으로 케이블방송 기사를 시작해 19년 째 안양 지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처음 취직한 곳은 중국집이었습니다. 몇 년 고생해서 돈이 모이면 중국집을 하나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고, 요리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과가 매일 밤늦게까지 이어지면서 그는 2년 만에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손재주가 있었던 그는 당시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내손유선방송에 취직하게 됐고, 기사가 됐습니다. 지역의 조그만 유선방송 회사이고, 케이블을 설치하는 일이 위험하고 힘들고, 월급도 많지 않았지만 그는 만족했습니다. 구제 금융 사태가 터지기 전이어서 '비정규직'이 아닌 당당한 정규직이었고, 정시가 되면 퇴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케이블 기사 경력 19년

3년이 지난 1998년 재계 순위 40위의 태광그룹이 그가 다니던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태광은 계열사인 티브로드를 통해 안양을 시작으로 수도권과 서울, 지역의 유선방송 회사들을 인수했습니다. 재벌 기업이 인수했으니까 월급도 올라가고 처우도 나아질 것이라는 그의 기대는 '한 여름 밤의 꿈'이었습니다.

티브로드는 1500명의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지역별로 분사해 '개인 사업자'로 만들었습니다. 언론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문제가 확산되자 2010년 지역별 센터를 통합해 티브로드의 사내 하청 업체 소속으로 전환했습니다. 현재 박호준 씨는 태광그룹 계열사 티브로드홀딩스에서 설치와 A/S, 철거를 담당하는 TDIC(태광디지털인터넷케이블) 홈서비스 소속입니다.

하루 12시간 넘게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에도 당직 근무를 하는 19년 경력 베테랑 기사의 연봉은 2600만 원입니다. 차량 유지비를 빼고 나면 월급은 160만 원 남짓입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일을 19년 동안 했지만 그의 근속은 1년입니다. 센터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 근로 계약을 하기 때문입니다.

76세의 노모를 모시고 사는 호준 씨는 셋방살이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호준 씨는 팀장이기 때문에 월급이 많은 편입니다. 그의 후배들 손에 쥐어지는 월급은 100만 원을 조금 넘습니다. 주유소 아르바이트생 월급으로 한 달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재벌이 인수해 처우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호준 씨는 매일 아침 8시까지 안양에 있는 태광산업 별관 4층으로 출근해 케이블을 설치하거나 철거하고 A/S를 합니다. 전봇대에 올라가기도 하고 25층 옥상 난간에서 작업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건물과 건물 사이 담벼락에 매달려서 일하기도 합니다.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다보니 다치는 일이 많습니다. 옥상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어 몇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허다합니다. 그러나 산업재해나 공상으로 처리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기사들이 자기 돈으로 치료해야 했습니다.

더욱 부아가 치미는 일이 있습니다. 위험천만한 곳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일하고 회사로 돌아오면 저녁 7~8시 정도가 됩니다. 그런 기사들에게 회사는 영업을 하라고 합니다. 영업을 한 건도 못하면 사유서를 쓰고, 다음 날 영업계획서를 내야하고, 심지어 반성문까지 쓰게 했습니다.

팀장인 호준 씨가 노동조합에 나서게 된 이유입니다.

올해 3월 24일 티브로드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뭉쳐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를 결성했습니다. 동종 업체인 씨앤앰(CNM) 노동자들도 함께 나섰습니다. 현재 티브로드지부에는 노동조합 가입 대상 1200명 중에 400여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습니다. 호준 씨는 안양지회장을 맡았습니다.

기술자에게 영업 강요에 반성문까지

회사와 교섭이 결렬되고, 파업을 코앞에 두고 있던 8월 31일 호준 씨는 생전 처음으로 현대차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에 갔습니다. 그가 탄 희망버스 1호차 '불법 파견 10년 마침표 버스'의 승객들은 케이블방송을 비롯해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비정규직의 상징인 기륭전자 노동자들, 공항항만 비정규직, 서울지역 시설, 버스와 택시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탔습니다.

지난 7월 20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현대차 희망버스의 현장에 그는 없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텔레비전에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소화기가 뿌려진 공장 앞에서 당당하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나왔습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저 곳인데…"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힘은 놀라웠습니다. 개그 프로그램 유행어처럼 나라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현대차의 광고를 받지 않으면 사라지게 될 신문들이 제일 먼저 희망버스를 폭도로 몰았고, 뒤 이어 경찰, 검찰, 새누리당이 차례로 나섰습니다.

단 한 개의 쇠파이프도 없었던 희망버스에 대해 "쇠파이프 든 2500명, 펜스 뜯고 강제 진입"이라는 거짓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정부는 50명의 경찰을 모아 '합동수사본부'를 꾸렸고, 700명이 넘는 경찰을 동원해 희망버스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뒤쫓았습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비교하며 사람들은 현대차에 비하면 한진은 '구멍가게'나 '마찌꼬바'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현대카드… 현대차그룹의 막대한 돈과 광고 앞에 한국의 신문들은 '찌라시'로 전락했습니다.

나라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하는 현대차

희망버스를 폭력버스로 몰았지만 호준 씨는 동료들과 함께 희망버스에 탔습니다. 거대한 재벌에 맞서 싸우는데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만으로는 힘겹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2차 희망버스는 "슈퍼 '갑' 현대차와 정몽구를 향한 거침없는 '을'들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꾸며졌습니다. 여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울산에서 그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가면을 쓰고 악역을 맡았습니다. 그의 연기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고,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진행된 희망버스 문화제 무대 위에서 한 번 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했어야 할 자리를 불법파견 사내 하청 노동자로 채워 떼돈을 벌어가고 있는 재벌들, 정규직으로 일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해 재벌들에게 당해왔기 때문에 '그 느낌 아니까…'

오후 5시 도착해 새벽 1시까지 울산에서 보낸 8시간은 때로는 신났고, 때로는 가슴 뭉클했습니다. 백기완 선생님과 박정식 열사 어머니를 볼 때는 마음이 저려왔고, 공장 안에서 수배중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박현제 지회장의 목소리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연일 계속된 교섭과 투쟁으로 인해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호준 씨는 처음으로 가슴 벅차고 행복한 여행을 경험했습니다.

재벌에 당해봐서 그 느낌 아니까~

호준 씨와 티브로드지부 조합원들은 9월 4일부터 일손을 놓고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14개 사내 하청 업체와 10여 차례 교섭을 했지만 회사는 성의 있는 임금 인상과 단체교섭안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지 사장, 가짜 사장들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자 회사는 대체 인력을 투입했습니다. 티브로드 기사들이 하루 12시간 일해서 받는 월급이 5~6만 원인데, 회사는 대체인력에게 20만 원의 일당을 주고 있다는 것에 호준 씨와 동료들은 분통이 터졌습니다.

노동자들은 광화문 태광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과 결의대회를 열고 "전면 파업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대체 인력 투입이 아니라 진짜 사장 티브로드홀딩스가 대화에 나서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 줄 모릅니다. 어쩌면 임금이 올라가고 처우가 개선되고 노동조합이 인정되어 노사 간에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위장 도급이 명백하지만 노동조합의 힘이 부족해 태광그룹과 티브로드홀딩스 사용자들을 교섭에 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호준 씨는 생각합니다. 가짜 사장이 아니라 진짜 사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을 싸워 진짜 사장과 교섭을 끌어내고 있는 것처럼 뒤따르는 하청 노동자들도 진짜 사장을 교섭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마침내 하청인생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것을.

9월 7일 '위장도급 NO! 직접고용 YES! 희망 지하철'이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9호선까지 곳곳에서 출발해 광화문 태광그룹 본사로 향합니다. 호준 씨가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진짜 사장'을 찾아 떠났던 그 여행처럼 서울의 노동자 시민들이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을 만나러 가는 가슴 벅차고 행복한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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