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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조작, 강동희가 진짜 '몸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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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조작, 강동희가 진짜 '몸통'일까

[최동호의 한국스포츠당] <2> 스포츠 기자의 승부 조작 보도는 달라야

묻고 싶다. "승부 조작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렸습니까?" 모두들 첫마디가 '누구'였다. 강동희 감독으로 밝혀졌다. 이젠 '왜'도 궁금하고 '몸통'도 궁금하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은 아직도 강동희 감독이다. 온통 충격이고 파장이고 몰락이다. 스타 감독의 주변을 맴도는 얘기일 뿐이다. '왜'와 '몸통'은 없고 '누구'만 있다. 2011년 프로 축구와 2012년 프로 야구, 프로 배구에서 승부 조작의 실체가 밝혀졌다. 스포츠를 대상으로 한 불법 사기도박이다. 불법 사기도박판이 먼저 짜이고 선수는 하수인으로 매수된다. 전주와 폭력 조직, 브로커가 선수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했다. 실명이 거론되는 혐의자는 오직 선수와 감독뿐. 그러나 실상 스포츠 불법 사기도박에서 이들은 깃털에 불과한 존재였다.

승부 조작의 최초 보도는 대개 사회부 기자가 쓴다. 첩보나 정보가 검찰이나 경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후 사회부 기자는 수사 상황과 방향을 보도하고 스포츠 기자는 스포츠계 반응과 대책, 피의자의 동정을 취재한다. 사회부 기자의 관심사는 혐의 사실과 범죄 동기, 사건의 파장이다. 피의자가 스타 선수, 프로 감독 같은 유명인이라면 온갖 것을 까발려야 한다. 그래야 기사가 된다. 대중은 부와 명예를 가진 유명인이 왜 유혹에 빠졌는지부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회부 기자의 관점엔 한국 스포츠의 현실과 프로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있을 수 없다. 사회부 취재 논리에 따르면, 결국 승부 조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사회부 기자에겐 피의자가 먼저이고 유명 감독이라는 신분은 나중이다. 반면 스포츠 기자는 잘 알던 유명 감독을 어느 날 갑자기 피의자로 만나게 된다. 스타에서 형사 피의자로 전락한 유명 감독. 스포츠 기자는 개인의 책임뿐만이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까지 떠올려야 한다. 선수 육성의 폐쇄적 구조,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스포츠 단체의 비민주성, 상명하복 유대감과 패거리 문화가 부정과 비리를 관행으로 키워왔기 때문이다. 승부 조작은 나쁜 관행에서 싹튼 아담의 사과이다.

▲승부 조작이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11일 오후 4시 10분께 원주 동부 강동희 감독이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경기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들어서는 모습. ⓒ뉴시스
프로 농구는 승부 조작 직전에 고의 패배 논란에 휩싸였다.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를 뽑기 위해서, 친분 있는 감독끼리 서로 밀어주기 위해서, 플레이오프에서 쉬운 팀을 택하기 위해서 시즌 막판 눈감고 져주는 관행이 승부 조작과 다를 수 있을까? 2012년에 73명이나 입건된 아마추어 농구 심판 매수가 승부 조작과 다를 수 있을까? 고의 패배, 심판 매수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제야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이다. 어떻게 오랜 기간 동안 고의 패배, 심판 매수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 끼리끼리 해먹을 수 있었던 단체 운영의 비민주성과 폐쇄적 구조 때문이다. 승부 조작은 사회부 기자에겐 유명인 관련 사건에 불과하지만 스포츠 기자에겐 한국 스포츠를 진단해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이다.

지난 2월 4일 유로폴(유럽공동경찰기구)은 전 세계 680여 경기에서 승부 조작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선수, 심판, 구단 관계자를 포함해 수사 대상자만 425명이다. 적발된 경기엔 축구 명품인 월드컵 예선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도 포함돼 있다. 충격적이다. 랄프 무슈케 FIFA 안전국장은 "축구 승부 조작은 세계적인 문제이며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는다. 축구계만의 노력으로 근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승부 조작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조직적인 글로벌 범죄라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유로폴은 아시아에 기반을 둔 범죄 조직이 전 세계 축구 경기에서 승부 조작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불법 스포츠 베팅 시장의 매출액 규모는 2012년 기준 7조6000억 원이다. 합법적 스포츠 베팅 사업인 스포츠토토 시장의 3배 규모이다. 2011년에 신고된 불법 사이트만 1만3755개. 실제 운영되는 사이트는 신고 건수보다 10배는 많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불법 사이트마다 평균 6.65명의 범죄 관련자가 해외 서버 운영, 게임 관리, 홍보 등의 업무를 분담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하니 밝혀지지 않은 승부 조작의 범죄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만큼 한국 스포츠가 병들어 있다는 얘기이다.

승부 조작은 유명 감독이나 선수에 초점을 맞출 범죄가 아니다. 쓰나미처럼 한 차례 대형 파장을 보도하고 넘어갈 사건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부 기자가 선수와 감독을 하수인으로 매수한 불법 도박 세력의 실체를 쫓아야 한다면 스포츠 기자는 선수와 감독이 승부 조작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한국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선수들은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심판 매수를 보며 자라왔다. 부정과 비리를 싸고도는 협회 집행부의 눈치를 보는 것도 배운다. 프로에선 끼리끼리에 합류하기 위해서 시즌 막판 져주기를 해야 한다. 선수가 아닌 운동 기계로 성장하다보니, 엘리트 스포츠에서 탈락한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죄의식이 없어서, 생계를 위해서, 선배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어서 범죄의 유혹에 빠진 선수들 모두 그렇게 성장해 왔다. 화려하게 비친 프로 스포츠의 뒷모습을, 한국 스포츠의 그림자를 스포츠 기자는 잘 알고 있다.

승부 조작을 유명 선수나 감독이 금품에 현혹된 사건으로 치부하지 말자. 승부 조작은 범죄자들이 선수와 감독을 매수한 악질적인 사기도박이다. 그 속에서 한국 스포츠의 허영과 모순을 찾아야 한다. 스포츠 기자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스포츠 시사 팟캐스트 '최동호의 한국스포츠당'
☞ 바로 가기 http://sportsparty.iblug.com/index.jsp

<7회 방송 안내>
[이슈] 1. 프로 농구 승부 조작 수사 속보 -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
2. 강동희 감독 취재 뒷얘기 - 허재원 YTN 기자
[피플] SK, 프로 농구 정규리그 우승 - 문경은 SK감독
[오피니언] JTBC의 WBC중계 손익계산서 - 허완 미디어 오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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