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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정보는 '영업기밀'…"노동자가 무슨 수로 밝혀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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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정보는 '영업기밀'…"노동자가 무슨 수로 밝혀내나?"

[토론회]"산재 인정 기준 대폭 완화해야"

"법원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할 당시에 故 황민웅 씨가 화학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가 일했던 공장 라인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피해 노동자들의 증언을 구하려고 해도 삼성에서 입을 막고 있어요. (백혈병이 직업병이라는) 입증 책임을 (노동자가 아닌 근로복지공단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종란 노무사)

"다단계에서 일하는 하도급 노동자들에게 세부적으로 어떤 물질을 다루는지 제대로 교육하는 사업장은 하나도 없습니다. 작업장에 비치된 물질들의 성분도 사업주의 영업 비밀이라고 성분이 공개 안 된 게 70%입니다.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 알 수 있는 노동자는 없어요."
(금속노조 박세민 노동안전복지국장)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 일부가 법원 판결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으면서다. (☞관련 기사 : 법원 "'삼성 백혈병' 산재 맞다…유해물질 지속 노출 탓")

노동건강연대, 참여연대, 민주당 이미경·정동영·홍영표 의원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실은 27일 국회의정관에서 '삼성 백혈병 사건을 통해서 본 산재보험법 개정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토론자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은 산재를 신청할 때 △정보 접근권 △산재 입증 책임 △까다로운 산재 인정 절차 등 모든 측면에서 불리하다"며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WTO가 인정한 발암요인도 한국에서는 인정 불가"

발제를 맡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노동자가 어떤 발암물질에 얼마만큼 노출돼 해당 질병에 걸렸는지를 의학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재해노동자가 이미 사망을 경우 해당 노동자의 작업 환경을 모르는 유족들은 더더욱 그렇다.

이 노무사는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는 자신이 사용한 물질의 이름을 알더라도 그 구성성분이 무엇인지 모른다"며 "오직 사업주가 제시한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그마저 회사가 영업 기밀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적어도 안전과 생명과 관련한 영역에서는 노동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노무사는 "현재는 발병원인 물질과 노출 정도가 명확해야만 산재가 인정된다"며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충족된다면 산재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 또한 작업환경과 직업병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당한' 인과관계만으로도 산재를 인정한 바 있다.

이어 그는 "현재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 인정하는 발암물질과 암 종류가 너무 적다"며 "산재 기준에 발암물질과 직업성 암의 종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TO)는 29개 발암물질과 15개 발암성 확정 산업을 제시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처럼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발암요인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죽고 나서 산재 인정받으면 뭐하나"

유연하고 신속한 절차가 마련돼야 산재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현주 우송대학교 교수는 "현 산재 인정기준은 30년째 그대로"라며 "(첨단 산업이 발전하면서) 신규 화학물질이 개발되고 화학물질 이용량은 점점 늘어가지만, 현 산재법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발암물질 기준 하나를 늘리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많은 시간이 지난다"며 "외국의 경우 직업병의 변화를 정부가 즉각 반영할 수 있도록 기타조항을 만들어 완화 규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한 건설노동자가 석면 때문에 폐암에 걸렸는데 그 피해를 인정받는 데만 5년이 걸렸다"며 "이미 전 국민적으로 발암물질이라고 알려진 석면에서도 그랬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해당 노동자는 결국 그는 최종 승소 판결을 못 보고 죽었다"며 "산업재해를 인정받는 데서 이러한 과정이 무한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마성균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은 "산재 인정 기준이 협소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재 직업성 암, 근골격계질환, 발암물질 기준 등을 노ㆍ사ㆍ정이 추천한 의사들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제가 끝나자 방청석에서도 토론이 오갔다. 발언권을 얻은 공유정옥 산업의학전문의는 "명확하게 독성이 규명된 물질, 명확하게 원인이 밝혀진 질병, 과거의 독성물질 노출 정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경우가 세상에 몇 건이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직업성 암을 인정한다지만) 지금과 같은 산재 기준은 산재 인정을 안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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