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동북아평화센터(이사장 김영호 유한대 총장)가 올해로 13회째 '흥부기행'을 마련하면서 찾은 곳들이다. 제비가 흥부에게 박씨를 가져다줬던 계절인 봄마다 열리는 '흥부기행'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착한 경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흥부기행을 기획한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은 '놀부적인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흥부적인 사회책임자본주의'가 뜨고 있다고 말한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가 막을 내리고, 이타적인 것이 경제적인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흥부기행은 '사회책임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 김 이사장은 "흥부와 같이 사회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도처에 있는 흥부스토리를 공유하는 게 흥부 기획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지역 농민과 공생하는 와인 양조장
올해 흥부기행의 주제가 '숲과 나무'였던 만큼, 여행 첫날인 9일 흥부기행단은 먼저 경기도 용인시에 자리 잡은 한택식물원을 찾았다. 한택식물원은 "한국의 자생식물이 잡초처럼 홀대받던" 1979년부터 멸종위기식물을 복원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자생식물 2400여 종과 외래식물 6600여 종 등 총 900만여 식물이 있는 이곳은 2001년에는 환경부에 의해 희귀멸종위기식물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어 방문한 곳은 충북 영동군에 있는 한국 최초의 와인 양조장인 와인코리아. 영동은 일교차가 커서 포도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홍수가 나면 포도 재배 원가도 못 챙기기 일쑤였다. 윤병택 와인코리아 회장은 농민들에게 '적정가격'을 제공하기 위해 1996년에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고, 주주의 80~90%를 농민으로 채우고 농가에서 포도를 조달했다.
▲ 9일 와인코리아를 찾은 흥부기행단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윤효중 와인코리아 관리팀 부장은 "원래 한국은 와인의 불모지였다"며 "다들 한국은 기후와 토양 조건상 와인 생산에 적합하지 않다고들 핀잔을 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민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포도주와 같은 2차 가공식품이 필요하다는 게 윤 부장의 설명이다.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자본금 1억 원에서 시작한 와인 양조장 사업은 현재 연 매출액 50억 원 규모로 커졌다. 지역 농민과 공생하는 사업이 꾸려진 셈이다.
'흥부기행'에서는 식사 장소와 숙소에도 테마가 있다. 저녁식사는 전북 남원시에서 '무공해질그릇'을 만드는 친환경 기업인 인월요업에서 이뤄졌고, 숙소는 경남 함양군에 위치한 인산동천으로 잡혔다.
특히 인산동천은 일제시대 명의였던 인산 김일훈 선생의 발자취가 서린 곳으로 유명하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속 한의학자였던 김일훈 선생은 난치병을 고치는 대체의학을 마련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가 가난한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했던 인산동천에는 현재 5만여 평 규모의 휴양시설과 죽염 생산지가 들어섰다.
유기농 된장 파는 마을 공동체, '좋은 마을'
이튿날인 10일 흥부기행단은 전북 장수군의 유기농 된장‧고추장 등을 생산하는 '좋은 마을'을 찾았다. 경기도 화성에서 '무소유 공동체' 생활을 했던 이남곡 대표는 8년째 네 가구와 함께 마을 공동체를 꾸려 살고 있다.
'좋은 마을'은 2004년부터 두레생협과 관계를 맺으면서 유기농 된장을 납품하고 있다. 처음에 항아리 열 몇 개를 가지고 된장을 만들었다가 지금은 연 매출이 1억5000만 원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콩값이 올라 순수익은 얼마 남지 않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재래방식을 고집한다고 한다.
'좋은 마을'에는 네 가구가 각기 다른 일을 하며 소박하게 살고 있다. 한 집은 제철 야채와 메주를 직접 판매하고, 또 다른 집은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장을 만들어 판다. 양계장을 했던 집도 있고 함봉을 했던 집도 있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사업하고 싶었지만, 어려움이 있어 개별사업을 한다"며 아쉬워했다.
▲ 유기농 지역생산물로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만드는 전북 장수군의 '좋은 마을'. ⓒ프레시안(김윤나영) |
마지막 행선지는 전북 고창과 전남 장성의 경계에 있는 축령산 편백나무 숲이었다. 축령산 편백나무 숲은 삼림욕 장소로 널리 애용돼 왔다. 편백나무는 스트레스 해소와 면연력 강화에 효능이 있는 피톤치드라는 물질을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축령산 편백나무 숲은 춘원 임종국 선생이 1956년부터 21년간 사재를 털어 가꾸어온 결실이다. 가뭄이 들었을 때 '돈 안 되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그가 물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 독림가의 '나무 사랑'이 1148ha에 달하는 상록수림대를 만들어 낸 셈이다.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은 "흥부는 지붕에서 떨어진 제비 새끼를 온 정성을 다해 치료해줬다"는 사례를 들며 "자연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21세기 인간상으로 '사회와 자연환경, 이웃에 대한 책임 의식이 중심이 되는 인간'을 꼽으며 "(앞으로의 사회 시스템은) 권리의 행사를 위한 자유보다는 책임 개념으로 재구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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