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브리엘 씨는 HIV/AIDS(이하 에이즈) 감염인이다. 지난 2000년 에이즈 양성 통보를 받은 이후로 윤 씨는 3개월에 한 번씩 보건소 담당자와 연락하면서 감시와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담당자는 인사치레처럼 건강에 대해 묻고 그에게 슬그머니 콘돔상자를 건네주곤 했다. 그는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침해와 사생활 침해 현황을 보면 "마치 성 범죄자가 징역형을 살고 나와 보호감찰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 모든 미디어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지는 않는다.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에이즈 감염인을 편견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해 화제가 됐다. 에이즈에 대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MBC |
에이즈 인권 주간을 맞아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는 9일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에서 <한국의 HIV/AIDS, 25년>이라는 토론회를 열고,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실태를 짚었다. 감염인들은 "(지난 25년 동안) 약을 써서 생명이 연장됐을지는 몰라도 삶의 질까지 높아지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에이즈 감염인에게만 붙은 빨간 딱지 'I +'
발표를 맡은 윤 씨는 "에이즈 감염인은 한번쯤 보건소와 병원에서 상처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중에는 보건소 직원이 가족에게 연락해 '아웃팅(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체성이 강제로 밝혀지는 경우를 일컫는 말)'을 당한 경우도 있었고,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을 찾았지만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차례 수술을 거절당해야만 했던 사례도 있었다.
윤 씨도 2002년 병원에 입원했다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다른 환자들이 쓰는 환자복이나 식기는 대개 세척해 재활용됐지만, 유독 그가 썼던 환자복만 불에 태워졌다. 더욱 큰 상처는 감염인에게만 붙는 빨간 딱지였다. 'I +'라고 적힌 딱지는 HIV/ADIS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처음엔 'I+'가 왜 붙은 건지,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어요. 나중에서야 그 딱지가 붙은 차트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난 에이즈 환자'라고 광고한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걸 알게 됐죠. 딱지는 차트에만 붙어있는 게 아니었어요. 혈액, 소변 등의 검사물을 담는 통에, 응급실 이름표 옆에, '폐기처리'라고 적힌 쓰레기통에, 심지어 일회용 용기에 나오는 식판에도 붙어 있었어요. 그 빨간색 딱지가 감염인들에게 찍혀있는 낙인의 표식 같아서 씁쓸하고 우울했죠."
5년 동안 에이즈 치료비 313% 증가
에이즈 감염인을 지원하는 의료 정책 또한 부실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윤 씨는 "그전까지는 국가에서 에이즈 진료비 전액을 지원했으나 감염인 숫자가 2000명에 육박하자 2002년 하반기부터는 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로 지원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진료 과목이나 약이 필요한 감염인에게는 천문학적인 치료비가 들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에서 활동하는 강아라 씨는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특허권을 무기로 선진국이나 아프리카에서나 똑같이 높은 약값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에이즈 약제는 주로 미국에서 나온다. 그런데 미국에서 판매되는 30가지 에이즈 치료제 중에 현재 한국에서 시판되는 약은 16가지에 불과하다. 제약회사가 비싼 신약을 팔기 위해 기존 치료제 판매를 중단하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시한 약값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급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강 씨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에이즈 치료비용은 313%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에이즈는 '양키들의 못된 자본주의 문화의 산물'?
에이즈 감염인이 차별받는 데는 한국 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병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에이즈에 대한 대응책이 다른 나라와는 출발 지점부터 달랐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처음으로 에이즈 문제가 국제적으로 논의됐던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반응을 비판했다.
"1980년대 중반에 전 세계 보건부장관이 영국에 모여서 에이즈 대책을 논의했을 때입니다. 각국은 에이즈 감염인의 출국을 금지(!)하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성 안전을 강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가 사설에 '이런 위기 상황에서 세계보건부장관이 모여 이런 뜨뜻미지근한 대책을 내놓았느냐'고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공항에서 검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감염자가 많은 선진국 어떤 나라도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당시 에이즈 감염자가 한 명도 없었던 한국 언론이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은) 보수나 진보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진보 쪽에서는 에이즈를 '양키들의 못된 자본주의 문화의 산물'이라고 했죠. 이유는 달랐지만 진보나 보수나 에이즈에 대해서 방역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결론은 똑같았어요."
조 교수는 "한국은 2005년까지 20년 동안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서 인권은 무시해도 좋다는 식이었다"며 "그 결과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문화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사람들이 광우병을 '에이즈보다 무서운 병'이라고 하고, 소나무가 병에 걸려 말라 죽어도 '소나무 에이즈'라고 한다"며 "에이즈는 무서운 병의 기준점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열심히 일할 수 있다면…"
에이즈에 대한 편견 탓에 감염인은 사회생활 전반에서 배제되기 일쑤다. 한국 HIV/AIDS 감염연대에서 활동하는 강석주 씨는 "에이즈 때문에 가장 힘든 건 주변 사람에게 질병 이야기를 못하는 것"이라며 "얘기하는 순간 지역사회, 직장, 친구, 커뮤니티에서 온갖 차별을 받는다"고 말했다.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퇴사를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에이즈 감염인을 대상으로 펼치는 정책은 보건복지 분야 외에는 전무한 실정이다. 강 씨는 "노동부는 에이즈 감염인 노동문제를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며 "노동에서 차별받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에이즈 감염인을 생애주기별로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여러 방면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씨는 "25년 동안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그동안 에이즈 치료제가 생겼고 2005년 이후로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보건소 관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감염인들을 인터뷰해 봐도 그들은 자신의 삶의 질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잘라 말했다. 윤 씨는 '삶의 질'이 대단한 게 아니라며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만으로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열심히 일하거나. 이런 식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데 감염인은 이런 기본적인 생활도 제대로 못 누리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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