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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미터 굴뚝 위에서 무기한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기고] 파인텍 사태, 무책임한 경영진을 방치할 건가

지금 그야말로 '난감'하다.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장의 단식이 4주 28일째를 맞은 가운데 그나마 사회적 압력으로 억지로 교섭장에 등 떠밀려 나온 김세권 사장은 수 차례의 교섭에서 여전히 '나몰라라'로 일관한다.

그리고 고공농성 421일째인 지난 6일,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마저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75미터 굴뚝 위에서의 무기한 단식이라니.


이건 너무나 위험하다. 지금도 뼈만 남은 상태지만, 단식으로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발생한다면 쉽게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어렵다.

지상에서의 단식도, 아무리 물이나 효소를 섭취한다고 해도 20일을 넘어가면 잠재해 있던 어떤 건강상 문제가 돌발적으로 터져 나와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어쨌든 그나마 지상에서라면 바로 앰뷸런스라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75미터 굴뚝 위에서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목숨이 위험한 게 아니라 이미 유서를 써놓고 투신한 거나 다름없다. 추락 속도가 조금 느릴 뿐.

정작 이 참담한 사태 앞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주 적나라하게, 노동자와 자본가를 대표하는 두 입장을 소개한다.
무기한 단식을 선언한 굴뚝 위 노동자들의 성명과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이냐'라던 회사 측이 쏟아놓은 얘기를 가감 없이 소개한다.


흔히 양쪽의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고공농성자 무기한단식 돌입에 임하며"

지난 2005년 말 한국합섬 자본은 부실경영, 경영권 다툼, 경영진의 328억 원의 공금횡령, 문어발식 투자확대 실패 등의 책임을 되레 노동자들에게 돌리면서 인적 구조조정을 무차별 진행하였다.

노동조합이 즉각 부실경영, 횡령 처벌 및 환수, 인적 구조조정 저지 등으로 전면투쟁에 나서자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용역깡패와 구사대 200여 명을 투입하는 등 본격적으로 민주노조 깨기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악착같이 용역깡패와 맞서 싸워 물리쳤고, 해고와 손배가압류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당시 금융권으로부터 대출받은 기업 긴급운영자금 200억 원을 구조조정에 소진하면서 회사는 자금경색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폐업에 이르렀다. 이것이 5년간 폐업투쟁의 시작이다.

그 5년의 폐업투쟁 동안 칠흑같이 캄캄한 것은 단지 불 꺼진 공장만은 아니었다. 조합원들은 생계의 위협 속에 맥없이 떠났다. 그나마 버텨온 동지들도 가정이 해체될 위기 속에 눈물로 떠나야 했다. 850여 조합원은 마지막 재가동 합의시점 104명만 남았다.
‘파산기업 공기업화’를 외치며 대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고 투기자본의 공장 인수를 저지하며 끈질기게 폐업투쟁하던 우리에게 지역내 연대조차 궁핍했다. 그만큼 절망적이라는 것의 반영이었다. 그 절망 앞에서도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은 단 하나였다.

1996년 2명의 산재사망사고 진상규명을 놓고 노자간에 전면전이 있었다. 유령노조를 깨트리고 민주노조가 들어서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자본의 탄압이 전면화된 것이다. 이때 노동조합은 38일간의 옥쇄파업을 전개하면서 2명의 분신, 40여 명의 구속이라는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단 하나가 바로 민주노조였다.

2010년 7월 노동조합과 3승계 우선 합의조건을 수용한 스타플렉스에 의해 공장은 2011년 4월 다시금 재가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과 2년도 채 안 된 2013년 1월, 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지회 어용집행부에 의해 조합원의 생명줄과도 같은 고용이 청산되어지고 자본을 상대로 투쟁다운 투쟁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고립 속에 파묻혔다. 외부의 눈에 폐업, 노노갈등으로만 치부되면서 그야말로 그렇게 끝내어지는가 했다. 그래서 2014년 5월 27일,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절박하게 굴뚝에 올랐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굴뚝에서 목숨 걸고 버틴 408일은 청춘을 다 바쳐 지켜온 민주노조를 그렇게 끝낼 수 없다는 절박함이 가능케 했다. 그 절박함이 실리가 판치고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연대의 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연대의 힘이 굴뚝의 봄을 만들었다.

2015년 7월 또 한 번의 3승계 합의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국합섬에서 스타케미칼로, 스타케미칼에서 다시 파인텍으로.


하지만 두 번째 3승계 합의서 또한 자본의 일방적인 합의 파기였다. 파인텍으로 전환한 공장에서 강민표가 바지사장으로 있으면서 3승계 합의 사항을 전면 부정하고 노동자 털어내기를 노골화하였다. 노동조합 파괴공작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또 한 번의 살인적인 굴뚝농성투쟁을 불러왔다. 지금도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두 번의 합의서를 전면 부정하는 행태를 취하고 있다. 핵심은 노동조합 민주노조의 역사인 단체협약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노사 관계를 단절하고 동시에 끊으려고 하는 의도인 것이다.

우리는 지난 25여 년간의 세월 속에 많은 투쟁을 넘어왔다. 그 투쟁 속에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좌절, 위선과 절망 앞에서 언제나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어줄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청춘과 함께해온 민주노조이다.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는 그냥 구호만이 아니다. 그래서 또 다시 굴뚝농성이었고, 그 굴뚝농성은 또 한 번의 408일을 훌쩍 넘어 421일이 되었다.

청춘과 함께해온 민주노조가 훼손되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단 한 시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다른 제안도 쉽사리 용납할 수 없었다. 비록 패배할지언정 천박한 악질자본으로부터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지금까지 죽을 힘을 다해 싸워왔다.


우리가 지키고자 한 그 민주노조만이 자본에 의해 제멋대로 주물러지는 노동악법의 사슬도, 헬조선의 굴레도 벗어버리고 끊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요 희망이다.

금일부로 고공농성자는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다. 차광호.김옥배.박준호.조정기.홍기탁 그리고 함께하고 있는 모든 동지들의 연대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사수해 나갈 것이다.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땅 아래 동지들. 전국에서 함께해주는 동지들의 힘으로 민주노조의 깃발을 움켜쥐고 당당히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아래는 현장에 있는 한 활동가의 글이다. )
사측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기업하기 어렵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이다" "불법으로 굴뚝에 올랐다"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한다"며 노조에 불법, 강성 노조라는 프레임을 덧씌우고 마치 자신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처럼 보도자료를 내고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지난 4차 교섭 때, 정회시간에 쫓아가 김세권과 강민표에게 질문한 사항들이고, 강민표가 답변한 걸 정리한 것입니다. 기억에 의존해서 썼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하진 않아도 오고간 대화 내용을 위조하지는 않았습니다.

Q. 한국합섬 인수하고 체결한 노사합의, 파인텍 설립하고 체결한 노사합의 왜 이행하지 않았습니까.

A. 당신 누구에요?

Q. 대학원생입니다.

A. (김세권) 대학원생이면 가서 공부나 해. (말하고 가버림. 차에 탑승함)

*이어지는 대화에서 대답은 모두 강민표가 한 것입니다.

(강민표, 보도자료와 재무자료를 주며) 지금 언론에서 우리가 나쁜 사람들인 것처럼 계속 보도를 하는데 우리도 억울해요. 노동자들 이야기만 듣지 말고 우리 얘기도 들어보세요. 팩트 체크를 해야지.

우리가 먹튀한 게 아니에요. 우리도 손해가 막심해요. 399억에 인수했죠. 그 후에 5년 동안 쉰 공장 가동하느라고 돈이 더 들어갔어요.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바람에 실(생산품)이 제대로 안 나와서 한달에 20억 이상 손실이 났어요. 지금 토지, 설비 팔아도 돈 많이 못 받아요.

Q. 한국합섬 인수하고, 오래 쉬었던 공장 돌려서 손익분기점 넘기려면 5년은 걸릴 거라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전무님이 그때 직접 인터뷰도 했잖아요. 그런데 왜 1년 9개월 돌리고 폐업했습니까?

A. 그때 계속 손실이 나니깐 우리은행에서 자본줄을 끊는다고 해가지고, 오죽했으면 우리 사장님이 시무식에서 울면서 폐업한다고 발표했겠어요?

Q. 시무식 바로 며칠 전에 회사 경영 어렵다고 몇 개 라인만 가동하고 직원들은 전환휴직 하기로 얘기 됐다면서요. 그런데 왜 약속 깨뜨리고 며칠 뒤에 폐업 발표한 거예요?

A. 우리은행에서 갑자기 자본을 끊는다고 했다니깐. 그래서 우리 사장님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면서 폐업을 발표했어요.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다 받아들이고 퇴직했는데 저것들만 남아가지고. (폐업하고) 차광호가 굴뚝 올라가는 바람에, TK케미칼에 설비 60억 원에 파는 거 계약까지 다 됐는데 그것도 무산됐어요. 저 사람들은 정상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은 다 퇴직하는데 왜 자기들만 안 해요? 나한테 원죄가 있어요. 한국합섬 인수했을 때 내가 보고서를 썼는데, 그때는 노동조합이라고 해도 머리에 뿔 달린 사람도 아니고 잘 구슬리면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파인텍 대표이사도 내가 된 거예요. 내 돈 5천만 원 들여서.

Q. 파인텍 설립하고 왜 합의사항 안 지키셨어요?

A. 뭘 안 지켜요? 다 지켰어요. (파인텍 합의서 꺼내며) 이거 볼래요?

Q. 다 알고 있어요. 1월까지 체결하겠다던 단체협약 안 지키셨잖아요. 그리고 기숙사랑 공장 상태도 엉망진창이었고. 구미가 연고지인 사람들 올라오게 해서 어떻게 그런 공장에서 일을 하게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임금 최저임금+1,000원은, 신설법인 안 세웠을 때, 합의사항 안 지켜졌을 때 주기로 한 금액이라고 구두로 이야기가 되었다면서요.

A. 그게 이 합의서에 적혀 있습니까? 적혀 있냐고요. 그 쪼그만 공장에서 일하면서 대기업 연봉을 달라고 하고.

Q. 그 임금 줬습니까? 잔업도 한 번도 안 줬다면서요. 그 돈을 가지고 어떻게 삽니까.

A. 그러게. 그러면 그냥 나가면 되지, 왜 안 나가요? 다른 데 돈 많이 주는 데 가라고 해요.

Q. 스타플렉스 사내유보금이 774억인데 왜 스타플렉스로 직접 고용이 어렵습니까. 그렇게 돈이 많은데.

A. 사내유보금이 뭔지는 알아요?

Q. 알아요.

A. 스타케미칼 때문에 스타플렉스 직원들 피땀흘려 일한 돈이 들어갔어요. 스타플렉스로 고용하는 것, 스타플렉스 직원들이 반대해요. 소액주주들도 반대하고.

Q. 스타플렉스가 책임져야죠. 김세권 대표가 2015년 7월 7일 합의서에 서명했잖아요. 책임지셔야죠.

A. 그걸 왜 스타플렉스가 책임져요? 아무 상관도 없는데. 내 돈 5천만 원 들여서 지은 공장인데. 그것도 파업해서 1억이나 손해를 봤어요.

Q. 어떻게 스타플렉스랑 상관이 없습니까. 파인텍 대표가 스타플렉스 전무이사인데. 스타플렉스가 스타케미칼 모회사고 스타케미칼 청산하고 만든 회사가 파인텍인데 무슨 상관이 없어요.

A. 안 돼요. 저 다섯 명은 절대 안 돼요. 저런 노조는 안 돼요.

Q. 그런 발언 헌법에 위배되는 거 아세요?

A. 알아요 알아.

Q. 스타플렉스 89개국에 수출한다면서요. 유럽이나 미국은 인권 의식이 훨씬 높은데 이런 거 알게 되면 어떻게 하시려고 하세요?

A. 그 사람들은 우리 위로해줘요. 너네 노조 때문에 참 힘들겠다 하고요.

Q. 얼마 전에 스웨덴 대사가 망언했다가 망신 당한 거 모르세요? EU도 ILO 핵심협약 비준하라고 하고.

(강민표 가버림)

교섭 마치고 김세권, 강민표 나갈 때 "전향적인 방향전환 생각해보세요. 기업 이미지 쇄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인권 의식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라고 얘기했어요. 교섭 중이라 자극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고, 강민표와 대화할 때도 언성을 높이거나 흥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전반적인 인상은,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지 못하고 회피하면서 불쌍한 척, 억울한 척, 자기들이 피해자인 척,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들이 잘못한 걸 자기들도 아니깐 교섭에 나온 거겠지요. 어쨌든 사측의 태도와 언론 플레이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상의 얘기를 모두 보시고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읽는 이에 따라서는 민주노조에 대한 농성자들의 신념이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14년에 이르는 투쟁의 연장선에서, 421일의 고공농성을 거치며 이제 결기만으로 버티는 상황도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보다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약속 안 지키면 나가면 되지, 그래서 남들은 다 나갔는데 너희는 왜 안 나가고 애먼 농성이니 뭐니 해서 우리만 나쁜 사람 만드느냐'는 투의 파인텍 사장, 스타플렉스 전무 강민표 씨의 볼멘소리다.


고작 이게 사측이 하소연한 억울함의 실체라면, 우리 사회는 정말 무의미한 사회적 비용을 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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