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봉칼럼] 느린 아이를 기다리지 못하는 교육, 괜찮은가
같은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듣지만 배움의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아이는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에 다음 진도로 넘어가야 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배움은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좌절의 기억으로 남는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학생 가운데는 경계선지능 학생도 있다. 흔히 ‘느린학습자’로 불리는 이들은 학습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지적장애 진단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아 기존 지원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학습이 느리다고 모두 경계선지능인 것은 아니다.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낙인찍기보다 아이가 겪는 어려움을 정확히 살펴 적절히 지원해야 한다. 배움이 느리다고 성장 가능성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책임을 개인의 노력에만 맡길 수는 없다. 지난 2022년 시행된 '기초학력 보장법'은 기초학력 진단과 학습지원의 기반을 마련했다. 2026년 시행된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은 경계선지능을 비롯해 학습과 심리·정서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통합적인 지원을 제공할 근거를 마련했다.
이제는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지원의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학생의 배움과 학교생활에 나타나는 변화까지 살펴야 한다.
지역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대구광역시교육청은 대구교육대학교와 협력해 오는 2027년 3월 개소를 목표로 ‘대구맞춤형학습지원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경계선지능·난독 학생에 대한 심층 진단과 맞춤형 학습지원, 교원 연수 등을 연계할 계획이다.
경상북도교육청도 전문기관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경계선지능·난독 초등학생 125명을 대상으로 맞춤형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학생의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별 특성에 맞게 지원하며, 상급학교 진학 이후에도 지원이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도적 지원은 교실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정해진 진도와 성취 기준 속에서 학생마다 다른 학습 속도를 반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학생에게도 동일한 시간과 학습 방식만 요구한다면, 배움의 속도 차이는 교육 기회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원래 못해.”
반복된 실패 경험이 이러한 체념으로 이어지면 아이는 자신의 가능성마저 포기할 수 있다.
배움의 어려움은 교과학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학생의 이해 수준과 학습 속도를 고려해야 한다.
성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관계와 존중, 동의와 거절은 단순히 외워야 할 지식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역량이다. 학생의 이해 수준에 맞는 설명과 구체적인 상황 연습을 통해 불편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알아차리고, 거절 의사를 표현하며,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아이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는 교육의 기본이다.
학생마다 다른 배움의 속도를 존중하는 원칙은 모든 교육에 적용되어야 한다. 한 번 더 설명받을 기회, 작은 성취를 알아봐 주는 어른,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를 교사 개인의 헌신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유연한 교육과정과 전문적인 지원,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 아이는 느린가?”가 아니라 “우리 교육은 왜 이 아이를 기다려 주지 못하는가?”
교육의 품격은 가장 빠른 아이가 얼마나 멀리 갔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장 느린 아이도 배움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교육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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